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view] '레라미 프로젝트', 세련된 내일을 위해 기억해야 할 것 [공연]

사람의 입은 지우개가 될 수 없기에
글 입력 2019.07.10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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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서울에서 스무 번째 퀴어 퍼레이드가 열렸다. 엄청난 인파와 함께 서울광장은 화려한 무지갯빛으로 물들었고, 확성기와 종교적 메시지가 담긴(어느 쪽이 진정한 신성모독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여하튼 무지개가 신성모독이라 외쳐대는) 푯말이 무지개 사이사이에 검은 얼룩처럼 묻어있었다.

한쪽에서는 거대하고 위압적인 태극기와 성조기를 휘날리며 지난 권력의 회생을 주장하고, 또 한쪽에서는 어딘가로 바쁘게 걸음을 옮기던 행인들이 이 기이한 광경을 가만히 구경하고 있었다. 마치 한국 사회의 현주소를 서울광장과 광화문에 압축시켜 둔 것만 같아, 단지 무지개 깃발을 흔들러 시청역에 갔던 나는 그 밀도에 그만 압사당할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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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부터 ‘혐오’라는 말이 이곳저곳에 많이 회자되었다. 여성혐오, 퀴어혐오, 장애인혐오 등 ‘싫어하다’라는 표면적 의미를 넘어 폭넓은 차별과 폭력을 아우르는 단어로 자리 잡았다.

사실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살해당하거나 집단폭행을 당하는 등의 일이 과거만큼 흔하지는 않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 내에서 퀴어의 입지는 상당히 협소하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퀴어’라는 단어에 선명하게 그어진 빨간 밑줄이 마치 퀴어의 현주소를 드러내는 것만 같아 씁쓸해진다.

난 동성애라는 말을 그다지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 성소수자의 동의어처럼 쓰이는 경우가 많은 탓도 있고, 동성애 뒤에 따라 붙는 혐오적 시선이 불쾌했던 탓도 있다. 동성애에 반대한다, 등과 같은 비문을 볼 때면 저절로 얼굴이 찌푸려져 그 발화자에 대한 감정도 확 상해버렸던 기억도 많다.

그리고 마음속 어딘가에서는 ‘그럼 양성애는? 무성애는? 트랜스젠더는?’과 같은 물음이 이어지기도 했다. 이런 물음에 대해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을 사람들이 다수일지 모른다는 사실에 답답하기도 했다.



나는 동성애 인정하는데, 날 좋아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어


혐오는 단색이 아니다. 퀴어 퍼레이드 때 서울광장을 무지갯빛으로 물들였던 것처럼, 혐오의 색깔도 참으로 다양하다. 개중에는 물리적 폭력이나 언어적 폭력과 같은 실질적인 모양과 선명한 채도를 가진 혐오도 있고, 철저히 상대를 타자화하며 자신의 불쾌감을 에둘러 표현하는 둥그스름한 혐오도 있다.

동성애에 ‘찬성’한다, 하지만 나를 좋아하는 건 ‘싫다’, 동성애는 ‘고칠 수 있다’, 류의 둥근 혐오야말로 우리 사회를 혐오 사회로 만드는 결정적 요인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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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레라미 프로젝트’는 1998년 미국 와이오밍주 레라미에서 한 청년이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울타리에 묶인 채 폭행당한 후 사망에 이른 사건을 기반으로 한다. 작가 모이세스 카우프만은 극단원들과 함께 1년 반 동안 레라미 주민들과 200번이 넘는 인터뷰를 진행하며 신중히 연극을 기획했다. ‘레라미 프로젝트’에서는 성소수자와 혐오 사회에 대한 화두를 던지며 이야기를 꾸린다.

‘레라미 프로젝트’에서 드러나는 극단적 혐오범죄가 우리 사회에 만연하지 않았다 하여 우리가 혐오에서 자유로운 건 아니다. 앞서 말했듯 혐오에는 다양한 종류가 존재하며, 상대의 존재를 지우는 일은 물리적 폭력보다 단어 하나와 문장 한 줄로 더 쉽게 해낼 수 있다. 자신의 존재가 지워진 자리에는 자신만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선명한 상흔이 남는다. 그렇게 사회가 상처로 물들어가는 동안, 점점 더 혐오의 규모는 커지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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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레라미 프로젝트’에서 다루는 혐오 범죄 역시 절대 간단하고 쉬운 사건이 아니다. 내가 나로 존재한다는 이유 하나로 목숨을 포기해야 하는 혐오 사회라니, 생각만 해도 답답하고 숨 막히는 세상이다.



혐오 사회,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


그렇다면 이 답답한 사건을 왜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되돌아보아야 하는 것일까. 그 이유는 아직까지 레라미 사건의 양상이 낯설지 않기 때문이며, 모서리가 깎이긴 했지만 여전히 선명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혐오가 사회에 만연하기 때문이고, 이 사건이 던지는 물음이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다.

성소수자에는 동성애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 성적 지향은 선택이나 찬반의 차원에 존재하는 게 아니라는 점 등 너무나 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못한 현재와 레라미는 꽤 큰 공통점을 공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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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변화는 멈추지 않는다. 누군가가 20년 동안 성소수자를 혐오할 때, 성소수자들은 자신들만의 축제를 끊임없이 개최해 파티를 벌였다. 동시에 성소수자에 대한 시선도 많은 긍정적 변화를 맞이했고, 21세기 현재에는 성소수자를 다루는 창작물을 손쉽게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연극, 소설, 영화를 비롯한 다양한 장르에서 성소수자는 더 이상 ‘특이한 존재’가 아니며, 자신들만이 가질 수 있는 ‘특별한’ 서사를 만들어내는 주인공이 된 것이다. 이런 현상이야말로 퀴어의 성격이 특수성에서 보편성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나타내는 게 아닐까.


내가 나라는 이유로 죄가 되고, 내가 나라는 이유로 벌을 받는 문제투성이 세상에 하나의 오답으로 남아

내가 나라는 이유로 지워지고, 내가 나라는 이유로 사라지는 티 없이 맑은 시대에 새까만 얼룩을 남겨 나를 지키는 사람

- 뮤지컬 ‘레드북’, ‘나는 나를 말하는 사람’ 중


존재만으로 눈총을 받는 사회는 너무 촌스럽지 않은가. 백날 거부해봤자 사람의 입은 지우개가 될 수 없다. 세련된 내일을 위해, 지워질 수 없는 존재들을 위해 ‘레라미’가 기억되기를.



시놉시스

미국 와이오밍주에 위치한 도시, 레라미. 1998년 10월, 와이오밍 대학교에 다니던 21세 청년, 매튜 쉐퍼드는 2명의 20대 남성들에게 폭행당하고 강탈당하고 고문당했다.

울타리에 묶여 있던 그는 반나절이 지나서야 지나가던 행인에게 발견 되었고 병원으로 이송 되었지만, 5일 후 결국 사망에 이르렀다.

이 잔인한 사건의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8명의 극단원들은 직접 취재를 떠나게 된다.

“아, 매튜. 그 게이새끼요?”


공연 정보

공 연 명 : 연극 <레라미 프로젝트>
공연장소 : 두산아트센터 Space111
공연기간 : 2019년 7월 13일(토)  ~ 7월 28(일)
공연시간 : 평일 8시, 주말 3시 (월 쉼)
티 켓 가 : 전석 삼만오천원
제작 : 극단 실한
기획 : 두산아트센터, 극단 실한
러닝타임 : 120분
관람연령 : 14세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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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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