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상처가 머무는 자리 [도서]

줌파 라히리의 『내가 있는 곳』을 읽고
글 입력 2019.08.04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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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본인에게 불편한 장소, 긴장감이 눈녹듯 사라지는 장소, 추억이 묻어있는 장소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머물던 모든 공간은 지금 내가 있기까지 나에게 크고 작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며, 나의 몸과 마음은 내가 몸담던 물리적·심리적 장소를 닮아 있다. 그래서 나를 스쳤던, 그리고 지금 머물고 있는 모든 공간들이 나의 일부로 남아 있을 것이다. 이민자 출신으로서 장소의 이동, 타지에서의 상실에 관한 예리한 분석으로 훌륭한 소설을 배출한 작가 줌파 라히리가 5년 만의 소설 『내가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모국어인 영어 대신 이탈리아어로 도전한 첫 소설로서, 46가지 공간에서의 에피소드를 옴니버스 형식으로 엮어 공간과 상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

이 소설의 서술자는 어릴 때부터 마음의 상처를 달고 지내온 인물이다. 고지식한 아버지는 ‘나’의 요구를 들어준 적 없고, 어머니는 반대로 집착이 너무 심했다. ‘나’는 그 속에서 희망과 열정이 거세된 아이로 하루하루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 탓에 ‘나’는 세상에 대한 기대 없이, 절망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데 익숙한 아이가 되었다. 그렇게 자라온 아이는 기대를 품어도 좋은 순간에조차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다.

자신의 요구를 거절당하는 것에 익숙해서, 거부당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길 때면 재빨리 희망을 거두어들여 좌절의 가능성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는 것이다. 그렇게 성인이 돼서도 누군가에게 마음을 쉬이 열지 못하고, 친구관계나 이성관계 모두 위기를 맞이하고 타인과 멀어질 뿐이다.


아빠는 엄마와 내가 귀찮게 굴면 벗어나기만을 바라면서 문제를 더 어렵게 했어요. 나와 엄마가 싸우는 동안 아빠는 암묵적으로 분명히 말했어요. 뭘 원해, 나는 상관않겠어. 아빠는 잔인하고 비겁한 그 두 문장만을 되풀이했어요. 그래서 난 아빠를 위험한 상황에 끌어들이지 않고, 아무런 도움도 기대하지 않는 법을 배웠어요. (p.182 「묘소에서」 中)



세상에는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이 반드시 존재한다. 우리를 괴롭히는 거대한 악과 절망도 있지만, 대화와 타협, 배려와 인간미로 문제를 타개할 수 있는 여지는 늘 어딘가에 있다. 아무리 세상이라는 벽이 견고하고 웅장해보여도, 희망이 침투할 작은 균열은 어딘가에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 사람은 세상이 자신의 요구를 들어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한다.

어릴 적부터 자연스러운 꿈과 욕망을 지속적으로 관철당하며 자기 앞에 이상을 실현시켜줄 사람이 나타나도 감히 믿지도, 원하는 걸 요구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렇게 소설의 ‘나’는 어릴 적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매 순간 자신이 마주한 현실에서 스스로의 한계를 재확인한다. 그렇게 시간의 흐름 속에서 자신이 상실해가는 것들을 하나하나 인식하게 된다.

그러나 ‘나’는 새로운 공간 속에서 스스로의 삶을 밝혀줄 수 있는 작은 빛들을 발견하기도 한다.


다음 날 우리는 각자의 방문을 열고 나와 같은 승강기를 타고 내려가서 헤어진다. 매일 아침 매일 저녁 약속한 것도 아닌데 서로를 기다린다. 사흘 동안 이 침묵의 관계는 희미하게나마 날 세상과 화해하게 해준다. (p.77 「호텔에서」 中)



난 계산대에 돈을 지불하러 간다. 사람들이 줄서 있다. 난 지갑을 손에 들고 있다. 내 앞 손님이 잡담을 늘어놓는데 기차가 도착한다. 그렇게 빨리 가차가 도착하리라 예상하지 못했다.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중략) 난 부부에게 작별 인사도 새해 인사도 하지 못한 채 달려간다. 기차에 올라타자 신기하게도 내가 세상으로부터 보호받는다는, 적어도 오늘 돈 받지 않고 공짜로 먹을 것을 주며 순수한 친절을 베풀었던 그 카페 주인에게 비호받고 있다는, 바보 같지만 신기한 느낌이 든다. 새해 첫날 그 인정 있는 행동이 내게 활력을 주고 마음의 빗장을 활짝 열게 해준다. 기차를 타고 가는 동안 난 마음이 울먹울먹하다. (p.177 「역에서」 中)



화자는 장소를 이동하며 새로운 경험들을 하게 된다. 본인이 늘 몸담고 있던 세계에서 벗어나기 시작하며 자신을 억압하던 마음의 상처가 덜어지기도 한다. 첫 번째 인용문에서는 단순히 누군가와 같은 구조의 방에서 지내고 있다는 인식만으로 세상과 화해할 여지가 발생한다. 이는 세상을 타개하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에서 파생된 화해가 아니다. 단순히 누군가가 나와 같은 모양의 공간에 나와 같은 자세로 누워있을 거란 상상이 동질감을 빚어낸 것이다.

나를 억누르던 기존의 세계는 [‘나’↔‘세계’]의 대결구도를 조성하여 나를 괴롭힌다. 그러나 ‘세계’의 일부인 한 사람이 나와 동일한 상황에 놓여있다는 인식, 누군가가 나와 같은 공간에 있다는 사실은 결국 한 사람이 나의 곁에 있어준다는 느낌으로 이어진다. 그 동안 ‘나’를 괴롭혀온 고독은 본질적으로 자신을 알아주고 생각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없다고 단념한 데서 비롯되는데, 공간에서의 경험으로 이 지긋한 고독을 극복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두 번째 인용문에서는 완벽한 타인에게서 인정(人情)을 느끼게 된다. 낯선 공간에서의 우연한 경험은 ‘나’가 살면서 자기 안에 구축해온 공포의 세계와 대치되고, 상처에서 벗어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한다. 인용에서 ‘나’는 종국에 울먹울먹한 감정을 느낀다. 이런 인정은 너무 낯설고 자신이 살면서 경험해온 두려움이 부정되는 이 순간이 고맙지만 믿기지 않는다. 자신을 지배해온 “강하고 준엄하고 무서운 세계”와 이 찰나의 아름다운 장면 사이의 위화감에서 울먹임이라는 아름다운 화해가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일상 속에서 이러한 경험들은 서술자에게 자신을 둘러싼 세상을 받아들일 수 있는 작은 빛이 돼준다.

물론 이 새로운 공간들은 서술자를 두려움의 내면에서 해방시키지 못한다. “내가 있는 곳”은 계속 바뀌지만, 결국 “내가 사는 곳”은 일상의 시작점인 동시에 끝점인 한 방이고, ‘나’의 공포 역시 같이 머무는 공간이다. 이 내면적 상처의 공간에서 시작되고 끝나는 일상 속에서 불안과 두려움에 스스로를 가둘 수밖에 없으며, ‘나’가 시간을 보내는 사무실, 카페, 수영장에서도 불안감과 불쾌감이 늘 함께한다. 이 수많은 물리적, 심리적 공간들을 순회하며 나는 작은 빛을 경험하고도 스스로의 상처를 다시금 확인해야하는 순환에 빠진다. 그래서 이 작은 빛들은 사실 “작은 빛”인 동시에 영속성 없는 “짧은 빛”에 불과하다.


5시 20분에 나는 카페에 다시 갔다. 그는 테이블에 앉아 공항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는 남자처럼 그렇게 날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들어오는 것을 봤을 때 그의 눈에 떠오른 열정을 잊지 못할 거다. 불행히도 그는 결혼해 정착한 남자였고, 난 그와 짧은 러브스토리를 만들었다. 그는 다른 도시에 살았는데 이따금 낮에 일 때문에 이곳에 오곤 했다. 덧붙일 게 또 뭐가 있는가? (중략) 식당 측은 남자 친구가 식탁에서 담배 피우는 걸 허락해줬다. 난 그가 아내와 어느 도시에 사는지도 알지 못했다. 그는 내 집에 온 적이 없다. 난 그의 전화를 기다렸고, 매번 약속을 잡고 나갔다. 짧은 기간의 빛, 더 이상 나와는 상관없는 뜨거운 에피소드였다. (p.124 「카페에서」 中)



서술자는 지금보다 어렸던 어느 날 자신이 평소에 가는 카페에서 한 중년 남성의 고백을 받는다. 그러나 둘은 사는 장소도 다르며 남자는 가정이 있는 사람이다. 끝이 예고된 만남에도 관계를 시작하고 관계는 역시 예고되었던 끝을 맞이한다. 긴 시간이 지난 후 ‘나’는 이를 “더 이상 나와는 상관없는 뜨거운 에피소드”라고 평가하고 있다. 이 상처받은 자아에게 스쳐 지나간 사람이고, 아무것도 남지 않은 관계이다. 하지만 이 장면에서 화자는 시간이 지나서도 당시의 관계를 떠올리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희망없는 일상 속에서 여전히 과거의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을 뿐인 자아에게 중년 남성과의 관계는 ‘카페’라는 공간에서 떠오르는 하나의 추억이 된다.

‘나’는 본인과는 “더 이상 상관없”게 된 기억이라고 말하지만, “짧은 기간의 빛”은 본인이 머물고 지나가는 한 장소에 투영되어 자신의 생활 속에 영원히 녹아있을 것이다. 상처에 잠긴 자아나 더 이상 상관없다고 방어적으로 표현하지만, 사실 그 추억은 지금 역시 본인에게 소중한 “짧은 빛”으로 승화된 것이다. “짧은 빛”은 우리의 생활로부터 구원이 되어주지는 못한다. 일상은 여전히 편하거나 불편한 공간들을 반복적으로 오가는 시간들이다. 그러나 “짧은 빛”은 우리 안에 남아 이따금씩 떠오르고, 어둠 속에 침잠하는 불안의 시간을 버틸 수 있게 도와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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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한 한 여인의 일상을 공간에 대한 옴니버스 형식으로 압축시킨다. 46개의 단편적인 이야기는 시간 순서에 상관없이 등장하여 독자에게 소개되어, 정착하지 못한 한 사람의 모습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상처받은 자아는 누구에게도 확신을 갖지 못하고 자신의 공간들에까지 의심을 품어 결국 어디에서도 마음이 평온을 맞이하지 못한다. 화자의 자아는 소설을 이루는 모든 단편 속에 산재해 있어, 어느 한 지점으로도 수렴하지 못하고 배회한다. 결국 서술자는 서로 다른 공간 속에서의 감각적인 경험으로 스스로의 색깔을 희석해버리며 자아를 정의하길 거부하고 있다.


그녀는 손톱 정리를 계속한다. 주변 손톱을 조심스레 잘라낸다. 작은 더미가 쌓인다. 나의 죽은 파편이다. 이윽고 만족했는지 걸죽한 흰 크림을 바르고 뜨거운 스팀 수건으로 두 손을 덮는다. 그녀가 내 몸의 작은 부분을 완벽히 하는 작업에 몰두하는 동안 거울로 내 모습을 보지 않는다. 이 순간, 우리의 접촉을 파괴하고 싶지 않다. 그녀의 친절을 즐기고 싶을 뿐이다. 지금은 우리가 하나로 연결돼 있지만 서로 분리된 존재라는 걸 알면서도 그녀만을 바라보려 애쓴다. 이십 분 동안 나와 거울 사이에서 이 여인은 내 이미지로부터, 내 슬픔으로부터 날 보호한다. 결국 적어도 이때만큼은 나도 아름답다고 느낀다. (p.71 「뷰티숍에서」 中)



뷰티숍에서의 일화에서 서술자는 젊고 아름다운 여직원을 통해 자신의 슬픔을 외면하고 있다. 얼핏 뷰티숍이라는 장소에서 한 여인의 매력에 빠져 본인을 비관하게 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젊은 여직원의 모습은 과거 본인의 모습이기도 하다. 이 공간은 낯선 존재로써 못난 지금의 모습을 가린다기보다는, 젊을 적 스스로의 기억을 젊은 여직원에 투영해 현재의 “슬픔”을 지우려는 것이다. 결국 뷰티숍은 과거의 나를 발견할 수 있는 공간이 된다.

상처받은 ‘나’의 자아는 응집되지 않고 파편화되어 있고, 각 파편들은 과거와 현재 나의 공간들에 담겨 있다. 결국 줌파 라히리가 『내가 있는 곳』에서 무질서한 옴니버스 형식으로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각 공간에 머물고 있는 파편화된 자아들에 관한 46개의 파편화된 이야기인 것이다. 작가는 옴니버스 구조를 채택하여 상처받은 한 사람의 모습, 수렴하지 못하는 자아를 효과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를 통해 여러 공간에 녹아있는 ‘나’의 파편화된 자아는 46개의 파편화된 이야기 안에 담기게 된다. 작품은 시간적으로 무작위하게 배열된 이야기들이다. 이러한 무질서한 파편들의 나열을 통해서 짧은 빛과 상처의 재확인이 더욱 아름답게 그려질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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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줌파 라히리가 이 작품에서 도전한 새로운 시도들에 주목해보고자 한다. 줌파 라히리는 인도계 미국 작가로서 상실과 상처의 문제를 훌륭하게 이야기해내는 작가이다. 21세기 영미문학에 이민자의 이야기를 다루며 현대의 고통과 상처를 아름답게 풀어낸다는 평을 받고 있다. 그런 그녀가 이탈리아어 소설을 발표했다. 그리고 그녀가 이야기를 전개하는 방식 역시 많이 바뀌었다. 옴니버스 형식으로 소설을 풀어내게 되었고, 등장하는 주인공도 이민자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지 않다.

작가가 소설에 새로운 시도를 가하는 과정에서 소설이 풍기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 모국어가 아닌 동시에 짧은 글짓기로 전개되는 이 글에서는 서사의 연쇄적인 맞물림이 느슨해졌다. 소설을 이루는 46편의 이야기는 대부분 10개 문단 내외로 구성되는 짧은 글이다. 그래서 서사 자체의 추동력, 그러니까 이야기 속에서 다른 이야기가 태어나고 전개되며 한 편의 서사가 쭉쭉 전개되는 느낌이 약하다. 이 속에서 서사성은 실종되고 수많은 단편들만 남아 서로 뒤죽박죽 얽히며 묘한 분위기를 형성하는데, 이로써 오히려 파편화된 한 사람의 내면을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기존에 사용하지 않던 언어를 사용한 것 역시 같은 효과를 준다. 한 사람이 언어를 잃게 되는 것(물론 줌파 라히리의 경우에는 언어를 잃은 것이 아니라, 새로운 언어에 도전한 경우이지만)은 고유한 표현력을 잃게 되는 것과 같다. 수채화만 그리는 사람이 유채화로 전향한다고 생각하는 것과 비슷할 것이다. 자신의 재료(혹은 고유의 언어)가 가지고 있는 특성으로 작품을 빚어내다가 새로운 질감의 재료로 바꾸게 되면 완전히 다른 분위기의 작품이 빚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글의 원료인 언어를 바꾸는 새로운 시도는 단편으로써만 포착할 수 있는 짧은 빛, 그리고 공간 속에 깃들어 있는 파편화된 자아를 독특한 감수성으로 표현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줌파 라히리의 새로운 시도는 독자들에게 익숙지 않은 울림과 감동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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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있는 곳』은 이름 그대로 공간에 관한 이야기이다. 고향을 떠나 쓰는 낯선 장소들, 그 안의 낯선 사람과 그 중에도 사랑할 수 있는 이웃들을 담고 있다. 동시에 수많은 공간들 속에 필연적으로 깃들어 있는 상처와 상실을 마주해야하는 한 자아의 모습이 줌파 라히리의 새로운 감성으로 구현된다. 이 글에서 드러나는 서술자의 아픔은 비단 소설 주인공의 것만은 아닐 것이다.

하루가 다르게 바뀌어가는 세상은 개인이 감당하기에는 가혹하고, 그런 개인들이 만나 만들어지는 사랑 역시 불안하며, 그 속에서 태어난 세대는 자신을 둘러싼 공간이 두렵다. 커다란 세계와 마주해야하는 상처받은 영혼들에게, 작가의 새로운 도전이 빚어낸 아프지만 아름다운 이 한편의 소설이 “독자들 본인이 있는 곳”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이 되길 바란다.


[한승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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