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새로운 신선함 – 그때, 변홍례 [공연]

글 입력 2019.07.22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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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쏟아지다 말다 하는 꾸물꾸물한 여름이었다. 지하철을 타러 가는 도중 무섭게 내린 비 때문에 샌들이 약간 젖은 채로 혜화로 향했다. 혜화에서 밥을 먹고 카페를 간 사이 비는 그치었지만 비 비린내는 여전했고 습도가 높아 끈적이는 여름 날씨를 그대로 느끼며 극장에 갔다.

로비에 들어서자마자 아코디언을 연주하며 돌아다니시는 한 중년 배우가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표를 받고 주변을 돌아보니 배우들이 한쪽에서 분장을 하고 공연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런 로비는 처음이라 내가 쑥스러워하면서 신기한 눈빛으로 로비를 구경했다.

나는 내 또래 친구들과 비교했을 때 극을 많이 접한 사람이었지만 이런 극은 정말 ‘처음’이었다. 로비의 모습에서부터 내가 봐온 연극과는 크게 다를 것 같다고 생각하기 시작했고 극을 보고 나오면서 친구와 공통으로 느낀 감정은 “새로운 신선함”이었다.

아직 비가 오다 말다 하는 축축한 여름밤 날씨는 이 극과 음산하게 잘 어울렸고 지하철에서 쏟아지는 비를 보며 그들의 수직낙하쇼가 계속해서 떠올랐다. 온전히 배우들의 열정과 영상만으로 빚어낸, 장인정신이 돋보인 <그때, 변홍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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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속의 영화 ; 무성영화 촬영기법의 활용


무성영화

녹음이 따르지 않는, 유성영화가 생기기 이전의 영화. 1923년부터 한국에서도 제작되어 1935년 유성영화가 제작되기까지 화려한 무성영화시대를 이루었다. 한국에서는 무성영화가 수입되고 스스로 제작하면서부터 변사(辯士)라는 새로운 직업인이 등장하여 혼자서 대화를 주고받고 정황을 설명하였다.

네이버 두산백과
 

이 극은 변홍례 살인 사건이 일어난 1931년의 대중문화였던 무성영화의 촬영기법을 공연에 접목했다. 여기서 가장 신선함이 드러난다. 변사와 같은 사람이 등장해 이 극의 처음을 열고 등장인물을 설명하거나 내용을 이야기하며 극의 끝까지 마무리한다. 그리고 빔 프로젝터를 이용해 다양한 상황을 만들어낸다.

그 당시 동아일보 기사를 띄워주며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등장인물을 가로막는 장애물이나 대사를 나타내는 등 정말 다양한 용도로 화면이 이용된다. 무성영화의 촬영기법을 활용해 인물의 움직임을 크게 하는 등 극적인 요소를 부각하고, 좀 더 장면들을 긴박하게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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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극에서는 더 나아가 등장인물들의 대사나 그들의 소리를 무대 가장자리에서 다른 사람들이 내주었다. 후시녹음의 개념처럼 누군가는 또각또각 구두소리를 내고, 누군가는 칼을 쓰는 소리를 내고, 누군가는 대사를 치며 현장감과 익살스러움을 더했다. 시각적 볼거리가 굉장히 많은 공연들을 봐왔지만 이렇게 간단한 빔프로젝터 하나로 생생하게 현장을 묘사하거나 인물의 감정을 부각하는 공연이 처음이었다. 첫 번째 새로운 신선함이었다.



변홍례의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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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홍례를 제외한 모든 인물은 흑백영화의 인물처럼 얼굴이 하얀색 혹은 검은색이다. 익살스럽게 얼굴을 꾸미고 저마다 개성을 표현하는 눈썹, 콧수염, 옷차림새, 걸음걸이를 가지고 있다. 변홍례는 극에서 유일하게 자신만의 피부색을 가지고 있으며 그녀 자신의 목소리로 이야기를 한다. 그녀는 일본인 집의 하녀로, 누가 봐도 로봇같이 조금 허리를 굽힌 채 걷고 일본인 여인의 시중을 든다. 처음에는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게 말을 하고 일을 한다. 그런 그녀가 점점 욕망을 가지게 되고 이로 인해 감정을 표현하기 시작한다.

당시 사회적으로 높은 계급에 위치했던 남자들의 관심을 받으며 그녀는 무서움도 느끼지만 결국 그들을 이용해 자신도 성공하고 편하게 대우받으며 살고 싶다는 욕망을 채우기 위해 악을 쓴다. 그녀만이 유일하게 이 극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었지만 그 욕망을 향해 기어 올라가려는 순간 자신의 목소리를 잃는다. 아마도 이 극에 등장하는 인물들 모두가 욕망에 가득 차 있기 때문에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흑백으로 표현되었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일을 하며 조용히 살던 변홍례는 유일하게 자신의 색을 가지고 있었지만 결국 그녀도 그들과 함께 ‘욕망을 향해 기어 올라가는 자들’이 되었다. 그리고 결국 그 사이에서 피해를 보는 것은 하녀, 변홍례였다. 그녀가 욕망을 가지게끔 만든 것도 부와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고, 그녀가 욕망을 펼치려는 순간 그녀를 죽인 것도 그들인데 온전히 책임은 그녀 혼자 저버리게 된 것이다. 누구도 그녀를 보호하지 못한 그 상황이 단순히 1931년의 이야기일까?

그 주인공이 극이 진행될수록 바뀌는 모습을 담는 경우는 많지만, 이 극처럼 아예 처음에는 로봇처럼 말을 하고 정해진 일을 하다가 점점 감정을 갖고 마지막에는 포효까지 하면서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고 욕망을 표현하는 인물이 있는 극은 흔하지 않다. 이 극은 무성영화의 촬영기법을 활용해 네모난 화면 안에서 일어나는 일처럼 만들었기 때문에 이런 눈에 띄는 주인공의 변화가 가능했다. 사실 로봇 연기를 하는 것은 일반적인 극에서는 정말 문제이니까… 이 점이 바로 두 번째 새로운 신선함이었다.



욕망의 실현 ; 진실과 거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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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홍례 죽음의 진실을 형사와 함께 캐면서 우리는 진실을 알았지만 거짓으로 이야기가 끝난다. 형사는 진실을 찾고 알리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지만 결국 결말은 거짓이었다. 변홍례가 그 시대 상황에서 힘이 없는 여자 조선인 하녀였기 때문에 그렇게 끝났을까? 나는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힘이 없는 것은 그녀와 어릴 때부터 사귀었던 조선인 구일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그녀를 죽인 건 일본인 여자였다. 그녀와 관련된 모든 사람들은 욕망을 향해 기어올랐다. 등장인물 모두가 그런 것이다.

욕망 실현을 위한 과정에서의 악한 모습과 그 욕망 실현을 통한 결과의 악한 면은 그 당시 상황이 어떻든지, 어떤 신분에 있는지 상관없이 분명히 잘못된 것이다. 욕망을 가진 생명체끼리의 충돌이 결국엔 악한 과정으로 이어지며 세상은 짐승의 세계가 된다고 하는 것처럼 그들도 그러했다. 극은 변홍례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인정하지 않고 끝났지만 결국에는 변홍례 뿐만 아니라 그들 모두가 끝없는 나락으로 추락하고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추락하는 그들에 내가 포함될 수 있다는, 혹은 포함되어 있다는 그 불편함을 느끼기도 했다. 그래서 집 가는 동안 계속해서 내리는 비가 무섭게 다가왔다. 우리의 수직낙하쇼 같아서… 우리 내면이 무엇을 원하는지 항상 똑바로 생각하고 계속해서 경계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쉬운 진실을 알면서도 자꾸 잊는 게 사람이라 이 욕망의 실현에서 진실과 거짓을 가려내 되돌릴 수 없는 추락을 막아 보자. 이것이 내가 느낀 세 번째 새로운 신선함이었다.

*

<그때, 변홍례> 문화생활을 하고 싶었던 마음이 굴뚝같던 시기에 무턱대고 향유해본 연극이었지만 예상을 뛰어넘어 매우 신선했고 보는 내내 집중을 잃지 못하겠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새로운 신선함을 느낀 연극, 나에게 큰 충격을 주었으며 연극의 한계를 깨고 있는 다양한 시도를 하는 작품으로 기억되었으며 이 극단 하땅세를 응원하게 되었다.

그때, 변홍례는 과연 무엇을 원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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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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