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호크니 HOCKNEY :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참 맛있다 [영화]

여기 그림 맛집이에요!
글 입력 2019.08.07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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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디 워홀이 찍은 데이비드 호크니


데이비드 호크니 작가를 알게 된 건 미술 입시를 준비하면서부터다. 그 당시 나는 나무나 숲 그리기를 즐겨 했다. 나뭇가지의 방향성, 굵기, 줄기의 결, 나뭇잎의 방향과 질감. 어느 하나 같은 나무가 없었다. 같은 지문을 가진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고 하는 것처럼 나무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다양성에 놀라게 된다.


그때 우연히 봤던 호크니의 나무와 숲 그림에 엄청난 매력을 느꼈다. 시각 자료를 모을 수 있는 사이트에 ‘David Hockney’ 폴더를 만들어 호크니의 숲을 가득 담아뒀었다. 내가 나무를 그리는 방식과 비슷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나무가 가진 저마다의 지문을 존중하려는 것이 느껴졌다. ‘내 눈엔 다 똑같이 생긴 나무일 뿐이야.’가 아니라 ‘나무에게도 각자의 영혼이 있어.’이야기하는 느낌이었달까.


호크니 그림 속에서 선들은 하나하나 살아있다. 어느 하나 뭉개지는 선 없이, 설령 뭉개진다 하더라도 그것은 의도된 뭉개짐이었다. 누군가는 얕게, 누군가는 빠르게, 누군가는 느리게, 또 누군가는 강렬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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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gger Trees Near Warter

© DAVID HOCKNEY



특히 ‘Bigger Trees Near Warter’ 작품이 좋았다. 가지에 잎이 없는 걸로 보아 겨울나무들인 것 같은데, 겹겹이 쌓인 가지들의 선이 저마다 색과 목소리를 내고 있다. 좀 더 오랜 시간 들여다보면 나뭇가지의 생김새뿐만 아니라 그림의 공기에서도 차가운 아침 바람이 느껴지는 듯하다. 나무 밑에 조그마하고 귀여운 노란색의 꽃들이 피어있다. 어쩌면 겨울의 끝자락쯤인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이 작업은 거의 사람 키만 한 대형 작업으로 50개 캔버스가 모여 큰 하나의 작품을 이룬 그림이다. 그 크기가 나무의 속삭임을, 마음 더 깊은 곳까지 닿을 수 있게 해준다. 나무 뒤로 살포시 보이는 집까지 재밌다. 창문에는 불이 꺼져 있다. 그 집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아직 자고 있는 걸까. 거대한 작품의 크기는 실제 그곳에 있는 것보다 더 생생한 느낌을 가져다준다.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호크니 작업은 참 맛있다.

 


나무들은 우리가 볼 수 있는
생명력의 가장 큰 징후

- David Hockney



다큐멘터리에서 그의 가족이 이야기한다. ‘호크니는 아주 어릴 때부터 손에 무언가 쥐고 그리고 있었다’고. 호크니는 정말로 그림을 사랑하는 것 같다. 그러니까 그게 그림에서도 느껴진다. 회화는 다른 매체와 달리 손맛이 많이 느껴진다. 평면 위에 선 하나를 그을 때 그 한 줄에는 작가의 감정, 생각, 테크닉 모든 것이 담긴다. 호크니가 그은 생동감 있는 선에서 그가 얼마나 그림을 사랑하는지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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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Bigger Splash

© DAVID HOCKNEY



호크니 작업의 대표 소재 중 또 다른 하나는 수영장이다. 호크니 작업을 검색하면 정말 다양한 수영장 그림이 나온다. 특히 ‘A Bigger Splash’는 호크니가 고민했던 원근법에 대한 실험이 돋보이기도 하는 작업이다. 우리가 평소 알고 있는 원근법과 뭔가 다르다. 수영장의 물과 건물 그리고 나무 사이에 깊은 거리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림 뒤쪽으로,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가는 느낌이 아니라 이상하게 떠 있는 느낌이다.

 

이 그림은 이상하게 평면적인 느낌을 준다. 반면에 튀어 오르는 수영장의 물방울들은 사실적이다. 파편 하나하나를 아주 정교하게 그려 넣었다고 한다. 이 작업 속의 물방울 표현을 위해 호크니는 무려 2주라는 시간 동안 여러 획들을 쌓아올렸다.


대부분 작가들은 자신만의 스타일이 생기면 그 스타일을 고수하고, 새로움에 대한 도전을 두려워하기도 한다. 하지만 누군가는 새로움에 대한 시도를 멈추는 순간, 작가의 수명은 끝이라고 이야기한다. 그 말에 따르면 기존의 법칙에 따르지 않고, 자신의 작업에서 벗어나 계속해서 새로운 도전과 연구를 하는 호크니야말로 진정한 작가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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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 호크니 지인들의 입을 통해 재미있는 에피소드, 그리고 과거 호크니의 생각들을 들을 수 있는 건 흥미롭다. 호크니의 머리 색은 원래 금발이 아니라 염색 모라는 사실, 학창시절에 있었던 유쾌한 에피소드들.


사실 영화로는 부족한 느낌이 있었다. 정말 귀엽고 예쁘고 단단한 연필 하나를 샀는데, 그 속에 심이 없는 느낌. 열기구를 정말 재미있게 타고 내려왔는데, 친구들에게 이야기할 즐거움이 없는 느낌. 호크니의 에피소드들을 하나하나 엮어 두기는 했는데 하나로 엮어 놓은 실이 계속 풀리는 느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업에 대한 비하인드 에피소드를 들을 수 있다는 건 즐거웠다. 호크니의 첫사랑 이야기, 학창 시절 그의 이미지, 가족이 하는 이야기, ‘A Bigger Splash’ 작업 당시 물 파편을 2주 동안 그려 넣었다는 이야기 등. 호크니와 호크니의 지인의 입을 통해 생생한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으니. 무엇보다 이 영화를 보고 나면 호크니에 대한 당신의 관심과 애정이 더욱 샘솟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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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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