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노잼을 견디는 법 [사람]

나의 일상이 누군가에겐 간절함이다
글 입력 2019.09.08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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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잡코리아
 

 

 

모든 게 재미없어졌다


 


노잼 시기: 무슨 일을 해도 재미가 없고 의욕이 안 생기는 시기


  

최근 누군가가 “어떻게 지내?”라고 물으면, “그냥 그럭저럭 지내”라고 답하곤 했다. ‘그냥 그럭저럭 지낸다’라는 말은 특별한 일 없이 일상을 보내고 있다는 뜻을 대표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적어도 내겐 요즘 정말 재미없게 지내고 있음을 나타내는 하나의 지표였다. 그렇다. 이른바 ‘노잼 시기’가 또 나를 흔들었다.


첫 번째 노잼 시기는 학보사에서 학생 기자로 활동했을 무렵이었다. 그 당시엔 모든 게 노잼일 수밖에 없었던 게, 21살 새로운 모험을 해도 모자랄 나이에 조그마한 사무실에 틀어박혀 밤새 기사를 써야 했다. 내가 기사를 쓰는 건지, 기사가 나를 쓰는 건지 헷갈리던 어느 날 스스로 매너리즘에 빠졌음을, 그리고 그것이 요즘 말로 ‘노잼 시기’라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첫 번째 노잼 시기는 학보사 생활이 끝나자마자 말끔히 지나갔다. 곧 일상엔 새로운 변화가 싹 텄고, 나날이 달라지는 하루가 새롭고 반가웠다. 그런데 지금, 두 번째 노잼 시기가 찾아온 것이다. 과거 기사 쓰는 기계이던 시절과는 다르게 새로운 취미 생활도 시작하고, 영어도 배우고, 번듯하게 일도 하고, 여행 준비도 하고 있었는데 말이다.


이러한 새로운 변화들도 결국, 시간이 지나 일상이 되어 무뎌진 것이다. 인간의 적응력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빠른 것일까. 처음엔 다소 낯설고 신기했던, 때로는 설렜던 일도 언젠가 부턴 귀찮은 일이 되어버리기 일쑤였다. 야심 차게 시작한 취미도, 학원도, 일도 어느 순간 억지로 해야만 하는 하루의 숙제로 남겨졌다.


누군가 억지로 시킨 취미도 아니었을뿐더러 학원 수업 시간이 더 길어진 것도 아니었다. 일 또한 여느 때처럼 주어진 일에 최선만 다하면 되는 것뿐이었다. 그런데, 이 모든 게 버거워진 것은 단지, 초심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마음가짐만 제대로 바꾸면, 나를 철저히 반성시키면 노잼 시기를 극복할 수 있는데 뜻대로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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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일상이 누군가에겐 간절함이다


 

노잼의 늪에서 허덕이다 겨우 빠져나올 수 있었던 계기는, 나를 사소하게 침투했던 병마와 우연히 들른 전시회였다. 얼마 전까지 몸살감기와 인후염으로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냈다. 몸을 제대로 가눌 수 없었고, 밥 먹는 것조차 힘들어 일주일 내내 물밖에 먹지 않았다. 평소 식욕이 많은 편이었기에, 먹고 싶은 음식을 먹지 못한다는 점은 꽤 고역이었다.


약만 먹으며 하루를 버티는 나날이 계속되자, 활기차게 웃고 먹고 싶은 음식을 마음껏 먹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부러웠다. 친구를 만나 웃고, 맛있는 것을 먹는 것은 내게도 지극히 평범한 일상이었는데, 이렇게 쉽게 빼앗길 수가 있구나. 이렇게 생각하니, 내가 괜히 평범할 수 없는 사람인 것만 같아 비참해졌다.


그렇게 우울한 마음으로 평범한 주위를 둘러보다가, 지하철역 자그마한 공간에서 열린 시 전시회를 본 것은 정말 우연이었다. 그곳엔 뒤늦게 한글을 배워 학교를 졸업한 후, 시로 졸업 작품을 전시하는 노인 분들이 계셨다. 수많은 졸업 작품 중 여러 사람의 눈길을 머금은 시 한 편엔 ‘꿈꾸던 학교에 다니게 되던 날 기뻐서 눈물을 흘렸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이 시를 읽는 순간 몹시도 나 자신이 부끄러워진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조금 전 학원 수업에 가기 싫어 짜증을 냈던 스스로에 대한 반성일까. 어쩌면 조금 전까지 잘 먹고 건강한 이들을 부러워했던 나처럼, 누군가 또한 쉽게 배우고 돈을 버는 나의 삶을 무척 원하고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무료하고 버겁다고만 느꼈던 내 일상이, 누군가에겐 간절함이었으리라.


돌이켜보면 나 또한 돈을 벌고 싶어 아등바등 일자리를 찾아다녔고, 형편상 학원에 다닐 수 없어 걱정 없이 사교육에 의존하는 친구들이 부러웠던 적이 있었다. 그뿐일까. 이곳저곳 해외여행 다니는 이들을 보며, 늘 남모를 질투와 동경의 시선을 보낸 시기도 있었다. 이처럼 현재 내 눈 앞에 펼쳐진 무료한 일상들을, 나 또한 간절히 원했었다.


간절함 속엔 소망과 꿈, 애틋함 등 여러 단어가 내포돼 있다. 이를 하나로 표현하자면 그건 바로 ‘소중함’인 것 같다. 지금 흘려보내고 있는 내 일상이 더없이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면, 그래도 과연 노잼 시기에 빠질 수 있을까? 만약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노잼 시기에 힘들다면, 일상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으면 한다.


 

[황채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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