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이래서, 클래식 - 청소년을 위한 클래식 사용법 콘서트

글 입력 2019.08.30 03:14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지난 겨울 임현정 피아노 리사이틀을 기점으로 클래식에 관심이 생겼다. 하지만 클래식의 세계는 너무 깊고 어려워서 일상에서 쉽게 접하기 힘들었다. 흔한 대중가요처럼 버스를 타고 어디론가 향할 때 듣기엔 부담스럽고 잠들기 전 블루투스 스피커로 틀기엔 오던 잠도 모조리 깨버릴 것 같았다. 클래식을 들을 때는 경건한 마음을 가지고 집중해서 한음한음 들어야 하며 그 곡에 얽힌 역사와 비하인드 스토리까지 공부해야 할 것 같은 부담감이 있었다. 그런데 문화초대로 <2019 청소년을 위한 클래식 사용법 콘서트>가 찾아왔다. 절호의 기회였다.


e6a68cd9b35104f31d3e053366cc56a6_3pEhLdUHMMk.jpg
 

8월 24일 토요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이번 공연은 엄마 손을, 아빠 손을 잡고 자리에 앉은 아이들로 가득했다. 좌석을 한번 훑고는 어쩌면 소음이 있을 수도 있겠다 예상했다. 하지만 그것은 오로지 내 편견이었다. 아이들은 어른보다 더 철저히 관람 예절을 지켰고 그런 생각을 한 나를 부끄럽게 했다. 음악은 만국 공통이라고들 하잖나. 그건 아이들에게도 마찬가지였나보다. 나이가 몇이든, 먹은 공깃밥이 몇 개든 좋은 음악은 각자만의 울림으로 다가간다. 한 곡이 끝날 때마다 열화와 같은 박수를 보내는 아이들을 보며 내가 너무 그들을 얕잡아 보았던 건 아닌지 생각했다.


오케스트라의 엄숙한 분위기는 1부 내레이션을 맡은 바이올리니스트 이수민의 부연설명으로 풀어졌다. 구연동화에 가까운 톤과 어투로 생상스의 <동물의 사육제>를 설명했다. 그는 사자왕의 생일을 축하하듯 머리에 고깔모자를 쓰고 비눗방울을 불며 무대를 돌아다녔다. 클래식 공연과 고깔모자라.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조합에 당황하기도 잠시, 피아니스트와 지휘자도 반짝이는 고깔을 뒤집어쓴 걸 보며 웃었다. 클래식 공연의 격식을 최대한 벗어나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기획했구나 싶은 대목이었다. 클래식이 딱딱하게 느껴지지 않았으니 아이들뿐만 아니라 성인 관람객인 내게도 친근하게 다가왔다. 이 밖에도 플룻 연주자가 무대 위를 휘젓기도 했다. 기존의 엄숙한 클래식 공연의 룰을 벗어 던진 것이다.


이처럼 공연은 대중 친화적으로 기획되었다. 작곡가가 누구고 이 용어가 뭐고 단조가 뭐고. 그런 복잡한 것은 한쪽으로 밀어두었다. 대신, 아침에 일어날 때, 잠들기 전에, 심지어 화장실에서 듣기 좋은 클래식까지 추천해준다. 해설을 맡은 트럼페터 나웅준의 능숙한 유머까지 곁들이며.


변환_안두현.jpg
 


지휘자 안두현은 열정적으로 이 공간을 진두지휘했다. 그는 해설자의 요구도 흔쾌히 승낙해주었다. 사전에 계획된 요구였겠지만 관객들을 위해 주요 부분을 미리 연주해주는 정성이 사뭇 감사했다. 함께 연주하는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표정도 무척 행복해 보였다. 연주하는 이가 저리 즐기는데 그 연주 앞에서 관객은 얼마나 행복하겠는가.


1부 생상스 <동물의 사육제>는 내레이션과 함께 들으니 더욱 흥미로웠다. 커다란 전광판에 각 주제에 맞는 동물 이름이 띄어지고 눈을 감고 연주를 들으며 그 동물을 상상했다. 공연 프리뷰를 쓸 때, 분석하지 않고 음악을 감상하기로 마음먹었으니 어떤 것도 의식하지 않고 그저 상상만 했다. 자유로운 사육제 기간에 구속을 벗어던지고 축제를 즐기는 동물들이 머릿속으로 그려졌다. 내 상상 속에선 사자왕의 축제에 거북이는 아주 느릿하게 걸어오고 수족관의 물고기들은 분주히 돌아다니며 축제를 만끽했다. 가장 좋았던 부분은 <백조>였다. 수면 아래 버둥거리는 발을 감추고 고고한 자태를 뽐내는 백조 한 마리가 내 머릿속을 유영했다. 그 자태가 참으로 고독해서 <백조>의 선율이 그토록 아련히 들린 건지 싶다.


좋았다. 그말이 내가 느낀 감정들을 모두 대체할 수 없단 걸 알지만 그게 가장 직관적인 감흥이었다. 정말 좋았다. 눈을 감고 활에 몸을 맡긴 바이올리니스트의 움직임도, 피아니스트의 매혹적인 손놀림도, 첼리스트의 묵직한 활도, 온몸으로 음악을 휘두르는 지휘자의 몸짓도. 그들에게서 흘러나온 선율이 황홀했다. 눈을 감았더니 새벽 해가 떠올랐고 천둥, 번개가 내다 꽂혔다. 사람들이 이래서 클래식을 듣는 걸까. 이렇게나 매력적이여서 클래식 연주회에 가는 걸까. 오케스트라의 생생한 악기소리와 지휘자의 땀방울까지 마음을 울리지 않는 게 없었다.


특히 2부의 마지막 곡, 차이콥스키의 <현을 위한 세레나데> 1악장을 들을 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곡을 시작하는 바이올린 활조차 낭만적이었다. 해설자가 이 곡을 소개하면서 잠들기 전에 들으라며 추천했지만, 이 곡을 듣다간 결코 잠들 수 없을 것 같다. 이 선율을 들으며 어떻게 잠들란 말인가. 눈을 감으면 분명 깊은 밤의 무드에 취해 베갯잇을 적실 것 같다. 이 곡의 마지막에 가서는 제목마저 다르게 느껴졌다. 현을 위한 세레나데. 마치 '현'이라는 사람을 위한 밤의 사랑곡이라고 멋대로 해석하고 싶었다. 그 이야기를 옆 친구에게 했더니 그는 또 다른 방식으로 제목을 해석했다. 현악기를 위한 곡을 만들었다는 것부터 낭만적이라고. 이 곡은 낭만 그 자체라며.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공연이 끝나고 찾아본 <현을 위한 세레나데>의 정보에서는 이 곡이 차이콥스키의 곡 중 가장 밝고 아름답다고 한다. 밝다는 것이 얼마나 주관적인 감정인지. 내겐 더없이 애절하고 절절하게 다가온 곡이 사실 개중에 가장 밝은 곡이었다니. 아 모르겠다. 나는 내 멋대로 해석하련다. 그래도 어쩌면 내 감상이 틀린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차이콥스키는 이 곡을 작곡하면서 “가슴에서 우러난 감정을 담아 만든 작품이다.”라고 했다. 그가 어떤 마음이었든 간에 이 곡에 흐르는 건 분명 '사랑'일 것이다.


앵콜곡으로 해설을 하던 나웅준이 트럼펫을 들고나와 <넬라 판타지아>를 연주했다. 원래 본업이 트럼페터라는 걸 알리듯 감상에 젖은 얼굴이었다. 그가 들어가고 다시 박수가 쏟아졌고 그 소리에 지휘자가 등장했다. 다시금 각자의 악기를 손에 쥔 단원들은 마지막 앵콜곡을 연주했고 그날 그 순간의 벅차오른 기분은 아마 오랫동안 각인되어 잊지 못할 거다.

클래식은 어렵고 딱딱한 경직된 음악이 아니다. 몇백 년이 지나도 생생히 살아 움직이는 선율의 파동이고 세밀한 감정의 승화다. 단지 모르기에 막연하고 낯설 뿐. 그저 듣고 느끼면 그것으로 클래식을 즐긴 게 아닐까.




[장재이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이름
비밀번호
자동등록방지
50831
 
 
 
 

등록번호 : 경기, 아52475   |   E-Mail : artinsight@naver.com
발행인/기사배열책임자 : 박형주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형주
Copyright ⓒ 2013-2020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트(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