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영화 속 '나쁜 놈'을 응원하게 되는 이유 [문화 전반]

당연히 악당인 건 알지만...
글 입력 2019.08.30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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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자리를 꿰찬 악역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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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너의 모든 것(YOU>


요즘 즐겨보는 드라마가 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물인 <너의 모든 것>인데, 혹시 미약한 스포일러도 원치 않는다면 다음 문단으로 건너뛰자. 이 드라마의 남주인공은 여주인공에게 첫눈에 반해 그녀의 SNS 계정을 털고 주소까지 알아내 일거수일투족을 좇는 스토커다. 그리고 그녀의 남자친구까지 죽이며 결국 여주인공과 사귀는 데 성공하는, 드라마의 주인공이자 메인 빌런인 셈이다.


흔히 악역이라 함은 선한 주인공을 돋보이게 만드는 조연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지만 앞서 언급한 <너의 모든 것>처럼 악역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미디어물도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영화 <오션스> 시리즈와 <캐치 미 이프 유 캔>, 애니메이션 <데스 노트> 등이 그렇다. 이 미디어물 속 주인공들은 각각 도둑질, 사기, 심지어는 살인까지 저지르는 명실상부한 악당들이다.


그러나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이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 우리가 누구의 편에 서 있었는가에 대한 문제다. 우리들은 주인공이 나쁜 인물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들이 위기에 처하면 마음을 졸이면서 응원한다. 그리고 그들이 겨우내 위기로부터 벗어나 계속 나쁜 짓(!)을 이어가는 모습을 즐겁게 감상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악당들을 응원하게 되는 것일까?




우리가 '나쁜 놈'들을 응원하게 되는 이유



먼저 프로이트나 라캉과 같은 정신분석학자들의 이론을 따른다면 무의식 속에 갖가지 욕망과 환상을 품고 사는 우리가 악역에게 감정을 이입한다는 식으로 설명할 수 있을 듯싶다. 다만 이러한 식의 설명은 큰 공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힘들고 납득하기도 어려우니 거창하게 말고 쉽게 생각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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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오션스 8>,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훔치기 위해 모인 도둑들



영화나 드라마 속 악역들의 일탈은 현실 속에서는 찾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가진 것 하나 없이 사기로 떼부자가 된다거나, 은행을 턴다던가 하는 것들 말이다. 이러한 행동들은 현실 세계 속에서는 여러 가지 제약을 받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뒷일을 생각하지 않고 일탈을 행하는 주인공들, 혹은 치밀하게 세운 계획을 착착 진행해 나가는 주인공들을 보고 일종의 쾌감을 느낀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오히려 너무 비현실적인 행동이기 때문에 흥미를 갖게 된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비교적 가벼운 일탈을 엔터테인먼트 요소와 한껏 섞어 유쾌하게 풀어낸 영화라면 마음 편히 웃을 수 있지만 살인처럼 심각한 범죄라면 그럴 수 없다는 소리다. 이 경우 장르도 코미디보다는 스릴러가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악한 주인공을 응원하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의 악행을 거부감 없이 접할 수 있는 곳은 영화나 드라마뿐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행동은 비현실적일 뿐만 아니라 ‘현실에 있어서는 안 될’ 것들이다. 그리고 우리는 영화나 드라마 속 악역들의 나쁜 행동은 배우의 연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기에 마음 편히 시청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색다른 흥미를 찾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악역이 주인공이 된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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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캐치 미 이프 유 캔>, 거짓말로 모든 것을 얻은 주인공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가장 결정적인 것은 그 영화나 드라마가 악역의 시점으로 진행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주인공이 악하든 선하든 간에 그의 상황에 몰입하고 영화 속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영화에서 주인공의 내면과 전후사정에 대해 깊이 있게 다루면 주인공에게 아주 조금이라도 공감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곧 주인공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코드가 숨어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결국 감독이 주인공을 어떻게 바라보며 프레임에 담는가가 가장 중요하다. 감독의 시선이 곧 주인공의 시선이고,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그걸 따라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서 자칫 잘못하면 큰 논란으로 이어지기 쉬울 테니, 아무리 보는 이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 있다고 해도 영화 제작자라면 항상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게 당연하다.


*


그리고 우리 또한 모든 영화를 마냥 즐겁게 소비할 수도 있겠지만 동시에 내가 지금 어떤 시선으로 영화를 바라보고 있는지, 혹은 영화 속에서는 어떤 시선으로 사건들을 비추고 있는지를 항상 신경 쓸 필요가 있다. 단순히 재미가 있었는지 없었는지만을 평가하기에는 영상 매체의 속내가 너무 복잡하니까 말이다.



[유수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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