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알렉 벤자민, 이야기를 노래하다 [음악]

그건 그냥 바람 소리였을 거예요
글 입력 2019.08.23 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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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팝송을 전혀 듣지 않는 친구가 있어서 그 이유를 물어본 적이 있었다. 친구는 가사를 제대로 음미할 수 없어서 팝송이 싫다고 했다. 가사가 노래에서 얼마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가는 순전히 주관적인 문제다. 친구와 달리 나는 가사가 좋은 노래는 분명 매력적이지만 노래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당연하게도) 선율이라고 생각했다. 알렉 벤자민을 만나기 전까지는.



It must have been the wind


I heard a glass shatter on the wall in the apartment above mine

아파트 위층에서 유리가 벽에 부딪혀 깨지는 소리를 들었어요.

At first I thought that I was dreamin'

처음에는 내가 꿈을 꾸고 있나 했죠.

But then I heard the voice of a girl

하지만 그 후 소녀의 목소리를 들었어요.

And it sounded like she'd been cryin'

그리고 그녀는 울고 있는 것 같았죠.

Now I'm too worried to be sleepin'

너무 걱정이 돼서 잠에 들 수가 없어요.


So I took the elevator to the second floor

그래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2층으로 올라가

Walked down the hall and then I knocked upon her door

복도를 지나 그녀의 문을 두드렸죠.

She opened up and I asked about the things I've been hearing

그녀가 문을 열었고 나는 방금 들은 소리에 대해 물어봤어요.


She said, "I think your ears are playing tricks on you"

그녀가 말했죠. "당신 귀가 당신에게 장난을 치는 것 같은 걸요."


Sweater zipped up to her chin

그녀는 지퍼를 턱까지 잠그며

"Thanks for caring, sir, that's nice of you But I have to go back in Wish I could tell you about the noise But I didn't hear a thing"

"신경 써주셔서 감사하지만, 저는 다시 들어가 봐야 해요. 그 소음에 대해 말해 줄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저는 아무것도 들은 게 없어서요."


She said, "It must have been the wind, must have been the wind

그녀는 말했어요. "그건 아마 바람이었을 거예요. 바람이었을 거예요."


must have been the wind, must have been the wind"

"바람이었을 거예요, 바람이었을 거예요."


(후략)



노래 가사에 대한 칼럼을 쓸 때는 가사의 일부분만 발췌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가사를 전부 수록하면 글의 길이가 비정상적으로 길어져 읽는데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상기의 이유로 별 수 없이 1절만 수록하긴 하지만 웬만하면 전문을 찾아 읽어보는 것을 권한다.


2절에서 화자는 소녀가 가정폭력에 시달리고 있다고 확신하지만, 제대로 된 증거가 없어 결국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그는 언제든지 자신에게 기대도 된다는 뜻을 담아 스피커로 'Lean on me'를 크게 틀며 그건 아마 바람이었을 거라고 되뇐다.


가정 폭력 문제가 심각한 이유는 제삼자가 쉽게 개입할 수 없어서이다. 가족이라는 이유로, 경제적인 이유로 피해자는 가해자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고, 더 큰 보복을 피하기 위해 피해 사실을 밝히길 꺼린다. 미국은 상대적으로 가정폭력(특히 아동학대와 관련해서는 더더욱)에 민감한 편이지만 여전히 이름도 모르는 이웃이 섣불리 개입하기엔 쉽지 않은 문제다.


소녀가 걱정되지만, 당장 어떻게 할 수 있는 방안은 없다. 하지만 화자는 쉽게 단념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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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 벤자민이 폭력을 바라보는 시선은 독특하다. 많은 드라마나 영화가 폭력 그 자체에 집중하는 것과는 달리, 그는 소시민으로서 피해자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안이 무엇 일지를 고민한다.


가정 폭력이라는 소재는 자극적이다. 많은 영화나 드라마들이 시청률을 위해 가정 폭력의 폭력성만을 부각한 장면들을 연출하곤 한다. 하지만 'It must have been the wind'에서 그런 폭력성은 모두 여백으로 처리된다. 유리가 깨지는 소리 이외에 가정 폭력을 직접적으로 묘사한 구절은 단 한 구절도 없다. 심지어 유리가 깨지는 소리마저도 '꿈을 꾸는 것처럼' 희미하게 표현된다.


대신 그는 소녀가 황급히 지퍼를 턱 끝까지 올리고 바람이었을 거라고 뻔한 거짓말을 하는 찰나의 순간을 통해 소녀의 피해 사실을 드러낸다. 그렇다고 그녀의 고통이 축소되거나 미화되는 것은 아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폭력은 제삼자의 목소리를 통해 더욱 뚜렷하고 생생하게 다가올 뿐이다.


가정 폭력의 심각성을 설파하기 위해 굳이 폭력적인 장면을 노출할 필요가 있을까? 알렉 벤자민의 노래에서 '폭력' 그 자체는 중요하지 않다. 화자는 무력하게 누워 있기보다 피해자에게 조금이라도 편안하고 안전한 휴식처가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노력한다. 그것이 비록 지붕 위에 있는 스피커에 "Lean on Me"라는 노래를 트는 것일 뿐이라 해도.


정말 심각하다고 생각되면 경찰에 신고 정도는 할 수 있겠지만 당장 폭력의 악순환을 끊어버릴 수는 없다. 어쩌면 우리가 정말 해야 할 일은 피해자를 다그치고 가해자에게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친구가 되어주는 것이 아닐까.



Boy in the Bubble


It was 6:48, I was walking home Stepped through the gate, and I'm all alone

6시 48분, 집으로 걸어가면서  문으로 들어서니 혼자였어.

I had chicken on the plate, but the food was cold

접시 위엔 식어 버린 치킨


Then I covered up my face so that no one knows

난 아무도 모르게 내 얼굴을 가렸어

I didn't want trouble, I'm the boy in the bubble But then came trouble

일 키우긴 싫었어, 난 거품 속 아이. 근데 일이 커졌어


When my mom walked into the living room

엄마가 거실로 들어오시더니


She said, "Boy, you gotta tell me what they did to you"

"얘야 애들이 뭘 어쩐 건지 말해봐"

I said, "You don't wanna know the things I had to do"

"엄마는 모르는 편이 나아요"

She said, "Son, you gotta tell me why you're black and blue"

"아들, 왜 멍이 든 건지 말해봐"

I said I didn't want trouble, I'm the boy in the bubble But then came trouble

일 키우긴 싫다고 했어. 난 거품 속 아이. 근데 일이 커졌어.


And my heart was pumping, chest was screaming 

심장이 쿵쾅대고 가슴은 비명을 지르고

Mind was running, air was freezing

마음이 조급해지고 공기가 얼어붙어

Put my hands up, put my hands up

난 손을 들어, 난 손을 들어서

I told this kid I'm ready for a fight

싸울 준비가 되었다고 말했어.


Punch my face, do it 'cause I like the pain

얼굴을 때려봐, 때려 난 아픈 게 좋으니까

Every time you curse my name

내게 욕을 할 때마다

I know you want the satisfaction, it's not gonna happen

만족감을 느끼고 싶겠지만 그럴 일은 없어

Knock me out, kick me when I'm on the ground

날 때려눕혀, 쓰러진 날 발로 차

It's only gonna let you down

네 기분만 나빠질걸

Come the lightning and the thunder

미친 듯이 때려봐

You're the one who'll suffer, suffer

괴로워질 사람은 너야


(후략)



'It must have been the wind'가 제삼자의 눈에서 바라본 폭력의 모습을 담아냈다면, 'Boy in the bubble'에선 학교 폭력의 피해자가 자신이 속한 폭력의 굴레에 맞서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현대 은어나 유행어를 주로 다루는 Urban Dictionary에 따르면 'Bubble Boy'란 엄마에게 과도한 보호를 받는 남성, 또는 언제나 아픈 사람을 의미한다.


1절에서 화자는 말 그대로 버블보이다. 엄마의 과도한 보호를 받는 그에게는 지금 두 개의 문제가 있는데, 하나는 엄마에게 학교 폭력 피해 사실을 들켰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을 괴롭히는 가해자에게 맞서 싸웠다는 것이다.


가해자 앞에선 화자는 '심장이 쿵쾅대고 가슴은 비명을 지르고, 마음은 조급해진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그는 당당하게 나는 싸울 준비가 되었다고 말한다. 실제로 학교 폭력 피해를 경험해 본 사람으로서, 피해 당시에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게다가 코는 부러져 피가 흐르고 발로 차이는 사람보다 욕을 하고 괴롭히는 사람이 더 고통스러울 리 만무하다.


뮤직비디오를 번역한 황석희 작가도 '사실 걔들 괴로워하지 않아'라는 한 줄 평을 남겼으니, 현실을 직시하자면 'Boy in the bubble'은 이상주의자의 자기 합리화 정도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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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It must have been the wind'와 마찬가지로 화자는 현실에 쉽게 단념하지 않는다. 화자는 거품 속의 소년이다. 여기서 거품은 일종의 보호막이다. 그는 거품 속에서 아무 문제도 일어나지 않길 바라는 수동적인 인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거품이 있기 때문에 맞을 걸 알면서도 가해자에게 맞서는 능동적인 인물이기도 하다. 가해자는 화자를 욕하고 때리지만 화자는 거품 덕분에 피를 흘리면서도 너만 기분 나빠질 거라며 그를 조롱한다.

 

2절에서 가해자는 어렸을 때부터 폭력적인 알코올 중독자 아버지에게 학대를 당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그래서 그에게는 화자와 달리 거품이 없다. 물론 그것이 가해자가 저지른 폭력의 핑계가 되어주는 것은 아니다. 화자는 그 사실을 명확히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가해자를 동정한다.


'Boy in the bubble' 뮤직비디오에서 주인공은 거품을 의미하는 헬멧을 쓰고 나온다. 영상의 끝머리에서 주인공은 아버지의 폭력을 피해 도망가는 가해자에게 자신의 헬멧, 즉 거품을 주는데, 이는 그가 가해자에게 보복하는 대신 용서와 사랑을 건네었음을 의미한다. 세상에 완벽한 피해자나 완벽한 가해자는 없다. 알렉 벤자민이 폭력을 바라보는 시선은 이렇게 독특하다.






가사만으로 그의 노래가 이렇게까지 주목을 받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부드러운 미성과 따뜻하고 단조로운 선율 또한 알렉 벤자민만의 매력이다. 하지만 수많은 아티스트 사이에서 그의 작품이 유독 빛날 수 있었던 이유는 서정적인 스토리텔링 능력 덕분이다.


알렉 벤자민의 노래에는 항상 소외받고 상처 받은 인물이 등장한다. 하지만 자극적인 장면이나 패배감 따위는 없다. 그는 우리 사회의 가장 어두운 부분을 이야기하면서도 담담하고, 따뜻하게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를 노래한다. 누군가 내게 영어를 배워야 하는 이유를 묻는다면, 나는 주저 없이 알렉 벤자민의 노래를 들려줄 것이다.



Q. 본인의 노래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A. 이야기요.

- 2019 빌보드 인터뷰 中




[김나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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