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당신에게는 아름다움의 정의가 무엇입니까? - 연극 "메이크업 투 웨이크업 2"

글 입력 2019.08.04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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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의 시작은 스산했다. 조명이 모두 꺼진 채 한 여자가 멜로디를 흥얼거리는 사운드가 무대 안을 꽉 채웠다. ‘여고괴담’과 같은 공포영화에서 들릴 법한 사운드였다.


‘시작을 왜 이렇게 하는 거지?’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여자 주인공 두 명이 무대 앞으로 나왔다. 속옷 차림의 두 여자는 서로를 바라보다가 이내 옷을 마구잡이로 갈아입는다. 보통 여자 사람들의 외출 광경이었다.(남자들도 물론 그럴 것이다.) 입었다가 벗었다가를 반복하다가 외출 직전 마지막까지 고민해서 고른 옷을 입고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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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가림


외출한 두 여자의 행동이 이상하다. 잘 걷다가 갑자기 주변을 두리번거린다거나 뒷목을 만지작거린다. 겁에 질린 것처럼 몸을 으슬으슬 떨기도 한다. 왜 이런 부자연스러운 행동을 하는 걸까?

그녀들의 행동을 설명할 수 있는 현상은 단 하나. 바로 ‘하이드비하인드 사건’ 때문이다. 꾸미지 않는 여자들이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는 갑작스러운 현상 때문에 이 두 여자는 물론 도시의 여자들이 겁에 질린 것이다.

이 때문에 한 단체에서 ‘새뷰티 운동’을 전국적으로 전개하는데, 참 보는 내내 어처구니가 없었다. 웃음이 터지는 구간이 있었지만 씁쓸한 웃음이랄까. 새뷰티 운동을 보면서 '이 사회에서 저렇게까지 해서 아름다워져야하는 당위성이 있을까'라는 생각도 문득 들었다. 연극을 보면서 필자 스스로도 돌아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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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가림



글쎄, 필자도 그런 사람들 중에 한 명이었을지도 모른다. 트렌드에 민감한 사람. 물건 사러 단 10분을 나가는데 가볍게라도 꾸미지 않고서는 밖을 나가지 않는 사람. 지금보다 좀 더 어렸을 때는 유행에 민감하고 꾸미는 것을 좋아했다. 지금은? 그런 꾸밈에 지쳐가는 중이다.


그런 현상에 인색해졌다. 요즘에는 민낯으로도 밖을 잘나간다. (선크림은 발라 줘야한다. 피부가 상하기 때문) 2년 전만 해도 분기마다 옷 쇼핑을 꼭 하고 색조 화장품 사는 것에 재미가 들려 꾸미는 데 소비를 많이 했었던 것 같다.


얼마 전 유럽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여행을 다녀보니 누가 한국인인지 눈에 확 들어오더라. 특히 여성 관광객들을 보면 눈에 띄게 한국인임이 티가 난다. 비슷한 옷의 소재, 색, 화려한 꽃무늬 등 옷에서 한 번 티가 나고, 사진 찍는 모양새에서 티가 난다. 여행 인증 샷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 좀 더 예쁘게 나오고자 하는 마음에 사진을 몇 십, 몇 백 장을 찍어야 하는 노력이 갸륵하다. 본인 만족을 위해서라는 말은 변명처럼 들린다.


어찌되었든 타인의 눈에도 아름다워 보이면 본인의 만족에 한 스푼 얻는 격이 아닌가? 그게 곧 본인에 대한 관심이 높다는 의미이니까. 나쁘다는 게 아니다. 필자도 그런 경험이 많다. 다만 이제 조금은 지쳤다는 것이다. 남의 눈에 예뻐 보이려는 별의 별 노력들이 무슨 의미인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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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가림



아름다움에 대해 노력하는 자세는 물론 보기 좋다. 스스로를 가꾸면 삶에 대한 만족도가 높아지고 더 과장해서 말하면 자립심도 높아진다. ‘노력’이란 것을 하게 되니 다른 일에 대해서도 자신감이 높아진다. 하지만 SNS 광고를 보면 혀를 내두르게 된다.


다이어트를 위한 약부터 시작해서 건강 보조제, 화장품 광고들을 보면 무슨 생각이 드는가? 아름다워지고 싶어하는 대상을 향해 ‘절박한 아름다움’을 앞세워 광고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제 속지도 말고 속이지도 말자. 여성들은 언제까지 외적인 아름다움을 위해 또 다른 노력을 해야 하는가? 다시 한 번 말하자면, 필자는 이제 그런 행위에 지쳐간다.


필자가 이렇게 생각이 바뀐 것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상처를 받기도 받았다. 그러나 생각보다 사람들은 스스로를 제외하고 ‘나’에 대해 관심이 없거니와 모든 사람들에게 예뻐 보이려고 꾸밀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외모 평가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다면 상처받지 말고 단호히 무시하면 그만이다.


유행에 선도된 아름다움에 반격하여 그러한 코르셋에서 벗어나자는 여성들도 점차 증가하고 있다. 아름다움에 대한 기준들이 점점 다양해지고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연극 <메이크업 투 웨이크업 2>에서는 묻는다. ‘당신은 생존할 수 있을 만큼 아름다운가?’


물론 필자는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세상에 아름답지 않은 사람은 없다. 자신을 잘 알고 성장해나가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은 모두 아름답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외모에 대해 스트레스 받는 여성들이 날개를 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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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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