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누군가들의 삶의 역사 - 원시인이었다가 세일즈맨이었다가 로봇이 된 남자

그렇게 살아남은 인간은 지금 무엇을 할까?
글 입력 2019.07.17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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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살아남은 인간은 지금 무엇을 할까?”



-문명 발달에 가려진 한 인간의 생존 보고서-


원시인이었다가

세일즈맨이었다가

로봇이 된 남자

_김영현



원세로 표지.jpg
 


[Review]

누군가들의 삶의 역사






Prologue
_삶, 시대의 거울

“70개의 아침을 상상하면

270만 년의 역사를 이해할 수 있다”



어찌 보면 삶은 참으로 단순하다. 아침이 다가오니 하루를 시작할 뿐이고, 다시 다가올 아침이 있기 때문에 밤에는 쉼을 위한 잠을 청한다. 그렇게 하루를 시작한다는 의미의 “아침”이라는 단위로 삶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결국 탄생부터 죽음까지는 그런 단순한 단위로 이어지며, 그렇게 존재하는 모든 사람들은 고유한 삶이라는 범위를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런 수억 명의 삶을 과거에서 현재를 거쳐 미래로 흘러간다는 시간의 흐름 위에 올려놓으면 역사가 된다. 역사도 결국 과거부터 사람이 생존해왔기 때문에 이어진 것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70개의 아침을 상상하면 270만 년의 역사를 이해할 수 있다는 말은 그렇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역사는 결국 모든 사람의 아침이 있었기 때문에 시작되고 존재할 수 있었다.


당연하게도 일상의 아침이라는 단위로만 사람의 삶을 말할 순 없다. 무엇보다 한 사람의 삶은 그냥 이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과거에 인간이 생존하고 또 발전하려 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우리도 없었을 것이다. 무엇이 사람에게 그렇게 생존하고 발전해야 할 의미와 동기를 부여한 것일까. 딱 한 마디로 대답하기 쉬운 질문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인간과 한 개인으로서의 "목적"이라는 것은 삶에 꼭 있었던 것 같다. 나 자신이 살아가는 목적이 있으며, 살아가기 위해 선택한 길에서 성취해야 할 목적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닐까. 그리고 그런 삶의 목적들은 현실과 충돌하며 생기는 무거운 고민과 갈등 사이에서도 쉽게 도망치지 못하게 할 정도로 중요한 것임은 확실한 것 같다.


이러한 삶 속의 모든 선택과 목적, 그리고 고민과 갈등은 살아가는 시공간인 시대와 맞물려 일어난다. 그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이고 그런 시대에 살아남을 수 있는 방식을 선택해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맥락에서 한 사람의 삶은 그 시대를 드러냄에 전혀 부족함이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즉 나의 삶은 지금의 시대를 드러내는 거울이며, 시대는 지금까지 수억 명의 사람을 품으며 계속해서 자신을 드러내고 변화해온 것이다.



"지식과 공감의 인류사"



내겐 이번 책이 그런 방식으로 인류사를 바라보는 도서로 다가온 때문인지 삶이라는 시점과 역사라는 시점이 다소 엉킨듯한 프롤로그와 함께 글을 시작하게 되었다. 인류사라 하면 어떤 지식으로 보이지만, 한 사람의 삶의 관점에서 그들의 아침을 상상하며 이어지는 누군가의 일상의 이야기라면 그것은 공감이 된다. 그리고 이 두 가지의 모습을 담은 책이 바로 <원시인이었다가 세일즈맨이었다가 로봇이 된 남자>였다.

 





“과거"

_직업, 생존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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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는 더 그대로의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한 삶들이 펼쳐진다. 죽음이 늘 가까이 도사리고 있는 원시인부터 시작해서, 다가오는 시대에 생존을 위해 당대에 필요한 직업으로 노동을 하는 사람들의 일상적인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러한 과거 부분에서는 지금까지 존재하고 있는 직업의 시작뿐만 아니라 시대가 변해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직업의 이야기도 만날 수 있었다.


얼핏 보면 일기 같고, 얼핏 보면 누군가의 독백인 것 같은 글들은 저마다의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혹은 한 남자가)마주한 세상에 대해 말한다. 나는 현재 시점에서 여전히 공존하고, 반면에 다시 사라진 직업들의 이야기를 살펴보면서 직업이라는 것이 생각보다 더 그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의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 중요한 증표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왜냐하면 단순한 행동으로 볼 수 있는 것이 그저 행동이 아닌 “직업”이 되었다는 건 그 행동이나 일이 당대에 꼭 필요한 것으로 자리 잡았다는 걸 암시해주기 때문이었다. 누군가 전문적으로, 지속적으로 해주어야 할 일이었기 때문에 직업이 되었을 터였다. 마치 지금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이동변소꾼이나 촛불관리인과 같은 직업의 존재는 단순히 그 시대에 있던 독특한 직업으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화장실이 잘 갖춰져 있지 않고 전등이 없었던 당시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 거울로 이해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직업의 생성과 소멸 그리고 변화는 사람들의 삶의 모습이 바뀌고 있음을 보여주는 지표로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삶의 모습이 바뀐다는 것은 더 큰 틀인 사회와 시대가 바뀐다는 걸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직업은 시대의 변화를 살펴볼 수 있는 또 다른 방식이 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이러한 접근이 사람의 삶을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더 의미를 가지는 방식이라 생각했다. 위대한 사건과 인물로 구성된 역사는 거시적이고 전체적인 역사의 흐름을 보여줄 수 있지만, 이같이 당시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보여주진 않았기 때문이다. 책 속에 모여있는 한 사람의 시선으로 본 세상의 이야기들은 모여서 그 시대 사람들의 삶의 변화와 그 역사를 보여주고 있었다.






"현재"

_환산, 환상 사이에서

뒤틀린 사회,

아니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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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를 살고 있으면 현대인이다. 그리고 그 앞에는 거대한 자본주의가 서 있다. 그것을 마주한 사람 뒤에는 불안감이 따라온다. 그리고 그중 한 명인 내가 중얼거리고 있는데, 내 뒤에는 나의 원망이 숨어있다. 나는 아직 자본주의 앞에서 숫자로 환산될 게 많이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제대로 환산되어야 사는 것으로 정의되는 사회”. 언젠가 내가 생각한 것이다. 하는 것이 돈으로 환산이 잘 돼야 잘 사는 사람으로 평가된다. 사람을 숫자로 평가하는 것이 너무 비인간적인가, 하지만 이미 알게 모르게 우리는 생계도 남들의 평가도 얼마나 적절히 환산되어 돈이라는 숫자로 돌아오는가에 대해 매여 살고 있다. "나는 얼마일까" 적절한 질문으로 들리진 않지만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어떻게든 더 좋은 대답인 높은 수익이라는, 여유로운 삶을 얻어내기 위해 누구나 매달고 사는 질문이다. 사실 너무나 많은 것이 이 환산 문제 그리고 그 숫자의 늪에서 벗어나고픈 환상의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다. 많은 기쁨, 절망, 갈등, 고민이 이 아래에서 일어나고 있다 해도 전혀 낯선 일이 아니다.



돈이 사람을 만든다는 말은 얼마나 맞는 말이던가. 얼마를 한 달에 쥐어주느냐에 따라 그 사람은 다른 세계에 살아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 예전에는 착실했던 사람이 지금은 몰라보게 달라졌다. 게을러진 것은 물론, 이제는 오만한 말투와 태도까지 겸비하게 되었으니, ‘사람 변했다’라는 말이 딱 어울린다. 숫자는 천천히 우리를 잠식한다. 그는 성실했지만, 착해 빠진 것으로는 승진이 안 된다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 197p (회계사 : 돈이 사람을 만든다 중)



그렇다. 과거를 한참 여행하다 현대에 진입하고 나서부터는 내가 느낀 심한 이질감은 바로 숫자였다. 숫자. 이젠 너무나 중요하다. 세상이 뭔지 생각해 보려 하는 순간부터 숫자는 사람을 가두기 시작한다. 성적이라는 수, 학점이라는 수, 스펙이라는 수, 경력이라는 수, 월급이라는 수, 취업률이라는 수, 심지어 그 누구도 제어하지 못할 나이라는 수. 끝이 없다. 심지어 숫자는 사람을 바꾸기도 한다. 생존하기 위해 인간은 숫자 앞에서 자신을 비트는 것을 주저하지 않기도 한다. 인간을 정의하는 현대의 여러 틀의 대부분은 숫자로 이루어져 있음이 확실한 것 같다. 한숨이 푹푹 나온다. 현대를 살고 있는 나라서 세일즈맨과 직장인이 된 남자의 이야기는 내게 곧 다가올 일상이라 생각하니 뼈가 저리다 못해 시리다. 엄습하는 미래에 대한 고민을 매 순간 접어보려 노력해야 했다.


과거, 생존을 위해 이루어진 질긴 인간의 노력으로 우리는 분명 더 나은 사회로 나아왔는데, 막상 이제는 좋다며 고개를 끄덕일 수 없는 것이다. 인간이 하는 노동의 노력이란 무엇일까. 현대에 와서 또 질문하게 된다. 인간은 안정된 생존 방식에 자리잡자 오히려 새로운 생존의 과제를 만들고 헤어나올 수 없는 노동을 반복하고 있었다. 현재를 읽으며 이런 생각이 드니, 아직 미래의 모습을 읽지 않은 나로서는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미래에 인간은 또 어떤 생존의 과제를 만들고 고군분투하고 있을까.



돈 그 자체는 잘못이 없다. 돈은 곧 자유이자 힘이다. 하지만 때때로 자유가 우리를 망친다. 자유를 얻기 위해 목적에 희생된 가치들이 얼마나 많던가. 역사상 올바르다고 할 수 있는 숫자는 얼마나 되는가.


- 197p (회계사 : 돈이 사람을 만든다 중)





"미래"

_저 사람은 인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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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은 감정을 느낄 수 없을 것이라고 사람들은 말했다. 하지만 인간이 복잡한 알고리즘으로 이뤄져 있듯, 인공지는 또한 일정한 알고리즘으로 이뤄져 있다. 나는 그들의 변수를 파악해 처리하는 로봇수리사다. 로봇을 수리하는 입장이지만, 아무리 기술이 발전해도 고장이 발생한다는 게 이상할 따름이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인간은 감정 때문에 고장 난다.


- 314p~315p (로봇수리사 : 새로운 창조는 머지 않았다 중)



인간의 창조물은 인간이 바라는 방향으로 태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미래의 이야기는 대부분 새롭고 놀라운 기술의 이야기지만 결국 사람의 이야기라는 느낌을 내려놓지 않을 수 없었다. 기술은 스스로 탄생하고 성장하지 않는다. 사람으로부터 시작했기 때문에 결국 사람의 입맛에 맞추어 변화하고 발전한다. 책에서는 성적 욕망을 관리하는 사람과, 기억 세탁을 돕는 사람의 이야기도 나온다. 어떻게 이런 일을? 이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정말 앞으로 우리가 (아니 어쩌면 기술이) 제어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면 무엇을 제어하고,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면 무엇을 해결하려 할지 모르는 일이다. 분명 제 욕망을 제어하지 못하는 몇몇 문제 있는 사람들로 인해 생기는 문제들도 있고, 잊고 싶지만 잊을 수가 없는 기억과 나도 모르는 곳에 흩어진 SNS 데이터와 같은 흔적이 남아 있다는 것도 부정하기만 할 수 없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매스로 배를 가르면, 펄떡이는 인공 심장이 나를 바라본다. 하지만 눈속임에 불과하다. 인공 심장은 본래 심박이 없으며 프로펠러를 회전시켜 일정하게 혈액을 순환하게 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은 자신이 로봇처럼 보이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맥박이 없는 인간은 인간이 아니다. 그러므로 가짜로라도 배가 부풀게 하고, 심박이 느껴지도록 만들어어야 한다.


- 319~320p (인공장기의사 : 인간일까 로봇일까)



나는 읽다 보니 인간 스스로가 할 수 없는 범위를 인간이 만들어낸 창조물로 하려고 한다는 것 자체가 정말 이질적인 느낌으로 다가왔다. 이상하다. 내가 못하는 것을 내가 만들어낸 것으로 해내려고 한다는 방식이 말이다. 단순히 못한다는 의미가 아닌, 인간으로서 제어할 수 없고 감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범위를 말하는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미래 인간의 생존은 아마 곧 “인간성”에 대한 성찰로 이어지지 않을까 싶다. 책에 나타난 질문들을 가볍게만 넘길 수가 없었다. 수명을 다한 인간의 장기를 인공장기로 교체한다면, 사람의 육신이 아닌 인공지능이 인간의 삶을 영위하게 되는데 그는 사람일까 로봇일까. 자신의 욕망을 스스로 조절하지 못해서 가상현실과 남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는 그는 스스로 자신을 영위할 수 있는 사람일까. 시간은 영원히 머물지 않기 때문에 사람의 기억은 삶의 과거를 존재하게 하는 것인데 그 기억을 의도적으로 지운다면, 삶은 무엇이 될까. 더 많은 것을 기술과 인공지능에 맡길수록 우리는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고민해야 할 것이 그만큼이나 더 많이 놓여있는 셈이었다.


이러한 이야기 끝에 만난 허무주의 시대, 자살을 선택하는 사람이 늘어나며 다시 사람들의 삶의 이유를 찾아주려는 라이프가이드의 이야기는 그리 어렵게 다가오지 않았다. 만약 인간성에 대한 질문이 삶을 차지하는 인공지능과 기술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한다면, 충분히 마주할 수 있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자살하는 인구가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들은 건물에서 뛰어 내리고, 목에 밧줄을 걸고, 손목을 긋고 있습니다. 통계에 따르면 인구의 20%가 ‘극단적 허무주의자’로 나아가고 있는데요. 어디서부터 이런 흐름이 시작된 걸까요?”


“그 시작은 인공지능과 로봇이 일손을 대체하면서 수많은 잉여 인력이 생기면서부터였을 겁니다. 과연 내가 이 세상에 필요한 걸까? 내가 인공지능이나 로봇보다 잘할 수 있는 게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겠죠. 자신의 일이 한순간에 없어지고, 앞으로의 희망도 보이지 않는다면, 누구나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집니다. 결국 그들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더 나아가서는 '인간이 지구상에 왜 필요한 것일까?'라는 존재론적 의문을 갖게 되는 것이죠. (...) 스스로 할 일이 없는 인간은, 아니 해야 할 일이 없다고 느끼는 인간은 지독한 허무와 권태에 빠집니다. 너무 큰 자유가 오히려 그들을 나락으로 이끄는 겁니다.”


- 340~341p (라이프가이드 : 다시 의미를 찾다)



미래는 더 좋은 시대일 것이라고 어릴 때부터 들었는지 너무 당연한 것으로 인식하던 나에게 사람들의 삶으로 살펴본 미래의 모습은 “좋은”이라는 수식어를 말끔히 지워 다시 생각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그리고 생각보다 너무나 가까운 이야기들이었다. 미래 이야기의 대부분은 이미 현재에 발을 걸쳐 놓고 이미 시작된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Epilogue

_누군가들의 삶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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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에서 나름대로 거창하게(?) 삶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면서 인류사를 이야기한다는 이 긴 제목의 책의 리뷰를 시작했다. 사실 이 책을 처음 잡고 들어가며를 읽을 때까지만해도 큰 기대를 하지 않았었다. 인류사는 나의 관심사라기에는 자주 접할 수 없는 주제이기도 했고 그래서 그런지 책 자체가 막연하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이미 리뷰글에서 많은 이야기를 했지만, 나는 이렇게 많은 글을 이 책을 통해서 쓸 수 있을지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만큼 처음에는 미지근한 만남이었지만 끝으로 갈수록 온도가 올라가는 시간을 내게 선물해준 책이었다. 인류사라는 조금 무거운 단어를 달고 있는 것 같지만 책의 내용은 오히려 흥미롭다. 가볍게 읽어도, 과거부터 미래까지 어떤 모습의 세상이 펼쳐질지 살펴보고 함께 상상해볼 수 있는 책이었다.


나의 리뷰는 삶을 바라보려는 관점에서 쓰였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인류사라는 말은 여전히 내게 어색하게 다가오지만 누군가의 삶을 읽어나가는 방식을 취한 책이었기 때문에 더 마음을 두고 읽을 수 있었다. 시대와 역사라는 것은 너무나 거대해 보였으나, 결국 나와 같은 사람들의 삶이 이 거대한 여정을 이끌어왔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업적을 세운 위대한 인물이 아닌, 정말 그 시대라서 그런 모습의 삶을 살았던 사람이 되어 쓰인 책이기 때문에, 이름이 남겨지진 않았지만 그 시대의 거울로 살아갔던 수많은 누군가들의 삶의 모습을 통해 살펴본 인류사를 읽었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이 리뷰의 제목이 그런 모습이 되었다.



나는 이 세상이 몇몇 사람들에 의해서만 이루어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모두는 저마다의 역할이 있고, 나름의 삶을 완성하고, 세상에 기여한다. 이 세계는 자신만의 목적의식을 가지고 나아간 수억명의 발자취로 이루어져 있다.


당신이 그들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나 자신과 타인, 우리 종을 이해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그 속에서 자기 자신을 보았으면 한다.


- 들어가며 : 모든 인간이 된 남자 중



죽음으로부터의 생존에서 인간성에 대한 고민까지, 막상 돌아보니 긴 여정을 마친 기분이다. 나는 어떤 지금 무엇을 위해 또다시 아침으로 오늘을 시작하고 있는 걸까. 사소한 질문이라고만 생각했던 것이 삶을 향한 질문으로, 더 가깝고 익숙한 것으로 돌아올 수 있음을 새로이 기억해 본다. 그리고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이 그 시대와 사회를 보여주는 거울이라는 생각도 잊지 않고 이 글 끝에서 한 번 더 해본다. 더 빨리 흘러가는 시대에 아마 나의 삶은 앞으로 더 다채로운 시대의 모습을 비추게 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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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예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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