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사랑, 끊임없이 변주되는 누군가의 이야기 : 도서 '수수께끼 변주곡'

글 입력 2019.08.09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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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께끼 변주곡
- Enigma Variations -



사랑은 마치 수수께끼와 같다. 도저히 종잡을 수 없는 수수께끼 같은 이 마음은 끊임없이 요동치며 변주된다. 우리는 사소한 단서를 찾아 헤매며 모든 것에 이름을 붙이고 마음을 내어주곤 한다. 그 단서가 수수께끼에 대한 해답이 될 수 있을 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궁금증과 불안감이 늘 공존하기에 어제와 오늘의 나는, 아니 불과 몇 분전과 지금의 나는 바람에 깃털이 나부끼듯이 시시때때로 흔들리며 변화한다. <수수께끼 변주곡>. 사랑을 표현하기에 이다지도 알맞은 말이 있을까 싶다.


<수수께끼 변주곡>은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Call Me By Your Name)>의 원작 소설 <그해, 여름 손님>의 작가 안드레 애치먼의 장편소설이다. 그의 영화를 직접 접하진 못했지만, 간간히 접할 수 있었던 다양한 글과 영상들을 통해 그의 문장이 섬세한 감정표현과 독특한 색채를 지니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다섯 가지 사랑 이야기로 구성된 <수수께끼 변주곡>에서도 그만의 세밀한 표현과 생경한 감정들을 만날 수 있었다.




끊임없이 변주되는 사랑, <수수께끼 변주곡>



첫사랑, 봄날의 열병, 만프레드, 별의 사랑, 에빙던 광장, 총 다섯 가지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수수께끼 변주곡>은 계속해서 그 형태를 변화하는 사랑의 모습을 섬세하게 표현하고 있다.


다섯 가지의 단편은 각각 서로 다른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듯 했지만, 읽을수록 화자 '폴'이 살아가는 삶의 조각들을 하나하나 맞춰가는 느낌이 들었다.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에서 그의 삶은 끊임없이 변주되고 있었다. 불안하고 혼란스러운 미완의 사랑을 담은 ‘첫사랑’에서부터 그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 시선을 다른 데로 돌리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의 눈이 너무 맑았다. 그 눈을 만지고 싶은 건지, 그 안에서 헤엄치고 싶은 건지 알 수 없었다.


- 나는 더욱 그렇다고 대답하고 싶었다. 당신과 함께 있고 싶다고, 당신의 아들이 되고 싶다고, 당신이 오기 전에 작업실 문을 열어 놓고 당신이 돌아간 후에 닫고 싶다고, 아침에 커피와 따뜻한 빵을 가져다주고 레몬을 짜고 바닥에 빗질과 대걸레질을 하고 싶다고, 부모님과 집과 모든 것을 포기시키라고, 나는 당신이 되고 싶다고.


- “난 친구가 한 명도 없었어요. 당신이 내 유일한 친구였어요.” 말했다는 사실도 깨닫지 못한 채 말했다. 내가 정말로 하려던 말은 난 당신의 친구였어요. 계속 내 것으로 남아주세요, 였다.


- <첫사랑> 중에서



섬세한 표현과 감성적인 문장들은 이내 잔잔했던 마음에 크고 작은 돌을 던져왔다. 미성숙한 자의 애절하면서도 혼란스러운 날것의 감정들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낭만적이고 달콤했던 첫사랑. 그 기억을 넘어 ‘사랑’이라는 존재를 처음 느낀 소년의 혼란스러움과 치솟는 욕정, 터질 것만 같은 감정들이 휘몰아치듯이 느껴졌다. 한 여름의 열병과 같은 사랑. 바닷가의 짭짤함과 끈적함을 간직한 어느 여름밤을 닮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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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사랑이라는 것을 알아차리는 데에도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서툴기에 아름답고, 처음이기에 달콤한 기억 대신 쓰디 쓴 첫사랑의 민낯을, 폴은 시간이 흘러 담담히 마주한다.


이게 사랑일까, 아니면 나를 비롯한 세상 모든 사람이 살면서 빛나는 로맨스를 갈망하듯이 로맨스를 쫓는 사람을 위한 연민일 뿐일까?


- <봄날의 열병> 중에서



- 나를 보는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어요. 정말 인생을 즐기면서 사는구나. 나는 누구에게나 추파를 던집니다. 하지만 내가 정말로 추파를 던지는 상대는 당신이죠.


- 혼자이고 행복할 수 없을 때조차 행복해 보입니다. 당신을 원하는 마음이 나를 행복하게 만듭니다.


- <만프레드> 중에서



이어지는 ‘봄날의 열병’과 ‘만프레드’에서는 애인에 대한 불신과, 애인이 아닌 다른이를 향한 욕망과 열렬한 사랑에 대해 이야기한다. 끊임없이 변주되는 그 사랑의 종착지를 도저히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사랑’이라는 존재를 알아차린 그는 더욱 솔직하고 노골적으로 그 사랑을 속삭인다. 여전히, 계속해서, 사랑을 속삭인다.

‘별의 사랑’, ‘에빙던 광장’에서는 반복되는 욕망과 닿지 못한 인연, 점차 무뎌져가는 감정과 사랑의 모호함에 대해 이야기한다. 책 속에서는 다섯 챕터에 걸쳐 수수께끼 같은 사랑과 욕망을 이야기하고 있다. 노골적인 성적 표현과, 애인을 곁에 두고도 계속해서 다른 이에게 욕망을 품는 폴.

어디로 튈지 가늠조차 할 수 없게 변주되어가는 그의 사랑을 보고 있자면, 의아함과 불쾌함이 드는 동시에 그의 삶 속에 깊숙이 잠식한 외로움이 느껴져 애처로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끊임없이 변주되고 변화하는 사랑의 기저에는 그 무엇으로도 채우지 못한 외로움이 있었으리라.

그가 진정 사랑했던 이는 누구일까. 변주되어가는 삶 속에서 그는 언제나 열렬히 사랑을 노래했다. 그렇기에 이 수수께끼에 대한 해답은 없을 수도 있다. 왜인지 허탈함과 안타까움이 느껴지기도 했지만 사랑이라는 모호함에 대해, 정해진 것 없이 계속해서 변화해나가는 사랑의 모양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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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하나의 감정으로써는 도저히 표현해낼 수가 없다. 기쁨과 낭만, 욕심, 후회, 분노, 불안, 지루함. 그 모든 것을 감싸 안는 것이 사랑이다. 그 속에서 감정과 시간들은, 그리고 우리는 끊임없이 변주된다. 우리의 사랑은 어떤 형태를 지니고 있는가? 분명한 건, 그 사랑은 언제까지나 사랑이라는 수수께끼에 대한 명쾌한 해답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언제나 사랑에 최선을 다 해야 하는 이유이지 않을까.



[김수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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