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수박, 너는 우리들과 참 닮았구나 [사람]

역시, 요즘 괜히 수박이 먹고 싶은 게 아니었나보다.
글 입력 2019.08.10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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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미술 학원을 다니면서 ‘여름’을 주제로 그림을 그린 적이 있다. 지금도 우리 집 장식장에 있는 그 그림에는, 우리 가족이 수박 밭 옆 정자에 단란하게 앉아 수박을 먹고 있는 장면이 담겨 있다. 당시에 내가 그렸던 수박 밭에 있는 수박은 모두 똑같이 생겼다. 청록색 바탕에 검정색 줄무늬를 가진 동그란 수박.

어느 때보다도 더운 여름 때문인지 수박이 먹고 싶은 날도, 마트에서 어떤 수박이 제일 맛있을지 고민하며 수박을 관찰하는 일도 많아졌다. 그리고 신기할 정도로 제각기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는 수박들을 보면서 어린 내가 믿었던 것처럼 ‘청록색 바탕에 검정색 줄무늬를 가진 동그란 수박’만 있지 않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꾸미기][크기변환]수박 사진.jpg



내가 마트에서 만난 수박들은 크기가 모두 제각각인 것은 물론이고, 검정색 띠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짙은 초록색을 띠는 수박이 있는가 하면 초록색보다는 연두색에 가까운 수박도 있었다. 검정색 줄무늬가 두껍게 있는 수박 얇게 있는 수박이 있었고, 줄무늬가 곧게 들어간 수박과 구불구불하게 들어간 수박이 있었다. 심지어 줄무늬가 아예 없는 수박도 있었다.


제각기 다른 개성을 지니고 있는 수박들을 보며,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과 참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은 외적으로 서로 다르다. 검정색 머리를 가진 사람이 있으면 갈색 빛이 도는 사람이 있고, 쌍꺼풀이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없는 사람도 있다. 얼굴형이 둥근 사람이 있는가 하면 뾰족한 사람도 있고, 키가 큰 사람이 있으면 작은 사람도 있다. 수박들이 표면의 짙기와 줄무늬들이 서로 다른 형태를 지니듯, 사람들도 각기 다른 외적 개성을 지니고 있다.


수박을 쪼개보면 그 속살도 겉모습만큼이나 개성이 넘친다. 새빨간 속살을 가지고 있는 수박들이 있는가 하면 분홍에 가까운 수박들도 있고, 까만 씨가 굉장히 많은 수박이 있는가 하면 아예 씨가 없는 수박도 있다. 씨들이 한 곳에 뭉쳐있는 수박이 있고, 씨들이 널리 퍼져 있는 수박도 있다.


서로 다른 수박들을 베어 물면, 수박이 가진 또 다른 개성도 알 수 있다. 조금 덜 익은 수박들은 사과를 씹고 있는 듯한 아삭아삭한 느낌을 주며 약한 단 맛을 낸다. 반면, 오래 숙성된 수박들은 씹을 때 물컹한 느낌까지 든다. 대신 한입 베어 물 때마다 설탕을 한 스푼씩 뿌려서 먹는 듯한 달짝지근함을 맛볼 수 있다.


이런 특성조차 사람들의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외적으로 아무리 비슷한 쌍둥이더라도 내면이 같을 수는 없다. 사람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같은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것은 불가능하고, 서로 다른 환경 속에서 살아가면서 서로 다른 성격, 생각, 재능, 가치관을 가지게 되게 때문이다.


소심하고 수동적이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활달하고 자율성이 강한 사람이 있고, 공부를 잘하는 사람이 있으면 예술적 감각이 뛰어난 사람이 있다. 모든 수박이 달지만 그 정도와 향에서 차이가 나듯, 사람들은 모두 빛이 나지만 어떤 방면에서 빛이 나는지가 차이가 날 뿐인 것이다.


역시. 내가 어떤 방면에서 빛이 나는 사람인지 방황하고 있는 요즘, 괜히 수박이 먹고 싶은 게 아니었나보다.



[김태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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