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evelyn glennie - 박혀있던 고정관념에 커다란 질문을 던지다 [음악]

과연, 정말 필수적인 것인가?
글 입력 2019.09.28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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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블린 글레니(evelyn glennie 1965년~)를 알고 있는가? 사실 타악기에 관심이 있거나 전공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모를 수가 없는 인물이다. 그녀가 현재 아주 유명한 타악기 독주자로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보통 오케스트라의 단원으로 활동하는 타 연주자들과는 다르게, ‘독주자’로서 활동 중인 돋보이는 타악기 연주자이다. 과연, 그녀의 어떤 점이 그녀를 돋보이게 하는가? 일단, 그녀의 연주를 감상하기로 하자.



에블린 글레니 독주 영상 감상하기



그녀의 연주는 마치 여러 사람이 눈을 맞추며 연주하듯 풍부하게 진행된다. 청명하고 곧은 마림바의 다채로운 소리들이 모여 그녀의 연주를 완성한다. 아주 정확한 셈여림의 반전과 유려한 멜로디의 흐름은 최고의 타악기 연주자로서의 명성을 자신한다. 단 한순간도 악기에 눈을 떼지 않고 엄청난 집중력으로 연주를 진행하는 에블린 글레니. 그런데, 이런 연주의 특징들은 여타 타악기 연주자들과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니까, 연주만 보자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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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에블린 글레니는 ‘귀가 들리지 않는’ 연주자이다. 귀가 들리지 않는데도 풍부하고 다채로운 연주를 펼치는 그 연주자에 초점을 맞추어 다시 생각해보자. 본인이 음악을 전공을 하고 있다면 살면서 한 번쯤은 무조건 들어봤을 말 “음악 하는 사람들은 귀가 생명이다.” 혹은 음악을 좋아하는 애호가들에게는 ‘들리는 음악’이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런데, 그녀에게는 더 이상 그런 말들이, 그런 이유들이 유효하지 않다. 그녀의 연주에는 ‘듣는다는 것’이 빠져있다. 그저 보고, 몸으로 느끼는 것만으로 완벽한 연주를 행한다. 그래서인지, 그녀의 힘 조절은 능수능란하다. 폭이 넓은 힘 조절과 그로 인한 진동, 눈으로 정확히 확인하며 연주하는 그 집중력이 ‘듣는다는 것’을 필요 없게 한다.


그렇다면, 그녀는 어떻게 음악을 느끼며 연주를 할까? 여기서 포인트는 ‘진동’이다. 귀가 들리지 않는 사람들은 그 소리로부터 오는 ‘진동’을 예민하게 받아들인다. 그래서 귀가 들리는 사람들과는 다른 방법으로 ‘듣는다’. 그저 귀로 듣지 않는 것뿐, 그들은 보다 예민하게 몸으로 듣는다. 예를 들면 이렇다. 노래가 나오는 스피커 앞에 앉아있으면 그 진동이 몸으로 고스란히 전달된다. 큰 소리가 나면 큰 진동이, 작은 소리가 나면 작은 진동이 느껴질 것이다.


본인이 본 그녀의 다큐멘터리 영상 중에 그녀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듣는다는 건 그저 한순간이야. 그 이후에는 없어지는 것이 ‘듣는다는 것’이지. 그런데 나는 더 많은 것들을 몸으로 직접 느끼고 받아들이지. 그러니 더 많은 것들을 들을 수 있는 거야.” 그녀는 귀가 들리지 않는 학생들에게 여러 소품들과 악기를 사용하여 진동을 예민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법을 직접 가르친다. 북위에서 오르골을 틀어주고, 큰 북을 치며 각기 다른 진동들을 사용한다.


‘소리’는 ‘물체의 진동에 의하여 생긴 음파가 귀청을 울리어 귀에 들리는 것.’이라 정의된다. 우리가 ‘귀에 들리는 것’에 모든 초점을 맞출 때, 그녀는 ’진동‘에 모든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그녀는 ‘합주’또한 가능하다. 물론 보통의 연주자들처럼 귀로 들으며 ‘들리는 것’에 기반에 합주하지는 않는다. 역시나 그녀는 정확한 지휘와 주위의 진동으로 아름다운 합주를 완성시킨다. 그녀의 합주를 감상해보자.



에블린 글레니 합주영상 감상하기



영상에서 보다시피, 그녀는 오케스트라나 지휘자와 눈을 맞추며 연주하기보다는, 마림바에 모든 시선을 두고 타 모든 것을 몸으로 받아들인다. 합주에서 그녀의 연주는 정확하고 돋보인다. 이러한 점이 그녀가 ‘독주자’로서 활동하는 이유 중 하나가 될 수도 있겠다.


그녀는 모든 무대를 맨발로 선다고 한다. 그 이유는 바닥에서 오는 진동까지 예민하게 받아들여 보다 완성도 있고 아름다운 연주를 하기 위함이다. 그녀는 그렇게 최선을 다해 독주에서도, 합주에서도 온몸으로 듣고 느끼며 보다 다채로운 음악을 만들어낸다.


그녀는 영국 왕립음악원을 졸업했는데, 입학 전 엄청난 반대의 목소리들이 많았다고 한다. “귀가 들리지 않는데 어떻게 연주를 하겠다는 것이냐, 절대 불가능할 것이다.” 그녀는 말했다. “난 모든 것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내 한계를 정하고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분명, 그녀는 할 수 있었지만, 너무 당연했던 그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믿지 않았다. 결국 그녀는 자신의 실력을, 가능성을 증명했고 졸업까지 해낼 수 있었다. 그 뒤에는 아버지의 열렬한 지지도 큰 몫을 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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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그렇다면 정말 ‘귀로 듣는다는 것’이 음악에 필수적인 요소가 될 수 있는가? 물론, 중요하지 않다고 말할 수 없다. 명백히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음악이 관련된 모든 것에는 ‘귀로 듣는 것’이 당연하게 따라온다. 하지만, 이것이 필수적일 필요가 없다는 것은 에블린 글레니를 보고 단번에 알 수 있을 것이다. 음악에는 한계가 없고, 이를 행하는 모든 사람들에게도 역시 한계는 없다. 그녀는 보통의 사람들이 당연하게 생각해왔던, 그렇게 받아 들여왔던 그 사실을 모두 고정관념으로 만든다. 그리고 커다란 질문을 던진다. “정말? 과연 그게 필수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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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보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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