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나에 대한 탐구, 우리에 대한 탐구 : '서울프린지페스티벌2019'

1인 창작자들의 작업 그리고 집단적 경험을 의미화하는 작업
글 입력 2019.08.26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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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프린지페스티벌2019는 '예술적 일탈을 상상하다! 예술아지트:프린지'를 주제로 8월 15일부터 24일까지 10일간 문화비축기지에서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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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6로 올라가는 길)


  

솔직한, 그래서 더 와닿는 1인 창작극의 힘



무엇이 연극인지, 어떤 연극이 좋은 연극인지 잘 모르겠다. 그러나 프린지에서 얻은 한 가지 답이 있다면, 사람이 자기 안에 있는 무언가를 꺼내 그것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과정 안에 예술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이때의 정직함은 다른 누구에 대한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솔직하게 탐구하고 관찰해내려는 노력에 있다. 그 탐구의 결과물이 일말의 진실을 담고 있다면, 그 어떤 화려한 장치나 멋진 기술 없이도 사람들이 공감하는 이야기가 될 수 있고, 예술이 될 수 있다.



- 이한솔, <아기라는 생명체>


1인 아티스트 이한솔은 아기와 함께 무대에 섰다. 연극 <아기라는 생명체>는 과거에는 모두가 아기였다는 사실을 망각한 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탄생할 적부터 '어른'인 로봇의 속성에 빗대어 표현한다. 그는 '아기라는 생명체'가 로봇처럼 차갑게 굳어져 있는 자신에게로 와 손잡아주던 순간, 사랑과 생명의 온기를 되찾았다고 말한다. 그것은 로봇과 정체 모를 생명체 간의 관계, '엄마'라는 이름을 지워낸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다.

아기와 자신의 관계를 탐구한 결과물로서의 이 연극은 아기를 돌보는 일에 대해, 그것이 가져올 수 있는 어려움이나 고단함에 관해 이야기할 것이라는 예상을 뒤집는다. 극 중 '이한솔'이자 로봇 '단테'로 분한 그에게 아기는 돌봄의 대상이 아니었다. 오히려 아기는 그를 돌보아주는 힘의 원천이었고, 항상 곁에서 응원해주는 든든한 존재였다.

이야기의 군데군데에는 완전하지 않은 부분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저 자연스럽게 열려 있는 틈으로 다가왔다. 이 연극이 허구인 동시에 창작자의 삶을 통과해온 것임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삶을 아름답게 꾸며내려고 하지 않았다. 비유의 뒷면이 훤히 비치도록 내버려 둔 채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담았다.


작품이 가진 힘은 이 솔직함에서 비롯되었다. 삶이 흔들리는 순간을 긍정하는 태도에서 이 이야기가 탄생한 것이라 생각한다. 아기라는 생명체가 갑작스레 찾아왔을 때 들었던 양가적인 감정. 유산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과, 그 마음을 결코 긍정할 수 없었기에 생긴 혼란, 그리고 죄책감. 그때의 마음은 극 중에서 아기가 떠나간 뒤 홀로 남은 '단테'의 길고 긴 울음으로 표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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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은 T6 건물 입구 쪽 복도에서 진행됐다. 옆에는 전시 공간이 조성돼 있어 공연 중간중간에도 객석 뒤편으로 사람들이 지나다녔다. 연극은 장소가 가진 특성을 걸림돌로 삼지 않는다. 다양한 변수들을 명쾌하고 단순한 장치를 활용해 해결해나간다.


장과 장 사이를 구분하는, 장막 혹은 암전이 수행해야 할 역할을 관객의 눈 감는 행위가 대신하는 식이다. 장소의 특성이 공연의 방해물이 되느냐, 독특하고 즐거운 또 하나의 관람 요소가 되느냐는 전적으로 창작자의 태도에 달려 있었다.



- 매머드머메이드, <겉돌며 맴도는 회전으로서>


밤 9시, T5에 위치한 작은 방에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공간을 꽉 채운 관객들 앞에서, 1인 극단 '매머드머메이드'의 김은한은 연극에 대해 말하기 시작한다. 그는 극장에 찾아온 관객들이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극장 밖을 나서길 바라는 연극의 오만함을 비웃는다. 그 비웃음은 연극을 만들어 선보이기를 반복해온 창작자 자신에게도 향해 있다.


이후 그가 늘어놓는 괴담, 헨리 제임스의 <나사의 회전>을 살짝 변형한 괴담은 어딘가 불완전하다. 중간중간 연극이 가진 구조가 붕괴될 듯한 감각을 내포한다. 그러나 그것은 그가 앞서 언급한 연극 작업에 대한 회의에서 비롯된, 의도된 불균형이고, 그는 ‘겉돌며 맴도는 회전으로서’의 연극을 이어간다.


그는 "정해진 시간만큼의 삶을 그럴듯하게 살아내는 것이 연극"이라 말하며, 그런 연극 만들기를 거부한다. 그러니까 그럴듯한 연기로 가짜의 삶을 보여주는 대신에 그냥 한 시간을 잘 견뎌내면, 이런저런 시답지 않은 이야기로 그 시간을 때우면 그만이라고, 그렇게 창작자의 그럴듯하지 않은 이야기를 듣다가 약속된 시간이 끝나면 관객들은 이 방을 나서며 '별 반 개짜리' 연극이라 떠들면 되는 거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런 연극을 올리면서도 창작자는 어떤 기대를 품는다. 자신의 작업이 도리어 ‘별 반 개 짜리’라는 새로운 기준을 만들기를, 기존에 없던 새로운 무언가가 되기를 바라고 만다. 연극의 오만함에 대한 회의로 힘을 쭉 빼고, 시간을 때울 뿐인 연극을 만들면서도 관객의 평가를 생각할 수밖에 없는 예술가의 숙명, 계속해서 의미 있는 무언가를 만들어내고자 하는 마음을 이야기한다.


그는 메타 연극적 요소를 넘어 부조리극의 중심 주제로까지 나아간다. 연극을 하며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주는 무력감, 존재에 대한 회의는 "패배한 하루"라는 말로 내뱉어진다. 그리고 그 어딘가에 보편의 감정이 자리한다. 때로는 괴기하고 이질적이던 그의 절망과 우울은 어느 지점에 다다르면서 관객의 공감을 이끌어낸다.


더 이상 그냥 '일반' 관객이 아닌, 좋은 평가를 내리고 자기에게 새로운 일을 가져다줄 '유용한' 관객을 원하게 되었다는 그의 솔직함 앞에 관객은 어느새 자기 안에 있던 또 다른 모순과 마주한다.




집단적 경험의 의미화: 파편화된 조각들 그러모으기


어떤 작품들은 하나의 키워드를 중심으로 많은 사람의 이야기를 엮어내 새로운 의미화를 시도했다. 각각 따로 존재할 때는 개인의 사적인 문제였던 것들이 공유되고, 한 데 모이면서 하나의 현상이 되고 공적 논의의 대상이 된다. 이러한 창작 방식은 그것을 만들어가는 과정에 있어서도 큰 의미를 갖는다. 작품에 참여하고, 관람한 많은 이들에게 자신의 것을 말하고, 되돌아볼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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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2 앞에 세워진 깃발들)


- 프로젝트그룹 원다원, <남의 연애>


여성 아티스트들로 이루어진 '프로젝트그룹 원다원'은 여성 서사를 무대화하는 창작 집단이다. 제2회 페미니즘 연극제 참가작이기도 했던 <남의 연애>는 여성 45인의 인터뷰 자료를 바탕으로 가스라이팅, 데이트 폭력의 문제를 말한다.


연극은 제삼자의 입장에 선다. 이동형 공연이라는 형식 속에서 무대의 배경이 자연스럽게 변화하고, 그에 따라 말하는 주체가 대변하는 상황도 조금씩 달라진다. 그러나 제삼자의 자리에서 바라보는 문제의 단면과 문제의 핵심이 되는 지점 사이에 큰 벽이 존재해 연극이 해당 문제로부터 과도하게 안전거리를 유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뷰를 바탕으로 한 구술 자료 또한 개개인의 이야기가 갖는 깊이, 그를 통한 문제의식의 심화와는 유리된 채 표면적 이야기로만 소비돼 힘을 갖지 못한다. 배우는 그 이야기들을 잇는 역할을 할 뿐 한 걸음 더 나아가려 하지 않는다.


기억에 남는 것은 어느 시기에 내 연애가 '남의 연애'가 될 때, 가스라이팅에서, 그 관계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생긴다는 어느 여성의 말이었다.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깨달은 무언가가 발화될 때, 그 이야기는 분명 의미가 있다. 다만 이 연극은 그 이야기들을 재의미화하여 어떤 문제를 제기하는 것으로까지는 나아가지 않은 듯하다.


 

- 프로젝트 오늘내일, <미'안'의 존재>


참가작 중에서는 유일하게 본 전시였다. 불안을 다룬다는 점, 1인 입장이 원칙이라는 점 등이 신기해서 예약을 했다.


전시 공간은 T5에 위치한 화장실이었다. 들어서자마자 어두컴컴한 내부에서 뿌연 연기 같은 것이 느껴졌다. 답답한 공기가 이어졌고, 출처 모를 소리가 중첩되어 들려 왔다. 영상이 재생되는 화장실 칸 뒤편에 위치한 다른 칸에는 관람자를 등진 채 변기에 앉아 있는 마네킹이 있었다. 그 자체로 관람객에게 불안을 가져다주는 공간 구성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전시의 주제를 표현하기 위해 조성된 것들이 주는 불안감 때문에 전시를 제대로 관람하지 못했다. 탁한 공기는 집중을 방해했고, 혼자 있음에도 무언가가 나를 공격할지 모른다는 불안이 글자를 잘 읽어내지 못하게 만들었다.


문과 벽, 영상이 재생되는 화장실 칸 곳곳에는 불안에 관련된 많은 사람의 메모가 붙어 있었다. 그 이야기들은 공감이 되기도 했지만, 서로 공유하는 키워드가 불안 이외에는 없다는 점에서 새롭지 않았다. 나에게는 그 이야기들이 각각의 파편화된 조각들 자체로만 다가왔다.


전시 공간은 불안에 관한 감정과 상황들을 경계 없이 담아낸다. <미'안'의 존재>는 불안에 대한 각기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하나둘씩 모아서 만든, 폭넓은 범위에서 이루어진 공동 창작의 결과물이었다. 마지막으로, 관람한 사람의 이야기가 더해져 전시는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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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질 무렵, 계단에서 본 문화비축기지)


서울프린지페스티벌2019는 올해의 주제를 잘 구현해냈다. '예술적 일탈'이라는 측면에서 다양하고 새로운 주제의 이야기를 독특한 형식 속에서 만날 수 있었고, '예술 아지트'라는 독립된 공간은 그 경험의 특별함을 배가 시켜 주었다.


다수의 아티스트들이 여러 해에 걸쳐 프린지에서 공연을 이어가고 있다. 내년에 열릴 프린지페스티벌에서 같은 아티스트의 다른 작업물을 감상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올해의 프린지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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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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