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기억합시다, 레라미 - 연극 레라미 프로젝트 [공연]

변화는 진행 중이니까요
글 입력 2019.07.23 12:58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포스터.jpg
 

“안녕하세요!”

극의 시작을 알리는 안내 방송이 끝나고, 적막하던 무대에 등장한 인물은 내가 상상하던 사람들이 아니었다. 너무나 평범한 극단원들이 흰색 상의와 푸른색 청바지를 입고 안면에 미소를 띠운 채 반갑게 관객을 맞이했다. 어, 이거 동성애 혐오 범죄 이야기 아닌가? 뭐지?


레라미프로젝트_캐스트단체.jpg
 

연극 ‘레라미 프로젝트’는 독특한 구조를 가진 연극이다. 실제로 레라미에서 200번이 넘는 인터뷰와 면밀한 조사를 시행했던 작가 모이세스 카우프만과 그의 동료들 이야기가 외화로, 그리고 그 레라미 사람들의 인터뷰 내용이 내화로 구성되어 있다. 배우들의 연기가 너무 사실적이어서 하마터면 이 극이 창작극이라고 오해할 뻔했을 정도로, 내화와 외화는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며 서사를 긴장감 있게 끌어나간다.

‘레라미 프로젝트’는 1998년 미국 와이오밍주 레라미에서 한 청년이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울타리에 묶인 채 폭행당한 후 사망에 이른 사건을 배경으로 한다. 이 사건은 미국 전역에 큰 충격을 안겼지만 법령을 마련하거나 규제를 강화하는 등의 실질적 대책은 쉽게 만들어지지 못했다는 씁쓸한 결과를 가져왔다. 그리고 이 ‘레라미 프로젝트’가 2019년 현재, 한국에서 유효한 메시지를 던진다는 점 역시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최근 몇 년간 ‘혐오’라는 단어가 불씨처럼 번졌다. 이젠 대한민국의 별명 중 ‘혐오 사회’라는 딱지가 추가되었을 정도니 혐오가 도대체 무엇인지, 우리는 왜 타인을 혐오하는지 고찰해볼 필요성은 충분하다. 단순한 ‘hate(싫어하다, 증오하다)’, 즉 감정적 차원에서의 혐오가 아닌 차별과 폭력, 타자화의 개념까지 아우르는 차원의 혐오가 지금 21세기 대한민국에서 꽤나 흔하게 발견되고 있다.



나는 동성애는 인정하는데...


이런 말.
“나는 동성애는 인정하지만, 나한테 피해를 주는 건 용납 못 해.”
이런 언어, 이런 폭력.

‘나’와 ‘그들’ 사이에 철저히 선을 그으면서 동시에 혐오로부터 한 발짝 멀어지고자 하는, 완벽하게 순수한 ‘나’와 조금은 혼탁한 ‘그들’로 어떻게든 구분을 짓고자 하는 이분법. 이렇게 가시가 돋은 언어야말로 우리 사회의 혐오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게 아닐까 싶다. 때리고, 발로 차고, 욕을 하고, 침을 뱉는 물리적 폭력만이 혐오를 방증하진 않는다. 말랑한 혀끝에서 직조되는 문장이야말로 상대에게 생채기를 내는 데 적격인 무기다.


초연사진3.jpg
 

연극 ‘레라미 프로젝트’는 물리적 폭력에만 집중하지 않는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이 극에서 조명하는 폭력은 혐오범죄 그 자체라기보다, 이 혐오범죄를 바라보는 레라미 주민들의 혐오 섞인 눈빛이다. 동시에 레라미라는 작은 공동체에 어떤 변화의 바람이 불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 변화의 본질은 무엇인지까지 낱낱이 파헤친다. 겉으로 보기에 차별과 억압이 전무한 것처럼 보이는 마을에서 왜 이런 끔찍한 살인이 일어났는가. 이 질문은 현재까지도 어느 정도 유효하다.

무대에서 눈에 띄는 소품은 ‘HATE IS NOT A LARAMIE VALUE’라고 적힌 팻말이다. ‘혐오는 레라미가 추구하는 가치가 아니다.’ 멋진 말이다. 선혈처럼 붉은 글씨로, 마치 남들에게 우리 마을은 죄가 없다 소리치듯 강렬한 서체로 적힌 문구는 무대 한쪽에서 그 존재감을 과시한다. 팻말이 주는 메시지는 ‘레라미 마을은 평등해요’가 아니다. ‘레라미는 죄가 없습니다. 우리와는 관련이 없는 사건입니다.’와 같은 선긋기다.


초연사진1.jpg
 

물론 레라미의 모든 주민들이 혐오범죄의 가해자라는 뜻은 아니다. ‘모든’, 이 말이야말로 조심해야 할 무기다. ‘모든 여자’, ‘모든 남자’, ‘모든 동성애자’, ‘모든 주민들’... ‘모든 동성애자들이 나쁜 건 아니지만...’, ‘모든 주민들이 그런 건 아니야’... 이 말 속에 숨은 뜻 역시 ‘나’와 ‘그들’ 사이의 선긋기를 확실히 할 뿐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한 명도 빠짐없이 돌을 던지고 침을 뱉지는 않았겠으나 한 명이라도 이 기형적 혐오를 고발했다면 범죄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란 사실이다. ‘모든’ 사람들이 가해자는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많은’ 사람들은 이를 방관했다.



지금, 여기, 2019년 한국


지금껏 여러 리뷰를 작성하면서 성소수자를 소재로 한 창작물이 물밀 듯 쏟아지고 있다는 얘기만 여러 번 한 것 같다. 그만큼 성소수자 관련 창작물이 넘쳐나고 있고, 그 창작물 속에서도 여러 다양성이 빛을 발하는 시기가 지금이 아닐까 생각한다.


jasmin-sessler-bpYu7Gg3Whk-unsplash.jpg
 

얼마 전 연극 ‘프라이드’를 관람했다. 몇 년 전에 관람했을 때와는 또 다른 감상이었는데, 어딘가 조금 불편하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했으며 더 나은 ‘프라이드’가 탄생하기를 바라기도 했다. 아무튼 그조차도 내 안의 변화이자 사회의 변화 덕에 나올 수 있는 생각이겠거니, 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연극 ‘레라미 프로젝트’가 독특한 이중적 구조를 활용해 레라미 사건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사실적으로 전달하고자 했던 이유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시대가 변하면서 가치 역시 변하기 마련이다. 레라미 사건은 벌써 20년이 훌쩍 지난 사건이고, 그 20년이라는 세월 안에서 여러 변화의 물결이 일어난 것도 사실이다.

하다못해 극 중에서도 여러 인물들은 과거에 성소수자들에게 가졌던 차별적 시선을 참회하거나 새로운 꿈을 가지는 등 여러 방면의 변화가 드러났다. 그러니 20년 세월의 풍파를 견뎌낸 현실 사회 속에서 변화의 크기는 가늠조차 힘들 것이다.

그러나 이 글 서두에서도 밝혔듯 레라미 사건 이후 정부 차원의 법률적 조치나 규제는 쉽게 이루어지지 못했고, 레라미 마을 안의 변화 역시 ‘우리 마을은 변했습니다. 우리 마을은 착합니다.’ 식의 보여주기식 치장이 아니냐는 비판도 등장했다. 해묵은 혐오가 하루아침에, 혹은 20년 만에 싹 사라지는 건 불가능하기에, 여전히 우리는 변화의 물결 한 가운데 서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또 다시 레라미를 기억한다. 20년이 지났지만 변화는 진행 중이고, 아직 갈 길은 멀고 험하기에.


시놉시스

미국 와이오밍주에 위치한 도시, 레라미. 1998년 10월, 와이오밍 대학교에 다니던 21세 청년, 매튜 쉐퍼드는 2명의 20대 남성들에게 폭행당하고 강탈당하고 고문당했다.

울타리에 묶여 있던 그는 반나절이 지나서야 지나가던 행인에게 발견 되었고 병원으로 이송 되었지만, 5일 후 결국 사망에 이르렀다.

이 잔인한 사건의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8명의 극단원들은 직접 취재를 떠나게 된다.

“아, 매튜. 그 게이새끼요?”


공연 정보

공 연 명 : 연극 <레라미 프로젝트>
공연장소 : 두산아트센터 Space111
공연기간 : 2019년 7월 13일(토)  ~ 7월 28(일)
공연시간 : 평일 8시, 주말 3시 (월 쉼)
티 켓 가 : 전석 삼만오천원
제작 : 극단 실한
기획 : 두산아트센터, 극단 실한
러닝타임 : 120분
관람연령 : 14세 이상



전문필진.jpg
 

[정지은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3.28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