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예술생존을 위한 지속적인 노력, 2019 서울 프린지 페스티벌

2019 서울 프린지 페스티벌, 21번째 이야기
글 입력 2019.08.24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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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린지 페스티벌이란?

프린지(Fringe)는 주변부라는 뜻이다.

때는 1947년, 스코틀랜드의 에든버러 국제페스티벌이 처음 열렸을 때 초청받지 못한 작은 단체들은 축제의 주변부에서 무허가 공연을 하였다. 초청받지 못한 예술가들의 자유롭고 참신한 공연은 관객과 언론의 주목을 끌었고 해가 거듭할수록 주변부에서 자발적으로 참가하는 예술 단체들이 늘어났다. 이에 따라 ‘프린지 페스티벌’은 ‘에든버러 국제페스티벌’의 핵심 행사가 되었다.

이로부터 유래된 서울프린지 페스티벌은 1998년에 처음 개최되어 연극, 무용, 음악, 퍼포먼스, 미술, 사진, 영상 등 다양한 분야에 애정을 갖는 아티스트들이 참여해왔고 올해는 무려 22번째이다. 본질부터 자유로운 프린지 페스티벌은 심사나 선정이 없는 자유참가의 원칙에 따라 운영된다.



1. 올해의 주제 : 예술아지트, 문화비축기지


프린지페스티벌은 마을, 크루즈, 여행 등 매년 축제의 주제를 정해 기획하고 진행되어왔다. 올해의 주제는 예술 아지트이다. 그동안 프린지 페스티벌은 홍대 일대, 서울월드컵경기장 일대에서 열렸다. 올해는 문화 비축기지에서 새롭게 시작했다.

문화 비축기지는 197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석유를 비축하던 곳이었다.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석유를 비축했던 공간이 문화를 비축하는 공간이 되었다는 것은 문화가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되는 필수 자원이라는 뜻도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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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스러운 아지트 느낌이 나는 문화비축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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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프린지 페스티벌


문화 비축기지는 월드컵 경기장을 마주 보고 있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크고 넓었다. 초입에 위치한 프린지라고 적힌 간판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난 후 티켓 부스에서 프레스라고 적힌 목걸이를 받아 목에 걸었다. 이어서 프로그램북과 포스터를 받았다. 설렘을 안고 문화 비축기지 안의 카페에서 프로그램 일정을 확인하기로 했다.




2. 지속 가능한 예술생태계 구성을 위한 노력



프로그램북을펼치니, 「프린지 예술가 증명」 이라는 페이지가 나왔다.


 

「프린지 예술가 증명」 


서울프린지페스티벌에 참여한 예술가로서

나는 내가 축제에 이룬 성과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나눌 것입니다.

나는 ‘나’의 예술이 존중받아야 하듯,

또 다른 ‘나’의 예술로 존중할 것입니다.

나는 동료 예술가들이 겪는 삶의 고통과 죽음을

외면하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연대나 협력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폭력에 반대할 것입니다.

나는 지속가능한 예술생태계를 구성하는

‘우리’중 하나임을 약속합니다.



프린지 페스티벌의 목적이 보였다. 한 줄 한 줄의 문장들은, 위와 같은 약속은 예술가들이 삶의 고통과 죽음을 겪고 있다는 것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프린지 페스티벌이 지속 가능한 예술생태계를 구성하기 위해 21해 동안 노력해왔음을 인식하며 오늘 날짜의 공연 시간과 장소를 확인했다.




3. 자유참가 공연




*

지구옆동네 '춘향뎐'


내가 다녀온 요일은 금요일, 16일이었다. 사전예약이 필요한 ‘프로젝트 오늘내일 – 미안의 존재’를 부스에 가서 나와 동행은 각각 6시 20분, 6시 40분으로 예약하고 문화비축기지의 맵도 익힐 겸 한 바퀴 둘러보기로 했다. 여기저기둘러보며 걷고 있는데 어디선가 꽹과리 소리와 타령하는 소리가 들렸다.


해가 쨍쨍한 여름의 나무에 크라는 실외의 공간에서 배우들이 춤을 추고 있었다. 바닥에 깔려 있는 방석 위에 앉아서 관람하기로 했다. 판소리를 잘 몰랐다. 아르바이트하던 곳이 고궁 근처라 가끔 판소리 비스름한 소리를 들을 수 있었지만, 커피를 제조하던 나에겐 현대 음악이 데 힘이 되었다. 그만큼 익숙하지 않은 것을 받아들일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춘향뎐을 약간의 현대식으로 바꾸어 한 공연이었다. 춘향과 몽룡은 하얀 천 하나를 사이에 두고 랩 배틀을 겨루었다. 배우들의 대사에 맞춰 북소리가 탁하고 울려 퍼지는 것도 듣기 좋았지만 기억에 남는 장면은 춘향이 쑥대머리에 맞춰서 독무를 추던 순간이다.


쑥 대머리가 크게 울려 퍼지는 순간, 주위의 모든 공기가 멈춘 듯했다. 어느 개그 코너에서 한쪽으로 머리카락을 쏠리며 쑥~대머리 하며 웃기던 기억은 이제 옥에 갇혀 임을 그리워하는 춘향의 구슬픈 몸짓으로 기억될 터였다. 아름다운 음악과 아름다운 몸짓은 관객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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랩 배틀을 겨루는 몽룡과 춘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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쑥대머리에 맞춰 독무를 추는 춘향


보려고 계획했던 프로그램이 아니지만, 첫 공연으로 춘향뎐을 보고 여기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공연의 시간과 장소를 보고 이동했다. 장소를 찾아가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부스에서 받은 프로그램북 맨 앞 장에 있는 지도뿐만 아니라 자원봉사자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어 조금이라도 헤매는 눈치 면 먼저 다가와 도움이 필요하냐 물었다.



**

극단 우아 '변신'


공연시간 보다 조금 일찍 도착해 앉아 있었다. 대학로 소극장에서 보는 공연은 커튼 뒤에 있는 배우들이 어떤 모습으로 공연의 시작을 기다리고 있는지 알 수 없었지만, 문화비축기지의 <T5>라는 공간은 외부에  탁 트인 공간이었다.


내 앞에는 배우들이 무표정한 얼굴로 각자의 위치에 앉아 가만히 공연의 시작을 기다렸고 그 뒤에는 인위적으로 꾸며진 세트장이 아닌 오랜 세월 바람에 깎인 듯한 바위들이 있었다. 배우들을 가만히 관찰했다. 나처럼 평범한 사람들 같았다. 그렇지만 나는 편안히 그들이 연기하는 공연을 기다리는 입장, 그들은 긴장감이 섞인 공기 속에서 대본을 보고 공연을 준비하는 입장, 대본으로 얼굴을 가리고 그 뒤에서 얼굴과 입을 푸는 자기 몫의 책임을 갖는 입장이었다.


공연이 시작되었다. 원작은 카프카의 <변신>이다. 소설의 1막은 벌레가 된 그레고르를 발견하기까지 가족들과 그레고르의 관계를 언어로, 공존과 소외의 경계를 보이는 2막은 이미지 극으로 작품은 구성되었고, 공연을 시작하기 전에 앞서 이것은 관객에게 공지되었다.


<T5>의 공간에 있는 동안은 배우들이 대본을 손에 들고 공연을 진행했다. 손에 든 글을 낭독하는 것이었지만 인물마다 배우들의 목소리 톤과 표정이 달라졌다. 그레고르가 벌레가 되는 장면에서는 배우 3명이 각각 벌레의 머리, 배, 다리를 연기했고 점차 이야기 속 상황에 몰입되었다. 1막이 끝나고 <T3>의 공간으로 이동했다.


<T3>은 탱크 안이었다. 탱크라는 공간의 크기와 울림은 배우들의 몸을 더 자유롭게 했고 목소리를 통제했다. 탱크의 가운데 관객의 좌석이 있었다. 좌석을 가운데에 두고 배우들은 좌석의 앞쪽에서 뒤쪽에서 연기했고 관객들은 그들이 이끄는 대로 고개를 움직였다.


배우들의 목소리는 집중을 조금이라도 흩트리면 울림 속에 갈피를 못 잡을 수 있기 때문에 그들은 아까의 공간보다 한 음절씩 또박또박 띄어서 발음했다. 자유로움과 섬세함 속에서 연기가 이어졌다. 그들의 연기는 섬세했다. 그레고르의 역할을 맡은 세 남자 배우는 손가락의 움직임 하나 하나하나 합을 맞춘 듯한 몸이 되어 벌레를 연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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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5>의 공간에서 공연 전 대기하는
'극단 우아' 배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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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3>에서 공연하는 '극단 우아' 배우들



이 날 본 공연 중 극단 우아의 변신 공연이 가장 인상 깊었다. 벌레로 변한다면 어떨까, 난 모기가 싫다. 여름을 좋아하는 나에게 딱 하나 싫은 게 있다면 모기다. 겁이 많아서 내 손으로 모기를 태워 죽이는 게 싫어 그런 일쯤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아빠에게 전기 파리채를 넘긴다. 내 피를 빨아먹으려 다가왔다가 죽을 걸 알면서도 순간의 유혹에 참지 못하고 다가오는 모기가 미련하고 싫었다.


어느 날은 모기가 너무 싫어서 싫어하기에 납득할 만한 과학적 이유를 찾으려 포털사이트에 검색했던 적이 있다. 내가 원하는 답은 유혹에 약한 미련한 모기.였는데, 수컷은 흡혈을 하지 않고 암컷은 알을 낳아야 하기 때문에 흡혈을 한다는 마음에 안 드는 답을 얻었다. 암컷 모기의 흡혈 이유가 생명을 위해서라는 것이었다. 마음껏 싫어하지도 못하는 이유였다.


아 어쩌지. 언제나 내가 만약에~라고 운을 떼면 곰곰이 고민하고 정성스러운 답을 내주는 친구에게 만약에 내가 모기가 되면 어떻게 할 거냐고 물었다. 절대로 그렇게 될 리 없으니 물은 거였다. 변신을 보고 난 후라면 난 절대 가볍게 내뱉지 않았을 것이다. 친구는 투명한 유리병 안에 나를 넣어주고, 피도 구해주겠다고 했다. 나는 생각지도 못한 대답에 놀랐다.


카프카의 변신에서 가족들은 처음에는 벌레로 변한 그레고르에게 밥도 챙겨 주고, 그레고르의 방도 들여다보지만 결국은 그 끔찍한 외양에 두 손을 든다. 그렇게 단절되어가고 가족에게 무시당하는 그레고르는 죽음을 택한다. 인간은 환경과 상황에 아주 취약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나니, 내가 사랑받고 사랑을 줄 수 있을 때는 모두 내가 정상의 범주 안에 들을 때인 것을 알고 나니 도태되지 않도록 부단히 노력해야 하는 이 세상이 무서워졌다.



***

프로젝트 오늘내일 '미안의 존재'



우리는 삶 속에서 크고 작은 불안들을 마주합니다. 겹겹이 쌓인 불안들 속에서 하루하루가 지나갑니다. 오늘, 여기, 지금, 당신의 불안은 어때요?



1회 1인 입장, 15분으로 제한으로 사전예약이 필요했다. 일찌감치 예약을 마치고 약속한 시간에 맞춰 장소를 찾아갔다. 검은 천막으로 가려져 안은 보이지 않고, 아티스트 분께서는 내 귀에 오디오 가이드를 꽂아 주셨다. 간략한 전시 소개와 사진촬영 금지, 시간제한에 대해 안내를 듣고 안으로 들어갔다.


전체적으로 어두웠고 시야에 방해가 없을 정도로 빨간 조명을 켜 놓은 화장실이었다. 내가 들어왔던 문에는 불안하고 휘청거리는 메시지들이 흰 마카로 가득 쓰여 있었고, 칸막이 하나에는 사람이 살 수 없는 공기에서 나 혼자 숨 쉬고 싶다는 영상이 빔프로젝터로 인해 띄워져 있었다.


부모님, 미래, 돈, 건강, 대인관계… 그중에서도 나를 가장 불안하게 했던 말은 ‘이상과 현실의 간극이 늘 남들보다 컸다는 것’ 저 문구를 보자 내가 기대하고 잠을 설치던 날 뒤에 항상 그렇진 않았지만 대게 그 보다 못한 혹은 전혀 다른 악랄한 일들이 날 덮친 것에 대해 머릿속에서 꼬리에 꼬리를 문 올챙이 같은 것들이 줄을 이어 꼬물댔다.


그 외에도 내가 쫓던 것들이 의미를 잃어버릴까 봐, 남자친구와 헤어질까 봐, 업무 중 실수한 것에 대해서 들킬까 봐 등의 불안이 공감 갔다. 다들 이렇게 살고 있구나. 내 안의 불안을 마주하는 것은 고통스럽고 두렵고 힘들지만 우리 모두의 불안을 마주하는 것은 어쩐지 안심이 됐다. 같이 흔들리는 존재구나. 나만 불안한 거 아니구나. 나처럼 이렇게 불안하고 흔들리고 휩쓸려도 다 각자의 몫을 살고 있구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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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서울프린지페스티벌 홈페이지


****

안유선 '내향인 생존기'


사람들이 북적북적이는 술자리에서 내항인으로서 견디는 것, 자꾸만 외향적인 것을 강조하고 또 강요하는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남고 있는지 어떤 것을 느끼고 있는지에 대해 적절히 웃음 포인트들을 넣어 웃겨 주셨다. 말 그대로 웃겨 주셨다. 오랜만에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그곳에 있는 내향인들과 박장대소를 나눴다.


안유선씨는 조곤조곤 마이크를 잡고 약간은 떨리는 듯 왔다 갔다하면서 ‘인싸’사회를 꼬집기도 하고 풍자를 넣었다. 스탠딩 코미디가 이렇게 재밌구나 싶었다. 왁자지껄을 강조하는 인싸들의 개그와는 전혀 다른 차분한 아싸식 개그였다. 어떤 동질감을 느꼈고 그녀의 모든 말이 웃겼다. 자유로워 보였다. 혼자서도 저렇게 대단한 것을 해낼 수 있구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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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서울프린지페스티벌 홈페이지




4. 공연의 끝에서 온 것



심사나 선정 없이도 이렇게나 훌륭한 공연들을 마주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고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잠재력을 갖고도 내보이지 못하고 살아가는가에 대해 안타까웠다.


이곳에서 공연하는 사람들, 봉사를 하는 사람들, 그리고 나와 같은 관객들과 좋은 마음을 공유하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풍만했다. 그리고 이 날은 아주 커다랗고 노란 예쁜 달이 떠 있어서 여기 현실맞나 싶었는데, 생각해보니 현실에서 아름다운 것들은 마치 가짜 같아보인다고 생각했다. 오늘은 아름답지 않은 것들의 나날 속에서 아름다운 것들을 잔뜩 보았고, 집에 가는 버스에서 본 빌딩의 불빛보다 달빛이 훨씬 밝다는 것에 다행임을 느꼈다.


인간만이 만들 수 있는 예술을 더욱더 사람들이 좋아해 줬으면 좋겠고 예술 속에서 느끼는 아름다움만이 우리가 유일하게 로봇을 이길 수 있다는 점임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그리고 우리가 할 수 있는 노력은 예술을 위해 연대하는 사람들을 찾아가는 것이다. 프린지 페스티벌을 즐기는 것은 그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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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딩의 수 많은 전기 빛보다 빛나는 달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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