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색다른 모습으로 우리를 찾아온, 서울 프린지 페스티벌

더없이 매력적인 공간에서 자유롭게 펼쳐지는 독립예술 무대
글 입력 2019.08.24 0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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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서울 프린지 페스티벌 

SEOUL FRINGE FESTIV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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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금요일, 문화 비축기지에서 진행되고 있는 서울 프린지 페스티벌을 다녀왔다. 중심부가 아닌 '주변부'를 뜻하는 단어 프린지(Fringe). 프린지 페스티벌은 1947년 영국 에든버러에서 시작되어 현재는 전 세계 많은 곳에서 개최되고 있는 있는 문화 축제이다. 이번 서울 프린지 페스티벌은 특색 있고 개성 있는 연극, 음악, 무용, 퍼포먼스, 미술, 영상 등 다양한 독립예술을 한 데 모아 선보일 예정이었다.



새로운 장소에서 색다른 모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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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뮤니티 센터인 T6 건물.
다른 석유 탱크를 해체하면서 나온 철판으로
건물 외벽을 세웠다는 사실이 놀랍다.



문화 비축기지는 올해 3월 '오프 페이퍼'라는 독립출판 행사가 열린 장소였기에 처음 알게 된 곳이었다. 사진으로만 보아도 널찍하게 탁 트인 공간이 참 매력적이었다. 이번에 직접 처음 방문해본 문화 비축기지는 정말 아늑하고 안전한 '아지트' 같은 느낌이었다.


무엇이든 선보일 수 있는 넓은 광장과, 옛 모습을 여전히 간직하고 문화 공간으로 새롭게 변신한 6개의 탱크, 그리고 그 주변을 둘러싼 푸르른 나무들. 과거 일반인의 접근이 금지된 채 석유를 비축하던 탱크들은 이제 사람을 모으고 문화를 생산하는 든든한 공간이 되어있었다.


어딜 가도 좁은 공간에 많은 인파로 답답하기만 했던 서울에 이런 참신한 공간이 생겼다는 사실이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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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켓부스에서 입장권을 받고 오늘 상영될 공연 시간표를 확인했다. 잔디 무대는 물론 각양각색의 모습을 띄고 있는 6가지 탱크들에서 공연이 진행될 예정이었다. 마치 록 페스티벌에서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공연을 골라보듯 공연을 골라서 관람할 수 있다는 점이 새롭게 느껴졌다.



프린지 페스티벌이 걸어온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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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유난히 더웠기에, 입구에서 가장 가까웠던 T6 건물 내부로 들어갔다.


커뮤니티센터로 불리는 T6 2층에서는 서울 프린지 페스티벌이 걸어온 시간과 역사를 돌아보는 전시가 개최되고 있었다. 역대 포스터들이 벽면을 장식하고 있었고, 작년 축제를 기획하고 진행했던 ‘인디스트’들의 인터뷰 영상도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 외에도 지난 축제의 팸플릿, 공연 사진, 굿즈 등이 다양하게 비치되어 있었다.


서울 프린지 페스티벌은 올해로 22번째를 맞이한다. 1998년을 시작으로 프린지 페스티벌은 독립예술의 발전과 창작을 위해 매해 꾸준히 축제를 개최해 왔다. 내가 속해있는 대학교 밴드 동아리 선배는 작년 2018 프린지 페스티벌에서 음악 공연을 선보였다고 했는데, 그만큼 이 페스티벌은 모두에게 자유롭게 열린 무대이다.


올해는 어떤 공연들이 페스티벌을 더욱 다채롭게 만들어 줄지 궁금해졌다.




벌레가 된 남자 이야기, 연극으로 생생하게 되살아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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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페스티벌에서 처음 관람했던 공연은 바로 극단 ‘우아’의 연극 <변신>이었다. <변신>은 체코 출신 작가 프란츠 카프카의 유명한 단편 소설인데, 고등학교 때 처음 읽고 굉장히 충격 먹었던 기억이 난다.


가정의 경제를 책임 지던 평범한 직장인 그레고르가 어느 날 아침 눈을 떠보니 벌레로 변해버렸다는 이야기. 그는 가족들의 증오 어린 시선과 경멸을 받으며 벌레보다도 못한 하루하루를 살게 된다. 연극은 T5 건물 앞 공간에서 진행되었다.


1부의 연극은 배우들이 대본을 직접 읽어 나가며 진행됐다. 남성 배우 3명은 주인공 그레고르, 그레고르의 아버지, 회사 동료를 각자 연기하다가도 셋이 나란히 앉아 벌레가 되어버린 그레고르를 표현하기도 했다. 세 배우는 그레고르의 대사를 동시에 내뱉으며 그가 느끼는 혼란스러움과 절망감을 격렬하게 표현하기도 했고, 바닥에 누워 다리를 움직이며 벌레의 다리를 형상화하기도 했다.


그들은 한 몸이 되어 그레고르를 실감 나게 연기했다. 정말 벌레가 되어버린 인간의 모습을 보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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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긴장감 넘치는 1부가 끝나고, 2부는 옆 건물 T4에서 진행될 예정이었기에 다 같이 자리를 옮겼다. 처음엔 연극 중간에 무대를 옮긴다는 것이 조금은 의아했었다. 일반적으로 연극은 한 좌석에 자리를 잡고 가만히 앉아 보곤 했으니까. 하지만 그 궁금증은 2부가 시작되자마자 눈 녹듯이 사라졌다.


연극은 공간이 주는 힘과 함께 더욱 빛을 발했다. T5 건물 안으로 들어온 순간부터 공간이 주는 위압감에 놀랐는데, 그 분위기는 연극과 너무도 잘 어우러졌다. 어두컴컴한 조명 아래에서 배우의 목소리는 마치 메아리처럼 웅웅 울려 퍼졌고, 홀로 넓게 퍼지는 여자 배우의 내레이션은 연극에 더욱 집중하게 만들었다.


고통스러워하는 그레고르의 울음소리는 공간을 둘러싸며 극에 더욱 몰입하게 만들었다. 연극의 스토리와 배우들의 연기가 매력적인 공간과 만나자 예술이 되는 순간을 목격했다. 인간 소외와 가족의 붕괴, 존재에 대해 다시 한번 곱씹게 되기도 하면서.


배우들은 공간 전체를 폭넓게 활용했다. 한 바퀴를 뺑 돌며 뛰기도 하고, 석유 파이프를 옷걸이로 사용하기도 하고, 선반에 올라가기도 하고, 관객이 앉아있는 뒤쪽으로 이동해 무대를 진행하기도 했다. 배우들의 움직임에 따라 관객들은 몸을 이동해가며 연극을 관람했다.


<변신>은 그들만의 해석을 통해 새롭게 탄생했고, 원작과는 또 다른 감상을 주었다. 이들의 연극은 어렵게만 느껴지던 소설의 메세지를 더욱 깊게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듯한 무대다.




프린지 페스티벌 X 문화 비축기지, 그 완벽한 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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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한 유리벽으로 만들어진 T1 공간



다양한 독립예술 무대와 문화 비축기지라는 공간이 함께 만들어내는 시너지는 상상 이상으로 놀라웠다. 문화 비축기지 곳곳은 자유롭게 무대로 사용되고 있었다. 과거 석유 탱크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탱크 내부, 계단, 곳곳에 돌이 놓여 있는 탁 트인 광장, 잔디밭 등 날것의 모습을 간직한 자연스러운 공간은 개성 넘치는 무대와 너무도 잘 어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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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게 걷기 x 14squad의
연극 <끝따라는 딴까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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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동의 연극 <소동:도>



가장 신선했던 무대는 우연히 관람하게 된 연극 <소동:도>였다. 관객과 무대와의 경계가 없어서 처음엔 연극이 진행되고 있는 줄도 몰랐다. 10명의 배우는 마치 일상의 한 모습처럼 삼삼오오 모여 서로 자유롭게 말하고 행동했다.


게임을 하거나, 사사로운 고민을 나누고, 진지한 얘기를 하거나, 수영 풀장에 뛰어들거나 의자에 널브러져 앉아있는 등. 그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니 마치 우리의 삶 일부분을 엿보는 듯했다. 새롭고도 신기한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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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페스티벌의 주제였던 '예술적 일탈을 상상하다! 예술 아지트 프린지'. 정말 그 주제에 걸맞게 축제를 즐기는 내내 정말 예술 아지트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번화가와는 떨어져 있는 조용하고 평화로운 분위기를 지닌 문화 비축기지에선 어느 곳이든 무대가 될 수 있었다. 누구도 방해하지 않는 아늑한 분위기에서 공연 그 자체에 더욱 집중할 수 있었다. 푸르른 하늘과 기분 좋게 불어오는 바람을 만끽하며 무대를 관람하던 모습이 생생하다.


다만, 내가 방문했던 페스티벌 둘째 날엔 관람객이 별로 없었다. 평일이어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북적북적한 페스티벌 분위기를 느낄 수 없었던 건 아쉬운 점이었다. 과거에는 홍대 곳곳의 창작공간과 월드컵 경기장에서 진행되었던 프린지 페스티벌. 올해는 장소를 문화 비축기지로 옮긴 만큼 전보다 더욱 새롭고 신선한 무대를 선보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주변 유동인구가 없는 곳이고 접근성이 이전보다 떨어졌기 때문에, 앞으로 더욱 적극적인 홍보가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하고 즐길수록 축제는 더욱 풍요롭고 다채로워질 수 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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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축제로 독립예술은 난해하고 어렵기만 할 것이라는 편견은 완전히 깨부수어졌다. 인위적으로 가공되지 않았기에 자연스럽고, 매력적이고,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더욱 자유로울 수 있다는 점이 바로 프린지 페스티벌의 매력이다.


내년에도 다채로운 아티스트들의 무대와 함께 더 많은 사람들이 페스티벌을 즐길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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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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