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우리는 사랑일까" - 알랭 드 보통, 공경희 옮김 [도서]

알랭 드 보통의 책을 놓을 수 없는 두 가지 이유
글 입력 2019.07.21 0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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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사랑은 어려워.


 

부끄럽지만 여기서 고백을 조금 하자면 지금까지의 내 ‘사랑’의 역사는 대부분 보기 흉할 정도의 실패로 점철되어 있다. 나는 잘 생기지도 않았고(못 봐줄 정도는 아니지만), 말을 잘하지도 않고(대화는 할 수 있을 정도지만) 그렇다고 유머감각이 넘치는 편도 아니(끔찍하게 지루하지는 않지만 말이다.)기에, 그러니까 즉, 한 눈에 누군가를 반하게 만들 정도로 매력은 가지지 못했다. 그래서 항상 내 ‘사랑’의 역사는 구구절절한 구애와, 거절, 차임과 실망의 역사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마 가장 최초의 기억은 초등학생 때였다. 정말로 이제는 모든 것이 반쯤 뭉개진 흐릿한 형상으로 밖에 남아 있지 않은 시절이지만, 그 시절 나의 부끄러운 역사들만큼은 아직도 나로 하여금 이불을 차게 만들만큼 생생하다. 나는 초등학교 때, 동네에 있는 보습학원에 다녔다. 아마 수업은 국어, 영어, 수학을 진행했는데, 같은 학년 아이들끼리 같은 반이 되어 수업을 듣곤 하였다. 거의 매일 같이 수업을 듣는데다가 모두 같은 동네에 살다보니 나까지 포함하여 일곱명 정도의 아이들은 굉장히 빠르게 친해졌던 것 같다. 학원 수업이 끝나면 다 같이 놀이터로 달려가 ‘지옥탈출’을 하며 놀던가, 학원 앞 계단에 앉아서 다 같이 수다를 떨던가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곤 했다.


비극은 내가 이 그룹에서 한 여자애를 좋아하게 되면서 시작되었다. 그 여자애는 얼굴이 까맣고, 언제나 활기찼으며, 항상 장난도 잘치고 말도 많은 아이였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아이들끼리 다 같이 어울릴 때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그 아이가 어디에 있는지 의식하게 되었고 눈이라도 마주치며 마치 못볼 것이라도 본 듯이 황급히 시선을 돌려버리기 일쑤였다. 주변 친구들한테 들키는 것은 시간문제였고, 소문은 정말로 빠르게 퍼져 나갔다. 당연히 그 아이의 귀에도 이 이야기가 들어갔고 나를 슬금슬금 피하기 시작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우리 그룹은 계속해서 몰려다니면서 같이 시간을 보냈고, 그 아이와 나도 아무 일 없다는 듯이 행동하면서 소동은 일단락되는 것 같이 보였다.


사건의 발단은 그 아이가 나에게 갑자기 고백을 하면서 시작되었다. 어느 때와 같이 놀이터에서 놀고 있던 와중이었다. 모든 아이들이 보고 있는 와중에, 나를 불러내더니 갑자기 사귀자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안이 벙벙해서 내가 무슨 대답을 하는지도 모른 채, 내 입에서는 ‘좋아’라는 대답이 튀어나왔다. 도저히 믿기지가 않아서 내 볼도 자꾸만 꼬집어보았지만 볼에서 느껴지는 생생한 고통은 지금 내가 꿈을 꾸고 있지 않다는 것만을 확실하게 해줄 뿐이었다. 이러면 해피엔딩 아니냐고 질문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조금만 기다려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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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me, 해질녘


그렇게 행복감에 젖어 하루하루를 보내며 삼일 정도 지났을까, 갑자기 청천벽력과 같은 그녀의 통보가 찾아 왔다. 다시 생각해보자고 말했던 것이다. 잘 모르겠다고, 사귀는 건 없던 일로 하자고 했다. 그 때부터 스스로 무엇이 문제였는지, 무엇이 상황을 이렇게 만들었는지 답도, 끝도 없는 고민이 시작되었다. 이런 류의 고민이라는 것이 늘 그렇듯 자연스럽게 자기 비하와, 근거 없는 망상으로 귀결되기에, 자책과 우울에 빠져 하루하루를 보내곤 했었다. 문제가 무엇이었는지 끊임없이 질문하며 괴로워하기를 여러 날, 보다 못한 친구 하나가 나에게 진실을 말해주었다.


사실 그 애는 자신의 친구와의 내기를 했었는데, 그 내기의 벌칙이 나에게 고백하는 것이었다. 결국 그 애는 내기에서 졌고, 계속되는 그 친구의 정산 독촉에 못 이겨 고백을 했으며, 삼 일만에 나를 찬 것이다. 6학년짜리 꼬마 아이에게 이 진실은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었고, 그래서 그 이후로 나는 학원을 더 이상 다니지 않았고 그 그룹의 아이들과는 다시는 친하게 지내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모두 소꿉장난과도 같은 일이었지만, 여전히 이렇게나 내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있는 것을 보면 생각보다 충격이 컸었던 것 같다. 어쨌든, 이 이야기가 내 첫 번째 실패의 경험이었다.


이후에도 여러 이야기가 있지만, 내 실패의 경험을 구구절절이 늘어놓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 아니기에 말은 줄이겠다. 어쨌든 요지는 ‘사랑’이라는 단어는 항상 내게 쓰라린 패배만을 안겨왔다는 것이다. 나만의 경험은 아닐 것이라고 믿는다. 누구나 ‘사랑’이라는 이름 앞에서 완패 당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사랑은 어렵다. 사랑에 대해 생각하면 할수록 미궁에 빠지는 기분이다. 그렇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사랑을 시작하고, 사랑을 끝내고는 한다. 도대체 우리는 왜 사랑을 하고, 사랑을 키우고, 사랑을 그만하기까지 하는 것일까. 그리고 도대체 왜 우리는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거대한 정념에 이끌려 말도 안 되는 고민을 하고 괴로워하는 것일까? 나에겐 정말로 여전히 사랑은 어렵다.


그런데 여기 아주 도발적인 제목을 지닌 책이 있다. 사랑과 인간관계에 대한 소설들로 명성을 얻은 알랭 드 보통의 소설 『우리는 사랑일까 (The Romantic movement)』가 바로 그 책이다. 사랑의 어려움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손이 갈만 한 제목 아니겠는가? 며칠 전 나는 무엇에 홀린 듯이 이 책의 첫 장을 폈고, 하루도 채 지나기 전에 마지막 장을 덮었다. 이 글의 목적은 간단하다. 먼저, 이 책의 어떤 지점이 나를 그렇게나 매료시켰는지 밝히는 것. 그리고 무엇이 이 책을 탁월하게(재미있게) 만드는지 밝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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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겨울, 국토대장정 중 찍은 사진. 산을 넘는 일은 고통스러웠다.




1.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우리는 사랑일까』가 탁월한 이유는 이 책이 가지고 있는 통찰력에서 비롯한다. 사실 이 책은 소설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로 빈약한 플롯을 가지고 있다. ‘앨리스’라는 여자가 ‘에릭’이라는 남자를 만나서 연애를 하다가, 이별을 맞이한다. 그리고 ‘엘리스’가 새로운 남자 ‘필립’과의 관계를 시작하는 것으로 소설은 끝난다. 소설을 이끌어 나가는 주된 동력은 서사가 아니다. 오히려 이 소설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연애 도중에 ‘앨리스’와 ‘에릭’이 마주하는 수많은 감정들과 상황들에 대한 세심한 분석이다. 알랭 드 보통은 문학과 철학, 역사, 심리학 등의 담론들을 종횡무진하면서 적절하면서 통찰력 넘치는 분석을 우리 앞에 턱하니 내놓는다. 그 앞에서 독자는 ‘아 정말로 맞는 말이야’라고 혼자 중얼거리거나 열심히 그 대목에 줄을 치고 강조 표시를 하면서 페이지를 넘기는 것 말고는 선택지가 없어진다. 몇 부분들을 같이 직접 살펴보면서 조금 더 이야기를 해보자.


 

1-1. 왜 사랑받는가?


사랑을 하다보면, 우리는 항상 이런 식의 질문을 던지거나 마주하고는 한다. ‘너는 내가 왜 좋아?’. 여기서부터 우리 머리는 팽팽 돌아가기 시작한다. 어떤 대답을 해야 상대의 질문에 적절한 대답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한다. 여러 가지 후보군을 고려해본다. 외모, 능력, 돈, 성격, 공감대 등등. 그런데 우리는 이 후보군들 중에 대답으로 고르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고 느끼지 않는가? 예를 들어, 파트너의 ‘너는 내가 왜 좋아?’라는 질문에 ‘너가 돈이 많아서’라는 대답은 무언가 불편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내 직관이지만, 실제로 돈이 많다는 것이 그 사람의 매력 중 하나일지라도 이 대답은 질문자를 전혀 만족시키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까 알랭 드 보통의 언어를 빌리자면, “사랑받는 요건에 좋은 게 있고 나쁜 게 있다고” 느끼는 것이다.

   

 

“그녀는 사랑받는 요건에 좋은 게 있고, 나쁜 게 있다고 느꼈다. 어떤 경우에도 그녀는 사랑받을지 모르지만, 특정한 기준이 제시되었을 때에만 그녀는 사랑을 고백해 오는 사람이 진짜 자신을 사랑한다고 인정할 수 있었다.” (p.200)


 

알랭 드 보통은 이 질문에 대한 가능한 후보군들을 차례로 탐색한다. 가장 먼저 살펴보는 가능성은 ‘육체’ 때문에 사랑받는 것이다. 우리의 육체가 타인에게 가장 먼저, 그리고 명증하게 보이는 ‘나’라는 것을 고려해보면, 누군가가 육체 때문에 나를 사랑한다는 것은 사랑의 좋은 기준이 되어야만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나는 당신의 육체 때문에 당신을 사랑해’라는 말이, 기분은 좋을 수 있을지언정 만족스러운 대답인 것 같지는 않다. 아마 이런 생각은 육체가 나를 온전히 대표해주지 못한다는 생각에서 비롯한 것이 아닐까? 이런 간단한 사고 실험을 해볼 수 있을 것이다. 나와 똑같은 외양을 지녔지만, 정반대의 성향을 지닌 존재가 있다면, 나는 그것을 ‘나’라고 생각할까? 만약 나와 똑같이 생긴 사람이 나와 정반대의 정치적 입장과, 식성, 취향, 생각을 지니고 있다면 그것은 ‘나’일까? 만약 이 질문에 ‘Yes’라고 쉬이 대답할 수 없다면, 우리는 직관적으로 아마 육체가 나를 온전히 대변해주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앨리스는 육체를 우연한 현상으로 보는데 반해, 남자들은 그녀 자아의 확장된 형태로 받아들였다. ...(중략) 남자가 관심을 보일 때면 그 남자의 욕망의 방정식에서 그 대목은 빼고 싶었다. 그녀의 육체가 관심을 끌었더라도, 상대방의 눈길이 거기서 멈추지 않기를 바랐다.” (pp203-204)


 

그렇다면 돈이나 성취한 일 때문에 사랑받는 것은 어떨까? 육체보다는 사정이 조금 더 나아보이기는 하다. 육체를 좋은 기준이 아니라고 기각한 가장 큰 이유는 그것이 ‘나’를 대표해주지 못한다는 우리의 직관 때문이었다. 돈이나, 능력은 확실히 지금의 ‘나’이기는 하다. 그러나 육체와 마찬가지로, 이들은 우연적이다. 정말로 내가 돈이 많아서, 능력이 좋아서 상대가 나를 사랑한다면 그 사람이 “사랑하는 게 돈이나 유명세가 아니라 바로 나라는 것”(p.213)을 어떻게 알겠는가?


상대가 나를 사랑하는 좋은 이유를 외적 조건에서 찾는 것은 어려운 것 같다. 그 이유는 그것이 나를 제대로 대표하지 못하기 때문이었고, 또 언제든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릴 수 있는 우연적인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내가 쉽게 잃어버릴 수 없으면서 나를 더 잘 표현하는 이유로 사랑받는다면 어떠할까? 우리는 그 이상적인 모범을 부모의 사랑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한 상태에서, 있는 그대로 사랑 받는 것. 그러니까 “침을 흘리고, 똥오줌을 누고, 토하고, 울어대고, 이기적인 존재로서”(p.210) 사랑받는 것 말이다.


그런데 ‘있는 그대로 사랑받는 다는 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인가? 무언가를 그 자체로 사랑한다는 것이 무슨 말인가? 아마 그 사람을 이루고 있는 것 중, 그 사람이 잃어버리면 더 이상 그 사람으로 존재할 수 없는 것들, 그러니까 빼버릴 수 없는 요소 때문에 사랑받는다는 의미일 것이다. 우리를 이루고 있는 수많은 요소들은 우리에게서 빼버릴 수 있는 것이다. 외모, 돈, 직장, 능력과 같은 요소들은 “시간이 흐르고 운이 나쁘면”(p.219) 모두 잃어버릴 수 있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을 잃어버린다고 해도 그럼에도 “자신은 남게 될 터”(p.219)이다.

 


“그래서 사랑의 동기에서 그런 기준은 배제하고 싶었다. 그녀의 존재에서 부차적인 것들이니까. 그것들은 그녀의 통제 밖에 위태롭게 존재했다. 지금은 매력적일지라도 어느 날엔가 사라질 것들이었다. - 더불어 그녀를 사랑하던 이도 사라지겠지“ (p.219)



그렇다면 존재 때문에 사랑받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의 기준인 것이다. 문제는 이 확실한 기준이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사랑의 동기 중 덧없는 요소를 다 뺐을 때”(p.221) 우리에게 남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가. 육체와 지성과 가진 것들을 모두 제하고 남아 있는 사랑할 만한 존재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일까. 남는 것이 없다.

 


“...어떤 사랑할 이유가 남았을까? 데카르트처럼 별로 남는 게 없었다. 그녀에게는 순수한 의식, 순수한 자신, 존재한다는 단순한 사실 때문에 사랑받고 싶은 욕망이 남았다. 앨리스가 계속 화장품을 사들인 것도 놀랄 일은 아니었다.”(p.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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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시칠리아의 팔레르모.
다음에 시칠리아에 가면,
시라쿠사를 무조건 가봐야겠다.


1-2. 책임 떠넘기기


알랭 드 보통의 흥미로운 분석을 하나만 더 소개하도록 하자. 상황은 다음과 같다. 우리의 여주인공 엘리스는 에릭과의 관계에서 점차 소원함을 느끼고, 필립이라는 새로운 남자와 미묘한 관계에 들어섰다. 매일 점심을 같이 먹고, 단 둘이 영화를 보러가기도 하며, 연락을 꾸준히 주고받는 그런 무언가 미묘한 사이 말이다. 엘리스는 계속해서 자신이 이 남자에게서 느끼는 끌림을 ‘우정’이라는 이름 아래에 묻어 두려고 한다.

 


“그 남자가 왜 나한테 계속 전화하는지 모르겠어.”

집을 나서면서 그녀가 수지에게 말했다.

“왜 하면 안되니?”

“안 될 이유는 없어. 다만 그이가 엉뚱한 생각을 하지 않으면 좋겠는데.”

“무슨 엉뚱한 생각?”

“알잖아, 이건 우정이야.” (p.348)


 

그런데 어느 날, 엘리스는 필립과 영화를 같이 본 이후 그의 집에 놀러가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의 집에서 한참 이야기를 나누다가 둘 사이의 미묘한 분위기가 흐르고, 결국 필립은 엘리스에게 키스한다. 키스를 한 이후 엘리스는 필립을 비난하면서, 다른 사람을 사귀고 있는 자신에게 도대체 무엇을 기대하냐며 면박을 준다. 알랭 드 보통은 이 상황을 책임 떠넘기기라는 놀이의 형태로 분석한다. 책임 떠넘기기라는 놀이는 다음과 같다. 

 


"사람 두 명, 금기시되거나 위험한 일, 책임감을 느끼거나 비난받을 가능성이 있으면 되는 놀이다. 방법은 놀이에 참가한 한 사람이, 양쪽이 원해서 일어난 일에 대해 다른 한 사람에게 책임이 돌아가도록 미묘하게 상황을 조작하는 것이다.“ (p.351)


 

그러니까 정해진 행위에 여러 단계가 필요한 상황을 상상해보자. 그런데 마지막 단계를 거치기 전에는 원하는 행위가 명백해지지 않는다. 상대가 정해진 행위가 이뤄지기 위해서 그 전의 단계들을 모두 밟았을 지도 모르지만, 결국 책임을 지는 것은 마지막 단계를 취하는 사람이다. 엘리스에게 “필립과 키스하는 일은 에릭에 대한 죄책감을 짊어지운다.”(p.352). “키스의 당사자가 되는 한편, 그 발달인 다른 사람에게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은 핑계가 있을까?”(p.352)


엘리스는 지난 몇 주 간 필립을 계속해서 만나왔고, 그에게 그녀의 남자친구 에릭이 얼마나 그녀에게 형편없이 구는지 불평해왔다. 그녀는 필립과 대화하면서 즐거움을 느꼈고, 심지어 그가 에릭보다 훨씬 더 자기를 즐겁게 하고, 편안하게 만듦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녀는 에릭에게 죄책감을 느꼈다. 굳이 이런 치정의 상황이 아니어도 우리는 관계에서 책임을 떠맡기는 싫지만, 욕망하는 것을 이루고 싶은 마음이 들고는 한다. 아니 사실 책임을 회피하고, 그 결실만을 취하는 일은 언제나 달콤하다. 무릇 그 과정에서 우리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기만적으로 행동하고는 한다. 알랭 드 보통의 탁월한 지점은 우리의 심리 작용 기저에서 작동하고 있는 사고방식을 설득력 있고 공감 가는 방식으로 제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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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도 역시 팔레르모다.
호텔에 들어와 옷을 걸어 놓고 보이는 풍경이
무언가 낯설어 보여 찍었다.

 


2.



소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나도 많지만, 이 두 개 정도면 알랭 드 보통의 글쓰기 방식을 확인하는데 충분할 것 같다. 그는 이렇게 글을 쓴다. 엘리스의 이야기를 빌려, 우리가 ‘사랑’의 과정에서 마주하는 문제들을 조명한다. 그리고 그 문제의 상황들을 솜씨 좋게 분석해낸다. 이 분석들과 마주하면서 느꼈던 두 가지의 느낌이 나를 이 책에 그토록 몰두하게 만들었다.


하나는 ‘아 정말로 그래!’라는 느낌이다. 내가 했었던 행동들이나, 느꼈던 감정들에 대해서 그저 불분명하게 가지고 있었던 직관들이 언어적으로 명료하게 표현되어 있는 것을 보았을 때의 느낌이다. 도대체 이 감정을, 이 행동을 어떻게 남들에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아 이런 생각은 나만 하는 걸 거야.’하며 마음 속 깊이 숨겨두었던 것들이었다. 그런데 그것들이 명증하게 분석되어 내 눈앞에 공감되는 명료한 형태로 나타났을 때 느끼는 쾌감이란. 읽다가 나지막이 ‘아’하는 탄식을 내지른 것이 몇 번이었는지 세기도 어렵다.

 

다른 하나는 ‘그랬었구나!’하는 느낌이다. 내가 이해할 수 없었던 다른 사람의 행동과 감정들은 관계가 종료된 이후에도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있기 마련이다. 연락을 해서 ‘그 때는 왜 그랬느냐’고 질문 할 수도 없는 마당 아니겠는가(그리고 질문을 한다고 해도 좋은 대답을 얻을 수 있는지조차 의심스럽다.). 그저 혼자 머리를 이리 굴려보았다가, 저리 굴려 보다가 역시 이해할 수 없다는 결론만 재확인한 채 기억 저편에 묻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엘리스이지만, 알랭 드 보통의 심리 분석의 대상은 그녀뿐만이 아니다. 그는 이 인물, 저 인물의 내면을 기웃거리면서, 도대체 그들이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 차례차례 따져 묻는다. 그런 부분을 읽다보면, 나와 같은 방식으로 사고하지 않는 사람들의 분석과 마주하게 된다. 그들의 심리가 알랭 드 보통의 언어로 명료하게 풀어져 있는 것을 보고, 그의 분석을 그대로 나의 과거에 적용을 해본다. 그리고는 탄식. ‘아 그랬었구나!’


결국 이 두 가지 느낌이 나를 매료시켰다. 그리고 이 느낌들이 『우리는 사랑일까』가 탁월해지는 이유들이다. 알랭 드 보통의 소설이 뛰어난 이유는 그의 소설이 품고 있는 주제 의식이 문학적으로 엄청난 깊이를 가지고 있어서가 아니다. 그의 묘사가 다른 어떤 소설가보다 아름다워서도 아니다. 그가 창조해내는 세계가 독창적이고 영감을 주기 때문은 더더욱 아니다.(그가 조명하고 있는 세계는 일상적이고 평범한 ‘우리’의 세계이다.) 그의 소설이 탁월한 이유는 굉장히 많은 사람들에게 위에서 말한 느낌들을 느끼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나의 가장 내밀한 부분이 사실은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는 것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났을 때 느껴지는 오묘한 수치심과 쾌감, 그리고 내가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 이해 가능한 방식으로 내 앞에 등장했을 때 느껴지는 답답함의 해소. 나는 이 쾌감에 중독되어 그의 책을 손에서 도저히 내려놓지 못했던 것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그의 책을 읽고, 좋아하는 이유도 마찬가지 아닐까 조심스럽게 추정해본다. 한 번 읽어 보시라. 후회 안 하실 테니.





[김영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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