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즐거운 나의 집은 어디에? - 혼마라비해? [공연]

소수자들의 삶, 자이니치에 대하여
글 입력 2019.09.28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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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을 감상하고, 극의 제목 <혼마라비해?>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해당 연극에 대한 정보를 처음 접하면서도 제목이 뜻하는 바가 무엇일까 고민했다. 혹시 우리가 알지 못하는 나라의 언어가 아닐까 어렴풋이 추측해보았는데 비슷한 결과 값을 맞이했다. ‘혼마’는 일본어로 ‘정말’, ‘라비’는 라트비아어로 ‘좋다.’ ‘해’는 한국어 어미이다. 이렇게 세 국가의 단어가 합성된 ‘혼마라비해?’ 는 ‘정말 좋아해?’라는 뜻을 가진다. 이 합성어는 일본과 한국, 그 어떤 국가에서도 인정받지 못하고 결국 제3의 국적을 취득한 재일동포들의 자조 섞인 질문을 보여준다.

  


‘혼마라비해?’


-편견 없이 날 좋아할 수 있어?


     

연극의 막이 내리고 배우들의 커튼콜이 지나도. 연극 속에 등장했던 자이니치들의 잔상은 여전히 남아 편견 없이 소수자들을 바라볼 수 있는지 질문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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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2009년에 일어났던 일을 바탕으로

제가 쓴 연극이에요...”

 

어두웠던 극장이 밝아지고 조명은 연극의 주인공 영주를 집중한다. 그리고 영주는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를 정말 자신이 창작한 연극인 마냥 과거의 경험을 소개하며, 그렇게 극이 시작된다. 보통의 연극이 서사의 진행으로만 인물들의 심리를 알아채야 했다면, 본 극은 주인공 영주가 사건 사이마다 독백 연기를 삽입하여 연극의 흐름을 바로 잡는다. 소설로 이해하자면,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초점자로 영주를 사용하는 격이다. 그렇기에 관객들은 자연스레 영주의 시선을 빌려 연극을 감상하게 된다. 연출가는 왜 영주의 독백을 활용했을까, 그 의문은 연극이 끝나고 해결된다.


 

 

# 몰이해의 씨앗


 

신영주는 일본 극단 ‘마사루’의 번역 작업을 돕기 위해 일본 오사카에 방문한다. 외로운 타지 생활이 될 뻔했지만, 재일동포 잡화점이자 하숙집인 <만세상회>를 만나 순탄하게 적응을 해나간다. 하지만 영주는 하숙집 거실에 걸린 김일성, 김정일의 사진을 발견하고 아연실색한다. 그는 재일동포를 재미교포와 비슷한 개념으로 일본에 사는 대한민국 국민 정도로 이해했기 때문이다. ‘혹시 이들은 간첩이 아닐까?’ 재일동포에 대한 몰이해와 북한에 대한 몰이해까지 중첩된 영주는 갑자기 무릎을 꿇고 빌기 시작한다.

 

하지만 만세상회 사람들은 이런 영주의 돌발 행동에도 그런 모습이 낯설지 않다는 듯 웃어넘긴다. “우리는 간첩 아니란다.”하는 간단한 말만 달랑 남기고 영주의 물음에 회피하고 만다. 재일 동포에겐 자신을 규정하는 일 자체가 괴로운 일이기에 마음 편히 넘어간 것이지만, 영주의 입장에선 명확히 그들의 개념을 정의 받지 못해 혼란스럽기만 하다. 그렇게 영주는 편견의 씨앗을 품고 만세상회 한 편에 진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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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동포의 살의 터전인 쯔루하시 시장 주변에는 툭하면 혐한 시위가 벌어진다. 일본어이기에 그 내용은 알 수 없었지만, 혐오 언어 특유의 날카로움 묻어나 감정의 깊이는 느낄 수 있었다. 이런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영주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분노를 표한다. 그리고 같은 한 민족으로서 함께 대응하자며 만세상회 사람들에게 동참을 요구한다. 하지만 그들의 반응은 미지근하기만 하다.

 

“한국 사람들이 쪽발이 쪽발이 하는 것처럼, 저들도 그러는 거야….” 자신이 나서도 더는 바뀔 것이 없다는 체념이 드러나는 동시에, 두 국가 모두에 속하지 않는 듯 타자화 하는 말투가 어딘가 모르게 쓸쓸해지는 말이었다.

 

이렇게 재일동포는 그 어떤 국가에도 귀속되지 못한 채 살아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혐오의 화살은 양국 모두에서 쏟아진다. 꿈에 그리던 Rock 가수가 된 현규가 일본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출연해 독도에 대한 질문에 답하지 못한 장면이 재일동포의 비애를 가장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독도입니까, 다케시마입니까?” 국적의 물음을 떠나, 일본에서 활동해야 하는 가수로서의 존재를 뒤흔든 이 질문은 현규를 일본과 한국 그 모두에서 살아갈 수 없는 존재로 전락시킨다.


    

 

# 혼마라비해?


 

가족들과 잘 융화되었다고 생각한 영주는 끝내 지숙에게 상처를 주고 만다. 지숙이 일본의 고교 무상화 정책에서 조선인 학교가 제외된 상황이라 말하자 영주는 북한의 지원을 받는 조선학교 대신 남한의 사상을 배우는 민간 학교로 옮기지 않는 재일동포를 이해할 수 없었다며 반공사상에 관해 이야기 한다. 이에 지숙은 할 말이 없다는 듯, 귀를 닫고 끝내 서러움이 폭발하고 만다.

 

북한은 1957년부터 지금까지 조선학교에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을 보내고 있다. 그 도움으로 조선학교는 운영됐고 차별 속에서 조금씩이나마 나아갈 수 있었다. 그렇기에 자연스레 조선학교 커리큘럼에는 북한의 사상이 기반이 됐고, 반공사상을 기반으로 자란 영주는 당연히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하지만 재일동포들의 국적은 대한민국도, 북한도 아닌 ‘조선’이다. 남과 북이 하나였던 한반도 조선. 지금은 없어졌지만 언젠가는 다시 생겨날 국가. 그렇기에 재일동포에게는 조선학교를 지원해준 북한도, 한류열풍으로 단골손님을 가져다준 남한도 그들에겐 모두 한민족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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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양국의 틈바구니에서 고통받던 ‘지숙’과 ‘현규’는 소설 <광장>의 주인공 ‘이명준’처럼 일본과 한국 두 국가를 모두 포기하고 제3의 국가로 떠난다. 재일동포에게 있어 광장과 밀실은, 한국과 일본의 국적에 대한 물음이었고 이는 또다시 남북한 문제로 세분화 된다. 물론 제3국에서도 이방인에 대한 차별은 난무하겠지만, 그간 그들을 괴롭히던 정체성 혼란에선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극의 시작과 마찬가지로 영주의 독백으로 마무리된 연극은 꽤 오랫동안 여운을 남겼다. 영주는 극의 진행에선 재일동포에 대한 무지로 의도치 않게 그들에게 상처를 줬지만, 마지막 독백에 와서는 미묘한 감정을 표현하며 더욱 성숙해져 있었다. 이런 영주의 모습은 아마 연극 관객의 전후 모습을 대상화한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재일동포 혹은 그를 넘어 소수자들에게 무감했던 우리가 누리고 있던 당연한 것이 어쩌면 그들에겐 평생토록 염원한 어떤 것일지도 모른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그렇게 연극은 말한다. 소수자들에게 연민을 느끼는 것이 아닌, 편견 없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혼마라비한’ 세상이 오길 바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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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송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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