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어서오세요 예술로 바라본 세상 속으로 - 예술가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블록체인부터 죽음까지, 그림 인문학
글 입력 2019.07.22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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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방에 입장한다. 벽 네 면에는 각각의 이름이 있다. 기술, 과학, 예술, 사람. 그리고 그 이름 아래에는 여러 모양의 망원경이 놓여 있다. 내가 열고 들어온 문은 어느새 세상을 비추고 있는 창문이 되어있다. “아무 망원경이나 골라 세상을 바라봐 보세요” 라고 내 손에 쥐어진 설명서가 말한다. 지금까지 세상을 보는 눈이라곤 내 눈밖에 없는 나는 지금 당장 새로운 방식으로 세상을 살펴보는 기회를 가진 것이다. 망원경마다 이곳 주인장이 쓴 것인지 누군가가 적어 놓은 비유와 농담들이 함께 적혀있다. 어떤 것부터 선택해야 할지 모르겠으니 왼쪽에 있는 “기술”칸에서부터 하나씩 한번 들어보기로 한다. 망원경을 눈에 대기 전 창밖을 다시 본다. 그래 내가 잘 알고, 살고 있는 세상이다. 그것을 기억하고 망원경으로 창밖을 보기 시작한다. 무엇을 보든지 당연하게도 내가 알고 있고 보았던 것이지만 전혀 다른 이유와 방식으로 다가오기 시작한다.


“예술적인 시야는 삶을 풍요롭게 한다.
그리고 우리의 창의성을 깨어나게 한다.
앞으로 꿈과 희망의 놀라운 세계가
곧 펼쳐진다.
개봉박두”



예술가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블록체인부터 죽음까지, 그림 인문학-
_임상빈



예술가의눈으로세상을바라보기(임상빈)_표지_앞.jpg
 

[PRESS]
어서오세요 예술로 바라본 세상 속으로


글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 필자가 생각한 <예술가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기>를 읽는 과정을 한번 묘사해 보았다. 어느 방이라고 한 공간의 이름은 "예술적인 시야"라고 하면 좋을 것 같다. 책을 잡는 순간 내가 오래 써오던 시선, 그러니까 안경을 잠시 벗고 저자가 만든 방에 들어가서 여러 망원경을 쓰며 세상을 다시 바라보는 것이다.

저자의 입장에서 선정된 새로운 시대에서 함께 고민해봐야 할 이야기인 "기술", "과학", "예술", "사람"이 책에 자리 잡고 있다. "예술"이라는 단어에 반해 이 책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필자처럼 이 글을 누르신 분들도 계실 것 같다. 이 책 앞에서는  조금 더 구체적이고 좁은 범위에서 인식하고 있던 "예술"에서 조금 더 물러나 거시적인 "예술"을 생각하기 시작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 네 가지를 단순히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적인 시야로 이를 다시 살펴보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다양한 시야가 있다. 이들은 세상을 바라보는 여러 축이다. 한 가지만 고집부리면 세상은 그만큼 납작해진다. 반면에 축이 많아질수록 세상은 입체적, 다층적, 복합적이 된다. 물론 기본적으로 우리가 바라보는 세상 풍경은 모두 제각각 다 다른 모습이다. 그런데 이 모든 축을 총체적으로 포괄하는 '대통합의 축'이 바로 예술이다.

- 프롤로그 중


"예술적인 시야".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궁금하시리라 생각된다. 필자도 책을 처음 만나고 읽기 시작할 때 "예술적인 시야"라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와닿지 않았기 때문이다. 혹은 "이 책은 예술에 관심 있는 사람이나 작가에게 필요한 책인가?"라는 생각도 하실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잠시 모든 의문을 접어두고 함께 리뷰의 여정을 함께하면 좋겠다. 거시적으로 바라볼 때 예술은 정말 무엇인지, 그렇게 모두가 할 수 있고 또 하고 있는 예술은 또 무엇인지. 한편으론 "예술"이라는 단어를 앞에 내놓을 필요 없이 세상을 보고 또 사는 모두를 위한 책이라고 먼저 소개하고 싶다. 세상을 더 깊이 이해하고, 더 넓은 방식으로 바라보고 싶다면, 이 책은 멋진 책이 되어줄 것이다.

사실 이 리뷰를 쓰는 방식에 대해 고민이 많았다. 이 책을 통해 내가 만난 새로운 시야로 본 세상은 너무 많은데, 이 모두를 하나하나 이야기 하는 건 당연히 불가능하고, 단순하게 요약해서 리뷰하기에는 필자 자신도 아직 부족하고 무미건조한 책 소개가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대신 필자를 사로잡았던 책 속 과학 이론을 데려와 이 책을 통해 가졌던 여정 중 일부를 정리하고 함께해보려 한다. 지금부터는 <예술가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도서를 통해 처음으로 '다중우주론'을 만나 새로운 이해의 경험을 한 필자의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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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중우주를 저자의 상상으로 풀어낸다면,


"나의 자아는
다중우주의 모습과
닮아있구나!"


세상은 하나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무수하다. "세상은 과연 하나인가"라는 생각마저 든다. 내가 바라보는 세상이 내 옆에 있는 사람이 바라보는 세상과 결코 온전히 같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눈, 시야는 그 사람의 고유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모두가 태어나자마자 같은 것만을 보고 살아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경험하는 것, 그렇게 생각하는 것과 느껴온 것과 같이 무수한 세상의 요소들로 생겨난 나만의 결에 따라 나의 눈은 나만의 고유한 정체성을 가진다. 그리고 우리의 눈은 가만히 머물지도 않는다. 시간의 흐름이 있고 그 안에서  새로이 생겨나고 변화하는 것들을 우리는 계속 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본다는 것은 보이지 않는 과정을 더 많이 포함하고 있지 않을까.

이렇게 보면 세상을 향하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얼마나 다채로운지. 그리고 나의 시선은 세상만을 향하고 있지 않다. 나의 시선은 다시 나에게로 향한다. 겉으로는 하나의 몸에 자리 잡은 한 명일 뿐이지만 모습은 하나뿐이 아닌 '나'. 작품 작업을 위해 '나'의 여러 모습을 꺼내두고 다시 살펴보는 과정을 거치는 작업을 하다가도 이렇게 말한다. "나는 자아가 한 50개는 더 되는 것 같아"라고. 내 모든 모습을 완벽하게 이해해서 하나로 통합하는 기적을 이룬다는 건 영원히 이룰 수 없는 꿈인 것만 같았다.

어느 순간  내가 너무 오랫동안 다른 사람들에게 비쳐야 하는 모습과 사회가 암묵적으로 요구하는 틀에 목을 매며 살던 나를 인식하게 된 건 충격적인 일이었다. 사실 이 순간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때부터 뒤돌아봤을 때 나를 비추고 있던 거울이 비추고 있는 내 모습이 너무 낯설어졌고, 다시 내 앞에 있는 거울을 보았을 때 비친 나의 모습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진짜 '나'는 누구일까, 혹은 누구였을까. 아니 사실 '진짜 나'라는 건 없을지도 모른다. 반면 "나는 이런 사람이야"라고 단정 지어 볼까. 그렇게 되면 내가 미처 보지 못한 다른 자아들이 잊히는 것만 같아서 어려운 말이다.


마찬가지로 '다중우주'는 우리가 사는 우주(수조)가 전우주(수족관)의 중심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우리의 우주(수조)가 유일한 모든 것이 아니며, 다른 우주들(수조들)이 이곳저곳에 차고도 넘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동설'과 '다중우주'는 우리에게 세상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라고 속삭인다. '내 방', 그리고 '내 세상의 방'에 갇히지 말라는 것이다. 이는 결코 유일무이하고 절대적인 게 아니라며.

- 다중우주론: 맥락의 바다에 대한 경험 중


그런 내게 다중우주론의 소개는 매력적으로 보이기에 충분했다. 수직적이거나 줄을 세울 수 없으며 그 우주 각자의 고유한 특성으로 존재한다는 것이 꼭 내가 바라보는 자아의 모습인 것 같았다. 거기에 저자가 분류한 '9개의 다중우주' 각각의 특성들은 더 흥미로웠다. 사람의 이야기로 치환해서 보아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내용이었다. 납작하게 추상적인 감각에만 의존했던 나의 "사람을 '우주'로서 바라보는 인식"이 다중우주론을 통해 입체적으로 일어나 세워지고 있었다. 과학에는 관심이 전혀 없던 나였기에, 과학 이론은 나와 세상에 대입해서 바라보고 생각할 수 있다는 방향 자체가 내겐 새로운 경험이었다. 이론을 모두 완벽하게 이해하겠다는 마음보다, 처음 살펴보는 흥미로운 마음으로 천천히 저자의 흐름을 따라가며 다중우주론을 비유로 살펴보고 사람에게 적용하며 이해하는 과정만으로도 이미 보지 못했던 시야를 통해 나와 세상을 다시 바라보고 있었다.


반면에 '다중우주'는 수없이 다른 위상을 지닌 끝없는 '맥락의 바다'를 우선 인정한다. 즉, 당장 이해할 수 있는 단순한 언어로 '복잡계'를 추상화하기 보다는, 이를 경험 가능한 여러 느낌으로 실제화하는 데 주력한다. 마음먹기에 따라 이는 여러모로 유익하다. 예를 들어, 오만과 편견 등의 자기중심주의, 혹은 단순화의 오류 등의 언어도단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 혹은 나의 창의성을 증폭시키거나 진정한 여행을 즐기는 수단으로 이를 활용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다중우주'는 '해탈'이다. (...) 어찌 보면, '다양성'이야말로 이 모든 우주를 관통하는 꿈의 '초끈'이다.

- 다중우주론: 맥락의 바다에 대한 경험 중


다중우주론은 복잡하게 얽혀있는 세상의 모습을 다시금 살펴보게 해주었다. 단순한 공식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이해하던 시선에서 잠시 벗어나, 그 공식 너머 무수한 맥락들을 인정하고 바라볼 수 있는 시야를 선물해 준 것이다. 급하게 나를 이해하고 정의하는 것에서 벗어나서, 나를 구성하는 수많은 맥락을 이해하고 살펴보려는 나의 마음과 많이 닮아있기도 했다. 놀라웠다. 과학 이론이 나의 시야, 마음가짐과 닮아있다는 것이.


1. 기술은 사람의 자화상이다
: 공학이 과연 사람의 맛을 낼까?

2. 과학은 예술의 동료다
:나는 어디론가 떠날 수 있을까?

3. 예술은 마음의 거울이다
: 내 시야가 과연 아름다울까?

4. 사람은 생각의 놀이터다
: 내 삶이 과연 뜻 깊을까?


과학뿐이 아니다. 기술, 예술, 그리고 사람도 예술적인 시야를 통해 새로운 모습으로 입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었다. 기술은 기술이요, 과학은 과학이요, 예술은 예술, 사람은 사람이라며 범위에 한정되어 있던 시야가 예술의 축으로 넓게 세워지는 것이다. 처음에는 막연하게 느껴졌던 이 네 단어가 책 속 소제목들과 함께 하나하나 이해되기 시작했다.

사람으로부터 탄생한 기술은 결국 그 구조가 사람의 사고방식을 닮은 것으로 시작한다. 인공지능까지 이르러 더 구체적인 사람의 사고방식을 따르는 기술은 앞으로도 사람이 필요성에 맞추어 발전할 테니 기술은 과연 사람의 자화상이 맞았다. 과학은 우리가 사는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탐구하는 것이다. 과학이 나아올수록, 우리는 보지 못했던 세상을 볼 수 있게 되었고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어온 세상을 찾을 수 있는 실마리를 얻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과학은 우리의 시야가 닿을 수 있는 세상을 넓혀주는 동료였다.

예술은 사람의 마음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여러 사색과 무의식의 결을 자신만의 언어와 시선으로 드러내는 과정이니, 마음의 거울이라 할 수 있었다. 또 사람은 '생명=생각'이라는 저자의 등식이 생각난다. 인간은 존재하는 평생 무의식이든 의식적이든 생각의 굴레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한 생명이 존재하는 동안 생각이 일어날 수 있으니, 그렇다면 사람의 존재는 세상을 살피는 생각이 즐겁게 노닐 수 있는 하나의 놀이터라고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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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의 처음에서 했던 질문으로 돌아와 보자. 그렇다면 예술적인 시야는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책을 통해 앞선 내용과 같은 만남을 가졌던 필자가 생각의 결을 따라가다 이해한 예술적인 시야는 이런 것이었다. 우선 저자가 책을 통해 전하고자 한 거시적인 '예술'의 의미는 우리가 흔히 인식하는 작품과 같이 특정한 무엇인가나 어떤 행위에서 더 나아간 것이었다. 거시적으로 바라본 예술은 한 사람의 존재로서 자기 삶의 결이 축적된 고유한 시선으로 바라본 세상을 노래하고 그 세상과 함께 춤을 추는 것이었다. 즉 내가 존재하고 있는 모든 것들에 대해 그저 익숙하다는 마음을 잠시 내려두고 조금 더 낯설게 바라보며 그 속에 녹아있는 '나'를, 더 넓게는 나를 둘러싼 세상과의 관계를 나만의 언어로 해석하고 기억하는 모든 모습인 것이다.

그렇다면 세상을 바라보는 예술의 시선은 모든 것들의 대통합의 축이라는 것 그리고 우리 모두가 예술적인 시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작가라는 저자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예술가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 블록체인부터 죽음까지 그림 인문학>은 세상에 대한 보다 넓고 싶은 이해를 갈망하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 블록체인부터 죽음까지라니, '아, 세상을 이렇게 볼 수도 있구나', '세상만물에 '사람의 맛'이 도무지 나지 않는 분야가 없구나'와 같은 삶에의 '통찰', 그리고 여러 이야기들을 나는 이 책을 통해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

- 프롤로그 : 이 책에 대하여 중


결국 이 책은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책인 것이다. 책 속에는 단어만 들으면 낯선 단어들이 모여있는 것 같지만 완벽하게 이해해야 한다는 부담 없이 저자가 제시한 흐름을 따라가다 그것에 숨어있는 사람의 맛과, 그것과 함께 펼칠 수 있는 세상의 이야기를 함께 음미하면 된다. 그러다 보면 "아!"를 외치게 되는 세상의 모습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세상은 여전히 알려진 것보다, 알려지지 않은 것이 더 많다고 생각한다. 정해진 경계를 알 수 없는 것이 세상이고 사람이기 때문에 알 수 있는 것들은 계속해서 늘어나고, 그렇게 볼 수 있는 세상이 넓어진다 하더라도, 그렇다고 해서 알려지지 않은 것이 줄어들고 있다는 느낌은 선연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전히 우리는 미지의 세계다. 하지만 그래서 꿈을 꿀 수 있고 상상할 수 있다. 그런 모호하고 알 수 없는 세상의 모습은 작가인 우리가 사색하고 탐구하고, 또 노래할 수 있는 공간을 선물해준다. 그런 공간에서 상상하고 꿈꿀 수 있는 시야, 자신이 바라보는 세상을 더 다채롭게 보고 이해할 수 있는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서고 있다면 이 도서는 예술적인 시야의 즐거움을 선물해줄 것이다.

우리가 바라볼 세상은 얼마든지 스스로 선택할 수 있지만, 보이는 곳에만, 내가 존재하는 곳에만 머무르기엔 세상은 즐거운 미지의 세계다. 시선을 돌려 그 세상 속으로 한 번 발을 내디뎌 보는 건 어떨까.





[도서 정보]


예술가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블록체인부터 죽음까지, 그림 인문학-


예술가의눈으로세상을바라보기(임상빈)_3d.jpg
 

지은이
임상빈

쪽수
462쪽

출판사
박영사

분야
예술일반

발행일
2019년 6월 30일


예술가의눈으로세상을바라보기_상세페이지(수정).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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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예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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