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유기견 빵식이와의 동거 1년 上 [문화 전반]

너와의 만남, 나의 변화
글 입력 2019.09.14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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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은 빵식이, 성은 가족들과 같이 '태'이다. 나이는 4살 추정, 몸무게는 20kg, 동물병원에 따르면 종은 아마도 삽살개 mix일 것이라고 한다. 아무리 씻겨도 금방 더러워지는 털이 특징이다.

 

 

첫 만남, 첫인상


 

빵식이는 파주시 광탄면에서 길고 얇은 털들이 엉겨 붙어 갑옷을 입은 것만 같은 모습으로 처음 구조되었다. 파주의 한 동물병원으로 급히 보호조치가 이뤄졌고, 짧은 시간 안에 입양이 되었다. 하지만 첫 번째 입양된 집의 사정으로 파양이 되어 다시 동물병원으로 돌아왔다.


두 번째 동물병원 생활은 짧지 않았다. 또다시 누군가의 품을 기다리며 하염없이 병원을 드나드는 사람들의 눈치를 보기만을 며칠, 안락사의 단어가 그 아이와 점점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병원 사람들은 아주 급히 주변 지인들에게 수소문하기 시작했다.


그 당시 우리 가족은 입양할 유기동물을 찾기에 한창이었다. 나는 집에 다시 동물을 들인다는 게 싫었다. 1년 전에 겪은 사랑하는 반려동물과의 이별을 되풀이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동물을 키울 자격이 내게 있는가?' 열등감이라는 탈을 쓴 후회가 잔뜩 뭉쳐 내 몸을 찔러댔다. 게다가 유기동물이라니, 어딘가 아플 것만 같고 오래, 함께하기 어려울 것 같다는 못된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다.


못나고 삐뚤어진 내 마음과는 반대의 날씨, 벚꽃 잎 하롱하롱 눈부시게 질 때쯤, 엄마는 급하게 그 아이를 데려왔다. '당장 내일 죽는다는데 어떻게 그냥 모른 체하냐'며 그 아이를 바라보는 엄마의 눈에는 사랑보다는 짙은 측은함이 드리워 있었다. 그렇게 그 아이와 나는 처음 만났다.


태어나 그렇게 슬픔을 한 아름 품고 있는 눈빛은 처음이었다. 오랜 병원 생활을 증명하듯, 그렇게 깨끗하지도, 더럽지도 않은 털에, 수술로 인해 불편해 보이는 넥카라, 그것보다 더 불편하고 불안해 보이는 그 애의 눈빛은 절대 잊을 수가 없다.


옥상 벤치 밑에 몸을 욱여넣고는 고개를 푹 숙이고 눈동자만 이리저리 굴리던 그 아이, 아마도 다시 버려질 것이라는 체념에 대한 확신 때문이었을까. 그 모습이 가여워 두 팔 벌려 당장이라도 품에 안아버릴 것만 같았던 나는 혹여나 놀랄 그 아이 걱정에 마음을 가다듬었다.


그날은 마음을 억누르며 무릎을 굽혀 '안녕? 사랑해, 잘 부탁해 아가.'를 수능 직전의 수험생처럼 입으로 중얼거리기 바빴다.

 

 

 

그렇게 나는, 너는, 우리는,



그렇게 나는 갑작스러우면서도 천천히, 조용하면서도 소란스럽게 그 아이에게 물들었다. 놀랍도록 무뚝뚝하고 무덤덤하던 그 애에게 서운하길 몇 번, 차차 빵식이라는 존재를 이해하게 되었고, 그 아이 역시 장난기 가득한 나를 천천히 받아주며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가 없으면 이상한 사이가 되었다. 외로운 서울 생활 중간중간 '빵식이 보고싶다!'는 말은 습관이 되었고, 하루의 일과를 마무리하며 침대에 누웠을 때에는 주말에 몰아서 찍어두었던 그 애의 사진을 보는 것을 하루도 빼먹은 날이 없었다.

 

그렇게 그 애는, 주말마다 들리는 내 발소리에 웡!웡! 짖으며 훌라춤 추듯 엉덩이와 꼬리를 흔들며 날 항상 반겨주었다. 보고 싶었다며 전공 서적, 연필 나무 향 가득 묻은 손으로 그 애를 쓰다듬으면, 고생했다는 듯 그 손을 매번 핥아주었다. 그 아이는 내게 조건 없는 쌍방향의 사랑, 그러니까 경제의 원리, 자본주의의 원리, 기브앤테이크 문화에서 탈피한 초월적인 사랑의 경험을 가능케 했다.


이전의 나는 조건 없는 사랑은 꿈만 같은 것, 이루어지지 않기에 그 자체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사랑은 사랑, 현실은 현실. 그 두 개를 분리하기에 급급했다. 그랬던 내게 그 아이는 조건 없는 사랑은 분명 가능함을, 사랑과 현실은 내 일상 속에서 함께 춤추며 어우러질 수 있음을 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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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식이는 지금 기분 최고!

 


그 애를 만나고 난 뒤부터 비로소 버려진 생명을 보는 눈이 뜨이게 되었다. 길거리를 헤매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빵식이가 생각나 이전처럼 모른 체 지나갈 수 없었다. 하지만 우리가 함께 사는 세상은 작은 생명들에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유기견 빵식이와의 동거 1년'의 下

[나의 변화, 세상의 변화]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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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예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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