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다락방에서 읽는 미술사, "다락방 미술관" [도서]

문하연, <다락방 미술관> 리뷰
글 입력 2019.09.01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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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선한 가을밤, 주황빛 스탠드 아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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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미술은 우리에게 너무 먼 존재 같다. 아마 글로써 설명된 것이 아니라, 보이는 것만으로 작가와 대화해야 하는 것이 어렵게 느껴지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뿐만 아니라 작가마다 다른 표현법, 때로는 무엇을 그린 것인지조차 인지하기 어려운 그림들, 복잡한 용어로 명명된 사조들은 더욱더 미술관과 우리의 거리를 벌리기도 한다.

<다락방 미술관>은 그런 미술관을 다락방으로 끌고 온다. 작고 소박한 공간, 사람의 온기가 느껴지는 다락방으로.

의도한 건 아니지만, 나는 주황빛 조명을 켜두고 침대에 앉아 포근한 이불을 덮고 이 책을 읽었다. 조성된 분위기 탓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꼭 할머니의 옛날얘기를 듣는 것처럼 이 책을 읽었다. 우리에게 익숙한 화가들의 인간적인 면모들을 봤고, 새롭게 알게 된 화가들의 이야기에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었다.

‘예술가’라는 영역은 일반적인 것과는 조금 다른 차원인 것 같아 나와는 다른 사람들이라 선을 긋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우리가 그들과 만나는 것은 인간 대 인간으로서가 아니라 이미 인정받은 대작과 관람객으로 만날 가능성이 월등히 높다.

그래서였는지 그들의 ‘삶’보다도 작품 자체만을 바라보게 되고, 그러다 보니 늘 그 작품에 대한 다양한 해석들이 머리로는 이해가 됐지만, 마음으로 와닿지는 않았다. <다락방 미술관>은 이러한 작가들과 나의 간격을 좁혀준다. 그들의 삶과 생각의 흐름을 쉽게 풀어주는 탓에 그들이 어째서 그러한 그림을 그릴 수밖에 없었는지 납득하게 된다.

작가들의 인간적인 면모를 마주하다 보면, 그림뿐만 아니라 삶에 관한 생각들도 얻게 된다. 무언가를 ‘표현’한다는 것은 안에서 그 무언가가 끓어 넘쳐야만 밖으로 내보일 수 있는 것이다. 스스로 치열하게 고민하지 않은 것을 재료로 새로운 무언가를 창작해내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술로써 무언가를 표현하는 이들은 그만큼 자아에 대한, 혹은 세상에 대한 고민을 치열하게 거쳤을 것이다. 그래서 책을 읽다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구절들을 발견하기도 하고, 내가 갖고 있던 고민의 해답을 얻기도 하며, 때로는 위로를 받기도 했다.

결국, 작품의 영역이 됐든 삶의 영역이 됐든 <다락방 미술관>은 우리와 27명의 사람을 마주하게 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 만남에 빠르게 몰입하게 된다. 그중 인상 깊었던 두 명의 이야기를 공유해보고자 한다.



01. 파블로 루이즈 피카소, 도전적인 큐비즘과 이유 있는 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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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시 사람들은 내가 <아비뇽의 여인들>을 그릴 때 잘못 짚었다고들 했지만, 어쨌든 나는 사람들이 내가 뭔가 짚기는 짚었다는 사실을 알도록 만들었다. 나는 나중에 사람들이 내가 잘못 짚은 것이 아니었단 사실을 인정하리라 확신했다.”



피카소의 대표작인 <아비뇽의 여인들>은 초기 큐비즘 작품이다. 르네상스 시대에 원근법이 도입되면서 서양화에서 원근법은 주류를 차지해왔다. 그러나 ‘세잔’이 등장하면서 실제와 똑같이 그리는 것보다 주관적인 표현이 더 중요해지기 시작한다. 이에 피카소는 원근법을 무시하고 여러 초점을 한 화면에 구성하는 큐비즘을 시작한다. <아비뇽의 여인들>은 이 파격적인 표현 양식의 초기 작품이었으니 주위의 반응이 상당했을 것이다. 이에 피카소는 자신만의 뚜렷한 생각으로 이유 있는 확신을 가졌고, 이 확신은 실제가 되었다.

이러한 피카소의 이야기로써 <아비뇽의 여인들>이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 작품인지, 그리고 큐비즘이란 어떤 것인지에 대해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지식들은 부수적인 것이었고, 나는 그의 자신 있게 던진 두 문장이 뇌리에 박혔다. ‘지금은 손가락질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나중엔 그 손가락질이 잘못되었다는 걸 인정하게 될 것이니까.’ 많은 이들이 훗날에는 스스로 틀렸다는 것을, 그리고 피카소가 옳았다는 것을 인정하게 될 것이라는 확신은 분명 이를 뒷받침하는 어떠한 존재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의 분야에서 치열하게 연마하고 고민한 사람, 그랬기 때문에 피카소는 거침없이 자신의 생각을 표현했다. 이러한 그의 작은 이야기는 보편적인 삶의 맥락에서도 큰 울림을 준다.



02. 수잔 발라동, 네 맘대로 살아도 아무 일 없다


그 시절 예술계는 남성들의 것과도 같았다. 여성 작가는 많지 않았고, 그들에게 용인되는 범위 또한 좁았기 때문이다. <다락방 미술관>에서는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빛났던 여성 작가들 또한 소개한다.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나혜석 등.

수잔 발라동은 남성을 누드모델로 세운 최초의 여성 작가였다. <아담과 이브>는 여성과 남성의 누드화로 어린 모델인 위테르와 사랑에 빠진 그녀가 위테르의 얼굴을 한 아담과 자신의 얼굴을 한 이브를 그린 작품이다. 또한 이 책에 실린 작품 중 <푸른 방>은 속옷 차림을 한 여성이 담배를 물고 누워있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성적 요소가 부각되거나 연약한 모습이 아니라, 수잔 발라동의 자유로움 그 자체를 담고 있다. 당시에는 남성 작가가 압도적으로 많았을 테니 그들이 그리는 여성은 그들의 시각을 투과해 완성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 속에서 수잔 발라동이 여성을, 혹은 자신을 바라보는 그 자체를 그린 <푸른 방>은 묵묵하지만 강인한 힘을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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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에도 <다락방 미술관>을 읽으며 25명의 인생을 함께 따라갈 수 있었다. 그 속에서 어렵지 않게 상식의 폭을 넓힐 수 있고, 또 삶의 지혜 또한 얻을 수 있었다. 날씨가 점점 선선해지면서 가을밤에 벌레가 울기 시작하면 이유 없이 책을 읽고 싶어진다. 그런 가을밤에 추천하고 싶은, 그런 책이다.


[김윤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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