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안녕, 나의 동심 - 안녕, 푸 展

매일 행복할 수는 없지만, 행복을 찾아 나설 수는 있지!
글 입력 2019.09.04 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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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좋아하는 동화, 곰돌이 푸.

거기엔 내가 아주 좋아하는 명대사가 있다.


"매일 행복할 순 없지만, 행복한 일은 매일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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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하게 빛났지만 결코 화려하진 않은.



8월의 마지막 날, 기다리고 기다리던 <안녕, 푸 展>을 보러 소마미술관에 갔다.


가기 전에 내가 한 준비라곤 어린 시절 보았던 만화 곰돌이 푸 이야기를 짧게 요약해놓은 유튜브 동영상을 한 편 본 것과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푸의 명대사 모음을 쭉 훑어보고 간 것이 전부였다. 그 정도만 해도 푸에 대한 작은 기억의 조각들이 맞춰지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 조각들은 스스로 맞춰져 내 속에 동심으로 다시 몽글몽글 피어났다. 그런 설렘을 가지고 보러 간 전시는 산뜻했지만 가볍지 않았고 환했지만 아주 화려하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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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의 흐름은 계속된다



소마미술관은 올림픽 공원에 위치하고 있는데 <안녕, 푸 展>과 아주 잘 어울리는 위치 선정이었음이 분명하다. 주말 낮에 전시를 보러 간다면 보러 가기 전에 그 푸르름에 더욱 설렐 것이고 전시를 보고 난 후엔 동심 가득한 마음으로 잔디 밭에서 뛰노는 아이들을 보며 알 수 없는 벅참을 느낄 것이다.


나는 전시의 내용 외에 전시공간에 대한 관심도 많기 때문에 공간의 변화에 따라 관람객의 감상이 확연히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안다. <안녕, 푸 展>을 보러 갈 예정인 사람이라면 꼭 해가 떠있는 낮에 감상할 것을 추천하며 감상 후에는 발길이 닿는 대로 올림픽 공원 주변을 걸어 보길 권한다. 가벼운 마음으로 볼 수 있는 전시이지만,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동심 가득한 공간 속에서 그 여운을 잠시나마 더 간직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소마미술관의 전시 연출이 인상 깊었던 것은 갑작스러운 동심의 세계를 마주하도록 설계해놓은 전시 장치 덕분이다. 전시관 곳곳에 숨은 공간을 마련해 더 깊숙이 몰입할 수 있도록 도왔다. 어떤 깊숙한 곳을 따라 들어가면 알 수 없는 계단이 나오는데 순전한 호기심에 눈앞에 놓인 계단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뜬금없는 순간에 동심의 세계를 만나게 된다. 계단의 반대편이 또 다른 계단이 아니라 미끄러운 내리막이기 때문이다.


뒤따라오는 관람객이 있어서 차마 뒤돌아가진 못하고 결국 자의반 타의 반으로 내리막을 내려오는데 이때 나도 모르게 함박웃음을 짓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내리막에서 속도를 주체 못하고 결국 뛰어 내려오는 아이 같은 모습과 전시장에서는 조용히 관람 매너를 지켜야 한다는 어른의 모습이 모순되며 상황이 더욱 우스꽝스럽게 느껴진다.


기획자가 의도한 바였든 아니든 전시 공간에 의해 내가 의도하지 않아도 아이 같은 마음으로 감상할 수 있었다는 것에 감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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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러풀한 어린 시절을 마주한 흑백의 지금



이 전시 공간 안에서는 동화 곰돌이 푸의 작가인 알렉산더 밀른과 삽화 작가인 하워드 쉐퍼드의 습작부터, 오리지널 드로잉, 미공개 삽화, 이야기까지 컬러풀한 곰돌이 푸가 아닌 흑백의 곰돌이 푸를 훨씬 많이 만나게 된다.


흔히 곰돌이 푸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빨간 티셔츠를 입은 노란 곰돌이라면, 여기서는 티셔츠 한 장 걸치지 않은 선으로만 완성된 곰돌이 푸의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다. 흑백이나 펜 드로잉과 같은 아날로그의 흔적은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우리에게 더 깊은 울림을 줄 때가 있다. 곰돌이 푸의 경우에도 그렇다.


어린 시절, 색채감 가득한 화면 안의 친구였던 곰돌이 푸를 성인이 되고 난 후에 흑백의 태초 모습으로 마주하게 되는 경험은 나에게는 색다른, 어쩌면 짠한 순간으로 기억되었다. 그 시절이 그립다거나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때라 아쉬운 감정은 아니었다. 현재의 내 모습이 불만족스러워 우울한 기분도 아니었다. 곰돌이 푸와 그의 친구들 그림을 보고 있으면 그런 부수적인 감정들은 사라지고 오로지 푸의 세계에서 일어난 일들만 생각하게 된다.


푸가 피글렛, 이요르, 티거 혹은 로빈에게 느꼈던 감정들, 그 시절 어린 내가 이해할 수 없었던 것들을 하나씩 이해하며 푸는 7살 꼬마보다는 지금의 나와 더 가까웠겠구나 생각했다. 매일 행복할 수는 없지만, 행복한 일은 매일 있다는 푸의 말도 이제는 오롯이 그 뜻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매일 행복할 수는 없지만, 내가 행복한 일을 찾을 때면 반드시 그 행복은 나에게 온다. 어제 불행했다고 느낀다면, 행복을 찾아 나서 보자. <안녕, 푸 展>을 보고 선선한 가을 날씨에 푸릇한 올림픽공원을 찬찬히 거닐 때, 비로소 그 말의 뜻을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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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동화, 곰돌이 푸.

거기엔 누구나 찾을 수 있는 행복이 있다.


"매일 행복할 순 없지만, 행복한 일은 매일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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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요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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