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아무것도 찾지 않는 방랑자의 여행기 [여행]

#6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 입력 2019.08.03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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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찾지 않는 방랑자의 여행기

#6 이 여행을 기억하는 법


Opinion 민현



[17] 뮌헨



“독일? 너무 선진국이라 재미 없을 것 같은데..”


내가 가진 편견이 무색하게 뮌헨에 도착했을 때, 그곳에서는 LGBT 축제가 한참이었다. 거리는 축제의 열기로 가득하고, 사람들은 그냥 땅바닥에 앉아 담배를 물고 맥주를 마시며 서로가 서로를 열광시키고 있었다. 한 번도 본적 없던 그 축제의 풍경은 내 생각과는 많이 달랐다. 다들 무지개로 색칠하고, 어깨동무를 하고, 다들 취해있긴 하지만 똑같이 얼굴에 조그맣게 무지개를 칠한 경찰들의 관찰 아래 질서 있는 축제를 즐겼다. 정말 말 그대로 남녀노소가 함께하는 축제였고 그 열기에 들뜬 나는 뮌헨에서 하루를 보내지 못한 걸 두고두고 후회했다.



* IDGA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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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유럽에 와서 가장 어색하면서도 마음에 들었던 점은 남들에게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는 것도, 남들에게 강요받는 것도 없었다. 알게 모르게 한국에 있을 땐, 이것저것 강요받았던 기억이 많았다. 남들의 시선도 시선이지만, 그 시선을 미리 의식해 나도 모르게 스스로 내 행동이나 생각을 강요했다. 그리고 내가 그렇게 강요받는 걸 소름끼치게 싫어한다는 사실도 이곳에서 알게 되었다.


그러나 요즘엔 우리나라에서도 의식적으로 남들의 강요에서 벗어나려는 시도가 많아졌다. 하지만 독일에서 봤던 것처럼 진짜 모두가 모두에게 “IDGAF!”를 외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내가 생각하는 것과 행동하는 것 때문에 나에게 닥칠 시선과 그 후폭풍을 아직 조금 두려워한다. 뮌헨의 LGBT 축제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중간 중간 보였던 대형 프랜차이즈들의 지원과 무지개를 크게 걸어놨던 멋진 성당이었다. 물론 우리의 문화가 그들과는 다르겠지만 그 모습엔 박수를 치고싶었다. 과연 우리나라에서도 맥도날드가, 혹은 명동성당이 대외적으로 LGBT 축제를 지원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6시간동안 잠깐 머물렀던 뮌헨이었지만, 그 열광적인 도시는 가장 짧은 시간에 가장 강렬한 기억을 남긴 도시가 되었다. 유럽에서 가장 점잖고 재미없는 나라 같았던 독일에서 나는 또 하나의 편견을 깼다. 다음에 오면 꼭 이 멋진 도시에 더 긴 시간을 약속했다. 그렇게 축제에 취해, 그리고 맥주에 취해 나는 비틀거리며 동유럽으로 발을 옮겼다.




[18] 프라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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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낭만의 도시. 프라하, 이름만으로도 아름다운 이 도시는 밤에 도착하자마자 빛이 났다. 두 도시를 거치면서 느껴지는 동유럽의 분위기는 전체적으로 굉장히 차분했다. 그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사람들은 한 손에 맥주를, 또 다른 손엔 담배를 들고 있다. 숙소 근처에 양조장이 있어 물엿 내리는 향과 비슷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적당한 술집에 가서 바로 나온 맥주를 마셔보니, 체코 맥주를 사람들이 극찬하는 이유를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더하여 사람들이 프라하를 찾는 이유에는 까를교와 프라하 성이 한 눈에 보이는 야경을 빼놓을 수 없다.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여행지에는 물과 그 물에 비치는 빛이 있어야 하는 듯, 이곳에도 블타바 강과 그 강에 비치는 노란 불빛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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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들리게 된 존 레논 벽에는 자유의 상징처럼 그래피티가 그려져 있었다. 존 레논과 비틀즈의 가사가 적혀있었다는 이 벽엔 수많은 그래피티가 겹쳐져 있다. 누구나 원하면 칠할 수 있는 이 벽은 공산주의에 맞선 체코 청년들의 전쟁터이자 기념지었고 우리는 자유의 의미를 되새긴다. 벽을 배경으로 사진찍는 사람들 뒤로 홍콩의 자유를 위해 응원하는 그래피티가 눈에 들어왔다. 누군가는 물감을 보고 그리고 흩뿌리는 것만으로 자유를 새기지만, 누군가는 피를 뿌려가며 얻어내는 게 자유라고 생각하니, 길거리 가수가 부른 비틀즈 노래가 서글프게만 들린다.




[19] 포르투갈




*리스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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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 때문에 구시가지 대부분이 파괴되고 리스본 사람들은 새로운 시가지를 세웠다. 포르투갈 사람들이 최후의 날이라고 기억하는 그 지진 이후, 리스본은 그렇게 새롭게 변모한 모습으로 관광객들을 맞는다. 이틀 정도 머무른, 그리고 어느 나라를 가든 수도는 꼭 한번 가보고 싶은 마음에 넣었던 여행지 리스본은 구불구불한 언덕길과 그 길을 위태롭게 오르는 트램, 그리고 어디에나 그려져 있던 그래피티로 기억난다.



*포르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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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다니면서 포르투가 싫었다는 사람들은 본 적이 없었다. 여행지에 대한 생각은 각자 다르겠지만 또 모든 사람이 좋다는 여행지는 꼭 가보고 싶었다. 그렇게 길고도 긴 여행의 마지막 종착점은 포르투가 되었다. 이제는 익숙하다 못해 내 일부가 되어버린 배낭의 무게를 어깨에 달고 작은 항구 도시 포르투에 도착했다. 마지막 도시라는 낭만과 이제 여행도 곧 끝난다는 허탈감이 가득 메운 포르투의 공기는 계절에 비해 차가웠다.



* 여행기도 끝


85일에 걸친 내 여행도 이제 끝났다. 생각보다 정말 빨리 흘러간 시간에 나도 놀랐다. 여행 계획을 짜던 허한 순간부터 아무 것도 찾지 않는 방랑자가 되기로 결심한 출발 전날, 유럽에 와서 지냈던 날들이 정말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간다. 여행이 일주일정도 남았을 때쯤 친구가 전화를 하다가, 두 달 간 여행을 하면서 뭔가 달라지는 게 있는지 아니면 마음속에서 느껴지는 게 있는지를 물어보았다. 사실 대답하기 쉽지 않다. 여행기의 제목도 ‘아무 것도 찾지 않는’으로 시작하는데 뭘 얻었겠냐고 장난스럽게 대답하고 말았다.


사실 처음 이 제목을 붙였을 때는, 역설적으로 아무 것도 찾지 않음으로써 얻어지는 무언가를 기대했다. 이렇게 집을 오래 떠나 있는 것도, 이렇게 멀리 떠나 있는 것도 처음이기 때문에 엄청난 변화가 있을 것 같았다. 물론 새로운 세상을 보고 새로운 경험을 하면서 나와 세상에 대해서 새로운 점을 발견했다. 이렇게 오랜 시간 오롯이 혼자 있었던 건 아마 이번 여행에서 처음 겪어보는 경험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외로움도 느끼고 많은 생각을 하고 새로운 사람들도 만났다. 그렇게 알게 된 건 내가 외로움에 생각보다 취약하다는 점이었고,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다 같다는 사실이었다.


이렇게 간단하게 끝날 내 여행이 아닐텐데, 막상 정리하려 하니 왜 이렇게 간단하게 쓰이는 걸까. 마지막 후기를 쓰기 전에 그간 썼던 여행기를 다시 읽어 보았다. 8주 간 짧은 글에 거창하게 여행기라는 제목을 붙였지만 그 여행기들은 사실 깊은 생각을 다듬어서 적기보다는 지나가는 생각들을 붙잡아 조각조각 붙인 것 같았다. 어쩐지 짧고 비연속적인 후기가 아쉬워 마지막 글에는 여행지에 대한 얘기가 아니라 ‘여행’ 자체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보고 싶었다. 이 두 달간의 여행에서 들었던 생각을 글에 모두 담는 건 꽤 긴 호흡이 될 것만 같다.



* 경험의 시대, 여행


불과 몇 십 년 전만 하더라도 우리나라는 해외여행을 위해서는 국가의 승인을 받아야했던 나라였다. 세상은 변했고 우리 세대는 경험의 시대에 살아간다. ‘여행’은 물론 다양한 경험이 필수인 시대가 되었다. 개인적 경험은 단순히 그 개인의 주변에 머물지 않고 SNS 혹은 개인 미디어를 타고 나가 상품이 되기도 하고, 경쟁력이 된다. 여행은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경험 중에서 가장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우리 사회는 직접 경험 중에서도 여행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우리 세대에게 마치 여행이 필수로 느껴지게끔 제안한다. 직접 몸을 부딪혀 가며 겪는 여행만큼 훌륭한 '직접 경험'은 없다. 새로운 세상, 자유로운 사람들, 일상을 벗어나 할 수 있는 생각 등을 펼쳐 놓으며 20대에게 호기롭게 일상을 벗어나라고 소리친다. 이전 세대에 비해 상대적으로 경험에 대한 기회가 자유롭게 열려있는 우리 세대에 대한 동경과 기대가 여행으로 대표된다. 그렇게 ‘여행’하면 느껴지는 이미지들은 경험의 시대에서 여행이라는 직접 경험에 대한 동경에서 시작했다.


직접 경험에 대한 생각에 불을 지피고 여행으로 이끄는 또 하나의 요인은 간접 경험이다. 우리는 또 책을 넘어서 SNS 등 사진과 영상으로 이전 세대와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의 다양한 '간접 경험'을 할 수도 있다. 검색 엔진에 xxx 여행이라고 검색만 해도 가는 방법부터 시작해 숙소, 관광지 등 모든 곳에 대해 알 수 있다. 직접 여행을 떠나기도 전에 우리는 인터넷 세상에서 이미 여행을 시작한다. 더하여 TV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는 여행 예능 프로도 송출되고 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경험을 책, 유튜브, 프로그램 등 간접 경험이라는 상품으로 사고 판다.


이렇게 여행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면 ‘여행’이라는 경험은 사회에서의 동경과 간접 체험의 판매를 위해 이상화된 경향이 있다. 여행을 필수를 넘어 강요하는 분위기에 반발심을 가져 여행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SNS에서는 “왜 꼭 여행을 가야하지?” 아니면 “나는 여행과 잘 맞지 않는 것 같다.”, 혹은 “멀리 가서 돈 쓰고 고생하는 게 여행” 등의 댓글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사회의 기대와 간접 경험에 나타나는 것과는 다르게 SNS에 올라오는 흔한 ‘인증샷’들은 여행에 대한 환상이 생기게도 하면서 속에서는 은근하게 부정적인 생각도 생긴다.



* 자본주의, 여행


더하여 ‘여행’은 더 이상 여행 그 자체를 넘어 자유여행이 일상화된 사회에서 소비, 문화의 큰 축을 담당하며 사회를 구성하는 요소, 즉 상품으로 자리하게 되었다. 여행자는 일단 여행을 떠나면 대가를 지불하고 여행이라는 커다란 서비스 혹은 상품을 구매하게 된다. 그래서 여행을 가기 위해선 일단 돈이 필요하고 20대의 나이에는 시간을 포함해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 얻을 수 있다. 현실적으로 유럽에 오면 대부분의 청년들이 만져보지 못했던 돈을 한 번에 쓰게 되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우리 세대에게 여행은 꽤나 큰 대가를 일시불로 지불하고 얻는 값비싼 경험이다. 당장 최저시급에, 학자금 대출에, 생활비를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여행은 환상이며 상대적 박탈감의 요소가 될 뿐이다.


그렇다면 돈을 포함해 여행을 떠나지 않았다면 할 수 있었던 것들을 기회비용으로 지불하고 떠난 여행이 그만한 가치가 있을까? 벌써 나도 4학년의 한 학기와 방학, 그리고 내가 평생 쓴 액수 중에서 가장 큰 돈을 이번 여행에 지불했다. 다시 한 번 친구의 질문으로 돌아와 생각해본다. 이렇게 여행에 큰 대가를 지불하고 나는 무엇을 얻고 느꼈다고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을까? 정말 내 여행기의 제목처럼 여행 중에는 아무 것도 찾지 않는 방랑자였지만 어쨌든 사회에 돌아와 나는 허공에 그 대가를 날려버린 게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불나방처럼 새로운 빛을 찾아 여행을 떠난다.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면 여행은 이 다른 것들에 비해 열려있다는 장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완벽한 DIY 시스템을 갖춘 여행은 들인 돈에 비례하지도 않고, 각 사람마다 각자 다른 여행을 만들어 낸다. 그 가치를 스스로 만들어나갈 수 있다는 점에서 여행은 위에서 말한 것처럼 자본주의에 속박되어 있지만 그 가치를 매길 수 없다. 다른 것들에 비해 많은 것을 얻어 올 수도, 아니면 그저 그런 여행이 될 수도 있는 양면적 가능성을 갖고 있다.


그래서 나는 여행을 물감에 비유하고 싶다. 여행은 인생이라는 그림을 다채롭게 칠할 수 있는 물감이다. 우리는 각자의 인생을 그려낸다. 연필로 스케치를 하고 각자 원하는 색으로 칠한다. 연필만으로 그려낸 작품도 물론 멋질 수 있고 물감을 칠해도 내 마음에 들지 않을 수 있다. 다만 내가 그려놓은 스케치에 스페인이라는 색을, 이탈리아라는 색을, 스위스라는 색을 칠할 수 있다. 어떤 물감으로 어떻게 칠할 지는 각자의 자유지만 잠깐 여행을 한다고 해서 내가 그려놓은 스케치를 완전히 뒤바꿀 수도 없다. 혹시라도 여행을 망설이는 자에게, 혹은 여행에서 또 다른 나를 발견하고 싶은 사람에게 감히 말하건대 어떤 경험을 선택할 지는 당신의 선택에 맡긴다. 그리고 떠나기 전에 고민해야 한다. 내가 이 여행에 지불해야 할 대가는 어느 정도고 어떤 물감을 얻을 수 있을지, 그리고 굳이 이 물감이 없어도 괜찮을지.





[손민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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