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우리 집 막내를 소개합니다 [동물]

강아지가 나에게 가져다준 변화
글 입력 2019.08.13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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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아홉 살로 넘어가는 겨울, 나는 집에 있었다. 뭘 하고 있었는지 정확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아무튼 내 방에 있었다. ‘띠-띠-띠-띠-’ 도어록 누르는 소리에, 나는 가족 중 한 명이 귀가했다는 생각을 했다. 몸을 일으켜 거실로 터덜터덜 나갔다. 현관문이 열리고, 집 안으로 뛰어 들어오는 못생긴 빡빡이 강아지와 마주했다. 으악-! 어릴 적 강아지에게 쫓긴 적이 있는 나는 소리 질렀다, 그것이 첫 만남이었다.

 

처음 엄마와 나는 아빠의 친구가 출장이나 여행을 가면서 강아지를 잠시 맡긴 것 일거라고 추측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집과 강아지는 거리가 멀었다. 내가 아주 어릴 때 강아지를 데려오자는 이야기를 꺼냈다가 단칼에 거절당한 경험도 있었고, 가족 구성원 중 그 누구도 강아지를 좋아하지 않았다. TV에서 보호자의 침대에서 같은 이불을 덮고 자는 강아지가 나오면 아빠는 늘 혀를 찼다. 그러던 아빠가 강아지를 키우려고 데려왔다고? 이건 몰래카메라거나 꿈이 틀림없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도 강아지는 계속 우리 집에 있었고, 엄마는 강아지에게 ‘세바스찬’ 이름을 지어주었다.

 

언젠가 강아지에 대한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지금부터 세바스찬과 함께 살면서 나에게 생긴 변화를 몇 가지 써보려 한다.

 

 


1. 조금 부지런해졌다



그전에 강아지를 키워본 적이 없기 때문에, 나는 인터넷에서 여러 가지 글을 읽었다. 강아지들이 산책을 좋아한다는 말에 나는 세바스찬을 데리고 집 근처 공원으로 갔다. 밖에 나가면 찬이는 항상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나무 냄새, 풀 냄새를 맡았다. 이렇게 넓은 공간에 온 게 처음인지 공원을 마구 뛰어다니기도 했다.


물론 목줄을 붙잡은 나도 같이 끌려다녔다. 내가 달리는 강아지를 쫓아 벤치 앞을 쌩 지나가면, 앉아있던 초등학생들이 ‘와, 저 사람 봐, 끌려다닌다’ 라고 말하는 게 들리기도 했다. 그때의 나는 적당한 산책 시간을 몰랐기 때문에 한 번 나가면 한 시간은 기본이었다. 그렇게 공원을 세 바퀴도 넘게 쏘다니다가, 강아지와 나는 둘 다 거의 탈진 상태로 집에 돌아오곤 했다.

 

집에서 이것저것 물어뜯으며 사고를 많이 치던 찬이는 산책을 다녀오면 체력이 떨어졌는지 조금 얌전해졌다. 산책의 좋은 점이었다. 또 공부하기 싫었던 나에게 산책은 당당하게 외출할 수 있는 좋은 핑계였다. 뛰어다니고 싶은 강아지와 공부하기 싫은 보호자가 만나 하루에 산책 나가는 횟수는 점점 많아졌다, 그렇게 세바스찬에게 실외에서만 배변 보는 습관이 생겼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밖을 고집한다. 창문을 열고 비 오는 창밖을 보여주며 오늘은 못 나간다고 해도 찬이는 왜 산책을 안 나가냐고 억울한 표정을 짓는다. 지독한 폭염에 땀이 뻘뻘 나도 산책을 나가야만 한다. 실외 배변 습관을 고치고자 산책을 안 나가 본 적도 있었다, 오줌을 참던 세바스찬이 방광염에 걸렸고, 결국 우리는 백기를 들었다.

 

하루에 기본 3번에서 5번 산책을 나간다. 아침에 늦잠을 잘 수도 없다. 늘 산책을 가던 시간이 넘도록 잠을 자면 옆에 와서 나가자고 시위를 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내가 그 몇 시간을 더 자는 동안 강아지가 오줌을 참았을 거란 생각에 미안한 마음이 잠을 깨운다. 눈을 뜨자마자 한 번, 너무 더워지기 전 점심쯤 한 번, 저녁 먹기 전 한 번, 저녁 먹고 선선할 때 한 번, 자기 전 한 번, 이런 식의 산책 루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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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산책이 내 일상의 일부가 되었다. 강아지가 산책을 할 때 특유의 표정이 있다. 산책을 하다가 찬아~ 하고 부르면 활짝 웃으며 나를 쳐다본다. 물론 단순히 흥분해서 입을 벌린 거고 그게 웃는 모습으로 보이는 것 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강아지가 그 표정을 지으며 걷는 모습이 너무 좋다.


내가 그 어떤 간식이나 장난감을 사다 주어도 볼 수 없는 표정이다. 단순히 내가 하루에 몇 번 밖에 데리고 나가주는 것만으로도 찬이는 행복한 표정을 짓는다. 마치 사진으로 찍어둔 것처럼 내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어서, 정말 산책 나가기 귀찮을 때 나는 그 모습을 떠올리며 몸을 일으킨다.

 



2. 일상 모든 곳에 함께 한다



가족끼리 드라이브를 가려고 다 같이 준비를 할 때가 있다. 먼저 옷을 다 입고 거실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어느 순간 찬이가 내 옆에 와있다. 그리고 마치 어디 나가냐? 라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가족들이 부랴부랴 나갈 준비를 할 때도 빤히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아빠가 차 키를 들면, 그때부터 안절부절 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현관까지 쫓아와 간절한 눈빛으로 아빠를 쳐다본다. 찬이는 아빠가 찬이의 그런 모습에 약하다는 걸 아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아빠에게 안겨서 같이 차를 탄다. 그리고 보조석에 탄 엄마 무릎에 앉아 여기저기 바깥 구경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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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이가 가족 외출에 끼는 것은 꽤 오래전부터 예삿일이다. 아빠와 같이 등산을 가기도 하고, 강아지가 출입 가능한 카페에 같이 들어가 커피를 마시는 부모님 옆을 지키기도 한다. 명절 날 할머니 집에 같이 가서 할머니 댁 강아지와 서열 싸움을 하기도 한다. 가족들도 가능하면 강아지를 데리고 다니려고 한다. 음식점 출입이 불가능한 찬이를 위해 야외 테이블에서 외식을 하는 날도 많다.


아침에 눈을 뜨면 이미 옆에 와서 꼬리를 흔들고 있는 강아지가 보인다. 거실에서 티비를 보다가 뒤를 돌아봐도 찬이는 항상 나를 쳐다보고 있고, 귀가한 나를 제일 먼저 반기는 것도 세바스찬이다. 가끔 집에 왔는데 찬이가 현관에 없을 때는 이상한 기분도 든다.



 

3. 동물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나는 내가 아르바이트하는 가게 근처를 돌아다니는 길 고양이에게 밥을 준다. 고양이가 올해 봄까지 한동안 안 보이더니 어느 날 홀쭉해진 모습으로 다시 나타났다. 처음에는 그 고양이를 알아보지도 못했다. 차 밑에서 내가 준 습식 간식을 한 봉지 다 먹은 고양이는 벌러덩 드러누웠고, 나는 고양이가 출산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새끼들은 어디에 두고 혼자 나타났는지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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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컨이 켜져 시원한 공기가 감도는 거실에 누워있는 세바스찬을 보며 나는 가끔 생각한다. 더울 땐 덥고, 추울 땐 추운 길바닥 인생을 사는 이 아이들이 구조되는 게 좋은 것일지. 시 보호소에 들어가서 공고 기한 내에 좋은 주인을 만나면 정말 좋겠지만, 만약 기한을 넘긴다면 그렇게 생을 마감하게 될지도 모른다.

 

올해도 복날을 앞두고 구조 단체에 의해 개 농장에서 살아나온 아이들이 많다. 매년 개고기 소비에 대한 논쟁이 일어난다. 개의 식용을 반대하는 사람들과 그들을 비난하는 사람들. 개를 소, 닭, 돼지와 같이 가축의 범주로 본다면 식용을 목적으로 도축할 수 있다. 하지만 개는 가축에 속하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축산법에 의하면 개는 가축으로 규정되지만, 축산물 위생법에서는 개를 가축으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 모호한 현행법 때문에 현재 우리나라는 식용을 목적으로 살고 있는 개와 반려동물로 살고 있는 개가 공존하는 양 극단의 상황이다.

 

불법 개 사육장은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온갖 학대를 받으며 개를 사육한다. 음식물 쓰레기를 먹고, 잔인하게 도축되는 과정을 지켜보며 스트레스받은 개의 고기를 ‘몸 보신’의 용도로 먹는 것은 모순적이라고 생각한다.

 

감고 있던 눈을 뜬 기분이다. 분명 내가 강아지를 키우기 전에도 길고양이들은 굶주리며 거리를 떠돌았을 것이고, 매년 개고기에 대한 논란은 일어났을 것이다. 세바스찬이 우리 집에 오고, 나는 자연스럽게 다른 동물들에 관심이 생겼다.

 



마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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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유명 유튜버 도슨 걸리가 올린 영상이 있다. 그는 반려견과 산책 중인 보호자에게 다가간다. 그리고 강아지가 정말 예쁘다며 10만 달러(한화 약 1억 1천만원)에 사겠다며 서류 가방 속 돈다발을 보여준다. 그의 제안에 보호자들은 일제히 거절한다. 보호자들이 거절하면서 한 말 중 내 마음에 와닿은 말이 있다. ‘10만 달러 없이 살 순 있어도 얘 없인 못 살 것 같아요.’ 나도 그 상황에 처한다면 같은 말을 할 것 같다.


세바스찬은 나에게 1억의 가치보다 소중한 추억을 만들어 주었고,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아마 반려동물을 키우는 모든 보호자들도 이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김혜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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