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부동산으로 철학하기 - 뉴필로소퍼 7호 [도서]

부동산의 존재와 존재자
글 입력 2019.08.15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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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필로소퍼가 일곱 번째 정기간행물로 돌아왔다.

이번 뉴필로소퍼의 주제는 “부동산이 삶을 지배하는 사회”다. 부동산은 조금 특이한 종류의 재산이다. 집, 땅은 모두 공간에 관한 재산이기 때문이다. 부동산의 소유가 명확하면 내가 머무를 수 있는 공간, 타인이 올 수 없는 공간이 정해진다. 따라서 부동산은 단순히 사용가치와 교환가치를 가지는 다른 재산들(동산動産)과는 다르게 생활의 영역을 결정한다.

타인이 침범할 수 없는 공간이면 안심하고 생활할 수가 있다. 근본적으로 부동산은 개인의 안전과 사생활과 관련이 있는 재산인 것이다. 오늘날의 다양한 부동산 문제가 사회적 현안이 되는 것은 이러한 특징들 때문이다.

뉴필로소퍼에서는 부동산과 관련된 문제들을 다각도에서 면밀히 분석한다. 고전철학, 기술철학, 법철학의 학자들부터 경제학, 문학, 생물학, 보건학 권위자들까지 철학을 비롯한 다양한 분야의 학자들의 현대의 부동산 문제에 관해 이야기한다.

부동산에 관한 이들의 담론은 재산권, 부의 양극화 등 자본주의에 관한 원론적인 고찰은 물론 공간과 소유, 사생활 등에 대한 광범위한 논의로까지 확장된다. 본 호(號)에서는 인터뷰, 칼럼, 고전문, 만화 등 다양한 형식을 통해 하나의 ‘부동산 연작’을 독자들에게 선사한다.



부동산 이상의 장소



방마다 아내의 흔적이 있었고, 스즈키 부부와 함께 살았던 그의 장인은 정원을 가꾸었다. 가구 제작자였던 그의 아버지는 주방 찬장을 만들어주었다. 친한 친구 한 사람은 울타리를 설치해주었고, 대문 손잡이도 달아주었다. 스즈키는 자녀들이 정원에 있던 나무 집에서 놀며 자라는 모습을 바라봤고, 키웠던 개를 그 나무 집 아래 묻어주었다. 자주색 꽃을 피웠던 클레마티스는 울타리를 휘감고 올라갔는데, 그곳에 그의 어머니와 조카의 유해가 묻혀 있다. 스즈키는 이렇게 썼다. “이런 일들이 이 집을 부동산 이상의 장소가 되도록, 이곳을 나의 집으로 만들어주는 것임을 깨달았다. 내게 그 추억들은 값을 매길 수 없는 소중한 것이지만, 시장에서는 전혀 무가치한 것이다.”

- p.48 <집에 값을 매길 수 있을까> 中


철학자 하이데거는 ‘존재자’와 ‘존재’라는 개념으로 사물과 사람의 관계에 대해 설명하였다. 세상에 물리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존재자이다. 내가 매일 신는 구두 한 켤레는 존재자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 사물에 담겨 있는 역사, 의미, 가치 등의 형이상학적인 내용은 존재자가 아니라 ‘존재’이다.

말하자면 내가 신는 구두는 노동3권을 제대로 보장 받지 못한 노동자가 열악한 환경 속에서 만들어, 유통 과정 속에서 원가의 20배 가격으로 치솟아 백화점으로 왔고, 이를 내가 첫 출근 때 신기 위해 샀을 수 있다. 존재자 자체는 충격으로부터 발을 보호해줄 수 있는 신발, 혹은 격식을 갖춰야할 자리에서 신을만한 정장구두에 불과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생계의 수단 혹은 첫 출근의 추억일 수도 있다. 그래서 내가 신고 있는 것은 사실 구두의 단순한 존재자라기보다는 구두의 내력을 품고 있는 하나의 존재이다.

집이라는 공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전통적으로 집은 한 가문이 이어져 내려오는 공간이다. 집이라는 장소에는 한 가정의 추억, 생명의 탄생, 혹은 (전통적 공통체 사회라면) 이웃과의 교류가 이루어지는 공간이었다. 즉 집은 단순한 물리적 존재자가 아니라 개인과 가정의 내력을 품고 있는 하나의 존재인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가정은 점점 축소되어 아파트 한 칸에 들어갈 수 있는 크기가 되었고, 천편일률적인 설계 구조 속에서 가정의 추억이라는 개성이 침투할 여지는 적어졌다. 축소된 가족 규모 속에서 집은 더 이상 추억의 공간이 아니다. 아이들의 낙서와 가구(아마 빌트인 가구일 것이다.)의 흠집은 어린 시절의 흔적이 아니라 집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결점이다.

집은 소유와 평가의 대상이 되었고, 전 세계의 거주지는 유력자들이 독점하고 있다. 이 속에서 존재자로서 집의 가치는 점점 잊히고, 시장 속에서 시세와 평수라는 잔인한 수치로 평가되기 시작하였다. 우리가 공간에 깃든 ‘존재’를 잃으며, 부동산은 자본주의 속 하나의 존재자로 전락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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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우리 삶에 반드시 필요하다. 정보가 넘치는 세상 속에서 필연적으로 선택을 하며 살아야 하는 우리들이다. 여기서 정보를 보는 눈이 부족하거나, 선택의 기반이 되는 개인의 신념이 없으면 시대의 물살에 떠밀려 다닐 수밖에 없는 것이다. 뭐, 그 자체도 하나의 온전한 인생이고 어지러운 물살 속에서도 나름대로 잘 살아갈 수도 있겠지만, 그런 생활은 언제 또 새로운 물살이 다른 방향에서 우리를 덮쳐 생활을 180도 바꿔놓게 될 지 몰라 불안하다.

결국 자신만의 철학을 만들어 놓아야 폭풍이 몰아치는 망망대해에서도 방향을 잡가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 항로가 신대륙에 이를지 척박한 무인도에 이를지는 또 다른 이야기지만(이를 위해서 철학 외에도 경제, 정치, 기술 등을 배우는 게 아닐까), 개인에게 모종의 철학이 있다면 적어도 폭풍우 속에서 갈피를 못 잡다 침몰해 버리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철학은 (그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접근성이 상당히 떨어지는 학문이다. 실질적으로 학교 외의 공간에서는 일반인들이 접할 기회가 많지 않다. 경제는 자신의 소비습관이나 생계를 이유로 반드시 접하게 되고, 과학과 기술은 본인이 피부로 느끼는 모든 문물에서 접하게 된다. 정치는 정치권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하다못해 게임을 하다가 소위 ‘정치질’을 당하며, 어떤 종류의 발화 전략이 사람들을 결집시키거나 와해시킬 수 있는지 알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철학은, 물론 이 모든 과정 속에 숨어 있지만, 사람들의 주장을 이루는 논리적 구조를 보는 눈을 기르거나 한 의견의 기저를 이루는 철학적 유래를 생각해보지 않으면 결국 알기가 힘들다.

시간이 흘러 더 복잡해진 생활 속에서 철학을 비롯한 인문학은 우리의 삶을 부지하기 위해서 무시할 수 없는 학문이 되어버렸다. 뉴필로소퍼의 정기적 간행물은 대중적이고 친절한 방식으로 우리 생활 속의 철학을 알려준다. 정보가 범람하고 미래는 불확실한 시간 속에서, 뉴필로소퍼는 더욱 중요해진 철학을 우리 곁에 두고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는 일상의 짧은 여유 속에서 Vogue, GQ, 내셔널 지오그래픽 잡지를 우리가 보는 것처럼, 철학도 손에 닿을 수 있는 거리에 잡지로서 놓여있고 심심하면 넘겨 볼 수 있게 해준다. 호주에서 건너와 우리나라에까지 소개된 이 잡지가 삶 속에서 길잃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돼줄 수 있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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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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