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Culture letter 04. 커피, 관계를 잇다 [영화]

커피와 인연을 다루는 3편의 영화 : <더 테이블>, <최악의 하루> 그리고 <커피 메이트>
글 입력 2019.07.17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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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좋아하세요?


매일 아침 커피를 마신다. ‘카페인이 없으면 어떻게 살까’를 농담 삼아 말할 만큼 커피를 좋아한다. ‘한국인의 커피 소비량’ 같은 고리타분한 이야기를하고 싶지는 않지만, 우후죽순 생겨나고 사라지는 카페들, SNS를 뒤덮은 커피 사진, 어느 지역에나 존재하는 ‘핫한 카페 리스트’, 전국의 카페를 경험하고픈 이들의 버킷리스트 ‘카페 투어’는 물론, 온라인에서까지 우리는 카페 브이로그와 홈카페 영상을 본다. 지금까지 나열한 요소만으로도 한국인들의 커피, 카페 사랑을 보여주기엔 충분하리라.

‘도대체 커피를 왜 마시는 걸까? 왜 카페에 가는 걸까?’ 습관적으로 커피를 마시고 카페 탐색을 다니면서도 가끔 이런 의문이 슬며시 고개를 든다. 그럴 때마다 카페라는 공간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 차를 마신다는 행위에 대해 새삼스러운 재정의를 내리고 싶다는 마음이 스멀 스멀 올라온다. 기본적으로 차를 마시는 행위는 혼자만의 시간과 관계를 나누는 시간으로 나뉜다. 혼자서 차를 마시는 행위는 나에게 일종의 작은 환기이자 차분하게 나를 다듬는 시간이다. 대부분 글을 쓰거나 일을 할 때(그 일 역시도 대부분 기록의 일환이다) 혹은 책을 보거나 영화를 볼 때 카페를 찾곤 한다. 차를 마시는 행위는 단순히 음료의 개념을 넘어 어떤 아이디어를 받아들이거나 밖으로 꺼낼 때 거치는 일련의 과정인 셈이다.

물론 이는 차를 마시는 행위자가 바뀌면 다분히 재정의될 요소다. 혼자가 아니라 여러 명이 차를 나눌 때, 차를 마시는 행동은 관계와 대화의 매개가 된다. 깊고 얕게, 좁고 넓게. 사람들을 잇는 차의 나눔은 긍정적으로도, 부정적으로도 확장될 수 있다. 누군가와 함께 차를 마시는 행위는 좋든 싫든 다른 사람과의 대화로, 소통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자연스레 우리는 상대방을 알아간다. 결국, 함께 차를 마시는 일은 누군가를 알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나를 다시 돌아보고, 상대방을 알아가는 과정. 차를 마시는 행위는 익숙함에서 벗어나 낯선 존재를 대면하는 일이다. 지루하고 반복적인 일상을 살아가면서 만나는 조그만 일탈이자 변화. 그래서 사람들은 그렇게 새로운 카페를 열렬히 찾아다니는 걸지도 모른다.

예술을 탐하는 일 역시 차를 마시는 행위와 비슷하다. 그리 어렵지 않게 얻을 수 있는 경험이지만 일상 속에 새로운 활기를 넣어주는, 그래서 익숙함의 이면을 탐하게 하는 전환제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여기 커피를 나누며 새로움을 만나는 세 편의 영화를 소개한다. 커피와, 영화,  영화 속 인물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우리의 잔잔한 일상이 조금 더 다채로운 빛깔을 담길 바라며 이 편지를 띄운다.



01. 더 테이블 – 한 테이블에서 벌어지는 얕고 넓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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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더 테이블>은 한 카페의 한 테이블, 한정된 구도와 설정 속에서 이야기가 흘러간다. 카페 테이블의 시점에서 이 테이블을 스쳐 지나가는 네 개의 인연을 지극히 담담하게 보여준다. 시간에 흐름에 따라 4개의 이야기가 단편적으로 흘러가는데 영화 밖의 사람들은 지극히 객관적인 타인의 시선으로 어디선가 들어본 듯, 익숙한 네 가지 이야기를 마주하게 된다.


(정유미 & 정준원)
오전 열한 시, 에스프레소와 맥주.
“나 많이 변했어.”
스타배우가 된 유진과 전 남자친구 창석
 
(정은채 & 전성우)
오후 두 시 반,
두 잔의 커피와 초콜릿 무스케이크.
“좋은 거 보면 사진이라도
하나 보내줄 줄 알았어요.”
하룻밤 사랑 후 다시 만난 경진과 민호
 
(한예리 & 김혜옥)
오후 다섯 시, 두 잔의 따뜻한 라떼.
"좋아서 하는 거예요. 아직까진..."
결혼사기로 만난 가짜 모녀 은희와 숙자
 
(임수정 & 연우진)
비 오는 저녁 아홉 시,
식어버린 커피와 남겨진 홍차.
“왜 마음 가는 길이랑 사람 가는 길이
달라지는 건지 모르겠어.”
결혼이라는 선택 앞에 흔들리는 혜경과 운철

_영화 소개 중


한정된 프레임과 시점 속에 영화의 특징은 고스란히 드러난다. 기승전결이 분명한 이야기 대신 조금은 느리고 잔잔한, 미완의 여운이 남는 이야기들은 마치 우리의 일상과 같다. ‘차를 마시는 행동’을 기점으로 영화는 이어지고 끊어지는 다양한 형태의 관계를 보여준다. 때로는 한 사람의 깊은 이야기 한 편보다 흘러가듯 흩어지며 스쳐 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마음을 달래주기도 한다. 커피 한 잔과 함께 잔잔히 음미할 수 있는, 관계를 곱씹어볼 수 있는 얕지만 다채로운 영화다.



02. 최악의 하루 – 관계 속 거짓과 진실



커피 좋아해요?
전 커피 좋아해요
진하게, 진한 각성
정신 똑바로 차려야하거든요
당신들을 믿게 하기 위해서는

- 극 중 ‘은희’의 대사 일부


<더 테이블> 김종관 감독의 또 다른 작품 <최악의 하루>에는 은희(한예리 분)가 등장한다. 두 영화에서 각각 등장하는 ‘은희’는 모두 한예리 배우가 연기하지만 동일인물은 아니다. <최악의 하루>에서의 은희는 연기를 배우는 배우 지망생이다. 영화는 은희를 둘러싼 관계들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찬찬히 비춘다. 영화의 제목처럼 그녀는 전 남자친구와 현 남자친구, 우연히 마주친 일본 소설가 료헤이와 얽히고설킨 하루를 보낸다.

남산과 서촌을 배경으로 흘러가는 은희의 하루에는 수많은 관계들이 스쳐 지나가는데, 이때마다 영화 속에서는 자주 ‘함께 차를 마시는 장면’이 등장한다. 모든 인연의 장면에 차를 마시는 모습이 묘사되지는 않지만 대화가 필요할 때, 새로운 인연이 생기고 이전의 인연이 모양을 달리할 때 주인공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카페를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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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희를 중심으로 흘러가는 이야기 외에 한국을 찾아온 무명 소설가 료헤이의 시점에서도 법칙은 변하지 않는다. 어딘지 명쾌하지 않은 출판사 담당자와의 만남, 급조된 엉성한 독자와의 대화, 진심으로 소설을 음미했던 유일한 독자를 만나는 장면에서도 배경은 카페이고 주인공들은 커피를 마신다.

은희에게는 명확하게 정리되지 않았던 인연의 조각이 꼬여 엉켜버린 하루, 료헤이에게는 한국까지 찾아온 이유가 무색할 만큼의 엉성한 독자와의 만남만이 있던 하루. 두 사람에게 그날은 제목 그대로 ‘최악의 하루’였다. 애매하게 쌓인 하얀 거짓말이 모여 진실과 거짓말의 경계를 흐리고 결국 자신까지도 진실과 거짓을 헤매는 은희. 현실에선 자신을 감추고 소설 속 인물에게 내면의 욕망을 투영하던 료헤이. 영화 초반에 처음 만난 두 사람은 해가 저물고 어두워진 뒤에야 남산 한 자락에서 다시 만난다. 그리고 이어지는 대화. 하루의 마지막 끝에 다다라서야 두 사람은 가장 솔직하게 자신을 드러낼 수 있었다. 그것도 만난 지 하루가 채 되지 않은 새로운 사람 앞에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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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에서 커피는 일종의 장치다.
대화를 끌어내고, 거짓말을 끌어내고,
때로는 진실을 마주하게 하는.


<더 테이블>에서는 카페와 테이블이라는 제한된 설정 안에서 커피를 주제로 여러 편의 이야기가 흘러간다면, <최악의 하루>는 은희와 료헤이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인연이 ‘커피’를 마시는 행위로 드러난다. <최악의 하루>가 <더 테이블>의 전작임을 감안하면, <최악의 하루> 곳곳 자연스럽게 자리 잡은 커피와 카페라는 요소가 더 정교한 과정을 거쳐 <더 테이블>의 독특한 컨셉으로 연결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악의 하루>는 조금 더 동적이고 발랄하다. 은희와 료헤이, 두 사람을 중심으로 관객에게 더 깊은 이입과 공감을 끌어낸다. 이 영화는 진실과 거짓이 교차되는 관계 속에서 진실을 나눌 수 있는 상대를 찾아가는 이야기다. 조금 더 좁게 짜여진, 그렇지만 여전히 다채로운 작품.


긴긴 하루였어요
하느님이 제 인생을
망치려고 작정한 날이에요
안 그러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겠어요
그쪽이 저한테 뭘 원하시는 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원하는 걸 드릴 수도 있지만
그게 진짜는 아닐거에요
진짜라는 게 뭘까요
전 사실 다 솔직했는 걸요

- 극 중 ‘은희’의 대사 일부




03. 커피 메이트 – 커피가 엮어준 인연, 한순간의 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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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소개할 영화는 깊고 진한, 에스프레소 같은 영화다. 앞의 두 작품과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다. 무겁고 강렬하다. <커피 메이트>의 인영(윤진서 분)과 희수(오지호 분)는 카페에서 우연히 만난 ‘커피 메이트’다. 카페에서 오로지 커피만 마시는 사이. 둘은 육체적인 관계를  가지지도, 외부에서 다른 만남을 이어가지도 않은 채, 처음 만난 카페에서만 이야기를 나눈다. 사회적으로 ‘번듯한’ 남편이 있고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나날을 보내는 인영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어딘가 공허한 감정을 느낀다. 자신을 진정으로 이해하는 사람이 없는 기분, 나를 진실하게 드러낼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허무감 속에서 그녀는 희수를 만난다.

자주 드나들던 카페에서 우연히 만난 희수는 의자를 만드는 사람이다.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희수는 자신의 꿈이 세상에서 가장 에로틱한 의자를 만드는 것이라 말한다. 희수의 ‘앉아도 될까요?’로 시작한 둘의 이야기는 초반부터 은근한 긴장감을 탄다. 낯선 사람에게 오히려 속내를 드러내게 되듯 둘은 어린 시절 겪은 상처에 대해서, 현 생활의 불만족스러운 부분에 대해서, 미처 밖에서 하지 못하던 내밀한 마음을 카페 안에서 천천히 풀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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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원래 자석이니까,
내가 가진 무언가를 가진 사람에게
끌리는 게 아닐까?


카페 안에서만 만나는 커피 메이트인 두 사람은 서로 꺼내지 못하던 속내를 공유하며 점점 가까워진다. 하지만 이들이 선을 넘는 건 아니다. 그들은 그저 자신들이 짜놓은 주어진 상황 속에서 서로 공감하고 치유하며 내면의 공허를 채운다. 급박하게 흘러가는 영화의 후반부에서는 자신이 정한 틀을 벗어던지는 인영의 모습이 보이지만, 끝내 두 사람은 이어지지 않는다. 커피 메이트로 만난 인영과 희수의 인연은 마치 한순간의 꿈처럼 아득하게만 느껴진다.

자기장처럼 서로에게 끌리던 두 사람, 내밀한 속내를 시원하게 터놓을 수 있는 상대, 카페라는 제한적인 공간, 후에 극적으로 삶의 태도를 바꾼 인영. 어쩌면 인영에게 희수와의 만남은 더 나은 삶을 향해 가기 위한 하나의 장치였을 지도 모른다. 그녀가 스스로 정한 틀을 혼자 힘으로 깨고 나오면서 희수라는 존재의 의미가 다소 미약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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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결말은 다소 뻔하게 흘러가지만, 스킨쉽 하나 없이도 대화하고 이해하며 서로에게 빠져드는 두 사람의 감정 변화는 굉장히 인상적이다. 억제하고 견뎌내야 하는 것이 많은 현대 사회에서는 마음속 깊은 이야기를 시원히 터놓을 수 있는 상대가 있다는 사실 자체가 하나의 위로가 된다. 따뜻하고 깊은, 진한 맛의 영화. 사랑이란 감정에 대해 다시금 자문하게 만드는 이야기다.



커피, 일상의 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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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는 단순한 음료가 아니다.
그건 어떤 현상이다.
그건 마치 당신 안에 있는 사건과 장소,
특정한 지점 어딘가를 말한다.
 
커피는 시간을 준다.
다만 그 시간은 물리적인 초나 분이 아니라
진정한 자신으로 변하는 시간이다.
자 이제 두 번째 잔을 마시자.

- 거트루드 스타인


오늘 소개한 3편의 영화는 커피를 매개로 각자 다른 형태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한다. 얕고 넓은 관계부터 깊고 좁은 관계, 그 중간 어딘가를 거니는 관계까지. 세 편의 영화는 커피와, 차를 마시는 행동이 주는 의미에 남다른 의미를 둔다. 커피를 기점으로 관계는 이어지고 끊어지고, 다른 방향으로 나아간다. 혼자서 마시는 커피는 내면의 환기를, 다른 이와 함께 하는 커피는 관계의 환기를 끌어낸다. 커피는 그렇게 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 작은 변화를 일으키는 존재다. 습관처럼 마셔대는 커피가 유독 달게 느껴지는 날이다.




[한나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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