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소질 있네요? [사람]

눈물겨운 '소질 이야기'
글 입력 2019.09.12 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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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ntro

오랜만에 붓을 잡게 되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태블릿 펜을 잡았다고 하는 표현이 더 맞을 거다.

나는 올해 2월을 끝으로 아트인사이트 15기 에디터 활동을 마쳤다. 대표님은 '작가' 그룹으로 활동할 것을 제안하셨고, 나 또한 계속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3월 즈음이 다가오자 왜인지 그림을 그리는 내가 싫었고, 그냥 다른 세상으로 나아가고 싶었다. 나 자신을 그저 '그림밖에 그릴 줄 모르는 바보'라고 생각해왔으니, 오랜 애증 끝에 결국 그림이 싫어진 셈이다. 나는 작가로 활동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우선 미술과 예술에 애정이 있는지부터 찾고 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에디터 활동을 끝으로 아트인사이트를 떠날 '뻔'했다. (당시 대표님의 진심 어린 설득과 회유로 지금까지 문화예술알리미로 활동을 이어왔다.)

미술을 잠시 잊고자, 나는 저번 1학기 수업을 모두 경영학과 전공으로 채웠다. 경영학부 학위를 마무리하고자 함도 있었지만, 8년째 함께 했던 미술을 잠시 접어두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한 학기 동안 경영학과 관련된 수업만 들으며 '그림을 그리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정말 기뻤고, 경영학과의 수업, 팀플, 심지어 중간고사까지 모든 게 소중하게 느껴졌다. 그리곤 이렇게 생각했다. '아 그래, 미술 따위 잠시 잊어도 되지. 다른 거에 이렇게 흥미를 느끼는데 미술을 꼭 해야 해? 좋아. 취업 준비나 해야겠다'라고.



# 소질이 있네요.



그렇게 미술과 떨어져 살다, 좋은 기회로 한 회사의 마케팅팀 인턴으로 일하게 된다. 회사 SNS에 업로드할 기업 홍보 자료를 제작하는 일을 맡았다. 내 생에 첫 인턴으로서 주어진 프로젝트여서, 깔끔하면서도 가독성 좋고, 예쁜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여러 디자인을 만들어보곤 했다.


그리고 팀장님으로부터 들은 말. "이야, 예연씨. 정말 마음에 들어요. 이쪽으로 소질이 있는 것 같아."


순간 멍했다. 초등학교 때 미술 선생님으로부터 딱 한 번 들었던. '소질이 있다'라는 말.


그 후론 듣고 싶어도 듣지 못했던 말. 어쩌면 나는 열 번의 '성실하다, 부지런하다'라는 말보다, 한 번의 '소질이 있다.'라는 말을 듣고 싶어 했을지도 모른다. 그 어떤 노력과도 바꿀 수 없는 천부적인 능력, 재능에 대한 인정을 바랐던 것이다. 홍보 자료를 예쁘게 만드는 데에 소질이 있다는 것인지, 그냥 가독성 좋게 소개 글을 잘 쓴다는 건지는 모른다. 그냥, 소질이 있다는 말이 반가웠다.


나는 그날 집에 와서 많은 생각을 했다. 내가 정말 소질이 있는 걸까? 괜히 비행기를 태우시는 건 아닐까? 아니, 그보다 소질이라는 건 뭘까?

근데, 그 '소질 있네.'라는 말이 왜 그렇게 듣기가 힘들었을까, 사람들은 나에게 그 한마디 해주는 것이 힘들었을까? 아니면, 내가 정말 그 어떤 것에도 소질이 없었던 것일까? 자꾸 생각하다 보니 세상이 야속하게만 느껴졌다. 별걸 다 의미 부여한다는 친구의 말을 듣고 나서야 더 이상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도대체 어디에 소질이 있다는 건지 알지도 못하면서, 그저 '소질이 있다.'라는 말에 취해 기분 좋게 퇴근을 하고, 정말 우연히 그날 아트인사이트에 들어갔다. 제목만 보고 클릭했던 글에는 어떤 그림이 그려져있었다. 그리고 그 그림은 나에게 인사를 했다. 난 인사 대신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여유롭게 빈 공간을 채워나갔다. 어쩌면 나도 모르게, 다짜고짜 소질이 있다는 말의 대상을 '미술'로 생각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미술이 전보다 좋아진 것은 아니다. 여전히 미술은 어렵고, 여전히 답을 찾을 수 없다. 하지만 그냥 미술을 내 삶의 일부라고 생각하고, 그 일부가 소외감이 들지 않도록 계속 관심을 준다는 정도로만 생각하려 한다. 일부가 전부가 되는 순간, 모든 애정을 쏟아부어야 한다는 생각에 난 또 미술이 싫어질 테니까.

이제 오랫동안 관심을 주지 않았던 그 일부를 다시 천천히 달래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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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소년 - 긴 꿈>을 들으며 그렸다.
미술을 싫어하던 나날들이
그저 길었던 꿈으로 끝났으면 해서.


***
다닌 지 한 달이 조금 넘은 회사로부터, 너무나 오랜만에, 간절히 바랐던 말을 들었다.

"예연씨, 소질 있네요?"




[전예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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