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ROTEA] THE DEVIL15: 선악으로부터의 자유

글 입력 2019.09.03 0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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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필자의 연재물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눈치챘겠지만, 숫자의 상징을 연구하는 수비학은 타로카드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예를 들어 숫자 1은 시작과 탄생으로, 마법사 카드가 이에 해당된다. 숫자 2는 대립과 균형으로 시작은 1에서 나아간 조화의 과정이다. 하지만 상충과 대립, 견제의 의미도 갖고 있다. 여사제가 카드가 이 숫자에 해당한다. 숫자 3은 최초의 완성이다. 이 숫자는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일종의 토대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여왕 카드가 이 숫자에 해당한다. 숫자 4는 통제와 질서를 상징한다. 유구한 제국의 역사를 상징하듯이 왕이 이 숫자에 해당한다.


숫자 5는 변화와 진보다. 유지를 상징하는 숫자 4에서 한 발자국 나아갔기에 불안정하다. 수비학에서 5라는 숫자는 부정적으로 해석하기도 하지만, 종교적으로 오각형 별처럼 완전성과 힘의 상징으로 보기도 한다. n제곱을 했을 때 마지막 숫자가 항상 5로 끝나기 때문에 순환수이기도 하다. 숫자 6은 통합과 결합으로써, 불안정을 해결한 숫자다. 숫자 6은 통합이기에 그 상징은 사랑과 돌봄이다.


이 카드에 해당하는 것이 연인이다. 숫자 7은 조화와 균형으로, 무게중심을 잘 잡는 전차 카드에 연결되며, 숫자 8은 영원과 유지를 의미하며 힘 카드에 대응된다. 숫자 9는 은둔자 카드로, 완성과 끝을 상징한다. 그리고 마침내 다다른 10번 카드는 새로운 시작으로 운명의 수레바퀴에 해당한다. 이 숫자는 끊임없이 반복되며, 수비학을 신봉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생년월일을 계산해 탄생 수로 이승에서 부여된 사명을 찾기도 했다.


수비학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붙인 것은, 이 카드가 가지고 있는 아이러니함을 이야기하기 위해서였다. 중앙에 신적인 존재를 배치하고, 양쪽에 남녀를 세운 카드의 구도는 낯설지 않다. 6번 카드인 연인을 기억하는가? 라파엘은 사랑에 빠진 아담과 이브를 축복한다.  수비학에서 15라는 숫자는 1+5의 합으로 6을 상징한다. <악마> 카드가 <연인> 카드와 같은 숫자 상징을 가지고 있는 결코 우연이 아니다. 6번 카드가 축복받는 순수한 결합이라면, 15번 카드는 축복받지 못한 비이성적인 결합이다.


연인 카드에서도 언급했지만, 선악과를 건네는 뱀처럼 사랑은 결코 달콤하지만은 않다. 사랑은 구속과 집착을 동반하고 현실에서의 대가를 요구한다. 악마는 천사와 달리 육체적이며 물질적이다. 두 남녀가 구속되어 있는 것처럼 욕망은 사람을 노예로 만든다. 악마는 염소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 이는 타로카드의 그림을 맡은 웨이트판의 특성 때문이다. 라이더 웨이트는 19세기 말에 창설된 황금 새벽회에 속해 있었으며, 당시 황금 새벽회는 악마 카드를 염소자리와 카발라의 생명나무에서 티페레트와 호드의 세피라를 연결하는 경로로 배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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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발라는 유대교의 전통을 따른다. 옛 유대인들은 모세 율법에 따라 속죄의 날에 대사제가 두 마리의 염소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알게 모르게 지은 모든 죄를 고백해 전가시킨다. 그 후 귀신들과 악마들이 사는 곳인 유다광야로 끌고 간다. 이런 유대인의 전통에 황금 여명회는 기독교 전설에 등장하는 악마인 바 포맷을 대입시켜 완성한다. 현대인들에게 염소가 악마의 상징이라고 각인된 것은 이러한 전통이 수많은 전통을 통해 반복되었기 때문이다.


악마의 손은 언급한 숫자 5를 상징하며, 이는 악마를 상징한다. 교황과 비슷한 손 모양을 하고 있지만, 그 형태가 미묘하게 다르다. 이는 거짓된 맹세를 상징한다. 뿔 사이에는 완전함과 힘을 상징하는 오각형 별이 거꾸로 되어있다. 횃불은 신의 축복을 상징하지만, 그것을 거꾸로 들고 있다. 아담의 꼬리에는 불이 붙어있다. 다양한 신화에서 전달되듯이, 불은 신이 준 혜택이자 축복이지만 그릇되어 사용되고 있다. 이브의 꼬리도 풍요로움을 상징하는 포도로 그려졌으나, 역시 그릇되어 사용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처럼 욕망에 사로잡힌 인간의 악마적 모습에 경계심을 보이는 카드지만, 이 카드를 단순히 악마라고 해석하는 데에는 큰 무리가 따른다. 필자는 웨이트 판 이전의 타로카드의 '악마'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이 카드에서 그려진 악마는 결코 신적이고 환상적인 무언가가 아니다. 그에 반해 악마에 대한 뚜렷한 이미지가 없었던 16세기에 동물적인 모습을 그린 것은, 본능이 악하다는 당시의 생각이 들어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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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이 카드를 볼 때마다, 죄를 대신 짊어진 염소와 그 아래에 있는 인간의 모습을 떠올린다. 세상에 염소 머리를 한 환상체는 존재하지 않고, 존재한다면 그것은 바로 그 자신일 것이다. 세상을 불교적 관점에서 이해하면, 세상에는 마음으로부터 벗어나 존재하는 것이 없다. 모든 존재는 하나의 연관된 동체로서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불교에서 목표로 추구하는 열반 조차도 이 법칙에서 벗어나서 얻는 것이 아니며, 변화하는 존재 실상을 인식하고 수용하며, 그에 합치되어 살아가는 것이다.


악마가 존재한다면, 그것은 그 자신의 탐진치로 포괄되는 부정적인 마음 상태에 따른 자멸뿐이다. 필자는 이 의견에 동의한다. 사회적 관점에서 정상과 비정상, 선과 악을 규정하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며, 그것을 강제하고 구속하는 것도 어렵다. 바르고 올바른 선택은 사회가 만들어낸 선악의 기준이 아닌, 그 탐진치를 인식하고 경계하여 마침내 제거된 마음의 청정함에서 만들어질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는 선악을 만드는 우리의 마음에서 자유로워야 한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선악에서 자유로워야 한다. 싱클레어가 기독교적 선악 논리에서 자유롭기를 희구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선악으로부터의 자유로움'이란, 선악을 구별하는 것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탐진치에서 자유로워져 올바르게 바라볼 수 있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그러하듯이 선과 악 역시도 고정되어있지 않으며, 서로 대립되어 정의된다는 점에서 상호의존적인 성격을 가질 뿐만 아니라, 마음에서 나온 것이기에 공허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악마> 카드는 청정하지 못한 그 자신을 바라보라는 청정한 마음의 경고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는 절대적인 악이 아니라, 우리의 부정한 마음으로 이고 나간 청정하지 못한 우리의 마음을 대신 지고 나간 자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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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진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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