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열정과 외로움 사이에서, 2019 서울프린지페스티벌

2019 서울프린지페스티벌에 다녀온 후
글 입력 2019.08.23 2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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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축기지


문화비축기지에서 열리는 2019 서울 프린지 페스티벌에 다녀왔다.

사실 문화 비축기지라는 장소와 프린지 페스티벌 모두 이번에 처음 알았기에 어떨지 궁금했던 것이 사실이다. 문화비축기지는 과거에 석유를 비축하던 장소였다고 한다. 그렇기에 구조와 건축물들이 어딘지 독특한 느낌을 주었다. 콘크리트와 철근이 날 것 그대로의 느낌 그대로 있으면서도 뒤쪽으로는 매봉산이 자리잡고 있어 자연과 어우러졌다.

각각의 공간들은 T0부터 T6까지 나뉘어있는데 마치 원래부터 문화를 위한 공간으로 만들어졌다 해도 손색없을 만큼 공연에 힘을 실어주었다.

나는 여러 개의 공연을 관람했는데, 그 중 첫 번째로 본 것은 ‘빌리 더 데드갓’의 <강림>이었다. 빌리 더 데드갓은 힙합을 장르로 하는 랩퍼다. 그의 음악들은 자전적인 이야기들을 담고 있었다. 그는 한 곡이 끝날 때 마다 관객들에게 곡에 대해 설명하고 그 의미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는데, 그 중 기억에 남는 것은 ‘기준’ 그리고 ‘바닥’이라는 곡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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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 더 데드갓


제목에 나타나 있듯이 한차례 밑바닥까지 내려가봤던 그가 세상에 기준에 의문을 품는 곡들이었다. 그는 자신이 겪었던 우울증의 경험을 토대로 설명을 했는데 비슷한 상황에 놓여있는 사람들이 너무 자책하지 않았으면 한다는 말에서 진심이 느껴져 더욱 와 닿았다.

그의 공연은 T1에서 이루어졌는데 석유비축기지 시절 휘발유를 보관했던 탱크라고 한다. 안으로 들어가면 굉장히 아늑하면서도 독특한 장소가 나오는데, 구조 덕분에 자연스럽게 소리가 울려서 노래가 더욱 풍부하게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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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 더 데드갓이 공연한 T1입구


그 다음으로 본 작품은 ‘파바리키키’의 <베짱이는 없다>였다. 다섯 명의 감독이 만든 다큐멘터리 영화로 2018서울프린지페스티벌에 참여한 아티스트들의 이야기를 담아냈다. 주로 연극을 하는 아티스트 팀들이 등장했는데 별다를 것 없는 일상 속에서 그들의 절박함을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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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짱이는 없다>를 보러가는 길목에 포스터들


아무리 열심히 연습하고 만들어 극을 올려도 정작 봐주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경제적으로도 힘든 나날이 이어진다. 그럼에도 창작을 향한 그들의 열정은 대단하다.

영화에서 공연이 끝난 뒤, 단원들이 함께 저녁을 먹으며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나온다. 누군가 한 명이 허무함을 느낀다고 하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하고 싶어서 해야 해.
좋자고 하는 건데
하다가 마음이 부대끼면 안 해도 되니까.
하면 하고 안 하면 하는 거지.”

“너무 지친다,
그래도 연기하면 살아있구나 느껴.”


익숙한 듯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장면을 보고 얼마나 힘든 길을 가고 있는 건지, 그럼에도 행복할 만큼 얼마나 큰 열정을 가지고 있는지 알게 되었다. 덕분에 영화를 감상한 후 마주치는 모든 아티스트들과 작품들이 더욱 대단하게 느껴졌다.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은 ‘샥티댄스무브먼트’의 <신화, 여성>이었다. 이 작품은 힌두 대서사시 ‘라마야나’ 속 여주인공 ‘시타’의 수난사를 현대적 관점으로 재해석한 4막의 창작 무용극이다. 등유를 보관하던 탱크 내부를 그대로 살린 공간인 T4에서 공연되었는데 장소와 연출이 서로 시너지를 주고받음을 강하게 느낄 수 있었다.

거대하고 어두운 홀 같은 구조의 T4는 무용이 신비로움과 발소리를 강조해주어 어떤 비밀스러운 의식을 몰래 엿보는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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샥티댄스무브먼트

 
흰색, 검은색 그리고 빨간색의 대비를 이용해 이야기를 풀어나가며 소품들의 활용이 돋보였다. 물감을 밟고 흰 천 위를 걷기도 하고 밀가루 같은 흰 가루로 연기 속에서 춤을 추고 있는 듯 연출하기도 한다. 3명의 무용수가 아예 다른 장르의 춤을 다룸에도 각자의 개성으로 표현해내는 이야기를 보면 전혀 이질감 없이 어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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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린지 상점


비록 하루였지만 서울프린지페스티벌을 관람하면서 현재의 문화예술에 대해 많은 생각이 들었다.

다큐멘터리 <베짱이는 없다>에서 보았듯 그들의 열정과 헌신이 무색할 정도로 공연을 올리고 관객과 직접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장이 극도로 부족해 보였다. 많은 교류가 있어야 좋은 예술가들을 발견할 수 있고 그들 또한 탄력을 받아 작품활동을 더욱 활발히 할 수 있을 텐데 그러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그만큼 이런 페스티벌들이 소중하고 더 많이 열리면 좋겠지만 아직 그러지 못하는 실정이다. 적은 사람들이라도 관심을 가지다 보면 언젠간 주류문화가 되어 더 많이 논의되는 날이 오지 않을까 바래본다.


[김유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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