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클래식도 이제는 내 입맛에 맞게, "2019 청소년을 위한 클래식 사용법 콘서트"

클래식은 길고 지루하다? 이제는 다시 생각해 보자
글 입력 2019.08.31 0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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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청소년을 위한 클래식 사용법 콘서트>, 꼭 청소년이 아니어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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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결 시원해진 지난주 주말,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은 평소보다도 더 북적였다. 평소와는 달리 어린이 손님들로 관객석이 채워졌기 때문이다. 이렇게 활기찬 분위기 속에서 <2019 청소년을 위한 클래식 사용법 콘서트>는 막을 올렸다.


키가 작아 무대가 잘 보이지 않는 관객들은 어린이용 방석을 하나씩 들고 바삐 관객석으로 향했다. 그 사이에서 엄마와 단 둘이 입장하기가 좀 민망해 성인들끼리 찾아온 관객들을 찾아보기도 했지만 오랜만에 느껴보는 분위기에 즐거워 하며 나도 자리에 앉았다.


칭얼대던 아이들도 암전 속에서 무대 위에 조명이 켜지자 약속한 듯이 조용해지고 안내 해설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해설가 분께서 연주가 시작되기 전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간단한 음악회 예절을 설명해 주셨는데, 사실 나조차도 정확히 몰랐던 것이었다. ‘박수는 지휘자가 지휘봉을 내려놓고 인사할 때마다 치는 것’, 이제야 확실히 알게 됐다.


 


1장: 동물들의 축제가 무대 위에



클래식은 본래 엄격한 법칙 하에서 정교하게 작곡된 음악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대를 뛰어넘어 모범적이고 아름다운 음악의 전형으로 수백 년 동안 연주되고 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아무나 작곡할 수 없고 아무나 연주할 수 없는 음악이기도 하다. 게다가 오래 전의 클래식 음악이란 형식뿐만 아니라 주제까지도 고상해야 했다.


그래서인지 생상스는 <동물의 사육제>가 유머러스하고 풍자적이라는 이유로 살아생전 정식으로 이 곡을 발표하지 않았다. 하지만 생상스 사후 그의 대표작이 된 이 곡은 오늘날에는 우리가 클래식 음악에 한결 편안하게 다가설 수 있는 가교 역할을 해 주고 있다.


그리고 이번 공연에서도 <동물의 사육제>가 나섰다. 클래식 음악의 특권 의식은 사라진 지 오래지만, 여전히 남아 있는 간극을 메우기 위해서 말이다. 이번 공연을 위해 조직된 봄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는 나레이터 이수민의 친절한 설명, 그리고 지휘자 안두현과 함께 동물들이 벌이는 축제의 현장을 그대로 옮겨 주었다.


<동물의 사육제>는 14악장으로 이루어진 관현악곡이다. 악장마다 사자와 닭, 당나귀, 거북이, 코끼리, 캥거루, 물고기와 새들, 백조들을 묘사하고 있으며 인간으로 변장한 당나귀와 화석, 피아니스트까지도 등장한다. 개중 음악회가 끝나도 계속 내 머릿속을 맴돌았던 3곡을 함께 감상해 보려 한다.



▶ 제 5곡: 코끼리





먼저 제 5곡 ‘코끼리’는 본래 더블베이스가 연주하는 곡이지만 이번 연주회에서는 콘트라베이스가 연주했다. 이 곡은 베를리오즈의 오페라 <파우스트의 천벌> 중 ‘바람 요정의 춤’을 인용한 것으로, 낮고 묵직하지만 사육제에 걸맞는 경쾌한 느낌을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 느리고 여유로운 빠르기로 코끼리의 육중한 움직임을 그려냈다.



▶ 제 7곡: 수족관





제 7곡 ‘수족관’은 유려한 현악기 소리가 하늘하늘한 수초와 물고기들을 떠오르게 하는 곡이다. 특히 실로폰의 소리가 물속처럼 신비롭고 투명한 느낌을 더해 주며 곡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이끌어 준다. 하지만 물속의 세계는 어린 물고기들에게는 위험한 곳이기 때문에 평화롭기보다는 어딘지 모르게 불안하고 위태로운 느낌을 주기도 한다.



▶ 제 14곡: 피날레





제 14곡 ‘피날레’는 동물의 사육제를 화려하게 마무리 짓는 듯 힘차다. 마지막 곡답게 거의 모든 악기들이 등장하며, 앞서 연주되었던 ‘캥거루’, ‘긴 귀를 가진 인물’ 등 친숙한 소리들이 모여 활기찬 피날레를 장식한다. 마지막이지만 아쉬움보다는 즐거움이 가득한 소리로 우리를 배웅하는, 그야말로 피날레에 어울리는 곡이다.




2장: 일상 속에서 클래식 사용하기



이제는 본격적으로 공연 제목에 걸맞게 클래식의 ‘사용법’에 대해 소개할 차례다. 나웅준 나레이터는 2장에서 6곡의 소품곡들을 각각 하루 일과에 대입해 어떤 상황에 들으면 좋을지 추천해 주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좋았던 세 가지 곡을 소개하겠다.



▶ 그리그 - 페르귄트 모음곡 중 '아침의 기분'





먼저 그리그의 페르귄트 모음곡 중 ‘아침의 기분’은 제목처럼 아침의 평화로운 분위기를 담은 곡이다. 그리그는 헨릭 입센의 소설 <페르귄트>의 음악을 의뢰받아 이 곡을 작곡했는데, 그는 주인공 페르귄트가 푹 자고 일어나서 맞이하는 늦은 아침을 표현했다. 이 곡을 들으며 잠에서 깨어난다면 아무런 걱정 없이 하루를 새롭게 시작할 수 있을 것만 같다.



▶ 요한 슈트라우스 2세 - 천둥과 번개 폴카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천둥과 번개 폴카>는 멍하니 있다가 들으면 화들짝 놀라 정신을 차리게 될 것 같은 곡이다. 아침 시간 화장실 변기에 앉아 들으면 장을 빨리 비울 수 있는 곡이라는 익살스러운 설명에 관객들은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그도 그럴 것이, 활기차고 씩씩한 이 곡을 듣다 보면 볼일을 수월히 볼 수 있는 건 둘째 치고 소음 차단 효과까지도 톡톡히 볼 듯 싶다.



▶ 홀스트 - 성 바울 모음곡 중 <Dargason>





홀스트의 성 바울 모음곡 중 <Dargason>은 처음 나오는 8마디의 주제를 다른 현악기들이 한 번씩 따라하며 연주한다. 그렇기 때문에 아침의 바쁜 출근길, 등굣길에 버스를 타면 창밖으로 휙휙 지나가는 풍경과 함께 감상하기 딱이다. 그리고 같은 멜로디가 반복되기 때문에 뭔가에 집중할 때 들어도 좋을 듯하다.


*


1장과 2장이 막을 내리고 두 곡의 앵콜곡을 끝으로 <2019 청소년을 위한 클래식 사용법 콘서트>는 끝이 났다. 평소 클래식 음악을 즐기지 않는 터라 1시간 30분의 러닝타임이 혹여나 길게 느껴지면 어쩌나, 전날 늦게 잠든 탓에 공연 중에 졸면 어쩌나 싶었지만 전부 쓸모없는 걱정이었다. 오히려 1시간 30분이 짧게 느껴질 정도로 푹 빠져들었다.


마지막으로 나웅준 나레이터는 클래식 음악을 즐기려면 무엇부터 들어야 하냐는 물음에 대한 답으로 “짧은 것부터 들으세요.”를 내놓았다. 평소 클래식이라 함은 한없이 길고 지루할 줄로만 알았는데, 그냥 마음에 드는 짧은 곡부터 들으라는 말에 순간 멍해졌다.


듣다가 지루하면 건너뛰어도 되고, 내가 좋아하는 부분만 반복해서 들어도 되는데도 지금까지 클래식 음악을 탓했던 건 나였던 것 같아 괜스레 미안해졌다. 미안한 마음을 만회하기 위해서라도 앞으로 클래식 음악과 친해져야 할 듯 싶다.



[유수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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