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아버지가 명화가 담겨있는 그림책을 사주신 적이 있다.
나는 자크 루이 다비드를 몰랐지만 ‘마라의 죽음’을 열심히 눈에 담았고, 반 에이크라는 이름은 낯설었지만 그의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을 좋아했다. 아마 영화 같은 구도와 빼어난 색감 속에서 내 나름대로 그림 속 모델들의 이야기를 상상하기를 즐겼던 것 같다.

하지만 미술은 오래도록 어린 날의 관심사 정도로만 남아있었다. 명화를 좋아하고 미술 시간을 즐기는 것과 미술대학을 진학하는 일은 별개라고 생각했기에 미술은 입시가 끝나면 즐길 일종의 ‘취미’로 자리했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괴로움을 마주했을 때는 에곤 쉴레의 ‘꽈리열매가 있는 자화상’이 힘이 되어줬고, 미래의 사랑을 그려보며 클림트의 ‘키스’가 마음을 설레게 했다. 미술관은 내게 언제나 마음이 편해지는 곳이었고 해외 미술관의 소장품 특별전이라도 열리면 시간을 내서 꼭 둘러보곤 했다.

얼마 전, 다시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깨달았다. 하고 싶은 게 없다는 내 말은 사실이 아니었다는 점을. 내가 정말 그림과 전시를 좋아하고 그 일을 업으로 삼을 수 있다는 사실을 서서히 받아들이게 되었다.
2. 애정 가득, 책 <다락방 미술관>
책을 처음 받았을 때 가장 눈길을 사로잡은 건 지은이 소개였다. 간호사로 일을 하던 작가는 ‘그림에 대한 본능적인 이끌림과 사랑’으로 미술 및 예술 전문 기고자가 되었다고 한다. 늦게나마 미술을 하나의 선택지로 삼은 나로서는 너무나 반가운 소개글이었다.
책 <다락방 미술관> 속에는 이미 친숙한 화가들도 있었지만 이름마저 생소한 여성 화가들도 여럿 있었다. 실제로 1985년 미국의 ‘게릴라걸스’라는 여성 예술가 모임의 노력으로 미술사에서 배제된 여성 화가들이 수면 위로 떠오른 바 있다.
그러나 여전히 미술사 전반에 걸쳐 남성 예술가에 대한 평가나 이야기가 지배적이고, 여성 화가들의 이야기는 비화로 여겨지는 경우를 자주 접할 수 있었다.

그 중 ‘화가’ 나혜석의 이야기는 꽤나 인상 깊었다. 미술사 속에서 여성의 비중이 적다면, ‘동양인 여성’의 비중은 정말 사막에서 바늘 찾기다.
신여성이라고 칭해지던 나혜석의 삶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녀의 작품을 살펴보는 건 또 다른 측면의 접근이었다. 그녀가 그린 그녀의 남편과 수원 화성의 화령전은 아름다웠고 피지 못한 나혜석의 재능이 너무도 안타까웠다.

<자화상>은 나혜석이 32세에
파리에서 그린 그림이다.
세상 부러울 것 없이
거침없는 그녀의 자화상이
왜 이토록 우울해 보일까?

뿐만 아니라, 스칼렛 요한슨 주연 영화의 작품으로 유명한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의 화가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이야기도 눈길을 사로잡았다.
북유럽의 모나리자로 불릴 만큼 유명한 그림이지만 이 그림을 그린 작가의 다른 작품을 접한 일이 없었다. 페르메이르의 속 화가의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그가 살아온 인생과 작품에 한 발 더 가까워진 기분이었다.

뒷모습이지만
그의 유일한 자화상이 들어있고,
그가 죽는 날까지 간직한
유일한 작품이다.
‘나 이런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야’라고 말하는 듯,
이 그림은 그의 그림의 결정판이다.
이번 가을, 프레임 속에 담긴 그림에만 집중하는 것도 좋지만 그림을 그린 화가와 모델의 이야기에 관심을 기울여보는 건 어떨까. 책 <다락방 미술관>과 함께라면, 미술에 대한 깊은 애정을 품고 있는 작가와 낯선 옛 시대부터 현대 미술까지 흥미진진한 여행을 떠나볼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