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초대, 환영, 그리고 물; 영화 "호크니" 리뷰

글 입력 2019.08.08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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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호크니를 알게 된 것은 순전히 그의 뒤를 따라다니는 네 자리 숫자 때문이었다. ‘1019’. 그는 흔히 한화로 약 1019억이라는, 역대 최고 금액에 자신의 그림이 팔린 최초의 살아있는 작가로 소개되었다. SNS에 반복해서 올라오는 ‘호크니’라는 이름 세 자와 ‘1019’라는 숫자에 무감해질 때 쯤, 운좋게 그를 소재로 한 영화 <호크니>(이하 <호크니>)를 만나 볼 수 있었다.


영화를 보기 전까지는 자주 가는 식당에 걸려 있던 그림(꽤나 마음에 들어 항상 그 오른편에 있는 자리를 택하곤 했다)이 그의 작품인지도 몰랐던 나였지만, 영화는 나와 같은 미술 문외한들의 걱정도 부드럽게 다루어 주는 친절함을 가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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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영상이라는 매체를 통해 관객을 호크니라는 한 인물의 장(場)으로 초대하려 하는 듯한 영화의 태도는 관객을 작품 속으로 초대하려고 했던 작가의 끊임없는 고민과 맞닿아 있다. 관객으로서 그저 객석에 앉아 카메라 앵글의 동선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호크니의 이모저모를 뜯어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없는 듯 자연스럽지만 묵직한 존재감을 가지고 있는 영화의 다양한 배경 음악들도 그 몰입감에 한몫한다.


관객이 스크린을 바라보고 있는 자신의 시선을 자각하게 되는 지점은 바로, 영화가 ‘소실점’에 대해 이야기할 때이다. 호크니는 작품 감상에 있어 관객 자체가 회화의 소실점이 되기를 바랐다. 작품에서 이어져 나오는 직선들이 관객에게로 수렴해야 한다는 생각은 어딘가 감동적인 구석이 있다.


인위성을 표상하는 작품의 경계를 무너뜨린 <더 큰 첨벙>과 같은 작품이나, 얼굴에 진한 입체감이 스민 두 명의 인물이 등장하는 작품들에서 사람들이 흔히 몰입감을 읽어내는 것은 그러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소실점에 대한 영화의 설명으로 관객은 시선의 견고함을 스스로 무너뜨리고, 소실점의 위치를 자신에게로 이전한다. 호크니의 '그림으로의 초대’는 영화에서 ‘호크니로의 초대’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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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영



<호크니>에서 호크니는 그 자신과 그가 관계 맺어 온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에 의해 말해진다. 적어도 영화 안에서 호크니는 주위 사람들에게 환영받고, 사랑받는 인물이다.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와 감정적인 애착을 중요시하는 그는 사람들과 함께일 때 자유로워 보인다. 또 영화에 출연한 호크니의 지인들은 그에 대한 자신의 기억을 말할 때 제각기 즐거워 보인다. 그와의 에피소드를 제작진에게 들려주며 숨이 넘어가도록 깔깔 웃던 한 남성 분이 기억에 남는다.


또 호크니는 주변 환경과 자신의 작품 세계를 융합하는 데에 있어 거리낌이 없다. 하지만 그의 태도는 도전적이기보다는 자연스럽다. 그는 자신의 예술성을 외부 환경에 자유롭게 내맡기고 노출시킨다. 세계의 작은 조각으로서 자연에 스며든 그는 자신이 마주친 새로운 풍경, 인물, 화풍이 자신의 예술 세계에 영향을 끼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호크니와 그를 둘러싼 환경 사이에는 끊임없는 에너지 교환이 일어난다. 그래서인지 그의 그림은 전부 어제 오후 세 시에 그려졌을 것만 같은 생동감과 적막감이 있다. 호크니의 예술은 시간의 손아귀에서 자유롭다.


냉정한 직선으로 자신의 영역과 가능성을 구획하려 하지 않는 호크니는 마치 카멜레온같다. 변화의 가능성을 끝없이 열어둔 그는 예술 안에서 한없이 자유롭고, 안전하다. ‘왜 그리는가’보다 ‘어떻게 그리는가’라는 질문에 천착한 그의 예술 세계는 정말 매력적이다. 그 때문인지 물을 관찰했던 그의 눈을 상상하면 왜인지 모르게 짜릿하다.


돌연 금발 머리를 하고 나타난 호크니, 피카소의 예술과 미국의 풍경에서 번뜩이는 힌트를 얻은 호크니, 여태 거부해 왔던 추상을 다시 그리며 시점과 공간에 대해 고민한 호크니, 카메라와 아이패드를 받아들인 호크니는 모두 세상을 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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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



몇 시간 동안 호크니를 담던 카메라는 영화의 끝머리에서 그를 다시 세상으로 돌려보낸다. 그를 담은 카메라 앵글에서는 단단한 힘과 균형이 느껴진다. 호크니를 가까이에서 듣기를 원하는 당신이라면 이 영화를 놓치지 않기를 바란다.



[이승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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