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그들의 인터뷰는 나를 돌아보게 했다. - 레라미 프로젝트 [공연]

글 입력 2019.07.24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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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했던 시작, 그 후



내게 으레 연극이라 하면, 대학로에서 친구들과 한바탕 웃기 위해 보러 가는 그런 연극이 다였다. 그런 나에게 레라미 프로젝트는 연극이라는 장르의 또 다른 세상을 펼쳐준 작품이 됐다.


레라미 프로젝트를 관람하기 전 작품에 대해 알아보며 실제로 있었던 사건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레라미 지역에서 일어난 동성애 혐오 범죄에 대한 사건을 중심으로 피해자 매튜 쉐퍼드 주변 인물의 인터뷰를 역은 작품. 설명만으로는 감이 잡히지 않았다. 어떻게 연극을 끌고 갈까?


막연한 상상을 하고 관람하게 된 <레라미 프로젝트>는 색다른 모습으로 시작을 알렸다. 극단 ‘실한’의 단원들은 모두가 청바지에 흰색 셔츠를 입고 관객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그들은 직접 제작한 지도에서 레라미 지역의 위치를 보여주며 매튜 쉐퍼드의 사건에 대해 연극을 만들 것이고, 필요한 인터뷰를 위해 이곳에 다녀왔다는 말을 했다.


‘아! 연극이 벌써 시작되었구나!’ 실제로 우리에게 말을 건네는 것인지 그들이 연기하는 것인지 헷갈렸던 그때, 그렇게 그들은 우리와 소통하면서 연기를 하고 있던 것이었다. 참 색다르다. 나는 레라미 프로젝트의 이야기 속으로 점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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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라미 프로젝트>만이 전달할 수 있는 것



레라미 프로젝트를 보며 연극의 방식이 신선하다고 느꼈던 점이 참 많았다. 오직 8명의 배우가 수없이 많은 인터뷰이를 표현했다. ‘삐’ 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바뀌는 등장인물과 무대 주변으로 다양한 인물들을 표현하기 위해 걸려있는 옷들 그리고 디테일이 살아있는 조명과 세트장은 수없이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고 오직 8명의 배우가 소화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연극을 풍성하게 만들었고 연극이 실감 나도록 도왔다.


연극의 초반, 레라미 지역 사람들을 한 명씩 만나기 시작하면서 주민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처음에 단순히 레라미에 대해서 묻자 살고 있는 모두가 레라미 지역을 호의적으로 말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속으로 생각했다. 극이 진행되면 어떻게 마을의 모습과 입장이 변화되어 나타날까. 혐오 범죄가 일어났던 이곳, 전국적으로 주목이 되었던 이곳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기억은 어떨까?


‘그 사건’에 대해 묻자 다양한 이야기들이 나온다. 레라미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이 마을을 ‘게이’로서 살기 힘든 곳이라 말하기도 하고, 매튜 쉐퍼드의 친구들과 학교 사람들은 그를 좋은 친구였다 말하기도 한다. 또 사건이 레라미 전체를 ‘혐오 범죄 집단’으로 만들었다며 어떤 이는 억울해하기도 한다. 이렇게 인터뷰 형식으로 극이 진행되니 다양한 사람들이 한 사건을 가지고 서로 다른 입장을 가지고 있음을 낱낱이 보여준다. 이것이 이 연극의 묘미였다.


분명 극의 중심이 되는 혐오 범죄의 피해자 ‘매튜 쉐퍼드’는 이 연극에 등장하지 않는다. 그의 사망 후 찾아간 레라미 지역의 인터뷰를 엮은 작품이니까. 그는 한 번의 등장 없이 이름만 쓰일 뿐이지만 ‘상징성’으로 존재한다. 그의 사망 후 혐오 범죄에 대한 관심은 미국 전역으로 퍼졌고 많은 사람들이 사건의 추후에 주목했다. 그리고 연극의 주요 흐름인 주변 사람들의 인터뷰에서 그의 이야기, 혐오 범죄에 대한 생각, 레라미 주민으로서의 입장을 전하며 ‘우리 자신의 입장’을 정리하게 한다.


연극은 분명 우리에게 강요하지 않았다. “동성애 혐오 범죄는 나쁜 것입니다.” 말하지 않는다. 만약 이 사건을 다루는 연극이 매튜 쉐퍼드가 잔인하게 죽었던 장면이나 그의 일생 자체를 다뤘다면 우리는 객관화되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레라미 프로젝트>는 인터뷰가 가진 연속성으로 담담하게 현실을 풀어냈고,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입장이 2시간이라는 러닝 타임에서 관객의 마음속에 쌓여 각자의 생각을 정리하게 하도록 돕는 것이다.


극 후반부, 매튜 쉐퍼드의 아버지가 전해준 입장은 관객의 마음을 가장 울린 장면이라 생각한다. 결국 혐오 범죄의 피해자, 동성애자로 낙인이 된 그도 누군가의 자식이었다는 것. 자식을 죽인 가해자가 눈앞에 있지만 그를 똑같은 ‘죽음’으로 가게 하지는 않겠다는 아버지의 대사는 혐오 범죄의 피해에 대한 슬픔과 억울함, 그리고 진정한 ‘용서’와 ‘선’이 무엇인가에 대해 돌아보게 했다. 또한 가해자가 연기한 ‘죽음' 앞에서의 떨림을 보며 혐오를 일으키는 절대적인 ‘악’이 있는가? 숙연해지기도 했고, 죽음 앞에서 감출 수 없는 인간의 민낯에 대해서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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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이 끝난 뒤, 내가 생각한 것들



동성애에 대한 이슈나 작품을 보고 나면 우리 사회는 과연 어디까지 변할 것인가? 어디까지 인식이 변할 수 있을까? 늘 생각한다. 지금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당연한 많은 것이 한때는 당연하지 않았던 것들이었다.


하지만 동성애 문제에 대해선 분명 아주 옛날보다는 존중이 되고 개방적으로 변했다고 하지만 그들의 사랑과 성향이 사회에서 평등한 입장으로 있진 않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다양한 예술 작품들이 대중의 정신적 이해와 개방을 돕는다고 생각한다.


나는 동성애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그들이 태어나 동성을 좋아하겠다고 ‘다짐’하거나 ‘선택’하지 않았다는 것을 늘 마음에 둔다. 그렇게 되면 많은 것들이 다르게 보인다. 내가 누군가를 보며 가슴이 떨리거나 호감을 가지게 되는 자연스러움이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태어남과 동시에 부여받은 자연스러움을 받아들이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내면의 모습 그대로 사랑할 수 있는 세상이 오길 바란다. 그리고 그 자연스러운 감정이 혐오의 대상이 되지 않기를 이번 연극을 보면서 간절히 바랐다.


치밀하게 짜인 인터뷰의 흐름, 배우들의 탄탄하고 깊은 연기, 그리고 실감 나는 세트장의 구성은 극에 좀 더 몰입하여 그 사건에 나 역시 빠져들게 했다. 그리고 글을 적으며 나의 생각들을 정리해봤다. 문화 그리고 예술의 경험은 내게 이런 것이다. 나라는 사람이 가지고 있던 세계가 깨지고 재구성되는 것. 그리고 다양한 색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달라지는 것이다. 이번 연극 관람은 내게 또 다른 세상에 대한 시야를 가지는 일이었다.




<시놉시스>


미국 와이오밍주에 위치한 도시, 레라미. 1998년 10월, 와이오밍 대학교에 다니던 21세 청년, 매튜 쉐퍼드는 2명의 20대 남성들에게 폭행당하고 강탈당하고 고문당했다.

 

울타리에 묶여 있던 그는 반나절이 지나서야 지나가던 행인에게 발견 되었고 병원으로 이송 되었지만, 5일 후 결국 사망에 이르렀다.

 

이 잔인한 사건의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8명의 극단원들은 직접 취재를 떠나게 된다.

 

“아, 매튜. 그 게이새끼요?”




공 연 명 : 연극 <레라미 프로젝트>

공연장소 : 두산아트센터 Space111

공연기간 : 2019년 7월 13일(토) ~ 7월 28(일)

공연시간 : 평일 8시, 주말 3시 (월 쉼)

티 켓 가 : 전석 삼만오천원

제작 : 극단 실한

기획 : 두산아트센터, 극단 실한

러닝타임 : 120분

관람연령 : 14세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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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경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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