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와 모델] 손상원

글 입력 2019.08.31 00:18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작년 여름, 이맘때 쯤 했었다. 그런데 기록을 남기지 않아서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오랜만에 만났다. 부산에 사는 친구니까 보기 힘드니까.


"자기소개 해주시죠."

"엇, 작년엔 이런 거 없었는데? 음.. 음.. 취미로 음악을 하고 있는 대학생 입니다."

을지로 힙지로에 갔다. 세상에 회사 근처가 힙하다고는 했지만, 이렇게까지나 힙힙힙힙힙할 줄은 몰랐다. 간판도 보이지 않는 '나만 아는 아지트'이고 싶지만 남들도 아는 카페에 가서 자리에 앉았다. 노란 조명이어서 색은 잘 안보이지만, 그나마 폰으로 플래시 켜서 그림을 그렸다.

"이런 취급 오랜만이야."


자연스럽게 적당한 자세를 취하고, 나는 대화하면서 그림을 그렸다.


"어떤 취급인데?"

"인격으로 안 대하고 모델 취급 하는 거. 전에 취미로 동아리할 때, 그때 스테이지 오르기 전 무대 화장 받을 때 같아. 여자애 두 명이서 어떻게 화장할 지 브러쉬 들고 고민하면서 나를 봤었거든."



손상원1_1.jpg
 


그리는데 신기했다. 작년에 그릴 때도 분명히 초록색이었는데, 이번에도 초록색이었다. 청록색이다. 짙은 청록색. 색깔은 안 변하는 구나. 잘 어울리는 것 같아. 줄무늬 옷을 입어서 줄무늬도 같이 그려주었다. 이목구비 흐린 느낌도, 짙은 청록색의 느낌도 여전히 똑같았다. 여기 카페 분위기가 어우러져 오른쪽 위에 불그스름한 채도 낮은 색도 칠했다. 노란 조명과 버건디 색의 벽의 공간, 청록색의 흐린 사람이었다.

"1년 전보다 그림이 밝아진 것 같은데?"

작년이 기억나지 않았는데, 그림 그리면서 근황 얘기를 하다보니까 작년에 대화했던 내용들이 조금씩 생각났다. 취미로 음악하는 내용에 대해서도 말했었고, 창작품을 공개하는 데 어려운 것과 재능에 대한 고민들을 얘기해었고, 나는 내 경험담 -어떻게 그림을 그리게 되었는지, 내 감각을 믿게 되는 과정- 등을 열변을 토하며 말했던 게 생각이 났다.

"왜 그렇게 겁이 나?"

"아는 사람 중에 노래하는 사람이 있는데, 계속 노력하거든. 정말 열심히 해. 그런데 주위 사람들은 안타까워서 그 사람 노래가 별로라는 이야기를 못하는 거야. 내가 그렇게 될까봐 두려워."

"정말 슬프네...걱정마. 나한테 들려주면 난 단호박으로 돌직구로 별로면 별로다 라고 말해줄게."



손상원2.jpg
 


"이번 그림은 어때?"

"약한 것 같아 / 약할 것 같아"

"weak 야 drug야?"

"약하다고만 생각했는데 듣고 보니 둘 다 같아."

"이런 얘기 해도 돼? 누나 그림을 보면 에곤 쉴레가 생각나. 처음보자 그 생각이 났어. 기분 안나쁘려나."

"아니! 너무 행복한걸. 내가 제일 좋아하는 화가가 에곤쉴레니까."

"왜 좋아?"

"미친 거 같아. 감각에. 감각의 끝에 서 있는 느낌이야. 보통 기승전결이 있는데, 에곤쉴레 그림은 전에서 끝나. 마치 클라이막스에 서있는 것처럼. 그래서 좋아해. 그림 그릴 때 언제까지 그리고 언제 손을 떼야하는지 그 부분을 미친듯한 감각으로 알고 있거든. 드로잉은 잘못하면 그리다 만 걸로 보일 수 있거나 혹은 너무 지저분해질 수가 있어서 멈추는 시점을 잘 정해야해. 근데 에곤쉴레는 그게 정말 미친 부분이야."


"난 존레논을 좋아해."

"이번에 전시봤어?"

"당연하지. 존레논의 음악은 단순한데 식상하지않아. 하마터면 질릴 뻔한 노래를 남들이 안쓰는 코드 한두개로 신선하게 바꿔버려. 노래를 그렇게 만들기가 진짜 힘든데. 남들이 잘 안쓰는 코드로 만들어. 자기 색이 있지. 그게 바로 천재성이 아닐까? 폴은 모범생 같은데, 존레논은 직관적이고 감각적이야. 들으면 알 거야"

"나는 존레논과 오노 요코가 부럽더라. 나도 이들처럼 내 평생의 뮤즈를 갖고 그리고 싶어. 역사적인 화가들 보면 그렇잖아. 나도 그럴 거야. 나를 알아봐준다면 나는 평생 사랑할 거야."



손상원001_자름.jpg
 


작년 여름 동네 카페에서 그렸을 때. 작년도 지금도 엄청 초록색인 친구이다.

"넌 초록색이야. 음 비온 후의 깊은 숲속 느낌. 그 짙은 초록색이야. 이해하기 어려우려나. 아니면 음, 우리가 걸어왔던 길 있지. 그때의 날씨였어. 여름밤에 시원하게 부는 바람 같아."

"여름이라서 그런거 아냐?"

"아냐. 다른 계절이었어도 난 너를 여름밤같다고 했을 거야."



손상원002_자름_2.jpg
 

(아토피가 있는 팔이라고 얘기했었는데, 내용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






[최지은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 : 경기 자 60044   |   E-Mail : artinsight@naver.com
발행인/기사배열책임자 : 박형주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형주
Copyright ⓒ 2013-2019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트(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