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함께 나아갈 힘 "캠핑 클럽" [사람]

누구나 불안한 시기는 있다.
글 입력 2019.09.14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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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현재, 미래를 길로 본다면, 길이 잘 닦인 도로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가끔은 구불구불하고, 가끔은 지름길에 또 가끔은 숨 가쁜 산도 보일 것이다. 길이 너무 여러 가지로 뻗어있어 어디로 가야할지 고민할 때도 있을 것이고, 에스컬레이터를 거꾸로 걷듯 아무리 나아가도 그 자리인 듯 보이는 날도 있다. 사방이 평지라 나의 길 외에 다른 사람이 가는 길도 보인다.

저 멀리, 내가 원하던 길로 걸어가는 사람이 보이면 스스로에게 위축되고 괜히 자신감도 떨어진다. 또 언젠가는 걸어온 길을 돌아보다 내가 너무 가시를 세워 누군가를 상처줬다는 사실을 깨닫는 때가 있다. 길이 너무 좁거나 너무 험해서 같이 가던 다른 사람에게 돌이킬 수 없을만큼 화를 냈다는 건 항상 험난한 길을 벗어나야만 알 수 있다. 누구나 이런 길을 걸어봤을 것이다.

아무 것도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괜히 스트레스만 받고 있던 시기가 있었다. 매일 일어나서 뭘 해야지, 생각하다가 시도하지도 않고 내일을 기약했다. 나는 멈춰있는데 다른 사람들은 바람 불 때 돛단배처럼 순항하는 게 부끄럽지만 배가 아팠다. 나와 같이 아무것도 안 하는 친구이더라도 미래를 위해 준비하거나 적어도 지금 이 순간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부럽고 내가 대체 뭘 하고 있는건가 싶어지는 날, 나의 미래에 대해 누군가 물으면 괜히 짜증나고, 스스로도 뭘 해야할지 모르겠어서 답답하던 날 친구들과 술을 마셨다.

당연하게도 다들 미래에 대해 걱정하고, 불안해했다. 지금 가는 길이 내 길이 아닐까봐 겁을 냈고, 지금은 괜찮아졌다 하더라도 가까운 날에 걱정을 했었다. 나쁜 생각일 수도 있지만, 그런 친구들을 보며 괜히 마음이 놓였다. 나만 이 자리에 덩그러니 놓여서 불안해하고 걱정하는 것처럼 느껴졌는데, 모든 부정적인 감정이 보편적으로 느끼는 감성이라는 게. 나는 잘못된 것도 이상한 것도 아니며 남들에게서 처진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보다 정확하게 확인받자 그 뒤로 무엇을 하든 편안해졌다.

나는 나의 시간이 있고, 때가 있고, 기회가 있는 것이다. 달라진 것은 없는데 마음가짐이 조금 바뀌었다. 괜찮을까, 스스로 던진 질문에 어느 날 갑자기 괜찮다는 답을 받았다. ‘캠핑클럽’을 볼 때에도 그때와 비슷한 기분이 들었다. 어떤 안도감, 따스한 위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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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예능 ‘캠핑클럽’은 과거 유명한 아이돌 그룹 중 하나였던 핑클 네 멤버가 캠핑카를 빌려 여행을 가는 이야기를 담았다. 수년 전부터 ‘1박 2일’, ‘꽃보다 할배’ 등 다양한 여행 예능 컨텐츠가 나왔던 대한민국에서 캠핑카를 빌려 한국 곳곳을 돌아다니는 스토리는 그렇게 특이하지 않다. 그러나 ‘1박 2일’이 여행 도중 주어진 미션과 벌칙을 수행하는 것에서 재미를 주었고 ‘꽃보다 할배’에서 노년의 깨우침을 시청자에게 들려주며 흥미를 일으켰다면 ‘캠핑클럽’은 오래된 관계에서의 걱정과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느끼는 불안을 꾸밈없이 알려주는 동시에 편안한 친구 사이에서의 장난과 개그를 작위적이지 않게 보여주면서 시선을 끈다.

‘캠핑 클럽’의 대부분은 친한 친구들끼리 여행갔기에 볼 수 있는 우스꽝스러운 에피소드나 잔잔한 일상 이야기를 드러내다가 가끔은 진지하고, 또 눈물을 흘리며 그들의 이야기를 한다. 나는 예능 프로그램을 보기 전에 이미 모든 이야기를 한 번 봤다. 모든 웃긴 에피소드와 일상, 진지한 이야기를 이미 다 알고 있다. 연예인의 대화이기 이전에 사람의 대화이기 때문이다. 친한 친구와 겨우 시간을 맞춰 긴 여행을 갈 때, 어쩐지 서먹해진 것 같은 친구와 속 깊은 이야기를 할 때, 미래의 불안에 대해 이야기할 때 이효리와 캠핑클럽 멤버가 하던 대화를 이미 모두 말했고, 들었고, 웃었고,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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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띄엄띄엄 본 내가 ‘캠핑클럽’의 팬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우나, 그럼에도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 캠프의 마지막 날, 이효리가 연을 날리며 이렇게 말한다. 이 연이 바람에 날아가면 우리가 공연을 하는 거야. 옥주현은 간절하게 계속 보고 있고, 이효리는 반복해서 계속 날린다. 바람이 잘 불지 않는 곳이라 연이 제대로 날지 못했다. 아무리 계속 띄우고 숨이 찰 정도로 달려도 하늘 높이 날지 않는다.

소설에 나오는 복선처럼 느껴진다. 결국 연은 한 번도 기세등등하게 하늘을 날지 못하고 떨어졌다. 간절하게 바라는 소원이 괜한 장애물을 만나 이루어지지 못할 것 같은 불안감이 TV 화면 넘어서도 느껴진다. 화면 속 이효리는 결국 눈물을 보인다. 간절히 바라지만 미래가 햇빛 아래 바다처럼 환하게 보이는 게 아니라 안개 속의 산처럼 희뿌옇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사정을 다 아는 것도 아니지만, 이효리에게는 그 순간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성유리가 옆에 와 앉는다. 차근차근 위로를 하다 자신의 불안을 꺼내보인다. 주변의 멤버들은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정상을 차지하는데 자신만 핑클에서 아무것도 아닌 것 같다고, 핑클에 누가 될까봐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 다들 걷고 있는데 홀로 멈춘 것만 같은 불안을 겪어본 사람은 누구나 그의 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한 무리에 민폐가 되고 싶지 않은데 자신이 없고 실력은 더더욱 없어보일 때, 스스로가 싫고 속상할 때가 있다. 이효리는 그런 유리의 마음을 헤아리고 위로해준다. 네가 있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마음 속에 숨겨진 말을 모두 꺼낸 둘은 다시 일어날 힘을 얻는다.

소원이 다 이루어지면 그게 인생이겠어. 고작 연따위인데. 그렇다. 고작해야 연이다. 연에 소망을 담았으나 날지 않았다고 해서 미래에 그들의 콘서트가 순항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저 자꾸만 불안해서 어딘가에 기대고 싶은 마음이다. 불안 속에서 이효리는 고작 연따위는 불안을 가중시키지만, 멤버에게 힘을 얻는다. 실제로 옆에 있어주는 것, 미래를 만들어가는 것 역시 핑클 멤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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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산 해수욕장에서 옥주현과 이효리의 대화도 그렇다. 옥주현은 처음 대중적이지 않은 노래로 솔로 활동을 했을 때를 떠올렸다. 왜 너는 이효리처럼 대중적이고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만한 노래를 하지 않느냐는 말을 들었던 옥주현은 한동안 이효리를 질투하기도 하고, 부러워하기도 했다고 고백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정상에 서 있는 이효리에게 많이 감사했다는 말을 했다. 그 모습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이효리 역시 같은 말을 했다. 어느새 뮤지컬 계의 정상에 오른 옥주현을 보면서 질투도 하고 닮고 싶은 생각도 했었다고. 모든 사람은 똑같다. 나는 누군가를 선망하고 누군가는 나를 선망한다. 그게 서로를 향할 수도, 다른 사람을 향할 수도 있지만.

돌이켜볼 때 후회가 남는 이유는 그 당시에 보이지 않던 것이 너무 많이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만큼 지금 이 길에 서있기까지 많은 경험을 했다는 뜻이며, 길이 넓어졌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사람은 모두 불안하고 위태롭다. 그렇지 않아보이는 사람도 언젠가는 그랬고, 그럴 것이다. 그 시기를 견디고 지나보면 아무것도 아닐 수도, 추억이라고 미화하고 넘어갈수도, 한켠의 상처로 남아 결코 들추고 싶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과거는 과거로 끝나지만은 않는다. ‘캠핑 클럽’이 잔잔하게 보여주는 이야기다.

과거에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았던 이진과 이효리는 꼭 친자매처럼 쉼없이 서로를 (사실 일방적으로) 찾는 관계가 된다. 멤버들이 끝없이 괴롭혀 다시는 만나주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던 매니저를 만나 진지하게 사과를 하기도 하며, ‘그때 너희들이 나에게 화풀이를 하지 않으면 풀 곳이 없었다.’며 당시 매니저의 생각을 듣기도 한다. 한때 가장 자주 만나던 멤버는 새롭게 서로에 대해 이해하고 과거의 오해를 풀고, 응어리를 조금을 줄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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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언제나 변화할 수 있으며 무슨 일이든 언젠가는 마주볼 힘이 생긴다는 것은 삶이 우리에게 주는 몇 안 되는 특혜일 것이다. ‘캠핑 클럽’은 그런 특혜를 때로는 웃기게 때로는 감동적으로 보여주고 보는 사람들에게도 힘을 실어준다. 과거가 나의 때가 아니었고 지금이 나의 때가 아니더라도 언젠가 내 시간이 올 거라는 믿음은 ‘캠핑클럽’이 선물한 가장 큰 메세지일 것이다. 아직까지는. 긴 공백기에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즐겁기 위해’ 새로운 도전을 하는 핑클과 그런 핑클을 담은 ‘캠핑 클럽’이 또 어떤 위안을 줄지는 계속해서 기다려봐야할 일이다. 부담이 될 정도로 많이는 아니고, 서운할 정도로 적게도 아니게, 그저 차분하게.


[김혜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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