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오늘은 또 뭐 쓰지 [사람]

이래도 되나 싶은 글에 대해, 이래도 된다.
글 입력 2019.07.25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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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꽤 덥다. 습해서 창문을 열어둘 수도 없고, 그렇다고 에어컨을 켤 만큼 완전히 더운 건 아니라서 선풍기를 틀고 애매한 더위를 이겨내려고 애쓴다. 책상에서 한참 고민하다 침대에 눕는다. 좌로 뒹굴, 우로 뒹굴뒹굴하며 생각한다. 오늘은 또 뭐 쓰지. 더워서 아이디어가 더 생각나지 않는다. 불쑥 뭘 쓸지에 대해 쓰는 것도 괜찮겠단 생각이 든다. 그렇다. 나는 지금 뭘 쓸지에 대해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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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하나의 주제를 선정해서 그것에 대해 써 내려가는 건 참 어려운 일이다. 이건 너무 흔한 이야기고 저건 정보가 필요한데 아직 좀 부족하고 요건 너무 가볍고 조건 또 너무 무거워서 내가 누군가를 상처 줄까 봐 두렵고…… 그러다 보면 여러 개의 생각나는 것 중에 쓸 수 있는 건 하나도 없다. 뜨거운 여름날의 과일 상자 속 같다. 과일은 많은데 다 썩거나 문드러져 막상 먹을 수 없는 게 얼마 없다. 뮤지컬 ‘Story of my life’에서 앨빈은 이렇게 말한다.



“네 머릿속에 이야기만 수천 개야.

아무거나 하나 골라 적어버려!”



말은 쉽지. 앨빈과 같은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그 말을 들은 토마스의 표정이 영 좋지 않았는데, 그 자리에 있던, 앨빈을 제외한 모든 사람이 이유를 알 것이다. 토마스가 앨빈과의 추억, 같이 겪었던 일을 훔치듯 이야기로 써 내려간 건 다 이유가 있다. 나와 토마스의 머릿속엔 이야기가 수천 개씩이나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렇게 말하고 나니 연극 ‘단편소설집’에 나오는 루스 스타이너의 목소리가 날 괴롭힌다.



“넌 내 인생을 훔친 거야.”



글을 쓴다는 건 참 묘하다. 너와 나에게 있던 일상적인 일을 쓴다고 저작권에 걸리거나 표절이라고 손가락질을 받지 않지만, 자칫하면 상대의 인생을 훔친 것이 되니 말이다. 그 사이의 무언가, 중도, 너무 사생활을 파헤치지 않으면서 너와 나에게 있던 일을 내 시각으로 의견을 더해 써야 한다. 꼭 줄타기 같다. 그러니 생각은 더 복잡해지고……, 오늘 뭘 쓸지에 대한 머릿속 토론은 미궁으로 빠져버린다.


뭐 쓸지에 대한 고민은 이번만의 문제는 아니다. 지금으로부터 몇 년 전, 나는 친구와 일주일에 한 편씩 작품을 올리기로 약속했다. 화가가 되고 싶던 친구는 그림, 작가가 되고 싶던 나는 글. 친구는 꾸준히 시간에 맞춰 그림을 올렸는데, 나는 성실한 편이 아니었다.


자기변명을 해보자면 그 당시 나는 너무 바빴다. 반수를 준비하는 중이었다. 일주일에 이틀은 학원에 박혀있었고 삼 일은 왕복 4시간이 넘는 학교에 다녀왔고 그마저도 수업이 끝나자마자 헬스장을 갔다. 집에서 다소 떨어진 곳에서 운동하고 씻고 셔틀버스의 시간에 맞춰 집에 오고 나면 녹초였다. 주말에는 밀린 과제와 학원 숙제를 하기 바빴다. 몸보다는 정신이 굉장히 피곤하고 지쳤다.


본래도 하나 이상의 일정이 있으면 끝나기 전까지 은은하게 스트레스를 받는 편인데,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서 서너 개의 일이 계속해서 주어지니까 피로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결국 친구와의 약속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했다. 엄밀히 말하자면, 조금 늦어도 일주일에 한 편씩 꾸준히 글을 써서 냈다. 성의가 없었을 뿐.


나는 그때 학원을 마치고 이번 주는 무슨 글로 때우지, 고민하다가 책상에 앉아 글을 쓰는 내 모습을 글로 썼다. 부끄러워 감히 펼쳐볼 용기도 없지만, 한글 프로그램을 열어 글의 첫 문장을 그대로 쓰는 내 모습을 적는 것으로 끝을 냈던 거 같다. 나는 제법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친구는 주제 선정과 글의 면면이 성실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기억도 나지 않는 댓글을 친구가 달았고, 그게 내 스트레스를 폭발시켜버렸고, 나는 친구에게 험한 말을 했다.


심기를 거스르고 샹처가 되는 말. 그날 우리는 매우 크게 싸웠다. 후에 화해하고 여전히 친한 친구로 남아있지만, 그때 일을 생각하면 여전히 미안하다. 열심히 의욕에 넘쳐 매주 새로운 그림을 그리던 친구의 옆에서 나는 뭘 쓸지 고민하다 결국 급하게 마감을 했으니, 친구의 의욕을 도둑질한 셈이다.


글이 뭐라고. 생각나는 게 너무 없었다. 이건 결말이 생각나지 않고 저건 너무 흔하고 요건 너무 길어서 다 쓰지 못할 거 같고 조건 쓰다가 막혔다. 꼭 지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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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는 게 어려운 이유가 뭘까? 나는 이유를 이미 알고 있다. 여러 사람에게 걸쳐 여러 번 들었기 때문이다. 잘 쓰려고 하면 욕심에 더 어렵고 있어 보이는 주제를 찾게 되고, 그 주제에 맞는 용어를 쓰거나 혹은 미사여구가 잔뜩 들어간 말을 쓰게 되고, 그런 게 생각나지 않을 때조차 내가 잘 쓸 수 있고 이해하는 글을 버려버린다. 할 수 있는 걸 버리고 못 하는 거에 매달리니 글 쓰는 게 싫어지고, 쓸 말도 없어진다.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안다. 윤동주의 ‘쉽게 쓰여진 시’가 당시에 어떤 의미를 담고 쓴 시인지. 왜 인생은 어려운데 시가 쉽게 써지는 걸 부끄러워하는지. 이를 왜곡할 의도도, 단편적인 것만 보고 확대에서 시의 전체로 오인할 의도도 없다. 하지만 이 구절을 읽자면 대학교 때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이 떠오른다.


윤동주가 참 대단한 사람인데 후대 시인을 망쳐버렸다고. 시에 은유, 비유, 함축을 무척 적절히 잘 넣는 바람에, 이 시를 본 사람들이 시를 무조건 이런 식으로 써야 한다고 착각한다고 했다. 시는 자기 생각을 담아서 쓰면 되는데, 무작정 비유와 은유만 잔뜩 늘어놓는다고 하셨다. 나는 언제나 수업에 집중하지 않는 나쁜 학생이기에 문맥이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선생님이 한 말의 의미는 이해한다.


어릴 때 논술 수업을 받으며 중간중간 시 쓰기 수업도 했는데, 그때 논술 선생님은 내가 쓴 시보다 시의 위퉁이에 적은 낙서에 더 집중하셨다. 오늘은 뭐 쓰지, 쓸 거 없는데, 날 엄청 덥다. 아, 맛있는 거 먹고 싶다, 같은 말들. 그런 모든 게 시가 된다고 하셨다. 하루는 선생님의 학원에는 항상 얼음이 담긴 물병이 있는데 우리 집은 미지근한 물만 마셔서 그게 참 부럽다고 이야기했었다. 선생님이 화 색하며 그걸 시로 쓰면 된다고 말씀하신 게 기억에 오래 남는다. 그때도 ‘있어 보이려고’ 글을 쓰는 사람이었나보다.


일련의 생각을 쭉 하다 보니 이 자체를 주제로 삼을 수 있겠다. 침대에서 벌떡 일어난다. 마침 비가 그쳐 창문도 열어야 한다. 햇빛은 막고 바람을 들이는 꽤 선선한 방의 의자에 앉아서, 가벼운 구성을 짜낸다. 이번의 구성은 평상시와 조금 다르다. 생각나는 걸 그대로 쭉 나열해 글처럼 적어갔다. 그러다보면 돌파구가 보일 것 같아서. 앨빈의 이야기, 루스의 이야기, 윤동주 이야기, 대학교와 논술 학원의 선생님 이야기까지 나열하고 나니 뭔가 공통점이 보인다. 하나로 동그랗게 모이는 이야기는, 비로소 문장의 나열에서 벗어나 어떤 글이 된다.


네 머릿속에 이야기만 몇천 개야. 아무거나 하나 골라 적어버려. 뮤지컬을 본지 몇 년이 지난 지금, 앨빈이 한 말의 진짜 의미를 알 수 있을 거 같다. 그 말은 앨빈이 남들보다 많은 이야기를 가지고 있어서, 범인을 이해하지 못하는 천재의 한 마디였던 게 아니었다. 글은 무엇이든 주제로 삼아도 되며 어떤 방식으로도 쓸 수 있으니 고민 없이 적어보라는 가장 기본적이지만 잊기 쉬운 조언이었다. 그러니, 지금처럼 이렇게 뭘 쓸지 고민하는 이 순간도 골라 적을 수 있는 하나에 해당하는 거 아닐까.


친구에겐 여전히 미안하지만, 나는 그때의 글 내용이 어땠건 간에 구성 자체는 성의 없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언제나 독특한 걸 좋아하던 내가 그 당시에 생각해낼 수 있는 가장 특이한 형식의 글이었다. 물론 그 근저에 귀찮으니 아무거나 편한 걸 쓰자는 마음이 깔려 있긴 했다. 아직도 그 부분은 많이 반성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 속의 글 속의 글 속의…. 로 빠져드는 그때의 거울 같은 글의 형식은 여전히 마음에 든다. 누군가 별로라고 생각해도 어쩔 수 없다. 이건 그냥 취향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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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상을 다 하고 나니 어느덧 새벽이었다. 글은 내일 적어야지. 불을 모조리 꺼버린다. 선풍기 타이머를 굳이 맞추지 않았다. 아침에 깰 때까지, 언제 다시 더울지 모르기 때문이다. 더운 건 딱 질색이다. 눈을 감는다. 눈을 감으면 꼭 시간이 접히는 거 같다. 축지법처럼, 축시법. 잠깐 감았다 뜬 거 같은데 아침이 된다.


얕은 꿈을 꾼다. 일어나서 무슨 꿈이었는지 곰곰이 생각해보지만 떠오르지 않는다. 이상한 꿈을 꿔서 그걸 주제로 글을 쓸 수 있으면, 지금의 이 괴상하고, 다소 이래도 되나 싶은 글을 쓰는 일이 없을 텐데. 매번 글을 구상하고 쓰는 순간순간마다 ‘이래도 되나’의 선을 야금야금 늘려가는 기분이다.


일어나서도 한참을 침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아침에는 괜히 글을 쓰기가 싫다. 남은 시간이 많다는 잘못된 생각에 사로잡혀서 그렇다. 12시는 점심을 먹어야 해서, 2시는 설거짓거리를 치우고 나서 해야 하는데 설거지를 아직 안 해서, 4시부터는 슬슬 써볼까, 하다가 6시가 지나면 4시쯤에는 존재하던 의욕이 어쩐지 다 사라진다. 그렇게 더위가 가시고 의욕이 들어오길 조금 기다리면 어느새 해가 저물고, 밤이다. 이제야 양심에 찔려 슬그머니 노트북 앞으로 간다. 어제 구상을 적어둔 쪼가리를 읽으며 키보드를 친다.


날이 상당히 덥다. 습해서 창문을 열어둘 수도 없고, 그렇다고 에어컨을 켤만큼 완전히 더운 건 아니라서 선풍기를 틀고 애매한 더위를 이겨내려고 애쓴다. 책상에서 한참 고민하다 침대에 눕는다. 좌로 뒹굴, 우로 뒹굴뒹굴하며 생각한다. 오늘은 또 뭐 쓰지. 더워서 아이디어가 더 생각나지 않는다. 불쑥 뭘 쓸지에 대해 쓰는 것도 괜찮겠단 생각이 든다.


그렇다. 나는 지금 뭘 쓸지에 대해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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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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