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아픈 들꽃들의 세계, 공감 연습 [도서]

토끼들은 절뚝거리며 사랑을 나눈다.
글 입력 2019.08.21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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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윤동주

살구나무 그늘로 얼굴을 가리고, 병원 뒤뜰에 누워, 젊은 여자가 흰 옷 아래로 하얀 다리를 드러내 놓고 일광욕을 한다.
한나절이 기울도록 가슴을 앓는다는 이 여자를 찾아오는 이, 나비 한 마리도 없다.
슬프지도 않은 살구나무 가지에는 바람조차 없다.

나도 모를 아픔을 오래 참다 처음으로 이곳에 찾아왔다.
그러나 나의 늙은 의사는 젊은이의 병을 모른다. 나한테는 병이 없다고 한다.
이 지나친 시련, 이 지나친 피로, 나는 성내서는 안 된다.

여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깃을 여미고 화단에서 금잔화(金盞花) 한 포기를 따 가슴에 꽂고 병실 안으로 사라진다.
나는 그 여자의 건강이 , 아니 내 건강도 속히 회복되기를 바라며 그가 누웠던 자리에 누워 본다.


책 '공감 연습' 속 에세이 '공감 연습'은 내게 윤동주의 시 '병원' 2연을 떠올리게끔 했다.


141.jpg
 

에세이 '공감 연습'은 이런 문장으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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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직업은 의료 배우, 환자 연기를 하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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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저자 레슬리 제이미슨에게 주어진 역할은 아끼는 오빠가 죽은 후로 발작을 일으키는 스테파니 필립스 라는 여자의 역이다. 여기까지의 설정을 들어 봤을 때 스테파니는 (그가 실제라면) 스스로의 병을 알고 곧바로 정신과를 방문했을 테지만, 여기서는 일종의 물음표로서 의과대학생들에게 주어진다. 왜냐하면 여기에 추가적인 설정이 있기 때문인데, 바로 당사자는 그 원인을 모르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즉, 오빠가 죽은 슬픔이 억압되어 무의식 속에서 발작을 일으킨다는 설정이 주어졌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제이미슨은 이렇게 표현한다.


"발작 도중에 뭐라고 외치나요?" 한 학생이 묻는다.
"저는 몰라요." 나는 대답하지만 이렇게 덧붙이고 싶다. 하지만 전부 다 진심이에요.
그렇게 말한다면 규칙 위반이다. 나는 슬픔을 너무나 깊이 간직한 나머지 스스로도 그 슬픔을 보지 못하는 여자를 연기하고 있다. 그것을 그렇게 쉽게 내어줄 수는 없다.

(21쪽)


제이미슨은 의료 배우로서 의과대학생들의 실습 점수를 매기는데, 그는 그 중에 31번 질문인 '의사가 환자의 상태에 공감을 하였는가'에 집중한다. 그 31번 질문은 주관적이다보다는 객관적인 지표를 가지고 있어서, 마치 과거 그의 낙태와 심장수술 과정에서 있었던 '공감이 없었던' 혹은 '고독'이라고 불릴 수 있는 슬픈 상황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평가의 두 번째 부분은 감정에 관한 것이다. 대체로 체크리스트 항목 31번인 "나의 상황/문제에 대해 말로 표현된 공감"이 가장 중요한 범주로 인정되고 있다. 우리는 말로 표현된이라는 단어의 중요성을 교육받는다. 동정적인 태도나 다정한 말투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학생들은 연민이라고 인정받을 만한 적절한 단어를 말해야 한다. (16쪽)

나는 정형화된 그들의 주장에서 공격성을 느낀다고 평하는데 점점 익숙해져간다. 정말 힘드시겠어요 [아기가 죽어간다니], 정말 힘드시겠어요 [식료품점 한가운데서 또 발작을 일으킬까 봐 두려워하는 건], 정말 힘드시겠어요 [당신이 바람을 피웠다는 박테리아 증거가 자궁에 있다는 건]. (19쪽)


상처와 박테리아 등등은 몸이 아프다는 것을 증명한다. 하지만 한 사람의 인생과, 그 인생에서 생긴 마음의 상처들은 잘 보이지 않아서 주위 사람, 그리고 본인조차 잘 모르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이상한 일들이 자꾸 벌어진다.

그리고 그 마음의 상처를 위로해주는 것은 왜인지 외롭고도 오롯한 일이어서 이 세상에 자주 나타나지 않는다. 사람들은 그런 종류의 것들을 삶의 기적이라고 부르는 것 같다. 슬프게도 이 어려운 일은 또한 고독한 대부분의 사람들의 삶에 필수적이고, 이 에세이에서는 공감이라는 단어로 나타나는 것 같다.


공감은 그저 정말 힘드시겠어요 하는 말을 꼬박꼬박 해주는 것이 아니다. 공감은 그저 귀를 기울이는 것이 아니라, 귀 기울여 들어야 할 답을 하게끔 질문하는 것이다. 공감하려면 당신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것은 당신에게 다른 사람의 고통 속으로 들어가라고 제안한다.


한 사람의 인생은 절절한 이야기들로 이루어져 있곤 한다. 하지만 그 절절한 이야기들은 마치 들꽃들 같아서 너무 쉽게 짓밟힌다. 짓밟힌 들꽃들은 시 병원의 윤동주와 여자, 그리고 제이미슨처럼 아프고, 그 아픔에 공감하는 우리는 슬프다. 하지만 인간은 공감을 통해 희망을 얻곤 한다. 마치 윤동주의 '병원'의 3연처럼. 그리고 에세이 '공감 연습'의 마지막처럼.

당신이 읽기를 바라며 에세이 공감 연습의 마지막이 어떻게 끝나는지는 인용하지 않겠다.



성채윤 (19.07~.jpg
 



[성채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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