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드라마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 [드라마]

글 입력 2019.08.14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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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이 시즌 7을 마지막으로 막을 내렸다.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은 2013년 7월 11일 처음으로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드라마다. 실존 인물인 파이퍼 커먼이 여성교도소에서의 경험을 쓴 회고록을 바탕으로 제작된 범죄 코미디 드라마로 시즌 7까지 이어오는 내내 많은 팬층을 확보하며 인기를 이어갔다.


이 드라마는 ‘하우스 오브 카드’등과 더불어 넷플릭스가 지금의 넷플릭스, 그러니까 스트리밍 콘텐츠계의 선두주자이자 주류로 우뚝 설 수 있게 해준 개국공신이기도 하다. 이 글에서는 이런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의 종영을 기념하여, 이 드라마의 매력을 알아보고자 한다.

 

 

*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 줄거리에 대한

약간의 스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01.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



인간의 존재를 단순히 선과 악으로 나눌 수 없다는 걸 이젠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첫인상, 혹은 외모로 타인을 쉽게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 역시 아주 어릴 때부터 배워온 사실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자주 타인들을 선과 악으로 나누고, 첫인상이나 외모로 판단하려고 한다.

 

이는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필요하다. 하지만 바쁜 일상에 치이는 현대인들에게는 그런 시간도, 에너지도 없다.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자신과 관심사가 같거나 가치관이 비슷한 사람과 만나기가 보다 쉬워졌기 때문에, 내가 이해하기 힘들어 보이는 사람에게 구태여 에너지를 쓸 이유도 없어졌다. 하지만 문제점은 그것이 습관이 될 때다. 타인을 쉽게 판단하는 것이 습관이 될 때 우리의 마음속에는 편견이 생기고, 그 편견은 우리의 세상을 점점 좁게 만든다.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에는 우리가 일상 속에서 쉽게 접할 수 없는 ‘집요함’이 있다. 한 인물에 대한 세세한 설명과 서사가 인간에 대한 이해로 이어지도록 이끄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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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여기 한 인물이 있다. 그녀는 살인죄로 감옥에서 형을 살고 있다. 그녀는 그야말로 열렬한 신도다. 그 믿음을 바탕으로 사랑을 베풀면 좋겠지만 그녀는 이 믿음을 무기로 다른 사람들을 비난하고 동성애자들을 비난하는 등의 혐오를 반복한다. 이렇게 자신의 세계에 빠진 그녀는 결국 자기 뜻에 따르지 않는 다른 수감자를 면도칼로 위협하는 모습까지 보인다.


이런 그녀가 종교인이 된 것 역시 잦은 임신 중단 수술을 받은 데서 비롯됐다. 그런 자신을 비난하는 간호사를 홧김에 죽인 일이 보수 종교 단체의 지지를 얻어 무료로 변호사를 선임 받고 풍족한 감옥 생활을 누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까지만 보면 이 인물은 비도덕적인 삶을 살아왔으며 신념이 쉽게 흔들리며, 그 신념을 바탕으로 타인을 괴롭히는데 거리낌이 없는 인물이다.

 

이 인물의 행동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을 때쯤 시청자들은 이 인물에 대해서 조금 더 알게 된다. 이 인물은 부모의 학대와 방치 속에서 자라온 인물이다. 어머니는 정부로부터 보조금을 받기 위해 과도하게 설탕을 먹이는 등의 학대를 일삼는 것은 물론이고 아직 어린 인물에게 여성의 가치는 오직 성적인 대상이 되었을 때만 존재하는 것처럼 암시한다.


인물의 아버지 역시 여성의 성장에는 관심이 없다. 늘 ‘쓸모없는 녀석’이라며 구박하고 이 인물 앞에서 폭력적인 행동을 반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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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배경까지 알게 되면 이 인물은 자신의 성취를 믿지 못하게 되어 쉽게 마약에 손을 대게 됐음을, 또한 자신에게 최소한의 배려도 없는 성관계만을 목적으로 다가오는 남성들에게서 자신의 몸을 지킬 능력, 즉 최소한의 상식도 힘도 없는 채로 자라나게 되었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종교단체의 혐오 사상에 쉽게 물든 것 역시 다른 시각에서 볼 수 있다. 인정욕구가 제대로 충족되지 않은 유년기를 지낸 그녀가 자신의 살인을 오히려 숭배하는 종교 단체에 애착을 느끼고, 그 때문에 이들의 편협하고 호모포빅한 논리를 아무 의심 없이 따랐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은 한 인물에 대해 이렇게 길고 자세한 설명을 전 회차에 걸쳐 차근차근 펼쳐 보여준다. 심지어 이 인물이 다가 아니다.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의 초점 화자는 파이퍼 채프만이며, 초반에는 이 인물을 바탕으로 사건이 전개되지만, 사건이 전개되면서 각각의 에피소드들마다 교도소에 있는 다양한 인물들의 삶을 집중적으로 조명하기 때문이다. 정말 많은 인물의 삶이, 회차가 진행될수록 촘촘하게 제시된다. 그야말로 정말 ‘집요하다.’ 어쩌면 당연한 일일인지도 모른다. 앞서 말했듯이 누군가를 조금이라도 이해한다는 건 보통은 아주 오랜 시간과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니까.

 

부차적인 설명이나 설득 없이 다양한 인물들의 삶을 보여주는 것만으로 우리는 그 인물들에 대해서 좀 더 이해하고 공감하게 된다. 이는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로 이어진다. 그러니까 인간은 결코 선이나 악으로 나눌 수 없으며, 가해자인 사람도 어떤 순간에는 피해자였음을, 반대로 피해자도 어떤 순간에는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통감하게 되는 것이다.

 

나 역시 이 드라마를 보면서 지금껏 내가 타인을 너무 쉽게 평가하거나 정의하지 않았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지난날 타인의 행동들을 이해할 수 없었던 건 어쩌면 상대방의 탓이 아니라 타인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내 탓일지도 모른다.

 

 


02. 다양한 삶의 모습 조명


  

여기에 나오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지금까지 드라마에서 다루어졌던 사람들의 이야기와는 다르다. 우리가 지금까지 드라마에서 볼 수 있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는 우리와 매우 비슷한, 혹은 우리보다 더 대단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았을 것이다. 대중의 공감과 흥미를 이끌어내는 것이 중요한 대중매체에서는 어쩌면 그게 당연한 전략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로 인해 우리는 소외된 이들의 삶을 외면하게 되었다.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은 지금까지 우리가 접할 기회가 없어서, 관심이 없어서, 보기 불편해서 등등의 이유로 외면했던 소외된 이들의 삶을 조명한다. 리치필드 교도소를 바탕으로 벌어지는 이야기니, 만큼 재소자들에 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며 그중에서도 마약중독자, 정신병자, 동성애자, 트랜스 젠더, 불법 이주민 등 다양한 삶의 모습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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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다양한 삶을 둘러보면서 우리 세계의 지평은 더욱 넓어질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는 반복해서 범죄를 저지르고 교도소에 수감되는 사람들에 대해 충분히 나쁜 감정만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 드라마를 통해 다양한 수감자들의 삶을 본 후에는, 그들을 범죄에서 벗어나게 해줄 사회 시스템이 부재한 상황에서 그들이 생존을 위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반복해서 범죄를 저지르는 것밖에는 없음을 알게 될 수 있다. 또 어쩌면 우리 중 일부는 트랜스 젠더와 동성애자의 차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을 수 있다. 하지만 이 드라마를 통해 각각의 삶에 대해서 간접적으로 체험함으로써 이들의 차이를 이해하고 이들의 존재를 이해할 수 있다.

 

더욱 중요한 점은 이처럼 다양한 삶의 배경을 가진 인물들이 우리처럼 웃으며 즐거워하고, 때로는 화내기도 하고, 슬퍼하기도 하는 모습 역시 보여준다는 것이다. 이 덕분에 우리는 다양한 삶의 모습들에 대해서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결국 이들이 우리와 다르지 않은 하나의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03. 연대의 목소리


  

공감은 곧 연대로 이어진다. 사회적으로 소외당해왔던 소수자와 그 주변인의 경우에는, 그들의 이야기를 조명한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


실제로 극 중에서 ‘글로리아 멘도자’ 역을 맡은 ‘셀레니스 레이바’는 자신의 형제가 트렌스 젠더인 것을 밝히며 트랜스젠더 배우 ‘래번 콕스’가 극 중에서 ‘소피아 버셋’으로 트랜스 젠더들의 삶을 펼쳐내는 것이 자신에게 얼마나 유의미한지 인터뷰한 적 있다. 사회의 편견 때문에 소외당한 사람들에게는 자신이 혼자라는 게 아니라는 사실, 자신과 비슷한 존재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이 된다는 것이다.

 

특히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의 배우들은 각종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끊임없이 드라마와 비슷한 상황에 처해있는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관심과 연대를 촉구했으며, 시즌 종료를 알리는 동시에 이민자, 재소자 등의 권리를 돕는 비영리 사회단체를 돕기 위해 등장인물의 이름을 딴 ‘푸세 워싱턴 펀드’를 개설하기까지 했다.

 

다음은 푸세 워싱턴 펀드를 소개하는 동영상이다.



 


이와 같은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의 선한 영향력은, 매스 미디어의 영향력이 점점 커져가는 사회에서 컨텐츠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는지에 대한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더불어 펀드 개설을 통해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은 드라마가 단순한 유희 거리 이상의 존재가 될 수 있음을 다시 한번 확인함과 동시에, 사회적 문제를 공론화하는 것 이상으로 구체적인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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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은 미국 재소자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한국의 현실에는 적용할 수 없는 이야기가 많다. 다양한 인물, 다양한 인종들이 출연하는 드라마지만 아시아인은 단 두 명밖에 출현하지 않으며, 그들의 출연 빈도 또한 매우 적다는 점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다.


최근 한국 드라마에서도 다양한 여성들의 이야기,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가 조명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곧 한국에서도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과 비슷한, 혹은 그보다 더 좋은 드라마가 만들어질 수 있는 가능성은 매우 높다.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와 공감을 바탕으로, 소외된 사람의 목소리까지 포용하며 연대할 수 있는 한국의 드라마가 세상에 더더욱 많이 나오기를 소망해 본다.

 

   

[권묘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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