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가사로 바라보기 : Writer's Block [문화전반]

글쟁이의 벽
글 입력 2019.08.25 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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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s Block

글쟁이의 벽


Opinion 민현





책을 읽을 때 새로운 책을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는 고전 서적도 읽는다. 책에 있어서 인문학 고전서적과 마찬가지로 힙합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고전하면 이센스를 꼽는다. 그의 음악을 간만에 찾다가 3년 전에 발매했던 ‘Writer’s Block’을 듣는다. 정말 오랜만에 내 마음을 읽어주는 노래를 찾아 하루에도 몇번씩 재생 버튼을 누른다.


야 어디갈라고 오늘은?

몰라 작업해야지 넌 노는 중?

괜히 조바심에 어제 쓰다만

거 뒤져봐도 하나같이 구린 가사

버린 이유가 있네 그냥 나갈까?


이센스가 고전에 비유한 이유를 한 가지만 뽑자면, 특별하지 않은 것에서 의미를 찾아내어 자신의 예술작품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특별하지 않고 아무 뜻 없는 가사도 물론 음악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고전에 비유할 만한’ 위치에 오르려면 그 평범한 것에서 무언가를 찾아내야 한다. 이 노래 'Writer's Block'에선 가사를 쓰지 못하겠다는 주제로 가사를 썼고, 그는 writer’s block에서 빠져나왔다. 들을 때마다 감탄을 부르는 뛰어난 랩 실력은 물론 말할 것도 없다.




고민



에디터 활동을 한 지 1년 정도가 되어가는 지금, 나 역시 writer’s block에 빠졌다. 3달정도의 시간동안 여행에 대한 글을 쓰다보니 이제 어떤 글을 써야 할 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예전에는 고민하는 것보다 한 자라도 더 써야지! 하는 마음이 더 강했다면, 요즘엔 단어 하나, 문장 하나에도 생각이 많아진다. 이제 쓴다는 일은 거의 생활처럼 되어버렸기 때문에, 오늘 뭐 먹지?하고 고민하는 것처럼 늘 고민한다.


다른 점이 있다면 오늘 뭐 먹지?는 결국 답이 나오지만, 오늘 뭐 쓰지? 하고 고민해도 답이 나오지 않을 때가 많다는 것이다. 벌써 가사를 써도 10년은 넘게 썼을 이센스의 writer’s block과 감히 비교할 수는 없지만, 그의 노래를 듣고 깨달았다. 분명 나도 writer’s block에 빠졌다. 그리고 그가 가사를 쓴 것처럼 나도 writer’s block을 가지고 글을 쓸 수 있을까, 궁금해졌다. 그리고 그처럼 writer’s block을 빠져나가고 싶었다.




불일치



자, 이제 생각해보자. 내가 왜 그런 글쟁이들의 슬럼프에 빠졌을까. 내 글은 내 생각, 그리고 상황이랑 너무 맞물려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처음에는 여행이라는 큰 과정을 끝내고 난 뒤 일종의 후유증 같은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후유증이 생각보다 길다. 증상은 계속해서 떠오르는 생각들, 이유 없는 피곤함, 불면증 등 썩 좋지 못한 것들이다. 떠오르는 생각들은 대개 이런 단편적인 것들이다.


‘뭘 해야 할까?’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밤새 이런 것들을 생각하지만, 또 그 생각들과 마주하는 건 싫었다. 마주하고 나면 오는 허탈함과 자괴감을 맛보기가 싫어서 계속해서 피했다. 생각들을 회피하고 난 뒤 난 삶에서 일관성을 잃었고 계속해서 ‘불일치’가 생겨났다. 여행에서 돌아온 후 다시 적응해야 하는 현실과의 불일치가 그 첫 번째다. 여행에서 했던 생각들, 느꼈던 것들은 물론 내 삶에 자산이 될 것임은 분명하지만 지금 내 발 등에 떨어진 불을 끄는데는 맞지 않는 것들이었다. 졸업을 앞둔 4학년에게는 해야 할 일이 산더미였고 난 여행을 떠나면서 개설한 '마이너스 통장'을 메꿔야 했다.


두 번째는 현실과 이상의 불일치가 아닐까. 현실은 마이너스 통장 메꾸기에 바쁜데도 내 이상은, 음 이상적이다. '25년을 어떻게든 되겠지!'하고 살았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은 나를 걱정하기도 했지만 지금까지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 하지만 이제 몸으로 체감할 수 있었다. '어떻게든 되겠지!'는 학생 때 까지다. 아직 그 '어떻게든 되겠지!'의 유예기간이 1년 남아있지만 난 이 오랜 습관을 버려야 할 때가 왔다고 느꼈다.


마지막으로는 이렇게 정리된 생각과 행동의 불일치다. 잠에 들기 전까지는 생각한대로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나는 글을 써야지, 같은 생각도 행동에 옮기기는 쉽지 않다. 지금 쓰고 있는 이 글도 아침이 아니라 오후에 완성되는 걸 보면. 그냥 어제 밤에 생각했던 걸 행동으로 옮기는 간단한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었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이렇게 불일치가 머리속에 뒤엉켜 있기 때문에 나는 심각한 writer's block에 빠졌다. 생각이 정리되고 나라는 사람이 정리되고 나서야 쓸 수 있는 '글'이 나올리가 없었다.




해답



답을 찾지 못한 나는 다시 한번 이센스의 음악을 듣는다. 어느새 귀에 익숙한 첫 소절을 넘어 그가 해답을 찾았는지 궁금해 문장 하나하나에 집중해 들어본다.


이제는 그냥 이 과정에 남는게 있기를 바랄 뿐이고

하루 하루 조금씩 움직여. I'm still in my studio


“이제는 그냥 이 과정에 남는게 있기를 바랄 뿐이고”라는 가사를 쓰려면 예술을 하며 느낄 수 있는 벅참, 설렘, 후회, 미련 등 모든 감정을 얼마나 느낀걸까. 이미 기준이 높아진 예술가가 그의 벽을 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그저 그도 불일치 속에서 그냥 쓰고, 노래하고, 발매한다. 아, 다시 생각해보니 이센스도 그 벽을 넘은 게 아니었다. 언젠가 나를 만족시킬 수 있는 작품이 나와 그 writer’s block을 넘길 때까지 그저 계속해서 부딪힐 뿐이다. 래퍼, 뮤지션, 아티스트라는 타이틀을 제쳐 두고서, 지금 내 상황에 비교해보니 이센스라는 사람 자체가 존경스러웠다.


결국 그 벽을 넘으려면 벽을 넘으려는 시도를 계속해야 한다. 여행에서 돌아온 뒤 내가 한 행동은 그 벽에 기대 앉아 한숨만 쉬고 있는 정도다. 이제 할 일이 생겼다. 벽의 높이를 가늠하고 뛰어넘을 수 있는 지 생각해보자. 아무리 해도 내 힘으로 올라갈 수 없을 것 같다면 사다리를 구해보자. 도움 받기를 부끄러워하지 말자. 그리고 어차피 지금 이 벽을 뛰어넘어도 더 높은 벽이 내 앞에 있을 게 분명하다. 그때면 이 글을 생각하자. 그때도 처음처럼 한동안은 그 벽에 기대어 앉겠지만 결국 뛰어넘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자고, 다짐해 본다.




Writer's Block



무표정으로 보는 news

사실 들리지도 않는 단어들

끄고 노트북을 켜고 메모를

그러다 다시 다 지우고는


생각해 한 때는 빈 도화지가

없을까 왜 어디에도 없을까

많고 많은 생각들을 다

적어낼 새하얀 도화지가


*

I got the writer's block 언젠가 끝이 날

뭐라도 쓰겠지 이 비가 그친 날

비어버린 단어들과 다시 마주 앉아

눈을 못떼고 나는 다시 do that


어떻게든 되겠지 뭐라도 적어봐

날씨 간만에 좋잖아 tonight is the night

한참동안 펜을 잡고 끄적이다가

문득 걸려온 친구놈의 전화


요즘 뭐해? 라고 묻는 말에

대답할 수 없어 사실 그냥 그래

어, 사실 나도 요즘 그래 돌아온 대답에

어쩐지 대화가 조금 시원찮네, 그래


*

I got the writer's block 언젠가 끝이 날

뭐라도 쓰겠지 이 비가 그친 날

비어버린 단어들과 다시 마주 앉아

눈을 못떼고 나는 다시 do that


**

살다가 어쩔 수 없이 벽을 마주쳐

주저앉거나 넘거나 오로지 네 선택

어쩌면 이것도 내 인생의

또 다른 예술이 될 거라 믿어


너무 높다면 돌아가도 돼

선택이 어쨌든 네가 감당해야 해

어쩌면 이것도 내 인생의

또 다른 예술이 될 거라 믿어


작사 민현



[손민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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