[Opinion] 작품 속 미화 논란에 대하여 - 영화 "키친"과 "파수꾼" [영화]

글 입력 2019.09.29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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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진 미화’, ‘조폭 미화’ 라는 말들은 우리가 드라마, 영화, 만화 등을 볼 때 심심치 않게 접할 수 있는 말들이다. <프리드로우>. <외모지상주의>와 같은 인기 웹툰들은 연재 초기에 “청소년들의 가치관을 왜곡시킨다.”라는 비판을 받았으며, 지금도 내용의 전개에 따라 그러한 평가가 다시금 회자되기도 한다. tvN에서 방영되었던 드라마 <슬기로운 감빵생활>은 교도소 생활을 코믹하게 그려내고 범죄자들을 희화화하였다 하여 마찬가지로 ‘미화’라는 평가를 피할 수 없었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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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웹툰 <외모지상주의>, <프리드로우>,
드라마 <슬기로운 감빵생활> 순이다.

 



영화 속 미화


    

특히, 영화는 이러한 비판으로부터 여타의 장르들보다 자유롭지 못한 면이 있다. 장기적으로 연재되는 형태인 만화와 드라마는 무언가를 미화했다는 부정적인 평가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시간이 넉넉하게 주어지는 편이다. 드라마는 1화가 방영되고 나서 주제에 대한 비판을 받는다고 해도 그 다음으로 이어지는 내용에 따라서 얼마든지 판도가 뒤집힐 수 있다. 만화도 민감한 주제를 직접적으로 다루는 시기에는 댓글란이 비판과 논쟁으로 뒤범벅되었다가, 그 에피소드를 잘 수습하기만 하면 금세 칭찬과 호평일색으로 도배되는 현상을 목격하기 십상이다.

 

또, 책은 어떤가. 소설이라는 장르는 텍스트로 이루어진 장르인 만큼 영상으로 이루어진 영화보다 대중성이 현저히 낮다. 그리고 독자가 책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에 대해 수긍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친절하게 설명을 하는 것도 가능하다. 독자들이 서사 속으로 빠져드는데 걸리는 시간은 다른 장르들보다 오래 걸리지만 그만큼 인물들이 입체적으로 그려지고 심리 묘사나 상황 설명도 훨씬 구체적으로 행해질 수 있기 때문에, 다른 장르들에 비해 서사의 핍진성이 높은 편이다. 이러한 소설이 비판의 대상이 되려면 그것에 가해지는 비평 또한 책 속 서사만큼이나 촘촘하고 논리적으로 이루어져야 되기에, 섣불리 나서서 ‘미화다’, ‘미화가 아니다’ 했다간 되려 반박당해 버리는 수가 있다.

 

위와 같은 이유로 영화는 미화에 관한 논란으로부터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책보다는 대중적이지만 드라마나 만화에 비해서는 향유자들이 작품에 대해 기대하는 바가 크다. 그들의 기대가 저버려진다면, 작품은 가차 없이 비판당한다. 하지만 그 비판은 책에 가해지는 그것만큼 논리적이지 않은 경우도 많아서 그러한 평가들은 받아들이기 억울한 말들일 수 있다.

 

아래, 무언가를 미화했다는 논란이 ‘있었거나’, ‘있었을 법한’ 작품들을 가져와 보았다. 어떤 점에서 가치관이 왜곡되었다는 비판을 받았었는지, 혹은 비판이 있었을 법 했는데 왜 그렇지 않았으며 오히려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는지 등에 대해 나름의 분석과 생각을 덧붙이며 살펴보려고 한다.

 



불륜 미화? - 영화 <키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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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에 개봉한 영화 <키친>은 신민아, 주지훈 등 꽤나 선 굵은 배우들이 출연했으나 흥행하지 못한 채 막을 내린 작품이다. ‘네이버 영화’ 기준으로 평점 6.34라는 명예롭지 못한 점수를 받은 작품이기도 하다.

 

비록 지금보다 과거에 점수를 박하게 주었다고는 해도 6점대 초반이라는 점수는 사람들이 그 작품을 ‘거를 수 있을 정도로’ 낮은 점수이다. 나도 아마 지인의 추천을 받지 않았더라면 굳이 찾아 볼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평점에 의해 만들어진 선입견으로 나는 그 영화가 지루하거나 엉성하거나 둘 중 하나는 반드시 해당될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러나 영화는 예상 외로 나쁘지 않았다.

 

영화는 여주인공 모래(신민아)를 둘러 싼 두 남자 두레(주지훈)와 상인(김태우)의 경쟁 구도로 진행된다. 멜로 영화에서 흔히 등장하는 삼각관계 구도이다. 삼각 구도는 진부한 감은 있지만 언제나 재미는 평타를 치는 편이다. <키친>도 그러한 구도를 잘 이용하여 서사를 적절히 긴장·이완 시키며 흥미롭게 이야기를 구성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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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삼각 구도가 대등한 자격을 가진 남자 둘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한 쪽이 이미 유효한 관계를 이루고 있었다는 것이다. 모래(신민아)와 상인(김태우)은 엄연한 부부 사이었고 그 사이에 두레(주지훈)가 끼어든 격이었다.

 

이러한 관계 설정 때문에 많은 이들이 이 영화를 향해 ‘불륜을 미화했다’라는 비판의 말을 던졌다. 모래가 남편을 두고 전시회에서 처음 만난 두레와 관계를 맺고, 그 이후로도 인연이 이어져 한 집 아래 살며 자신들의 관계를 숨긴 것은 엄연히 불륜을 저지르는 것에 해당한다.

 

하지만 단순히 영화가 ‘불륜’을 다룬다고 무작정 사람들이 비난하는 것은 아니다. 불륜은 영화 속에서 흔하게 등장하는 소재이고, 그 소재가 ‘어떻게’ 다뤄지느냐에 따라 사람들의 반응은 달라진다. 불륜을 저지른 이들이 응징을 당하고 불행해진다면 많은 사람들이 통쾌해하고 시원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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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키친>은 모래와 두레의 만남을 아름답게 그려냈다. 모래의 남편인 상인이 낄 자리가 없어 보일 정도로 둘은 애틋했다. 이 영화의 큰 강점인 ‘영상미’가 둘의 사랑을 감싸 안고 있었다.

 

영화를 본 많은 이들이 이에 대해 불쾌감을 표시했다. 왜 부도덕한 행동을 낭만적인 행동인 양 그려냈는지, 비난받아야 마땅한 인물들이 도리어 왜 불쌍해 보이게 연출했는지, 많은 이들이 따져 물었다.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불륜들은 저렇게 이상적인 것이 아닌데, 현실을 모르는 사람들이 이런 영화를 보고 크게 착각하지 않겠는가? 그들은 묻고 싶었을 것이다.

 



폭력 미화? - 영화 <파수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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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문제가 될 수도 있는 소재’가 등장하였지만 큰 논란 없이 좋은 평가를 받은 영화이다. 영화 <파수꾼>이다.

 

<파수꾼>에는 세 남자 고등학생 인물들이 등장한다. 기태(이제훈), 희준(박정민), 동윤(서준영)이다. 셋은 영혼의 단짝이나 다름없는 허물없는 사이었으나 어떤 계기로 인해 희준과 기태의 사이가 틀어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동윤도 기태로부터 멀어져 셋의 사이는 완전히 분열되기에 이른다.

 

이 과정에서 꽤 폭력적인 묘사가 다수 등장한다. 기태는 학급에서 가장 위에 군림해있는 인물이었고, 그러한 권력을 이용해 사이가 틀어진 희준에게 수차례 폭력을 행사한다. 가벼운 폭력부터 집단적인 구타까지, 현실의 학교 폭력을 연상케 하는 장면이 영화를 통해 전달된다.

 

그러나 <파수꾼>은 네이버 영화 기준 9.2점에 15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수상하기까지 하였다. 영화에 대한 주된 평가는 ‘청소년들의 예민한 감성을 잘 표현하였다’, ‘등장인물 세 명의 심정이 모두 이해가 되어 안타까웠다’ 등으로 관객들 대다수가 무리 없이 영화에 몰입하고 이야기를 받아들였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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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작품의 차이


    

한 작품은 관객들로부터 어려움 없이 수용되었고, 한 작품은 관객들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극명한 반응 차이를 만들어낸 <키친>과 <파수꾼> 두 작품 사이의 변별점은 과연 어디에 놓여 있는 것일까.

 

확실히해둬야 할 점은, 위에서 제시한 두 영화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는 ‘주된 평가’, ‘주된 여론’을 바탕으로 했다는 점이다. <키친>에 대한 주된 반응이 부정적이었던 것이지 모두가 그것을 비난했던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파수꾼> 또한 다수가 호평했던 작품이지만 일부는 ‘폭력을 미화했다’라는 비판을 가하기도 하였다.

 

<키친>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어쨌거나 모래와 두레의 만남에서 불륜을 뛰어넘는 어떠한 가치를 발견했음이 틀림없다. 물론, 배우들의 뛰어난 외모나 영상과 음악의 연출에 반하여 만들어진 사심으로 인해 그러한 입장을 취하게 되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꼭 그렇지 않고도 이 영화를 좋게 바라보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바로, 영화 속에서 주어진 인물들에 대한 힌트를 십분 활용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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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친> 속 여주인공 모래는 어렸을 때부터 상인과 친남매처럼 자랐으며 상인 외에는 교제했던 사람이 없던 것으로 나온다. 어렸을 때 또래 남자애들을 따라 상인을 ‘형’이라고 불렀던 것을 부부가 된 지금까지 유지해올 정도로 둘의 관계는 격이 없고 편한 관계이다. 물론 그들의 부부 생활이 육체적 관계가 포함되어 있는 일반적인 형태이기는 마찬가지지만, 중요한 것은 모래라는 인물이 성장기부터 성인이 되기까지 남들이 하는 ‘연애’라는 형태의 만남을 가져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즉 모래와 상인의 관계는 그 성격만 조금 바뀌었을 뿐 ‘가족’으로 만나서 ‘가족’으로 자라난 것이었다. 모래에게 있어 상인은 ‘좋아서’ 사귀거나 결혼한 대상이 아니라 ‘같이 있는 게 당연한’ 존재였다. 그런 모래의 눈앞에 나타난 두레는 처음으로 그녀가 이성적 호감을 느끼게 만든 존재인 것이다,

 

위처럼 ‘모래’라는 인물의 성장 배경을 고려하고 나면 그들 사이에 맺어진 관계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다. 물론 그것이 그들이 저지른 행동을 정당화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사건의 배경이 논리적으로 설명될 수 있는가 없는가는 서사에 대한 평가를 좌우할 수 있다. 도통 그들이 왜 자신들의 사랑이 금기라는 걸 인지하면서도 멈추질 않는지를 이해할 수 없다면 영화는 ‘불륜을 아름답게 그려내려 한 불순한 영화’라는 오명을 벗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행동에 근거와 개연성이 부여되는 순간, 영화는 ‘특수한 인물들로 인해 생겨난 특수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영화’라는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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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친>과 <파수꾼> 사이의 변별점은 여기에 놓여있었다고 본다. 위에서 정리한 것처럼 <키친>도 특수한 이야기로 나아가는 것이 가능은 했지만, 실제로는 그 장벽을 뛰어넘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영화에서 던져진 인물들에 대한 힌트들을 조합하여 개연성을 만들어낼 수는 있었지만 정작 그러한 힌트들이 시선을 강탈하는 다른 장면들에 묻히는 경향도 있었고, 모래와 두레의 캐릭터에 비해 상인의 캐릭터는 입체적으로 그려지지 않고 뒤로 갈수록 불쌍한 면모만 부각되어 여타의 불륜물에 등장하는 ‘억울한 남편 역할’과 다름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파수꾼>은 인물들을 특수한 개인으로 파악하는 데 어려움이 없었고, 그들 사이에서 빚어지는 결과물들은 화나고 안타까울지언정 납득하기 힘든 것은 아니었다. 사소한 자존심에서 비롯된 갈등, 청소년들이 미숙하게 자신을 감추기 위해 하는 어리석은 행동들, 그리고 기태의 폭력성 또한 그가 어렸을 때부터 지녔던 감정적인 결핍으로 설명이 가능한 것이었다.

 

인물들의 세밀한 감정선을 놓치지 않았기 때문에, 어느 특정한 인물에게만 시선이 편중되지 않았기 때문에 <파수꾼>은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키친>은 이러한 점에서 많은 아쉬움이 남는 작품이다. 그러나 무작정 ‘불륜 영화’로 치부하기는 또 억울한 면이 있는 영화이다.

    

*


누군가는 간단한 취미 생활로, 누군가는 예술 작품으로 영화를 대하기에 저마다의 감상이 다른 것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영화를 가볍게 소비하는 사람들은 그 감상 또한 작은 돌을 던지듯이 가벼운 마음으로 행한다. 하지만 그 감상들은 쌓이고 쌓여 평생의 꼬리표가 되기 때문에, 글로써 남기는 평가와 감상은 조금 신중하게 이루어져야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있어야 할’ 사실들이나 ‘있을 법한’ 이야기만을 다루는 것이 영화가 아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영화 속 서사가 현실과 괴리감을 이룰 수도 있고, 판타지 장르가 아님에도 판타지처럼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그것도 우리에게 감응을 일으키는 여러 방법들 중 하나인 것이다. 무섭도록 현실을 반영하는 것을 통해 우리의 사고 회로를 자극할 수도 있지만, 반대의 방식을 통해서도 깨닫는 바가 있을 수 있다. <키친>에서 비록 인물들의 설정은 비현실적이었지만 그들을 통해 인간의 욕망을 잘 드러내었듯이, <파수꾼>에서 특수한 상황 설정을 통해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의 절대적 구분을 부정했듯이 말이다.

 

이처럼 ‘있을 수 있는’ 이야기를 그려내는 것이 또한 영화의 소임임을 받아들일 때 우리는 좀 더 열린 시각으로 서사를 바라볼 수 있게 된다. 그러한 시각을 갖고 작품을 감상한다면 ‘미화다/미화가 아니다’의 이분법적 구분을 넘어 한층 더 발전된 논의를 나눌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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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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