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원시인이었다가 세일즈맨이었다가 로봇이 된 남자 [도서]

글 입력 2019.07.15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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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본 순간,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둔 소설로 추측했다. 한 사람이 과거/현재/미래를 초월하고 건너가면서 일대기를 풀어내는 소설로 말이다. 그러나 아니었다. 짧은 이야기가 있으나 소설로 보기엔 무리였고, 따지자면 교양 도서였다. 초반부를 읽을 때만 해도 그저 읽기 쉽고 재밌는 교양 도서라 생각했다.


크게 과거 - 현재 - 미래, 세 챕터로 구성됐다. 세 챕터는 잘게 잘게 쪼개져 70개의 소챕터로 구성되어있고 소챕터도 이야기란과 뒤따르는 지식란으로 나눌 수 있었다. 소챕터 제목은 농부, 광대 같은 일종의 직업이다. 인류사를 다루긴 하지만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국가, 위인, 영웅보단 불특정 개인을 조명한다. 특정 지을 수 있는 이름은 등장하지 않고 직업만 등장한다. 물론 개인 정체성을 가장 잘 특정 지을 수 있는 게 직업이니까 직업을 좀 더 조명한듯싶다. 그런 직업명으로 지은 소제목 아래에는 카피라이트가 자리한다. 직업과 내용을 함축하는 카피라이트도 매력적이었다. 전체 내용을 한눈에 들어오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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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피라이트  다음 본문에는 2~3페이지의 짧은 이야기가 삽입된다. 주로 '나'의 화자로 직업을 중심으로 서술해나간다. 역사적 사실과 화자 심정, 감정들을 적절히 각색해서, 재밌다. 챕터 하나하나가 장르소설의 한 부분 같기도 하고 일단 소재 자체가 흥미로워 몰입감이 장난 아니다.

이름 없는 화자는 삶을 성찰하며 고뇌, 감정, 경험들을 얘기한다. 어떻게 보면 하나의 삶이라기보다 직업이라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 같다. 대표성에 초점 맞췄다. 아무래도 직업들을 총망라하고 서술하기 때문인지 직업 자체에 대한 부정적인 서술은 거의 없다. 있더라도 독자들이 직업에 연민과 몰입을 느끼기 만드는 묘사다. 굉장히 표준적이며 교과서적이고 도덕적이다. 신경 써서 묘사했다고 느꼈지만 살짝 느껴지는 괴리는 어쩔 수 없었다. 이런 장치 때문에 뭔가 인간과 직업이 분리돼서 살짝 둥둥 떠다니는 느낌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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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챕터가 바뀔 때마다 굉장히 심리 묘사가 탁월해서, 몰입하며 봤다. 이 정도 퀄리티로 모두 다른 개개인 화자 내·외면을 2~3페이지에 담아낸 것 자체가 놀랍다. 가장 잘 느낀 게 형식의 다채로움이다. 가령 342p에서 보듯이 대화체로 3페이지를 다 끌어낸 점이나, 366p에서는 타인에게 편지를 보내는 형식으로 책을 이끄는 걸 보고 필력에 감탄했다.

당연히 이어지는 알짜배기 지식도 쏙쏙 들어왔다. 구구절절하게 설명하는 게 아니라 핵심만 딱 간추려서 깔끔해서 지루하지도 않았다. 그런 이유인지 270만 년 이상의 방대한 인류사라는 주제에도 재밌었다. 읽으면서 저자가 굉장한 다독가며 뛰어난 관찰가라는 게 느껴졌다. 몰입감 있는 일생과 이어지는 지식들은 서로를 견인하며 시너지 효과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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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다수의 소챕터가 별개라면, 뭔가 이질감이 느껴지고 흐름이 끊긴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데 챕터 사이사이 연결이 매끄럽다. 예로, 38-39쪽을 살펴보자. 먼저 검투사를 얘기한다. 검투사 대부분은 본래 전쟁 포로였고 그들의 신분은 노예라는 문장을 삽입하고 마무리한다. 이어지는 노예 챕터에서 전혀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고 자연스럽다. 49페이지에서는 수행자는 결국 철학자일 수밖에 없다면서 매끄럽게 이어간다. 구성에 공들인 티가 많이 났다. 반대로 세 챕터를 많은 소챕터로 나눴다는 건, 중간에 잠깐 읽는 걸 멈춰도 독서를 재개하기에 무리가 없다는 얘기다. 상술한 구성을 취해 흐름이 끊기지 않으면서도 잠깐 휴지하고 독서해도 무리 없다는, 두 가지 장점을 가져간다.


구성도 구성이지만 아까 말했듯, 책 내용 자체가 흥미로운 소재로 가득하다. 70개의 삶은 70개의 직업이기도 하지만 인간을 이루는 70개의 역사, 세계관이라고도 볼 수 있다. 탄탄하게 책에 녹여냈으며 유려한 필력으로 풀어냈다. 예를 들어, 대장장이 챕터를 살펴보자. 대장장이의 일대기, 일생을 함축해서 훑어준다. 그중에서도 대장장이의 '저주'를 언급하며 독자의 관심을 이끌어낸다.



우리에게는 저주가 하나 걸려 있다. 얼굴이 점점 흙색으로 변하고, 두통과 흉통이 자주 찾아온다.


- 31p



당시 의료 수준으로는 중금속 중독을 알기란 요원한 일이었을 것이다. 영문 모를 신체 이상을 대장장이가 지닌 숙명, '저주'로 비유한 것에 감탄했다. 충분히 그 시대 사람들은 그렇게 여겼을 것이라고 납득이 갔다. 이어지는 지식 파트에서 당시의 대장장이가 연금술사에 버금갈 정도로 위상이 대단했다고 설명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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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p



필연적으로 걸릴 수밖에 없는 저주, 즉 중금속 중독에 대해 재 언급해준다. 단순 나열식의 언급이 아니라, 대장장이와 불의 신인 헤파이토스의 외모와 성격을 들어 설명함으로써 흥미와 몰입이 이어나가게 해줬다. 독자들의 흥미를 유발하도록 신선한 소재를 계속해서 던져준다. 게다가 하나 더 짚고 싶은 건 글 자체가 굉장히 수사적이다. 대장장이를 고대 인어공주에 빗대어 표현한 부분을 보며 감탄했다. 읽을 맛이 났다.

대장장이는 저주를 두려워하지만, 결국 대장장이로서의 업보를 받아들인다. 대장장이로 태어난 이상 받아들여아한다며 자부심과 책임 둘 모두 감내한다. 이처럼 인생에 있어서 정체성 찾기는 평생의 숙제다. 우리는 누구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고민한다. 고뇌와 탐색, 성찰은 대장장이뿐 아니라 70개의 삶 전체에서 드러난다. 그중에서도 탁월하게 묘사했다고 생각한 노예 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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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p



노예라는 정체성, 노예로서의 생활, 나 자신이 노예인 것에 대한 고뇌를 고작 세 쪽에 담아냈다. 지나치게 상징적이며 어려운 어휘를 사용하지 않아 독자들은 편하게 죽 읽어나갈 수 있다. 그럼에도 자기 고뇌를 굉장히 촘촘하게 풀어냈다.



소유의 개념이 땅과 가축, 식량에만 그치지 않고 같은 인간에게도 적용된 것이다. … 17세기 무렵, 아프리카 노예 무역선의 흑인 노예들은 말 그대로 물건 형태로 팔려 갔다. 좁은 창고에 갇힌 수백 명의 노예는 제대로 먹지 못하고 한 달 동안 버텨야 했다. 항해가 예정보다 길어져 식량과 물이 부족해지자, 133명을 골라 물에 빠뜨리기도 했다.


- 43p



시작부터 노예를 '인간 아닌 인간'이라고 명명하여 짓고 시작한다. '노예'라는 사회 계급이 생겨난 배경, 어떻게 노예가 됐는지, 어떻게 취급됐는지 설명해준다. 때로는 식량과 물보다 하찮게 여겨졌던 노예의 가치를 얘기해주면서 노예의 생활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전체적으로 자료조사가 탄탄하게 이뤄졌다는 건 한 장 한 장 읽으면서 느낄 수 있었다. 풀어낸 직업 수만 봐도 알 수 있다. 동서양과 270만 년이라는 시공간적 배경을 초월했다. 노커업, 이동변소꾼, 시체도굴꾼, 촛불관리인 기억세탁사, 노년 플래너, 재계약 상담사 같은 생소한 직업들을 다뤄냈다. 작가의 머릿속이 궁금해질 정도로 과거 현재 미래를 아우르는 지식에 거듭 놀라면서 읽었다.

 

과거/현재/미래 분량이 약 160/120/70 장 정도였다. 과거 챕터는 재밌는 사담을 모아놓은 역사 공부하듯이, 현재 챕터에서는 내가 겪고 인식하고 있었던 오브젝트와 직업이 어떤 식으로 인식되는지, 객관적으로 비교해보는 재미가 있었다. 미래 챕터에서는 우리가 원하는 수요가 미래에 어떻게 반영되는지, 지금 한창 떠오르는 화두와 논쟁을 어떻게 풀어낼지 살짝 엿본 느낌이었다.

 

무분별하고 원치 않는 자극이 쏟아지는 세상 속에서 생각이 많은 현대인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도서다. 발자취를 훑어보면서 교훈을, 현재를 같이 살아가며 생동감과 작은 위안을, 미래를 준비하는 데서 조금의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칠십 인생을 앉은 자리에서 읽어볼 수 있는, 거창하게 말하면 인생설계의 자양분으로 삼을만한 도서고 당장에는 재미를 줄 수 있는 도서다.


*


왕관의무게

조선 시대 왕의 업무는 처리하는 직무가 만 가지나 된다고 하여 ‘만기(萬機)’라 불렀다. 4시에 일어나 늦은 밤 11시 취침까지 식사 시간을 제외하고 16시간이나 노동한 셈이다. … 왕관의 무게는 그들의 육신을 납작하게 짓눌렀고, 평균 나이 47세로 생을 마감했다.


- 69p

 

숨쉬는죽음

 

1천7백 년 전 중국에서는 불로장생의 약을 만들기 위해 도사들이 모였다. 그들은 영생의 비밀이 금이나 은에 있다고 믿었고, 각종 화학 물질을 결합하고 해체했다. 그 와중에 의사이자 도사였던 손사막이 발견한 것이 바로 화약, 폭발하는 물질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영원한 삶을 꿈꿨던 인류는 오히려 더 빠르게 죽는 방법을 발견한 것이다.


- 167p

 

버스기사

 

해가 지고 가로등이 하나 둘 켜지면, 별 하나 없는 밤이 찾아온다. 새벽녘보다 더욱 피곤한 얼굴들이 나의 움직이는 침대 위에서 졸고 있다. 둔턱이 보인다. 속도를 늦추고 최대한 부드럽게 넘어간다. 천천히 그곳을 벗어난다.


- 182p

 

세일즈맨

 

내가 잘 판매하는 비결이라면 이것이다. 경청. 누군가의 말을 들으려면 우리는 마땅히 자신을 놓아야 한다. 첫번째 문 앞에 선다. 우리는 ‘문에서 문으로 들어갔다 나오는 사람’이다. 그것이 실제 문이든, 마음 속 문이든 간에. … 영업사원은 자본주의라는 전쟁터 최전선에서 싸우는 전사였다.


- 186-190p

 

 

노년플래너

 

세월의 지팡이를 딛고 그들은 나에게 온다. 나는 그들의 생을 사려 깊은 태도로 이해하고 공감한다. 주름살 사이로 각자만의 삶이 쓰여져 있다. 그것은 값진 경험으로 나에게 전달된다. 그녀는 자신이 누구였는지 잊어버렸다고 했다. 무엇을 좋아했고, 젊은 날의 꿈이 무엇이었는지 도무지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모든 것이 생의 파도에 휩쓸려 사라져 버렸다고. 나의 할머니는 그렇게 돌아가셨다. 그때의 나는 너무 어렸기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지만, 이제는 아니다. 나는 어쩌면 그 모두에게서 할머니를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 309-310p

 

라이프가이드

 

자살하는 인구가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들은 건물에서 뛰어내리고, 목에 밧줄을 걸고, 손목을 긋고 있습니다. 통계에 따르면 20가 ‘극단적 허무주의자’로 나아가고 있는데요, 어디서부터 이런 흐름이 시작된 걸까요? 그 시작은 인공지능과 로봇이 일손을 대체하면서 수많은 잉여 인력이 생기면서부터였을 겁니다. 과연 내가 이 세상에 필요한 걸까? 내가 인공지능이나 로봇보다 잘할 수 있는 게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겠죠. 자신의 일이 한순간에 없어지고, 앞으로의 희망도 보이지 않는다면, 누구나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집니다. 결국 그들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 340- 34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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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인이었다가

세일즈맨이었다가

로봇이 된 남자

- 모든 인간이 된 남자 -

저자 : 김영현

출판사 : 웨일북(whalebooks)

분야

인문교양

규격

148*210

쪽 수 : 376쪽

발행일

2019년 05월 10일

정가 : 16,000원

ISBN

979-11-88248-85-8 (03900)





[오세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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