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다시, 라오스 [사람]

스물아홉, 나의 라오스
글 입력 2019.09.02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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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에서 방영해준 라오스여행기를 보곤, 스물아홉 혼자 떠났던 라오스가 보고 싶었다. 서른 전, 누구나 그러하듯 (물론 그렇지 않은 분들도 당연히 있겠지만) 괜히 하는 일 없이 마음이 심란하고 내 미래에 대한 불안과 일어나지도 않은 일들에 대한 걱정으로 일상 속 방황을 거듭하며 처음으로 혼자 여행을 떠났다.


줄곧 혼자 무언가를 하는 것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을 가지고 있던 터인데 그땐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혼자 떠나는 여행임에도 크게 고민하지 않고 걱정도 잊어버리곤 훌쩍 떠나버렸다. 내가 걸어 다녔던 루앙프라방의 거리와 방비엥의 노포를 보고 있자니, 그때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라 컴퓨터에 저장되어 있을 라오스 사진 폴더를 찾았다.


마침 라오스 사진들로 작업하고 싶은 게 있어 오후 한 시 조금 넘긴 시간부터 사진을 찾기 시작했는데 아무리 찾아도 사진 폴더가 보이질 않는다. 아예 폴더 자체가 없다. 마음이 다급해져 자칭 컴퓨터 전문가인 친구의 도움으로 복구 프로그램까지 넘겨받아 돌려봤지만, 복구는 하나도 되지 않고 괜히 바이러스만 깔린 건 아닌지 얼른 다시 삭제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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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뭐지? 삭제한 적이 없는 것 같은데 라오스의 내 금쪽같은 사진들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너무 황당해서 컴퓨터 책상 의자에 한동안 멍하니 앉아있었다. 너무나 당연하게 잘 보관되어 있을 것 같던 사진이 없어지니 적잖이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으로 홀로 떠나 모든 것을 혼자 행했던 그곳에서의 소중하고 특별한 내 추억들이 순식간에 모두 날아가 버린 것 같은 그 허탈감을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인천공항으로 가서 혼자 발권을 하고 혼자 밥을 먹고 공항 라운지를 이용한 뒤, 라오스행 직항기를 타고 날아가 고작 다섯 시간 비행 후 전혀 다른 세상 속에 속하게 됐던 그 기억들이 이렇게나 생생한데, 나 원 참 세상에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다.


시원한 냉커피 한 사발 들이키고 다시 정신을 차려 어찌 된 영문인지 가만히 생각해본다. 순간, 갤럭시로 갈아탄 뒤 나의 서랍 속에 고이 잠들어있을 아이폰이 떠올랐다. 서랍장을 뒤져 충전기를 꺼내고 아이폰을 연결했다. 제발 있어라, 있어라. 맘속으로 되뇌며 사진 폴더를 열어본다. 오, 있다 있어! 라오스를 여행할 당시 가지고 갔던 아이폰에 그나마 내가 찍었던 사진들 일부가 그대로 고스란히 저장되어 있었다.


하늘이시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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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는 내게 다른 여행지보다도 유독 특별하다. 처음으로 혼자 떠난 나의 첫 여행지였고, 여행을 떠났을 땐 혼자 였지만, 그곳에선 사실 혼자인 적이 거의 없었다. 평생을 기억할 좋은 인연을 많이 알았고, 그때 만큼 나에 대해서 온전하게 생각해봤던 시간은 없었던 것 같다.


그때 당시의 라오스는 지금처럼 인기가 많았던 곳이 아니었다. 엄청 크게 번화한 곳도 없었고 자동화 시스템이 일반화 되어 있지 않아, 보안검사대의 짐의 무게를 재는 방식도 우리나라 대중목욕탕에 있는 큰 체중계가 떡 하니 한자리 차지하여 그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었다.


익숙하지 않은 모습에 어리둥절하며 순간 코웃음이 났다. 그 체중계에 힘겹게 짐을 올리는 친절한 라오스 승무원을 보며 내가 정말 떠나왔다는 실감을 하게 됐으니까. 이곳이 라오스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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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앙프라방을 거쳐 방비엥, 비엔티안을 여행했다. 각각의 매력적인 요소들로 9박 10일간의 내 여행을 가득 채웠다. 루앙프라방에서는 유토피아라는 신선놀음하기 딱 좋은 노천카페를 줄곧 찾았다. 동네가 자그마해서 처음엔 지도를 보고 걸어갔던 그 길도, 다음날에는 쉽게 찾아갈 수 있었다.


이국적인 인테리어와 끝없이 펼쳐진 강을 바라볼 수 있게 놓여있는 의자에 몸을 뉘이면 자연스레 올려다보게 되는 하늘과 마주하게 되며 이곳이 천국이로구나를 비로소 외치게 된다. 곁에는 언제나 늘 시원한 맥주와 음악이 함께한다.


루앙프라방에 있는 동안 나는 이곳을 매일 방문했다. 라오스의 유명한 코끼리 바지, 일명 몸뻬를 멋들어지게 입고 머리 질끈 동여매고 가볍게 읽을 책 하나를 가지고 가면 언제나 그곳은 내게 이국적인 안정감을 선사해 주었다.


걸어 다니며 만났던 사람들도 루앙프라방의 일명 핫플레이스라는 곳을 다니다 보면 자연스레 계속 만나게 되고, 결국 라오비어를 마시며 다 같이 친구가 된다. 잘 통하지도 않는 언어의 벽은 역시 손짓, 발짓, 표정 그거 하나면 충분하다.


밤이면 라오스에서 가장 화려한 야시장이 형형색색 펼쳐진다. 나는 혼자인데 혼자이지 않았고 외롭지 않았다. 그저 이방인으로서 그들과 함께 어울리며 한국에선 생각지도 못했던 내 안의 또 다른 모습의 나를 발견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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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과 강릉을 오가는 1시간 반짜리 고속도로가 뚫리기 전 혹시 대관령의 99 꼬부랑 옛 고개를 아는 사람들이 있을까. 말 그대로 엄청나게 꼬불거리는 도로였는데, 루앙프라방에서 방비엥을 가는 그 길이 딱 그 모습이었다. 우리나라처럼 잘 포장된 길이 아닌 국도처럼 덜커덩거리는 길을 쉼 없이 달렸다. 그 길의 끝에는 만화 드래곤볼의 배경이 된 웅장한 산의 광경이 나를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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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러 그곳에선 드래곤볼 산이 마주 보이는 전망이 아주 좋은 숙소를 얻었다. 베란다 의자에 앉으면 방비엥의 지는 노을과  뜨는 해를 가장 먼저 볼 수 있음 직한 그러한 특별한 공간이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바로 눈앞에 펼쳐지는 파란 하늘과 말도 안 되게 현실성 없는 드래곤볼 산이 나를 내려다본다. 한참을 뒤척이다 늦은 아침을 먹고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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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비엥에서는 어쩌다 여정을 함께 하게 된 언니, 오빠들과 툭툭이를 함께 얻어타고 간 블루라군에서 다이빙도 하고 온종일 수영을 하곤 했다. 한국에선 상상도 못했을 오토바이도 탔다. 식당인 줄 알고 들어갔던 곳은 사실은 그들만의 결혼식장이었고, 얼떨결에 초대된 외국인이 되어 함께 저녁을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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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이들과 함께 어울린 시간도 있었지만, 온전히 혼자인 시간도 많이 가졌다. 숙소 바로 옆, 산이 보이는 노천식당에서 책 하나와 일기장을 가져가 끄적거리며 많은 시간을 보냈다. 마음이 편한 일을 해야 할까, 몸이 편한 일을 해야 할까, 나 스스로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물음을 많이 던졌다.


결론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는 나도 아직 온전히 잘 모르겠더라는 것. 라오스에 와서 나의 색다른 모습을 마주하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새로운 환경에 처한 내가 그 순간들을 즐기고 있다는 것에 적잖이 놀랐다. 여전히 자연을 좋아하고, 음악을 좋아한다는 것, 라오스에서 원 없이 먹었던 쌀국수가 더 좋아졌다는 것, 그리고 한 번 더 마음이 가는 일에 도전하자고 마음먹었었다.


사실, 라오스에 오기 전 가고 싶던 회사에 이력서를 써넣고 떠나왔는데, 그곳에서 면접을 보러오라는 국제전화가 걸려왔다. 방비엥 노천식당에서 한국에서 걸려온 국제전화를 받았을 때의 그 기분이란? 너무 웃기고 신이 났다. 전화를 걸었던 면접관도 국제전화는 요금이 많이 나올 수 있으니 얼른 끊고 서울에서 보자며 다급하게 전화를 끊었다.


한 번 더 도전해 보라는 하늘의 계시라는 생각에 "OK, 한 번 더 GO!" 를 굳건히 외쳤다. 광활한 산과 눈부신 하늘이 나를 내려다보며 여전히 응원하고 있다는 위안을 주는 것 같아 연신 눈물을 훔치곤 했다. 자연 앞에선 왜 그렇게도 감성적이 되는 것인지, 그때의 하늘과 바람, 맥주, 눈부신 은빛 물결을 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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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나의 추억이 많은 라오스인데, 그곳에서의 사진들이 전부 사라졌다 생각하니 순간 무척 슬펐다. 그러다 아이폰에 저장돼 있던 사진들을 봤을 때 진짜 내 아이폰에 어찌나 고맙고 또 고마운지. 전부는 아니더라도 얼마 안 되는 이 사진들이 남아있어서 나는 그저 매우 기쁘다.


근데 또 나머지 날아간 사진들이 어떤 것들이었는지 선명하게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그저 일부라도 남아있는 것에 감사하며 있으면 있는 대로, 잃어버린 건 잃어버린 거지 뭐. 어쩔 수 없다. 그냥 좋았던 것들만 기억하라는 하늘의 계시라고 생각하련다. 그래도 다행인 건 내가 제일 좋아했던 사진들은 그대로여서 멘붕이었던 정신을 그나마 가다듬는다.


혹시나 또 파일이 날아갈까 무서워 즉시 세 군데에 재빠르게 업로드해 놓았다. 마음의 평안을 찾고 내 스물아홉의 아찔한 여름이었던 라오스의 남아있는 사진들을 꺼내어본다. 그 속에 담겨있는 그때의 즐거움을 오랜만에 다시 뒤적이며 흐뭇해하고 있다. 행복했던 내 소소한 추억들.

 

그리고 나는 마음속으로 가만히 속삭인다. 라오스를 다시 가야 할 이유가생겼구나. 으하하. 날아가 버린 나의 라오스 사진들 찾으러올겨울, 떠나자꾸나.

 

있을 때 잘하자.

라오스, 곧 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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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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