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호크니의 그림에 빠져 [영화]

글 입력 2019.08.02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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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일찌감치 <데이비드 호크니 전>을 보기 위해 서울시립미술관을 찾았다. 입장권을 예매하고 갔지만 예매한 표를 찾기까지도 꽤 오랜 시간 서서 기다렸던 기억이 난다. 전시장 안으로 들어갔을 때 도슨트 투어가 진행되고 있었는데, 관람객이 너무 많아 잠시 기다렸다가 들어가야 했을 정도였다.


그리고 다른 일로 서울시립미술관을 찾았는데, 며칠 후 종료되는 전시임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이 있었다. 오히려 방학을 맞아 더 많은 사람이 관람을 하기 위해 전시장을 찾아, 1층 로비 전체가 전시장에 들어가기를 기다리는 이들로 가득 차 있었다.


물론 유명한 작가인 것은 분명하지만, 예전부터 국내에서 사랑받았던 것도 아니고, 특별히 대중적인 대표작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무엇이 이토록 많은 사람을 1시간씩 기다리게 했을까? 세계에서 가장 비싼 작가라는 수식어가 그토록 매력적이었던 것일까? 이러한 궁금증으로부터 나의 영화 감상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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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호크니>는 데이비드 호크니 본인과 그림의 모델이 되어 준 이들, 그의 동료들이 그의 작업에 관해 이야기하는 다큐멘터리다. 그가 미국에 처음 가게 된 시기부터 아이패드로 그림을 그리는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의 작품을 시간 순서로 제시한다.

그러나 그가 작품 활동을 하는 내내 다루었던 주제나 표현 방법들은 꼭 시대순으로 나오지는 않는다. 전시 <데이비드 호크니 전>은 테이트 컬렉션으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당연히 모든 작품을 볼 수 있었던 것이 아니다. 그래서 그의 더 많은 작품이 보고 싶었던 이들에게는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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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이번 전시의 대표 작품으로 광고했던 ‘더 큰 첨벙’만큼이나 청량하고 아름다운 색채로 가득했다. 인터뷰와 작품뿐만 아니라 중간중간 화려한 색채의 배경 위에 그가 한 말들이 제시되는데, 그것도 마음에 들었다.

구글에 ‘David Hockney Quotes’를 검색하면 수많은 결과가 나오는데, 그의 작품세계를 만들어 온 원칙들을 함축적으로 담고 있다 (흡연을 찬양하다시피 하는 것들도 있다.). 이것들을 종합하여 요약하자면, 그는 주변의 간단한 소재들을 활용했고, 공간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싶어 했다.

그가 공간을 그릴 때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소실점이다. 전시회에서도 볼 수 있었던 그의 대형 작품들은 관객을 소실점으로 한다. 그랜드 캐니언이나 숲 등 광대한 자연을 표현할 때, 그것들이 한 지점에서 작아지며 모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관객을 중심으로 넓게 펼쳐지게끔 했다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 그의 그림들을 보며 실제로 그 공간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던 이유를 알게 되었다. 호크니의 그림은 우리를 다른 곳으로 데려간다. 그리고 영화는 그 체험을 간접적으로 하게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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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역대 작품들이 펼쳐진 방을 보여준 작품도 떠올랐다. 넓은 방에 펼쳐진 그림들 가운데 어깨를 살짝 움츠린 그의 모습은 ‘세계에서 가장 비싼 작품을 그린 작가’, ‘거장’이라는 수식어가 무색하게 그저 인상 좋고 귀여운 할아버지 같다.

영화의 초반부에는 호크니에 대해 말하는 주변 인물들의 인터뷰가 이어지는데, 누군가 냅킨에 호크니의 특징을 적어주었다는 것이 재밌었다. ‘의도치 않게 무례하다(Unintentionally rude)’라는 표현이 관객들이 웃음을 터뜨리게 했는데, 이것이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호크니의 이미지를 잘 표현하는 것 같다. 때로는 직설적으로, 때로는 유쾌하게 그를 둘러싼 이들과 관계를 형성하고, 그 인물과 관계 그 자체에 대한 생각에서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어낸다.

회화사에 큰 영향을 미친 역사적 사건 중 하나는 사진의 등장이다. 구상 회화보다 추상 회화가 유행하고 있었던 당시의 미국에서도 호크니는 꿋꿋이 자신의 방식으로 구상 회화를 그렸다. 그리고 ‘사진이 해낼 수 없는 것’에 집중했다. 사진을 찍는 데 걸리는 시간은 감상자들이 그것을 감상하는 데 걸리는 시간보다 훨씬 짧지만, 회화를 완성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감상하는 시간보다 훨씬 길다는 그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그래서 사진은 아주 짧은 순간을 포착하는 데 지나지 않지만, 회화는 더 긴 시간을 잡아둔다는 것이 그의 해석이다. 실제로 그가 <더 큰 첨벙>의 흰색 물살을 그리는 데만 일주일이 걸렸지만, 관객은 그 세밀한 부분을 아무리 열심히 보더라도 몇 분 이상을 보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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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호크니는 사진은 사람이 보는 것과 다르다고 말했다. 그렇기에 흑백 사진을 찍어 형태만 그리고, 색채는 자신에게 보이는 대로 표현했다. 그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친 피카소의 입체파 그림들처럼 한 공간을 여러 각도에서 찍어 이어 붙인 위와 같은 작품을 내놓기도 했다.

이러한 그의 생각은 일반인들이 가지고 있는 구상 회화와 사진에 대한 편견을 깬다. 결국, 예술은 자연과 사물을 모방하는 존재가 아니라, 누군가의 눈을 통해 본 것을 표현하는 것임을 보여준다.

이 모든 호크니의 신념과 작품세계에 관해 알고 전시를 찾은 이들은 많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생각은 작품을 통해 표현되고 있었고, 사람들을 그림으로 불러들이게 되었다. 말로 설명할 수 없지만 우리는 그림으로 따뜻한 그의 시선을 느낄 수 있고, 그의 세밀함에 감탄할 수밖에 없게 된다.

전시회를 찾지 못했던 사람, 전시회를 왔던 사람 모두 즐길 수 있는 영화고, 예술 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좋은 학습 도구가 되리라는 생각도 든다. 상영 시간 내내 그가 자주 그렸던 물 그림에 풍덩 빠진 느낌이 들었는데, 더운 여름 많은 관객이 그의 작품에 빠지는 경험을 해보았으면 한다.


[김채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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