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당신은 지금 어떤 사랑의 모습을 느끼고 있나요? - 수수께끼 변주곡

글 입력 2019.08.06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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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표지를 보고, 정확히 말하면 상의를 탈의한 두 남자가 서 있는 그림을 보고 책의 내용을 짐작할 수 없었다. 처음에는 남자들끼리의 사랑을 다룬 책이겠거니, 하고 읽기 시작한 이 책은 인생의 마디마디에서 사랑의 모습에 대해 말을 하는 듯 했다.


책은 폴의 생애 주기에 걸친 여러 형태의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소제목은 크게 다섯 개로, ‘첫사랑, 봄날의 열병, 만프레드, 별의 사랑, 애빙던 광장’이다. 이 중 특히 기억에 남는 챕터 몇 개를 소개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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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소제목인 ‘첫 사랑’에서 폴은 섬에 살았던 과거에 사랑을 느꼈던 목공 난니에 대한 사랑을 풀어 놓는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고 말할 수 없었던, 난니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난니에게 드러내던 중 차갑게 외면을 당한 후 폴은 상처를 받는다.


본토에 가서 오래 생활하고 난 후 폴은 다시 섬에 찾아가 난니의 발자취를 찾는다. 집에 돌아온 폴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집 한 켠에 쌓여있던 아버지 이름 앞으로 온 소포와 편지들을 들춰본다. 그 중 난니와 아버지가 주고 받던 편지들을 발견하고, 폴은 난니에게 답장을 보낸다.


폴이 다시 난니에게 답장을 하지 않는 것으로 첫 번째 챕터인 ‘첫사랑’이 마무리되는데, 읽고 난 뒤 이 챕터는 독자에게 어떤 말을 하려고 했는가 곰곰이 생각해보게 되었다. 바로, 과거 뜨거웠던 첫사랑의 기억을 성인이 된 후, 또는 시간이 아득하게 지난 후 덤덤하게 ‘그땐 그랬지’라며 추억으로 묻고 보내줄 수 있는 것이 사랑의 한 형태가 아닐까- 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 아닐까.


어릴 적 한 번쯤 마음에 두었던 사람은 우리 마음 속에서 현재 어떻게 자리하는가에 대하여 생각해본다면 독자 모두가 한 번쯤 경험해보았을 감정을 작가는 남성 간 사랑이라는 형태를 빌려 이야기하고 있다.


*


네 번째 소제목인 ‘별의 사랑’은 의미심장한 제목만큼이나 여운이 남는 장이다. 폴은 대학 재학 시절 잠깐 데이트했던 클로에를 떠올린다. 잠깐 나누었던 사랑이기에 피차 여운이 별로 남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4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뒤 다시 만난 폴과 클로에는 함께 뜨거운 밤을 보낸다.


이들이 보낸 뜨거운 밤은 못다한 사랑이었을까, 지나가버린 옛 추억을 되새김질하는 무언의 발악이었을까. 내 감상은 후자에 가까웠다. 폴과 클로에는 4년이라는 세월 동안 사랑을 대하는 관점도, 서로를 대하는 관점도 많이 달라졌다. 폴은 클로에가 자신에게 일정 거리 이상 가까워지지 않는다며 실망하고, 클로에는 그런 폴의 집착에 거부감을 느끼는 모습을 보인다.


또 다시 4년이라는 세월이 흐르고 그들은 거짓말같이 다시 만난다. 4년 전과 같이 뜨거운 사랑을 나누지만 또 다시 풀리지 않는 갈등을 겪는다. 1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만나고 헤어지고, 질긴 인연을 이어오던 폴은 결국 클로에와 거리를 두는 결정을 내린다.


청춘의 추억으로 남겨 놓아야 할 사랑을 다시 꺼내고 이어가려다 결국엔 그만두게 된, 지극히 현실적이고 일어날 수 있을 법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어 많은 공감이 가는 챕터였다. 아무리 노력해도 밤하늘의 별을 딸 수는 없는 것처럼, 바라만 보아야 예쁜 그 무언가도 있지 않을까. 적어도 폴에게 클로에는 기억 저편에 놓고 바라보는, 그런 별의 사랑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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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소제목인 ‘애빙던 광장’은 폴의 중년 시기의 사랑을 그리고 있다. 삶을 살아가면서 많은 것이 바뀌지만 사랑을 보는, 대하는 관점도 나이에 따라 바뀌어 간다는 점이 느껴지는 장이었다. 문화계에서는 노인들의 사랑을 다룬 작품들이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과 감동을 주며 화제가 되곤 한다.


이들의 사랑은 청춘의 불타오르는 사랑과는 결이 다른 것이 특징이다. 애빙던 광장에서도 중년의 폴이 젊은 여성을 마음에 두지만 예전과 같이 관계가 뜨거워지거나 깊어지지는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계속 그녀와의 사랑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고 그녀를 그리는 모습에서, 이전과는 한창 달라진 폴의 사랑을 대하는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사랑은 다 같은 사랑이 아니다. 누구를 사랑하는가, 어떤 시기에 사랑하는가에 따라 사랑을 바라보고 대하는 관점은 아주 다양하게 바뀔 수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줄 수 있는 책이다. 당신은, 지금 어떤 사랑의 모습을 느끼고 있는가.






수수께끼 변주곡
- Enigma Variations -


지은이 : 안드레 애치먼(André Aciman)

옮긴이 : 정지현

출판사 : 도서출판 잔

분야
소설 / 외국소설 / 영미소설

규격
130×195(mm) / 페이퍼백

쪽 수 : 336쪽

발행일
2019년 07월 17일

정가 : 13,800원

ISBN
979-11-965176-9-4 (03840)





[황혜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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