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추석을 혼자 보내는 법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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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을 혼자 보내는 법
서울에서 자취를 한 지 5년이 흘렀다.
민족의 대명절인 추석이 되면 나는 집에서 혼자 연휴를 보내게 된다. 일 때문에 지방에 내려가 있는 아빠와 본가에 있는 엄마, 그리고 곧 군대에 간다는 명목으로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매일 집 밖을 나서는 동생이 있다.
명절을 맞을 때면 가족들에게 전화를 걸어 서로 안부를 묻는 일이 흔하다. 전화를 끊고 나서 생각한다. 모두가 모여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 함께 모여 음식을 만들고 차례를 지내는 것이 전통이니까 따르는 게 어쩌면 당연할 수 있다는 것. 내가 편의점에서 때워야 할 끼니의 수 같은 것들을.
가족들을 보지 못해서 외로운 적은 없었다. 다만 내가 마주해서 외로운 것들은 다른 곳에 있었다. 학생들이 많은 대학가에서 사는 나는 명절이면 텅 빈 가게들을 마주해야 한다. 아침이면 들리던 학생들의 목소리도, 밤이면 학교를 오가는 학생들이 벤치에 앉아 쉬는 모습도 볼 수 없다.
모든 식당이 비어 있고, 친구들은 이곳에 없다. 핸드폰마저 없었더라면 아마 세상과 완전히 단절된 느낌을 받았을 것 같다.
그러니까 내가 발을 딛고 있는 이 세계가 완전히 다른 곳으로 옮겨간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나도 모르는 새에 사람들은 조금씩 떠났을 것이고, 나는 그 흐름을 읽지 못했다.
예고된 명절이었는데도, 언제나 그렇듯 이렇게 될 거란 걸 알았는데도, 자고 일어났는데 모든게 변해있다는 느낌이 든다. 침대에 누워 SNS를 보며 이번에도 정말 남은 사람은 나밖에 없구나, 실감하다가 막상 편의점에 가려고 집을 나서면 또 다시 혼자가 된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힌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통화를 해도 수화기 너머의 거리를 예측할 뿐 거리감은 도무지 좁혀지지 않는다.
그러다 상상한다. 정말로 연휴가 끝이 나도 모든 것들이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으면 어떡하지. 그땐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그건 내가 세상에서 사라지는 걸 상상하는 것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내가 떠난 세게는 언제든 나를 다시 받아줄 거라는 막연한 믿음 같은 게 나에겐 있었던 것 같다. 그건 나의 선택이니까. 다시 돌아오는 게 불가능해도 오롯이 내 책임이 될 것이다.
내가 없어도 사람들의 일상에는 아무런 지장이 가지 않을 것이고, 무엇보다 내가 나의 세계에 필수불가결한 존재냐고 묻는다면 선뜻 대답하기 힘들다. 나는 길을 걷다가도 종종 타자화 된 느낌을 받는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나를 읽을 때 내가 그들 없이는 존재할 수 없을 거라는 느낌이 든 적도 있다.
그 때마다 깨닫는다. 내가 이 세계를 바라보기에 이곳이 존재하는 건 아닌 걸 알기에 나의 세계는 언제든 침범될 수 있고 사라질 수도 있다. 나의 세계는 나 없이도 견고하다.
추석을 혼자 보내는 법은 나를 생각하는 일과 맞닿아 있다. 비어버린 세계와 마주할 기회는 생각보다 쉽게 찾아오지 않는다. 나는 시선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고, 타인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사람이었는데 이제 남은 건 나 뿐이다. 내가 나를 마주보아야 한다. 그런 점이 외로운 것이다.
그 때 발견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주로 나는 도망치는 법에 대해 배운다.
오늘이 아니면 적을 수 없는 문장들을 책임감 없이 적어 내려가는 것, 내가 읽을 수 있는 다른 세계를 찾아 책을 집어 드는 일, 평소라면 보지 않았을 드라마를 보며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 그리고 다른 혼자인 사람들을 찾아나서는 것.
찾아내서 뭘 하냐면, 그냥 바라본다. 가끔은 나 아닌 다른 누군가가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위안을 받을 수 있으니까. 그가 어떤 사람일지는 이해하지 않아도 된다. 그런 이해는 때론 기만처럼 느껴진다. 그러니까 그냥 쳐다보는 것이다. 내가 발견되지는 않아도 된다.
[이정문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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