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본가에 내려왔다 [사람]

글 입력 2019.09.02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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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온 본가. 계절학기가 끝나자마자 가장 하고싶었던 일은 본가에 가는 것이었다. 지난 학기 동안 본가에 가서 제대로 쉬어본 적도 없고, 방학을 하자마자 시작된 계절학기에 쉬지도 않고 달려온 나에게 휴식이 필요하다 생각하여, 계절학기가 종강하자마자 바로 본가로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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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이지 오랜만에 쉬어보는 느낌이다. 사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계절 학기를 하면서 엄청 열심히 뭔가를 한 것도 아니었지만, 혼자서 산다는 것, 그 것이 많이 외로웠다. 하루에 누군가와 이야기하는 경우가 굉장히 적었기에(학교를 가지 않으면 하루 한마디도 안하고 지나가는 일들이 많다) 말이 많고 사람들과 어울려야 하는 나에게는 혼자 계속 뭔가를 안하고 있는 것은 너무 힘든 일이다.

 

아무 것도 안하고 있어도 되는 이 곳, 하지만 나는 이 곳에 와서도 가만히 있지를 못하였다. 맞벌이 부부인 우리 집은, 누가 치워주지 않으면 치우는 사람이 없는 무법지대와 같기에, 엄마 아빠가 휴가를 가신 틈을 타 청소를 하였다. 10년 된 홍초, 그리고 오래된 술, 정말 다양한 것들이 나왔다. 그 것들을 정리하면서 정말이지 우리 집이란 변하지 않구나 싶어서 웃음이 나왔다.


언제와도 변하지 않는 사람들. 그 것이 내가 바라는 것이 아닐까. 어쩌면 본가에 와서 사람들이 휴식을 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변하지 않는 무엇인가가 있기에 사람들은 그 것을 ‘휴식’ ‘편안함’이라고 인식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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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와서 이렇게 아무것도 안 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공부도 안하고 책만 읽고 영화보고 신문 읽고 글만 쓰고 있다. 운동만 하고. 전화영어도 잠깐 쉬면서 그냥 빈둥거리고 있으니까, 오히려 공부를 더 하고 싶어진다. 작은아씨들의 어머니가 딸들에게 일부러 일주일동안 휴식의 주를 주고 나서 그 다음에 딸들이 자연스럽게 공부를 하고 집안일을 하고 싶다고 느끼게 했던 그런 느낌이랄까?

 

이래서 휴식이 필요한가보다. 이래서 잠깐 내려놓음이라는 것이 필요한가보다. ‘버려야 보인다’ 라는 책에서, 잠깐 내려놓고 내가 뭔가를 해야 한다는 것, 다음 시간을 생각하기 보다는 그냥 그 순간을 지키고, 지금까지 하던 모든 규칙들을 버려보라고 그런 말이 나왔다.


어쩌면 나에게 가장 어려운 것, 내가 말하는 규칙 없이 살아보기. 그 말은 한 사람도, 그 것이 어렵고 그렇게 살면 패배자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처음에는 쉽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내려놓으니, 오히려 그 다음 성장은 그동안의 성장과는 다른 느낌이라고 하였다. 맞다. 나에게도 휴식. 그리고 내려놓음이 필요한 때 인 것 같다.

 

난 언제나 쥐고 있는 법만 알았다. 내려 놓음.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규칙을 어길 때면 어김없이 나를 책망하곤 했다. 누구도 나에게 뭐라고 하는 사람 없었다. 나를 미워하는 사람은 오직 나였다. 나를 제외하곤 나에게 이렇게 엄격하고 나를 검열하는 사람은 없다. 나는 그동안 나에게 너무 무심하고 나를 괴롭혔던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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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본가에 와서 잠시 ‘내려놓음’ 그리고 내가 정해놓은 일들을 조금 안하니까 다른 것들이 보이고, 나의 마음이 보이고, 그리고 그 ‘해야 하는’일에 치여서 정작 ‘완성도’를 신경 쓰지 않고, 그냥 완성에만 신경 쓰던 내가보였다.

 

이제는 ‘내려놓음’이 나를 포기하지 않는 것이라는 것을 안다. 오히려, 더 단단해지고, 나를 돌보는 일. 그리고 진정한 ‘완성’을 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는. 그런 휴식의 나날들이다.

 

가족과 산책을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엄마 옷도 골라주고, 엄마 아빠가 키운 채소도 먹으면서 수다를 떠는 이 나날들이 정말 행복하다.

 

하지만, 내려놓음이라는 것은 내가 평소에 들고 있어야 가능하다는 것도 알기에, 이 달콤함을 다시 느끼기 위해서라도 더 열심히 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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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송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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