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씁쓸한 핫플레이스, 문래창작촌 [문화공간]

그들은 생존을 위해 공존한다.
글 입력 2019.08.04 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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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래창작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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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주말 오후, 문래동을 찾았다. 푹푹 찌는 더위에도 나들이를 나온 사람들로 북적였다. 영등포구 문래동에 위치한 문래창작촌은 현재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가장 떠오르는 핫플레이스이다. 원래도 유명하다면 유명한 장소였지만 근래 들어 각종 예능에서 문래동을 찾기 시작하는 등 미디어 노출이 많아지면서 인기가 늘었다.

기존 서울의 명소처럼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정도는 아니었지만, 삼삼오오 모여 이동하는 사람이 많았다. 주로 젊은 세대인 그들은 한 손에 스마트폰을 들고 연신 눈에서 물음표를 지우지 못한 채 길을 헤맸다. 서로에게 길을 물으며 목적지로 향하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그 수가 주민으로 보이는 이들보다 많아 그 인기를 실감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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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래동은 일제 강점기 때, 방적 공장이 들어서며 방적 기계를 '물래'라고 부른 데에서 유래되었다. 그 이름값을 하듯 문래동은 철강 산업이 활발했는데 2000년대 초부터 예술가들이 몰리며 예술가 마을을 형성했다. 철공 산업이 90년대부터 하락세를 탈 때 홍대, 대학로 등지에서 밀려난 예술가들이 문래동으로 유입된 것이다. 그 덕에 지금의 문래동은 철공소 장인과 자유로운 창작가의 터가 공존하는 문래창작촌으로 명성을 얻고 있다.

한쪽에선 윙윙대는 기계 소리와 기름 냄새가 나고, 다른 한쪽에선 주홍 조명 아래 연신 사진을 찍는 소리가 들린다. 회색빛 시멘트의 거친 질감과 바람이 불면 삐걱거리는 소리를 뱉을 것 같은 녹슨 철 간판엔 'OO 철강'이 써있다. 1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곳의 작은 칠판엔 '아메리카노', '파스타'란 글자가 아기자기한 그림과 함께 쓰였다. 강한 철의 느낌과 고즈넉한 벽돌의 조화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요소가 공존하는 이곳이 바로 문래창작촌.

 

; 젠트리피케이션
 
왜 문래동에 예술촌이 형성되었는가를 알려면 '젠트리피케이션'이란 개념을 이해해야 한다. 젠트리피케이션이란 낙후된 도심 인근이 활성화되어 고급 상업지대가 형성된 결과로 본래 거주하던 주민이 밀려나는 현상을 뜻한다.

한때 예술가의 성지였지만 높아진 임대료에 하나둘 쫓겨나 이제는 관광객과 같은 유동인구만이 거리를 채운 홍대 거리를 대표적인 사례로 꼽는다. 그 밖에도 경리단길이나 대학로, 삼청동, 성수동 등등 젠트리피케이션의 사례는 서울 곳곳에 존재한다. 이들의 공통점은 예술가들이 창작활동을 하기로 알음알음 소문이 나 소위 '힙한 핫플'로 떠오르다가 어느 순간 식어버리거나 흔한 번화가1이 된 점이다.

예술 활동을 하기 위해선 공간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경제력이 떨어지는 예술가들은 더 저렴한 임대료와 물가를 찾아야 한다. 그렇게 찾은 동네에서 예술 활동을 이어가면 그곳은 점차 활성화되고 발전한다. 동네가 발전하면 예술을 찾는 유입 인구도 늘어나 예술가로선 제 작업을 선보이기 수월할 테지만, 그것이 마냥 좋은 일은 아니다.

그들에겐 거세게 치솟는 임대료를 감당할 재력이 없으므로 쫓겨나듯 짐을 싼다. 그들은 곧 새로운 터전에 자리를 잡고 창작활동을 이어나간다. 그러다 또다시 그 동네가 유명해지고 발전하면 집값은 오르고, 다시 짐을 싸고. 떠돌고. 그것의 반복이다.



; 문래예술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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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래창작촌에서 15분 정도 걸어 서울남부지방법원 등기국을 끼고 돌면 큰 건물 하나가 나온다. 서울문화재단의 젊은 예술가 지원사업 중 하나인 문래예술공장이다. 문래창작촌과 실험적 예술을 아우르는 복합창작지원 센터라고 한다. 공동작업장과 박스씨어터, 갤러리와 녹음실 같은 다양한 시설은 문래예술공장이 장르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예술을 지향한다는 걸 보여준다.

그 밖에 예술가들을 위한 게스트하우스가 있는데 일일 요금이 만원일 정도로 매우 저렴하다. 이곳은 단순히 작업공간만 제공하진 않는다. 작품 제작 지원금과 멘토링, 크리틱 등을 지원하고 해외 진출까지 도와주는 총괄적인 지원사업이다.

그러나 문래예술공장이라는 명칭처럼 '공장'이라는 개념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예술가들이 작업하고 연습하는 작업실로 말이다. 필자처럼 잔뜩 기대하고 찾아갔다가 관람할 무엇도 없어 당황하지 않으려면.



; 생존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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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까진 철공 계통의 본거지니까 여기가. 근데 주변에 그런 게 온다는 게 못마땅해. 아직은."

"물론 그 사람들이 들어옴으로 인해서 이 동네가 다른 걸로 활성화되는 건 맞겠죠. 아무래도 공존을 해야 되니까."

"한분 두분씩 들어오니까... 혹시나 있던 사람들이 밀리지 않나. 지금 여기 있는 분들이 거의 많이 없어졌어요."



문래동을 찾은 한 방송에서 나온 주민 인터뷰 중 일부이다. 앞서 말했듯 문래동은 젠트리피케이션에 의해 방랑하던 예술가들이 새롭게 터전을 잡은 곳이다. 그들에게는 새로운 안식처가 된 이곳은 본래 다른 직종의 둥지였다. 40년이 넘은 철강 산업의 중심지는 철강소 인부들의 자긍심이었고 삶 자체였다.

그런 그들의 입장에선 새로이 자리 잡은 젊은 예술가들이 아니꼬울 터. 단순히 다른 직업인이 사업을 시작했기 때문이 아니라 서울시의 지원을 등에 업은 유입으로 기존의 주민들이 자리를 잃는다는 것이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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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차 밝아지는 동네 분위기와 20대 방문객의 증가. 카메라를 든 방송국 사람들의 행렬. 인산인해를 이루는 골목. 이것들은 마을의 발전을 의미하지만, 곧 집값의 상승을 내포한다. 임대료가 앞으로 더 오를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게다가 좋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경기침체에 하나둘 철강소의 셔터가 내려졌다. 십 년이 넘는 세월 동안 동고동락하던 옆 가게 동료가 하루아침에 문을 닫거나 터를 옮긴 것은 원주민인 그들로 하여금 새 주민을 좋은 시선으로 볼 수 없게 만들었다.

젠트리피케이션의 피해자로 쫓겨난 이들이 아이러니하게도 젠트리피케이션의 원인이 되어 이곳 문래동을 또 다른 사례로 만들었다. 먼 미래에 그들 중 누군가는 다시금 떠나야 할지도 모른다. 예술가이든, 철강 산업인이든. 또다시 악순환이 답습되려 한다.



; 공존을 위하여

문래동에 터를 잡은 어느 젊은 작가는 먹고살기가 어렵지만 좋아하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그에게는 예술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작업실 겸 카페를 운영하는 그는 문래동에 새롭게 터를 잡고 자신의 작업물을 전시한다. 작업을 전시만 하기에는 생계를 위협받는다. 그처럼 대부분의 작가는 생계를 위한 사이드잡이 있다.

그들은 기존 주민인 철강소 상인들의 입장을 이해한다. 동시에 그들의 입장도 이해해달라 호소한다. 돈이 없는 젊은 예술가들은 어느 곳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것일까. 하지만 이 패기 넘치는 젊은 예술가들은 좌절하거나 떼쓰지 않고 이 자체를 예술로 승화시키고자 공존을 위한 손을 내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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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문래동을 대표하는
철강 산업의 상징물을 제작하기도 하는가 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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칙칙한 시멘트벽에 그림을 수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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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곳에 자리 잡은 예술가들의 흔적은 철강 산업을 존중하며 그들과 함께 공동체를 이루고자 하는 마음을 예술로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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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문화재단에서 주최한 '2019 문래창작촌 지원사업 MEET'을 통해 문래창작촌의 예술인이 지역 생태계를 활성화하는 노력도 하고 있다. 이 사업은 2010년부터 현재까지 이어온 것으로 올해 10주년을 맞아 회화, 설치, 연극, 음악, 지역축제와 같은 다양한 예술 장르의 프로그램이 선보여지고 문래동의 특성을 활용한 프로젝트도 전시된다.

11월에는 문래동 철공소 노동자들이 삶을 대하는 방식과 흔적을 시각적으로 해석한 전시가 열릴 예정이고 문래동 철공소 골목에서 수집한 철조각을 전시할 것이다. 우리는 예술가와 철강 산업인들이 함께 자생하기 위해 이들의 작업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 씁쓸한 핫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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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게는 생존의 문제인데 그것을 낭만적으로만 소비하는 것은 괜찮을까. "우와 신기하다." 입을 벌리고 구경하다 이 자체로도 무례함이 될 거란 사실을 깨달았으니 꽤 늦은 감상이었다.

언뜻 봐도 방문객으로 보이는 사람들의 신기한 시선이 언짢은 듯, 못마땅한 눈길을 보내는 철강소의 노동인들. 그들의 눈빛을 보며 그제야 그들의 처지를 이해했다.

사실 따지자면 본인은 예술가가 될 뻔했기에 예술가의 불안정한 생계가, 유목민처럼 떠도는 생활이 더 공감 갔다. 그래서 예술가와 철강 산업인의 이해갈등을 안타까이 여기면서도 마음 한편에선 예술가의 편을 들고 있었다.

문래창작촌이라는 공동체가 형성되기 전부터 그곳은 철강 산업인에겐 삶의 터전일터. 하지만 새 주민이 들어온 이후로 남들처럼 먹고 살기 위한 생존 방식이 누군가에게는 눈요깃거리가 됐다.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는 방문객에 의해 동물원 원숭이가 된 기분은 전혀 탐탁치 않을 것이다. 역시 서로의 입장이 되어보지 않는다면 이해하지 못할 고충이 따르는 법이다.

점점 더 발전할 문래창작촌은 어쩌면 앞으로의 미래를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떠나고 새로운 이가 이곳을 찾아 짐을 푸를 것이다. 역사가 반복되어 거대한 자본이 예술가든 철강 산업인이든 할 것 없이 모두 몰아낼 수도 있다. 프랜차이즈 가게가 빼곡히 들어선 흔하디흔한 번화가로 바뀔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그것은 개개인의 소시민이 바꿀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여서 혹여 예상 가능한 미래가 닥쳐와도 막을 수 없다.

문래창작촌은 단순히 데이트 코스로 알맞은 흥미로운 명소가 아니다. 이곳은 투쟁하는 삶의 터전이자 공생하는 사람들의 공간이다. 위태로운 대한민국 청년들의 몸부림이자 저버린 기성 산업의 현실이다. 또한 악순환이 반복되는 대한민국 부동산의 단면이기도 하다. 그들은 서로를 인정하고 도우며 공생할 수 밖에 없다. 단지 호기심에 방문한 문래동에서 사회의 현실을 읽고는 씁쓸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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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재이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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