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생긴 일] 내 인생의 주인공이 되려면

글 입력 2019.09.21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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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우리들>은 단언컨대 우리나라의 학교 생태계를 완벽하게 묘사한 작품이다. 은근한 따돌림을 당하는 주인공 '이선'의 모습이 정말 사실적이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탁월하다고 느낀 장면은 바로 첫 장면이다. 피구를 하기 위해 가위바위보로 편을 가르는 아이들 속에서 선은 어쩔 줄 모르고 누군가가 자신을 뽑아주기를 기다린다. 불안함을 드러내지 않으려 애쓰며, 어색한 웃음으로 조마조마하게 가위바위보를 지켜보는 선의 모습이 어릴 적의 나를 보는 것 같아서 괴롭기도 했다.

그래서 이 영화의 코멘트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도 `피구가 이렇게 잔인한 스포츠인 줄 몰랐다` 였다. 초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쉬는 시간만 되면 껍질이 다 벗겨져 노란 스펀지가 드러난 피구공을 들고 신나게 강당으로 달려갔다. 아마도 공과 공간만 있으면 가장 쉽게 할 수 있었던 스포츠였기 때문이리라. 그때만 해도 스마트폰을 매개로 한 10대의 문화가 이렇게까지 발달하지는 않았으니, 선택지가 적기도 했다.

영화에서처럼 체육 시간에 피구 경기만 지켜보아도 그 반의 생태계를 대략 파악할 수 있다. 중학교에서는 교실에서 목소리가 컸던 아이들이 피구 시간에도 공을 잡았다. 굳이 반에서 큰 소리를 내지 않더라도 피구 경기를 포함해 체육을 잘하는 아이들은 반에서도 인정받는 분위기였다. 나는 공을 받았다가도 상대 팀에 공을 뺏기게 될까 봐 그냥 그들에게 공을 넘기는 쪽이었다. 공을 맞는 것보다 공을 뺏겨서 팀에게 얻게 되는 비난이 더욱 두려웠다.

그때 처음으로 내 인생의 주인공이 내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우주의 중심이라 여기고 당당하게 학교생활을 전부 누리고 있는 아이들이 주인공이라고 느꼈다. 동경하는 대상이 있다는 건 활력소가 될 수도 있는 일이지만, 나는 영원히 그런 사람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며 괴로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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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에 들어와 좋아하던 웹툰 작가를 초청해 강연을 기획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스토리텔링에서 주인공을 어떻게 정의하는가였다. 학부 때 심리학을 전공했고, 심리학을 주제로 웹툰을 그리는 작가이다 보니 독자들이 종종 조언을 구하고는 하는데, 많은 이들이 ‘제 인생의 주인공이 제가 아닌 것 같아요’라는 고민을 털어놓는다고 했다. 그리고 작가님은 우리가 이야기에서 주인공을 찾아내는 방법이 무엇일 것 같으냐고 질문을 던지셨다.

일반적인 대답으로는 분량, 외모, 러브라인 등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야기가 아니라 인생이라면 대답이 달라질 수도 있다. 자기 자신이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할 수밖에 없고, 자기 고양 편향(self-serving bias)으로 어느 정도 자신의 외모에 만족할 것임에도 여전히 자기가 주인공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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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무엇이 이야기와 인생의 주인공을 결정하는가? 작가님이 스토리 작법을 통해 찾은 대답은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는 마음’이었다. 주인공은 그 이야기에서 가장 무언가를 원하는 마음이 큰 사람이다. 그 마음은 주인공을 움직이고, 행동에 고스란히 묻어난다. 좋은 이야기도 주인공의 그 마음을 얼마나 설득력 있게 제시하는지에 달려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때 무엇을 원하고 있었을까? 사실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굳이 생각해보면 나도 공부가 아닌 뭔가를 잘해서 눈에 띄고 싶었는데, 다른 친구들을 보고 있으면 의욕이 뚝 떨어졌던 것 같다. 특히 예민한 사춘기에 외모로 괴롭힘을 당하고 나서는 자존감은 낮아질 대로 낮아져 있었다.

원했던 대로 반에서 눈에 띄게 되고, 반장을 했던 때조차도 나는 주인공이 아니라고 느꼈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는 순간조차도 여전히 주인공이 하는 일에 번번이 훼방을 놓는 악역이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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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내가 삶의 주인공이라고 느꼈을 때는 다른 이들이 알아챌 수 있을 정도로 목표를 향해 달렸던 순간이다. 미래를 선명하게 그리고, 무엇이든 내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으리라 믿었기에 나는 주인공이었다. 그렇다고 남들을 의식해 나를 드러내려 한 것은 아니었다.

대학생이 된 지금은 꿈꾼 만큼 선명한 미래는 없지만, 적어도 순간순간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원하는지는 안다. 눈에 띄는 다른 사람의 모습을 무작정 부러워하고, 그러지 못하는 나를 탓하기 전에 그것이 정말 내가 원하는 바와 일치하는가를 생각해본다.

피구를 잘하는 것, 교실에서 큰 소리를 내는 것은 정말 내가 원하는 게 아니었다. <우리들>의 선이처럼, 나는 그저 어려운 관계를 헤쳐나가고 싶은 마음이 가장 컸고, 그것만으로 주인공이 되기에 충분했다. 지금 특별한 뭔가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해서 주인공이 될 수 없는 것이 아니다. 지금의 상태를 바꾸고 싶다는 마음만으로도 주인공이 될 수 있다.




[김채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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