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폭력성은 억제될 수 있는가 "킬롤로지"

세 사람, 두 가지 이야기, 한 가지 주제
글 입력 2019.09.23 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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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2차 대전에서 사용되었던 총이 발견되었다. 총 안을 살펴보니 상태가 조금 이상했는데, 바로 총알이 층층이 쌓여있었다. 차마 사람을 죽일 수 없던 군인이 총을 쏘지는 않으면서 탄환을 넣기만 반복한 결과라고 한다. 알란은 이게 인간의 본성이라고 말한다. 거부감, 두려움. 사람을 죽이는 것을 본능적으로 겁내고 두려워한다고. 하지만 이런 본성은 반복적인 학습을 통해 지워질 수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군인들은 점점 더 실전에서 사람을 죽이는 것과 유사한 연습을 하고, 실제처럼 잔인하게 사람을 죽이는 게임이 유해하다고. 알란은 반복 학습으로 세뇌된 행동은 본능이 거부해도 몸이 움직이기 때문에 아무리 살해에 거부감을 느껴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 말이 사실일까?


폴의 행동을 보면 가능성이 있다. 잔인하게 사람을 죽이는 게임 ‘킬롤로지’의 제작자인 폴은 자신을 죽이려고 한 사람이 망설이는 상황에서 과감하게 무기를 잡아 들고 그를 내리친다. 고꾸라진 상대에게 전투 의지도 능력도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몇 번이고 내리친 후, 흥분과 고양감을 느끼며 화장실로 들어간다. 만일 알란의 사람을 죽이는 것에 본능적으로 거부감을 가진다는 말이 사실이라면, 폴 역시 게임을 제작하는 은연중에 살인을 학습했을 수 있다. 그러므로, 알란은 망설였던 행동을 거침없이 하는 것이다.


연극 <킬롤로지>는 두 가지의 이야기를 한다. 첫 번째는 자극적인 게임이 사람에게 미치는 폭력성에 관한 이야기이며, 두 번째는 가족의 유대관계가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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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공연 사진



우선 폭력성에 관한 이야기부터 끝내보자면, 앞서 말했듯 폴은 잔인하게 사람을 죽일수록 높은 점수를 맞는 게임 ‘킬롤로지’의 제작자이다. 자극적인데 현실적이기까지 한 그 게임을 모방해 살인을 저지르는 일이 일어났다. 살인자들은 게임에서 어떤 무기를 쓰는지 말하고, 그 비슷한 물건을 찾아 데이비에게 상해를 입히고 끝내 살해한다. 폴은 잘못을 부정한다. 비슷한 살해 게임은 수없이 많으며 게임은 게임일 뿐이라고. 게임 속에서 돼지가 난다고 해서 실제로 돼지가 하늘을 날 수 있다는 주장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또, 그의 게임이 때로 사람을 살리기도 했다. 실제로 그의 게임에서 플레이어를 대상으로 아이디어를 모집한 적이 있었다. 소변 맞추기 미니게임 아이디어를 생각해낸 플레이어는 매번 게임이 업데이트될 때마다 몇 %씩 수익을 떼어 받고, 그 돈으로 자신의 형제자매를 학교에 보낸다.


두 가지 의견이 팽팽하게 맞서는 가운데, 폴은 사소한 이유로 아이를 입양한다. 가족이 된 아이는 폴을 매번 걱정하게 한다. 폴이 보낸 차는 타지 않고 매번 친구와 걸어오거나 오랫동안 핸드폰을 꺼버리기도 한다. 누구나 걸어 다녀요. 무서워할 필요가 없어요. 그러나 폴은 자꾸만 불안해진다. 세상이 얼마나 위험한지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언제 폭력배와 시비가 붙어 그들이 아이를 ‘킬롤로지’에서 캐릭터에게 가하는 고문을 그대로 아이에게 가할지 모를 일이다. 폴이 극도로 불안해하며 이사를 해야겠다고 말할 때, 아이는 그저 웃는다. 하지만 아빠, 여긴 우리 동네에요.


이 사건이 보여주는 것은 명료하다. 게임 제작사로써 자신의 의견을 주장한 폴도 결국 세상이 험하고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폴은 그게 자신의 게임 때문이라고 인정하지 않겠지만, 완전히 부정하기도 힘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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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공연 사진



두 번째 이야기, 가족의 유대 관계가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알란보다는 데이비와 폴의 이야기에서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데이비는 어릴 적부터 부모님이 이혼해 만나지 않았다. 아버지는 9살 때 강아지를 선물한 이후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 어머니는 그리 따스한 사람이 아니다. 돈이 없어서 데이비가 친구를 데려오는 것도 싫어하고, 파티에 가는 것도 과하게 막는다. 데이비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삶이 굉장히 가빠서 데이비를 제대로 챙겨주지 못할 뿐이다. 누구도 그를 붙잡아주지도 안아주지도 않기 때문이다.


데이비의 삶에서 오직 강아지 메이시만이 그를 붙잡아주고 안아주는 존재였다. 그러나 데이비는 폭력의 공포 앞에서 메이시를 제발 좀 죽여달라고 부탁한다. 메이시가 죽지 않는다면 그들은 데이비를 때리고 괴롭혔을 것이다.


데이비는 극 중 피해자로 나오지만, 사실 가해자이기도 하다. 학교 폭력을 당할 때 유일하게 걱정해준 선생님에게 의자를 휘두른다. 선생님은 그가 두려워하는 다른 아이들과 다르게 친절하고 상냥하기 때문이다. 즉, 때려도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학교 선생님을 ‘의자로 팬’ 학생이라는 타이틀이 붙은 데이비는 그런 타이틀이 붙은 여느 아이들과 비슷한 인생을 살게 된다. 하루는 5살은 차이가 나는 어린아이의 자전거를 빼앗기로 한다. 아이의 아버지가 놀라서 달려 나오고, 친절한 목소리로 말을 하지만 데이비는 결심을 굳히지 않는다. 아이가 칭얼거린다. 아버지는 아이를 달래며 데이비를 바라본다. 괜찮아, 딸, 이 오빠가 장난치는 거야. 그렇게 말하고 있지만 사실은 데이비에게 애원하고 있다. 데이비는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꼭 자신이 메이시에게 괜찮다고 말할 때와 똑같은 일이 어린 여자아이에게 일어난 것이다. 그를 막아주고 괜찮다고 말해준 사람은 없는데 말이다. 심지어 데이비는 자신의 공포에 메이시를 넘겼고, 이에 죄책감을 느끼고 있는데, 아이의 아빠는 두려움에도 기꺼이 자신의 딸과 데이비 사이의 중재자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데이비는 바로 자전거를 빼앗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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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공연 사진



반대로, 폴의 가족은 매우 부유하며 가족이 화목한 편이다. 도덕적이고 공평한 삶을 추구하는 아버지와 폴의 사상은 굉장히 다르고, 그러므로 폴은 아무리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싶어도 인정받지 못한다. 아버지의 기대가 항상 더 높기 때문이다.


폴은 생일에 20대에 다른 동년배는 꿈도 꾸지 못할 저택을 사서 아버지를 초대한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리 자랑스러워하지 않고 성을 낸다. 넌 더 대단한 사람이 될 수 있었다. 화가 난 폴은 당시에 제작하던 게임의 보스 캐릭터에 아버지의 얼굴을 붙인 후 패고, 또 패고, 다시 팬다. 그리고 게임 ‘킬롤로지’를 만들어낸다. 사람이 진심으로 원하는 것은 죽여도 다시 살아나는 괴상한 슬라임이나 괴물이 아니라 분노를 표출할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가족 여행으로 이집트를 갔을 때, 아버지는 차가 전복되는 사고로 죽을 위기에 처한다. 폴은 큰 비용을 내고 개인 헬기를 사 아버지를 미국으로 데려간다. 모두가 폴 덕분에 살 수 있었다 말하지만 아버지만은 폴이 이집트에 데려가지 않았다면 죽을 위기에 처하지도 않았을 거라고 말한다. 그가 막대한 비용을 내 아버지를 살렸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죽어가는, 폴만큼 돈이 많지 않은 사람들을 조롱한 것이라고. 후에 폴은 아버지가 치매에 걸려 치매 연구 재단에 큰돈을 기부하고 아버지를 치료할 방법을 찾을 때도 ‘아버지를 위해’ 재단에 돈을 기부했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치매에 걸린 모든 사람을 위해서요. 그게 아버지가 원하는 일이니까요.


억지로 아버지의 생명을 연장한 폴은 어느 날 아버지의 눈을 본다. 열정, 투기는 사라진 지 오래였다. 더는 아버지가 폴을 향해 웃어주거나 장하다는 말을 해줄 수도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폴은 아버지를 놓아준다.


데이비와 폴의 행동에는 비슷한 점이 보인다. 만일 데이비를 9살 이후로 보지 못했던 아버지가, 혹은 자기의 삶에 지쳐 데이비를 돌볼 힘이 없던 어머니가 한 번만 잡아줬더라면, 그래서 같은 반 에디 랜달이 불렀을 때 나가지 않게 막아줬더라면, 유일하게 그를 안아주고 지탱해주던 강아지 메이시가 죽지 않았더라면 혹은 죽었어도 의지할 존재가 한 명이라도 더 있었다면 비극적인 길로 빠지지 않았을 것이다. 폴의 아버지가 생일에 폴의 성공을 축하해줬더라면, 그의 걱정과 생각해주는 마음을 이해하고 격려해주거나, 적어도 따스한 말투로 도덕적이지 않은 길로 가려는 아들을 말렸다면 게임 ‘킬롤로지’는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극 중에서 알란은 데이비가 사망한 후 매일 이불에서 눈을 감고 데이비가 죽지 않았으면 될 수 있었을 많은 미래를 떠올린다. 상상 속에서 데이비와 알란이 만날 때, 데이비는 언제가 건실한 일을 하고 있고 알란은 초라하다. 데이비는 언제나 나보다 10배는 대단한 아이니까요. 알란은 그렇게 말한다. 정말일까? 기적적으로 죽기 전에 데이비가 병원에 옮겨져 살아났다고 해도 완전히 새로운 삶을 살고 새로운 사람이 되었을까? 물론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확신하기 어렵다. 누구도 데이비에게 그는 아버지보다, 다른 사람보다 항상 10배는 대단한 아이라는 말을 해준 적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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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공연 사진



<킬롤로지>에서 폭력성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다는 것은 확실하다. 인간의 폭력성이 어디에서 오느냐를 묻고 있다. 폴과 알란의 대립을 보면 꼭 자극적인 미디어가 폭력성을 자극하고 윤리를 무디게 만든다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그게 다는 아니다. 부모가 주는 지지, 안정이 그 사람이 자란 환경과 무관하게 폭력성을 조절할 수 있다고 넌지시 말한다. 분노하게 되면 폭력적으로 변하는 일이 자주 있다. 대부분 그 폭력은 자신보다 약자에게 내려간다. 이는 폭력성에도 이성은 있음을 알려준다. 억눌린 감정이나 분노를 아무에게 퍼붓는 것 같은 폭력도 보통 주먹을 휘두르는 자가 두려워하는 존재, 어려워하는 존재에게는 향하지 않는다. 급작스러운 행동처럼 느껴지지만 그 짧은 몇 초 사이에 자신이 물리적으로 분노를 표출해도 되는 사람인지 아닌지 판단할 수 있다. 폴이 아버지 앞에선 꾹 참다가 회사에 가서 게임에 분노를 대신 풀고, 데이비가 가장 상냥하고 자신을 걱정해준 선생님에게 의자를 던지면서 화풀이를 한 것처럼 말이다.


폭력에 이성이 있다면 이성적으로 생각해 폭력을 줄이거나 막는 일도 가능하지 않을까. 알란이 말한 것처럼 학습한다면 충분히 그럴듯한 이야기다. 사람은 생명을 죽이는 것에 본능적으로 거부감을 느낀다고 했다. 그 거부감을 일깨워주거나 학습을 통해 폭력성을 억누르는 법을 배운다면 누군가에게 폭력을 가하기 전에 멈출 것이다.


분노를 참으라는 말은 아니다. 분노 또한 감정의 일종이다. 무작정 막는다면 병들 수밖에 없다. 그러나 분노를 폭력이 아닌 다른 적당한 방법으로 표출해낼 방법은 존재한다. 활동적인 운동, 친구와의 대화, 웃긴 영상 보기, 폐가 되지 않는 공간에서 소리를 지르기. 분노를 사람이나 동물에게 해소한다면 그들도 분노가 쌓이고, 결국 또 누군가에게는 푸는 식으로 악순환이 반복된다. 드라마, 영화, 게임에 나오는 온갖 폭력은 미화에 불과하며 실제 폭력은 어떤 경우에도 옳지 않다는 사실과 폭력적 충동을 건강하게 풀 수 있는 방식을 알려주는 교육이 필요할 때다. 특히 폭력성을 키우고 남을 상처 주는 것에 대한 거부감을 무디게 만드는 미디어를 어느 정도 제재할 필요도 있어 보인다. 연령층이 낮아질수록, 사람은 게임과 현실의 구분을 하기 힘들어하고 비록 현실에서 게임과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음을 알면서도 시도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언뜻 공연을 보면 내용이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 폴, 데이비, 알란이 극 중반까지 큰 접점 없이 독백하듯 공연을 이끌어나가는 것은 묘미라고 넘길 수 있지만, 처음에는 ‘킬롤로지’라는 게임이 세 명의 이야기를 잘 모아주는 것처럼 보이다가, 뒤로 가면 가족의 이야기를 하기 때문이다. 제목과 포스터의 ‘킬롤로지’이고 주요한 광고 문구가 게임의 폭력성과 연결되어있기 때문이다. 데이비가 알란의 상상 속 인물인지, 혹은 동명이인의 운 좋은 소년의 이야기인지도 혼란스러울 수 있다. 그러나 결국 이야기는 하나로 모인다. 포스터 제목에 적힌 문구가 이를 잘 알려준다. 한 학문의 뜻에 대해 적은 문구다. 연극 <킬롤로지>는 이러한 학문이 등장했는지, 실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 고민하기 위한 첫 시작을 제시한다고 볼 수 있다.



[연극열전] 킬롤로지 티저 포스터.jpg
 


살해학

: 살인을 실행할 수 있게 하거나

반대로 살인충동을 억제하는 요소에 관한 연구.






킬롤로지
- Killology -


일자 : 2019.08.31 ~ 2019.11.17

시간
평일 8시
주말 및 공휴일 3시, 6시 30분
월 공연 없음

*
8/31(토), 9/1(일) 6시 30분 공연만 있음
9/12(목) 3시, 6시 30분
9/13(금) 4시

장소 :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2관

티켓가격
R석 55,000원
S석 40,000원

제작
(주)연극열전

관람연령
만 16세 이상

공연시간
125분 (인터미션 : 15분)





[김혜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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